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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진네만 | 지상에서 영원으로 From Here To Eternity (1953) - 2008/08/22 21:56
데보라 카의 별명은 '영국장미'였다. 유럽 출신 여배우들이 각광받던 당시 데보라 카의 소위 '영국적인' 특징은 기품있는 우아함 등으로 평가되기 마련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우아하다. 느끼한 양키 버트 랭커스터하고도 그림같이 잘 어울린다. 유약한 섬세남 몽고메리 클리프트에게는 살짝 야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남부 촌 출신의 건강한 말괄량이 아가씨 필이 나는 도나 리드가 확실히 잘 어울린다.
2차대전 당시 미국이 참전하는 계기가 된 진주만 공습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그 평화롭고 여유로운, 전쟁 따위 설마 나겠어 싶어 룰루랄라거리던 휴양지 섬에서 제대로 뒷통수 따악 맞고 패닉에 빠지던 당시 분위기를 매우 잘 묘사해낸 영화다. 워낙 군바리 체질에 요령좋고 능력도 좋아 징집병 출신으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까지 올라갔지만 장교시험은 보고싶지 않은 일등상사 워든은 겉으로 보기엔 얼음공주 같지만 '놀 만큼 놀았다는' 소문이 도는 대위 마누라 캐런과 연애를 하고, 중사인지 상사인지의 친구 빽 믿고 나팔도 제대로 못 부는 주제에 1등 나팔수 자리를 빼앗아버린 놈에게 열받아 상병에서 일병으로 강등되기를 마다않고 부대를 옮겨버린 한 성깔하는 프루잇은 사교클럽 아가씨 로린, 혹은 알마와 연애를 한다. 그까짓 권투 안 하겠다고 끝까지 고집부리다가 찍혀서 왕따 당하고 괴롭힘 당해도 "남자는 자기 갈 길 가야죠"라고 읊조리는 프루잇. 저런 꼴통새끼 같으니, 투덜거리고 괴롭히긴 해도 은근 맘써주는 츤데레 워든. 그리고 그들의 여자들과 동료들, 그리고 돼먹지 못한 상사들.
영화가 끝나기 15분 전쯤인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 8시 10분 전, 이들은 산 너머 저쪽 하늘에 잔뜩 뜬 폭격기들이 우다다다 폭탄을 쎄리붓는 데에 얼이 빠져 우왕좌왕한다. 장교도 자리를 비운 그때, 일등상사 워든은 부하들을 이끌고 반격를 하다가 죽고, 단 하나뿐이던 군대 내 동료를 죽게만든 영창 간수새끼를 찔러죽이고 탈영한 프루잇은 전쟁 났다니까 저도 군인이라며 부대로 복귀하다 자기 편 보초에게 총맞아 죽는다. 이런 개죽음이 있나. 그러나 그들의 청춘이 단지 '개죽음'이란 단어 하나로 멸시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도 사랑을 했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좋은 걸 주고싶어 했고, 그녀와의 키스에 시궁창 속에서도 장밋빛 꿈을 꿨다.
언제나 전쟁영화는 전쟁터를 최상의 낭만의 장소로 색칠하긴 했고, 그렇게 젊은 청춘들을 유혹하는 한편 그렇게 그들의 희생을 위로했다. 때로는 심하게 거짓말을 했고, 때로는 심하게 겁을 주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헐리웃에서 한동안 제작되었던 일련의 '참전군인 위로영화'의 전통 안에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런 영화들이 갖기 마련인 어떤 특징들에선 살짝쿵 빗겨나 있기도 하다. 그들에게 스코필드 막사는 그저 직장이 다만 군대였을 뿐인 별별 청춘들의 지지고 볶는 일상이 있던 곳, 즉 낭만적인 연인을 만나게 해주기도, 그 낭만을 먹구름으로 뒤덮어버리기도 한 곳이었다. 민망한 군대찬양 대사도 종종 나오는 게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감독 프레드 진네만이 진정 하고 싶었던 건 다른 데에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런 찬양은 눈가림이에요, 저는 그저 직업이 군인일 뿐인 청춘들의 좌충우돌을 그리고 싶었어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일 때문에 이 영화를 다시 봤다가 새삼 삼삼한 기분이 돼버린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그저 이런 것. 채 피기도 전에 져버린 모든 청춘들에게 애도와 명복을. 누군가에겐 단지 개죽음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그녀에게 그의 생전의 삶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찬란한 빛이었기를. 2008 충무로영화제 공식상영작.
ps. 어릴 땐 예쁘고 섬세한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좋았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역시 내 취향은 듬직하고 어깨 떡 벌어지고 팔 근육 지대로이신 버터 양키 버트 랭카스터. 다시 보니 클리프트 군은 왜 이리 찌질하신가효.
ps2. 이전에도 비스콘티 감독의 <레오파드>에서 쉰 살의 버트 랭카스터에게 반해서 "왕자님~" 이러며 정신 못 차리던 때가 있었지. <레오파드>를 찍을 당시 비스콘티 감독은 제작사의 강권에 "랭카스터같은 느끼한 양키 스타 따위~!!" 이러고 펄쩍 뛰면서도 어쩔 수 없이 기용해서 처음엔 워낙 틱틱거렸는데, 랭카스터가 워낙 성실하게 연기를 하니 홀라당 반해서 나중에 다른 영화에서 다시 작업하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랭카스터는 비스콘티의 새까만 후배였던 베르톨루치 감독의 <1900>에도 출연한다.
ps3. 사실 랭카스터나 클리프트나 데보라 카나 내게는 몇 세대 이전의 옛날옛적 배우라는 느낌인데, 로버트 드니로나 제라르 드파르듀와 같이 작업한 적도 있다 생각하면 또 신기한 거다...
ps4. Private인 프루잇을 굳이 '일병'으로 번역한 것은, 당시엔 갈매기를 하나 단 일병이 졸병이었고 그 밑엔 무등병이었기 때문에. 미 육군에 이병 계급이 새로 생기고 일병이 Private the First Class, 이병이 Private이 된 것은 60년대에 들어서다. (아마 68년이었나.) 갈매기 하나에 Private이었던 제임스 라이언이 이병이 아닌 일병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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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 미드나잇>에 대한 옛날 글 - 2007/06/23 02:05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의 <라운드 미드나잇>에 대해, 2003년 11월 4일 새벽 1시 44분에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라운드 미드나잇>은 따베르니에 감독의 매우 ‘개인적인’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찰리 파커의 이야기를 <버드>라는 영화를 통해 풀어내며 재즈에 대한 사랑을 과시했듯, 따베르니에 감독은 버드 파웰의 실화를 느슨하게 각색하여 <라운드 미드나잇>을 통해 재즈에 대한 열망을 담아낸다. 미국이 발명한 음악, ‘재즈’에 대한 프랑스인 감독의 사랑이 표현되는 이야기답게, 황혼기에 접어든 (한때) 위대한 재즈연주자와 어느 프랑스인 간의 우정.
나는 이 영화가 정말 좋다. 영화에서 표현된 두 남자의 우정도 정말 좋다. 이를테면, 그들이 만나는 장면은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위대한 테너 색스폰 주자였지만 근래에 와서 왠지 ‘밀리는 듯한’ 데일 테너가 파리에 와서 ‘블루 노트’(재즈의 상징인 이 이름!)란 이름의 클럽에서 공연하는데, 그를 열렬히 숭배하고 있던 진정한 팬인 프란시스는 클럽에 들어갈 돈이 없어 클럽 하수구 창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음악을 듣는다. 프란시스가 문 바깥에서 쪼그리고 앉아 음악을 듣는 장면은 두 번인가 나오는데, 나는 이 장면이 너무 좋다. 여전히 연주는 잘 하지만, 알콜중독자라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해 클럽에서도 술을 금지당한 데일은 어떻게든 술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그 알콜중독이 된 머리로 잔머리를 쓰다가, 클럽 앞에서 마주친 프란시스에게 ‘맥주 한 잔’을 구걸하면서 비로소 만남이 이루어진다. ‘데일의 친구’라는 직함으로 프란시스는 드디어 ‘공짜로’ 그 클럽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데일의 음악을 정말 황홀한 표정으로 듣는다. 아내도 없이, 단 하나뿐인 십대 초반의 딸래미가 아버지를 기다리며 무서워서 떠는데도 그 딸을 방에 팽개쳐둔 채. 그리고 프란시스는 이후 데일의 ‘가방모찌’ 역할을 충실하게 해낸다. 심지어는, 데일을 자기 집에 데려와 함께 살면서 보살피기 위해 헤어진 전 아내에게 손을 벌려 큰 집으로 이사한다.
술 때문에 망가져가는 데일이 너무나 안타까운 프란시스는, 세상에, 밤에 혼자 훌쩍이면서 ‘운다’. 데일은 이 ‘진정한 팬’, 그리고 ‘친구’를 위해, 세상에 다음날 프란시스의 침대에 아침을 차려다 갖다주며 ‘금주’를 선언한다. 얼마 후에 돈 좀 빌려달라는 데일에게 지폐를 내주고는, 몰래 술을 사마실까봐 도저히 불안해하던 프란시스는 데일을 미행한다. 그리고 그가 카페에서 그저 오렌지 쥬스와 담배를 주문하는 것을 보고 아이처럼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오마이갓.
다소 비아냥조로 글을 썼지만, 나는 앞에서도 밝혔듯 두 사람의 우정이 너무 좋다. 그리고 둘을 비웃을 생각이 없다. 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누군가의 팬 노릇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는 사람만이 프란시스를, 데일을 비웃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비웃는 그 사람들을 비웃을 것이다. 내가 오히려 조마조마했던 건, 저 순전하고, 저 열정적인 ‘팬’인 프란시스가 데일의 무심함에 상처받으면 어쩌나였다. 스타가 무심한 건 그가 배려심이 없다거나 성질이 못돼먹어서는 아니다. 그들은 ‘팬’이란 이름의 존재가 스타가 한번 진 신세를 빌미로 지나치게 달려들기 시작해 자신의 사생활에 침투해 들어오는 것에 예민하게 굴 수밖에 없고, 혹은 그에게 순간의 좋은 기분으로 ‘친구’의 자리를 하사했다 하더라도 무심하게 굴 수밖에 없다. 프란시스의 저 뻘쭘한 순간들. 연주가 끝난 뒤 자기의 동료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스타를 보며, 그 무리에 끼지 못하고 뒤에서 뻘쭘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긴급한 소식을 알려주려고 ‘친구로 인정해준’ 그의 아파트에 갔더니 그와 그의 동료들이 파티중일 때, 그리고 파티 손님 중 하나가 “냄새도 잘 맡네”라며 지딴엔 별 악의를 담지 않은, 그러나 듣는 이에겐 지독하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들었을 때, 그의 기분이 얼마나 뻘쭘하고 민망할지, 겪어보지 않았어도 나는 안다. 그런데 데일은 프란시스에게 지나치게 가식적인 친절을 보이지도 않고, 그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프란시스의 호의를 깨끗하게 받아들이고 적절하게 반응한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우상이 망가지는 것이 너무 속상해서 한밤중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자신의 열정에 솔직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눈물을 우연히 본 데일은, 자신의 ‘친구’를 위해 난생처음으로 ‘금주’를 선언하고, 정말로 실천에 옮긴다...
프란시스는 그렇게, 데일의 친구의 자리를 확실하게 잡아간다. 그저 자신의 위대한 우상이기에, 데일에게 좋은 식사와 좋은 잠자리와 좋은 집을 제공하고 눈물을 흘리며, 그의 가방모찌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그가 연주의 댓가를 직접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이전에는 알콜중독으로 계약서에 서명조차 못할 정도의 그를 ‘보살펴’주면서 적절히 이용도 하는 버터컵이라는 흑인 여인에게 돈이 지불됐다.) 데일은 프란시스와 그의 딸 블랑제에게 좋은 친구의 역할을 하고, 무엇보다도 지독히 아름다운 음악들을 선사한다. 작곡도 다시 하고, 연주에도 힘이 붙는다... 프란시스는 프란시스대로,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대박을 날리며 안정세를 잡아간다.
각자의 본래적인 일상생활을 위해 데일의 프랑스 체류를 끝내고 난 뒤, 데일은 오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한다. 악몽에서 깨어나 잠을 이루지 못하던 프란시스는, 아침 일찍 전보를 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둘은 ‘정말로’ 이별을 맞는다.
돈이 없어 연주클럽 바깥에서 연주를 듣던 관객과 재즈 뮤지션 간의 우정이라는 모티브는, 버드 파웰의 에피소드에서 빌어온 것이다. 이것을 느슨하게 기반으로 하여 픽션으로 바꾸었다. 데일 터너 역할은 실제 위대한 테너 색스폰 연주가인 덱스터 고든이 맡았는데, 특유의 그 느릿느릿하고 정말 알콜중독자 같은 어투로 푸근한 감동을 준다. 프란시스 역을 맡은 프랑수아 끌뤼제는, 알고보니 <올리비에 올리비에>에서 아버지로 나왔던 바로 그 배우였다. 프랑스에선 아주 유명하지만 한국에는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배우. 영화 전체의 뮤직디렉터는 허비 행콕이다. 엔니오 모리꼬네를 제치고 이 영화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허비 행콕은 직접 출연까지 한다. 그리고... 마틴 스콜세지의 깜짝 출연! 대사도 많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정말 많은 말을 쏟아내는 수선스러운 속물 클럽주인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영화 내내, 아주 금싸라기 같은 비밥재즈 음악들이 계속 흘러넘치는데, 이것은 허비 행콕과 덱스터 고든이 직접 연주한 곡들이다. 이러니,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나는 사실 두 남자의 우정을 저런 식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저 위의 표현들은, 그저 줄거리의 나열일 뿐이다. 그리고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을 묘사했을 뿐이다. 데일이 죽은 후에도, 데일의 모습을 찍어놓은 필름을 영사기로 돌려보며 그를 그리워하는 프란시스의 모습이 얼마나 마음 짠한데. 둘의 그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그러면서 지독하게 정직하고 순전한 우정이 얼마나 감동적인데. 내 언어는 저 따위로밖에 표현하지 못 한다. 그래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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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무나 | 21세기 - 2006/12/14 20:33
동지이자 친구였던 '이주노동자 자히드'가 '다큐멘터리 감독 사이드 무나'가 되어 돌아왔다. 이주노동영화제에서 상도 탔다는 그의 영화 <21세기>를, 나는 어제 후원의 밤에 가서야 봤다. 현재 방글라데시에 큰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는 의류산업의 장에서, 전체의 약 80%인 여성노동자들은 한달 겨우 1,000 ~ 1,500 다카(약 2만원)를 받고 일한다. 1인당 최저생활비가 3,000다카는 필요한 상황에서. 아침 8시부터 밤 12시, 어떨 땐 새벽 2, 3시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 새벽 4시부터 화장실에 줄을 서서 물을 받아 식사준비를 하거나 씻고서 출근하고, 시간 외 수당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하는 동안 문을 밖에서 잠그기도 하고, 중간 관리직인 남성 노동자들과 고용주에게 일상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돼 있는 아주 열악한 상황. 그 안에서 방글라데시의 의류노동자들은, 스스로 모여 스스로를 조직하고 투쟁에 나섰다. <21세기>는 감독의 개입이 전혀 없이(그 흔한 내레이션이 한 줄도 없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쌩으로' 그대로 전하며 이들의 상황을, 그리고 고조되는 투쟁에의 의지를 '스스로 카메라에 대고 고발 / 고백'하게 하는 데에 그 진짜 미덕이 있다. 비록 짧은 러닝타임과 조금은 서툰 구성일지라도, 그 구체적인 지리적 장소가 방글라데시의 의류산업 공장이었을 뿐, 한 나라의 중추적 산업에 있어 정부-자본의 합동작전 하에 육체노동을 담당하는 여성 노동자가 처하게 되는 상황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건 어느 나라, 어느 산업에서도 같다. 우리나라에선 바로 6, 70년대 청계천으로 대변되는 의류산업이 그랬고, 이젠 서비스산업으로 옮겨갔을 뿐, 그리고 민주화 투쟁을 통해 착취/억압의 방식이 조금 더 세련돼졌을 뿐.
접은 부분은, 영화상영 후 감독-관객 간 대화
ps 1. 자히드 씨가 긴급히 16일 귀국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와의 만남은 어제가 당분간 마지막이 되었다. 악수와 포옹을 나누며 그가 눈물을 흘렸다. 그가 한국에서 추방되었을 때와 달리 나는 울지 않았다. 한국에 있을 때의 그는 언제나 어딘가 불안하고 지친 모습이었지만, 미디어 활동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지금의 사이드 무나는 자신감 있고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것으로 좋다. Take yourself, comrade.
ps 2. 사이나 무나가 속한 미디어 집단 "Break Through"는 현재 편집 컴퓨터는커녕 카메라도 없어 활동이 힘든 상황이다. 이 상황에 연대하기 위해(까놓고 말하면 카메라를 비롯한 영상장비 조달을 위해) 팀이 꾸려졌다. 자세한 내용은 브레이크 쓰루 블로그를 참조하시라.(후원금 내시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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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캐스단 | 보디 히트 Body Heat - 2006/07/04 05:41
참 의아하다. 그러니까 도대체 무슨 연유로, 어떤 영화 때문에 졸지에 로렌스 캐스단이 "로맨틱 코미디의 귀재" 따위의 이름으로 한때 불렸던 것일까? <프렌치 키스> 때 그런 문구를 동원해 홍보를 했던 것 같은데, <우연한 방문객> 때문인가? 아니면 <죽도록 사랑해>? 아니 어쩌면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일까?
캐스단 하면 언제나 <보디 히트>가 가장 먼저 언급되곤 한다. 새끈한 시절의 윌리엄 허트와 역시 새끈한 시절의 캐슬린 터너가 치정극의 주인공들로 나온다. IMDB를 찾아봤는데 이 영화가 데뷔작이란다. 이런, 결코 데뷔작같지 않은 데뷔작이다. 이렇게 능글능글할 데가 있나.
영화는 '치정극', 그리고 '팜므파탈'이라는 단 두 단어로 설명이 충분할 만큼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이 예상 가능한 것의 과정 하나하나 흥미롭게 엮어가고 있다. 정말로 그녀는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일까? 정말로 그녀는 그를 죽이려 했단 말인가? 정말로 그녀는 그를 이용한 것인가? 혹은, 정말로 그녀는 그를 사랑했을까? 어쩌면 모든 답을 다 알면서도,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의심을 하게 된다.
역시나, 잔느 모로나 페이 더너웨이처럼 서늘한 미녀과에 속하는 캐슬린 터너가 서늘한 매력을 발산한다. 마르고 팽팽한 피부의 윌리엄 허트는 매우 섹시하다. 영화를 보면서, 의도적으로 접근한 남자를 정말로 사랑해 버렸고 게다가 알고보니 팜므파탈이 아니라 가련한 희생자였던데다 비참한 죽음을 맞는 <차이나타운>의 페이 더너웨이 꼴이 나지 않기를 바랐다. 다행히 그녀는 그를 철저하게 이용하고 속이고 심지어는 자신의 죽음까지 위장해 더이상 추적과 의심을 받을 필요 없이 이국적인 곳에서 삶을 즐기고 있다.
고전 누아르에서 팜므파탈은 언제나 주인공 남자에게 파멸을 맞곤 했다. 나는 이 영화가, 결국 그녀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 마음에 든다. 물론 '승리'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게, 그녀는 그를 죽일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한 편으로는 믿고싶었을 것이다. 그의 사랑을, 그의 진심을. 대체로 똑똑한 팜므파탈이 나오는 영화에서, 마지막까지 의심하지 않고 모든 걸 다 바치고, 그녀를 위해 기꺼이, 자기가 앞서 배신당해주는 남자주인공들이 마침내 여주인공에게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간이라도 빼줄 듯 굴다가도 자기가 손해보는 것같으면 의심을 시작한다. 그러게 진짜 사랑은 바보들만 하는 것이다. 혹은 진짜 사랑할 때 바보가 된다.
대체로 이런 식의 스릴러는 인간의 신뢰와 배신에 대해 다룬다. 세상은 너무 순진하게만 살 수는 없다. 그런 경우 멍청함은 불행을 부르고 그는 결국 상대의 사악함 탓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엄밀한 계산의 와중에도 사람은, 누군가를 믿고싶어한다. 그 믿음이 성취될 때, 막대한 돈을 능가하는 행복을 함께 얻는다. 많은 이들이 아름답고 똑똑하며 착하지 않은 그녀들을 욕하면서도 그녀들에게 매혹된다. 하지만 그녀들의 배신은, 말하자면 테스트이다. 그녀들은 사랑의 깊이를 테스트한다. 그의 사랑이 과연 세월에 금방 시들 육체에만 홀려있는지, 아닌지. 손해와 상처를 감수할 자세가 되어있는지. 정말로 그녀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지. 지는 것으로 그 테스트를 통과하는 사람만이 궁극적으로 그녀들에게 구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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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만 | 윈체스터 '73 - 2006/04/11 06:25
제임스 스튜어트의 발견.
혹은 전형적 플롯을 가진 착한 서부영화는 어떤 모습인가?
Winchester '73
오프닝 자막에 의하면 윈체스터 '73은 총 쏠 줄 안다 싶은 넘들은 카우보이고 보안관이고 군인이고 할 것 없이, 심지어 인디언들도 탐을 내던 명기 중의 명기라고 한다.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는 익숙한 "원 오브 싸우전드 (One of Thousand)"라는 말을 익히게 된 게 이 영화를 통해서인데, 이건 천 혹은 이천 자루 중 하나 나오는 완벽한 총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그랜트 대통령과 흔히 '버팔로 빌'로 알려져있던 총잡이(이름밖에 모른다;; 본 서부영화도 별로 없다;;)만이 이 총을 갖고 있었다. 이 영화는 윈체스터 73을 둘러싸고, 특히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사연이 한데 버무려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맡은 주인공 린이 전설의 와이어트 어프가 자신의 (유명한) 수하 뱃 매스터슨을 거느리고 연방 보안관으로 있는 마을에 오는데, 이 마을은 식민지 건설 100주년 기념으로 윈체스터 '73을 부상으로 내건 사격대회를 진행한다. 린이 쫓는 자는 더치 해리 브라운. 둘은 사격대회에서 마주쳐 결승에서 불꽃 튀기는 접전을 벌이는데, 결국 린에게 돌아간 이 총을 더치 해리가 가로채 달아나면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사연은 영화 말미에 가서야 밝혀지는데, 마을에 온 린이 딱 더치 해리와 마주치면서 긴장감이 도는 장면, 사격대회 결승에서 '같은 스승에게 총을 배웠다'면서 뜻모를 - 그러나 정보 제공과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 신랄한 말을 주고받는 장면, 등을 통해 초반에서부터 서서히 탄탄하게 쌓아나간다. 그리고 그 사연과 비밀이 밝혀졌을 때, 이게 참 대단하다. 생각지도 못했다가 완전 히껍했다는...
둘이 나중에 서로 대결하는 씬은 박진감 캡이다. CG로 잔뜩 쳐바르면서 연출력은 꽝인 감독의 영화가 결코 줄 수 없는, 순전히 탄탄한 연출력에서 오는 아주 아기자기한 박진감이 있다. 연달아 터지는 총소리의 편집도 좋고, 계곡에서 서로 바위를 엄호물 삼아 총질을 하는데, 둘 다 사격의 달인인 만큼 총알이 스쳐지나가는 위치가 매우 아슬아슬하다. 앤서니 만 감독의 영화는 <틴스타>에 이어 두번째로 본 것인데, 소박하고 작고 조용했던 <틴스타>보다 규모도 크고 구성도 훨씬 촘촘하고 단단하다. 이 감독이 작은 영화에서의 아기자기한 스토리텔링 외에도 대형영화의 구성 역시 능숙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그럼에도 이 감독, 역시 착하고 순진한 사람 같아;; 설정상으로 보면 대단한 악당에 완죤 인간 말종인데, 도저히 악당이 악당처럼 보이지가 않는단 말이지;; 게다가 멋있기까지. (... 그렇소, 내 취향은 느끼남 꽈요!) 냉혹하지만 저질스럽진 않거든. 그에 반해 제임스 스튜어트의 린은... 뭐, 모범생 타입의 총잡이. 여자한텐 순진하기도 하고. 아참, 이 영화는 아주 전형적인 금발 온미남과 흑발 냉미남의 대결이기도 하다.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는 아니지만.
끝이 인상깊다. 뭐 행복하고 여유롭게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그런 결말이 아니라, 마침내 자신의 숙명을 마친 린이 돌아와 그냥 롤라와 껴안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그 흔한 '지는 석양'이나 '떠오르는 해'를 슬쩍 비추는, 당시 영화의 공식이라면 공식일 만한 마무리 엔딩 클리셰 장면이 없다. 이건 해피엔딩이 결코 아닌 해피엔딩인데, 이제 그는 손에 피를 묻혔으며(이게 또 보통 피가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지배하던, 오직 하나로만 존재하던 자신의 삶의 목적을 이룸으로써,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롤라와 가정을 꾸리고 농장에서 동물을 꾸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랑에 영 서툰 사람인데 말이다. 물론 롤라가 또 대단한 여자긴 하지만. (꽤나 저질인 텍사스 최고로 빠른 총잡이에게 눈 치켜뜨고 대결할 수 있는 강심장의 언니... 게다가 아름답다.)
두 주연인 제임스 스튜어트와 더치 해리 역의 스티븐 맥널리의 이후 행보의 대조가 재미있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지미'로 불리는, 최고 스타가 됐지만, 스티븐 맥널리는 <윈체스터 73>에서 반짝하고는 이후 B무비를 전전하다가 별로 떠보지도 못하고 지고 말았다. 나름 변호사 생활 접고 배우가 된 사람이;;
<틴스타>는 57년작인데 이 영화는 50년작이다. 영화에서 캐릭터를 그려내는 방식과 주제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간다. 근데...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테크닉을 아낄 줄도 아는 감독이었구나, 이 사람. 멋지다.
ps. 이 영화는 2006년 4월 1일부터 9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황혼의 서부 - 샘 페킨파, 앤서니 만 서부극 특별전"에서 상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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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써니 만 | 틴 스타 - 2006/04/11 04:23
작고, 아름답고, 현명한.

(극장에서 필름으로 보지 못한 것을 애도하며...)
관록의 헨리 폰다(이 사람이 이렇게 잘 생겼었군!)와 불안정하고 어설픈 만년 청춘 앤서니 퍼킨스의 조합은 곧장 유사 부자 관계로 이어진다. 마을 원로들에게 쥐어살면서 마을 양아치 놈 하나 처치하지 못해 위협 당하면서도 보안관 뱃지, 일명 틴스타만은 절대로 내놓지 않겠다는 어리버리 찌질한 보안관 지망생 벤 오웬즈(앤서니 퍼킨스)를 어쩌다가 현상금 사냥꾼 - 알고 보면 보안관 출신 - 인 모건 힉맨(헨리 폰다)이 쓸만한 보안관으로 훈련시켜 준다는 게 이 영화의 큰 줄기이지만, 그 안에는 19세기 말 ~ 20세기 초 미국 서부가 받아들여야 했던 새로운 가치관과 이로 인한 혼란 등이 적절히 녹아있다. 백인 중심의 원주민(당시엔 '인디안') 차별 및 탄압의 관습과 공존과 공생의 요구의 충돌이랄지, 소위 명예와 자존심, 기독교적 가치관 등에 기반한 암묵적 합의의 관습법의 시대에서 국가 권력이 개인에게도 적용되면서 요구된 성문화된 법과 질서에 대한 존중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존재하기 마련인 충돌이랄지. 존경받던 마을 원로들은 죽거나 결정적 순간에 꽁무니를 내뺌으로서 몰락하고, 이제 실력과 능력과 소위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관리, 혹은 국가권력의 대리자가 새로운 권력을 얻는 시대이다. 이제 나이빨 갖고는 안 되는 것이며, 외지 출신이라고 무조건 배척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백인 의사"를 살해한 "인디언 형제"들이 "법과 질서를 수호하고자 하는 젊은 보안관"의 노력으로 "그들을 공개사형 시키자고 선동하는 마을의 백인 양아치 골칫덩이를 제압"하고 새로운 질서를 찾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보안관으로서 기술과 후까시를 전수한 모건 힉맨은, 인디안 혼혈인 아들을 둔 아름다운 백인 과부와 그새 눈이 맞아 마을을 함께 떠난다. 공식적인 작별 인사를 받으며.
스페인 포스터인 듯.
물론 '폭력의 피카소'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었던 샘 페킨파의 영화들이 좀더 사람들의 관심과 매혹을 얻는 건 당연할지 모르지만, (물론 나도 그 중의 하나이지만,) 고리타분한 주제를 가진 데다 소박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이 영화가 그래도 마음에 들었다. 이것과 함께 본 <윈체스터 '73>하고만 비교해 봐도 <틴스타>가 소품임은 분명하고, 캐릭터나 이야기나 영 맹숭맹숭한 것도 사실이다. 양아치를 제압하는 게, 어느새 자신감을 갖춘 앤서니 퍼킨스가 정면대결하면서, 그의 따귀를 갈기는 것을 통해서다. (저기, 이거 서부영화라며!!) 하지만 총을 뽑아들지 않고도, 아니 오히려 총을 옆엣 사람에게 넘겨주고 비무장의 상태로 악당에게 다가가 빰을 갈길 수 있는 그 후까시가 진정으로 멋진 사나이의 카리스마임은 분명하다. 그 카리스마는 단순히 상대방뿐 아니라, 깊은 생각 없이 양아치가 벌이는 축제(?)의 판에 끼어들고자 했던 이들을 각성시키고, 그들을 '정신적으로' 제압할 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얌전 범생의 상상 속에선 어쨌건 그렇다. 그게 통할 거라 믿는 그 순진함, 그 소박함. 나름 귀엽지 아니한가 말이다.
앤써니 만 감독은 그러나, 후일에 '와이드 스크린'의 역작이라 불리는 <엘 시드>나 <로마 제국의 몰락>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그의 서부영화는 그렇기에 그의 경력 중 일부일 뿐이며, 그가 샘 페킨파같은 폭력의 시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서 연출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니까. 연출은 나름 잘 짜여져 있고, 카메라를 움직이는 방식은 지금의 '무조건 카메라만 흔들면 박진감이 만들어지는 줄 아는' 철딱써니 감독들의 영화에 질린 사람이라면 안정된 움직임과 짜임새의 장면을 조직할 줄 아는 감독이 선사하는 고전적인 미학의 화면에 나름 은근한 쾌감도 느낄 터이다. 개인적으론 존 웨인의 서부영화보다 앤서니 만쪽이 더 재밌다. (저기, 비교 대상이 아니잖아, 비교대상이! 엉?!)
ps. 이 영화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06년 4월 1일부터 4월 9일까지 열린 "황혼의 서부 - 앤서니 만, 샘 페킨파 서부극 특별전'에서 상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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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돕킨 | 상하이 나이츠 - 2005/10/29 05:01
<상하이 나이츠>가 <상하이 눈>과 눈에 띄게 다른 것은 일단 두 편의 장르가 다르다는 점(첫편이 액션이라면 속편은 코미디다)과 <러시아워> 시리즈 때와 마찬가지로 성룡의 비중이 확연하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게다가 <상하이 나이츠>는 유치하고 불쾌한 수준의 오리엔털리즘과 백인우월주의를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다. 전편보다 뛰어난 속편은 없다는 통설이 이미 여러 차례 뒤집힌 바 있지만, <상하이 나이츠> 역시 당당히 이 반열에 올려야 할 영화다.
사실 <상하이> 시리즈는 단순히 액션 혹은 코미디로 분류하기가 힘든데, 이 시리즈가 서부영화의 틀에 많이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이 시리즈 중 <상하이 눈>은 확실히 서부영화의 장르문법을 변형한 액션이었고, <상하이 나이츠>는 서부영화의 특성을 거의 지워버리고 공간적 배경도 과감하게 옮겨버리긴 했지만, 전편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여전히 불려나오는 특성이 있는데다 몇몇 장면은 배경이 서부가 아님에도 서부영화의 장면을 새로이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 나이츠>가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영화가 내지르는 뻔뻔스러운 패러디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지극히 유쾌한 유머감각 때문이다. 영화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성룡의 연기에 잘 어울리게 패러디하면서도 독특한 재미를 주는 씬 구성하며,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에 밝힐 수는 없지만 몇몇 영국 / 미국의 문화영웅의 기원을 제멋대로 설명해버린다. 우리의 두 친구가 만나게 되는 약간 꺼벙한 경사와 거리의 부랑아 소년이 영화 내내 애칭으로 혹은 퍼스트네임으로만 불리다가 마침내 풀 네임이 언급되는 영화 막판이 되면, 관객의 입장에선 순간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그 문화영웅들의 기원이 실은 작고 나이든 동양인(“샹하이 키드”)이라니. 게다가 이것이 이 영화가 자행해버린 각종 고전 걸작 씬들의 패러디와 결합해 버리면 세계 영화사가 조작돼 버린다. 헐리웃 영화의 모든 특성이 실은 “샹하이 키드”와 “뺀질이 블러퍼”가 겪은 모험에서 비롯한 것으로 말이다.
속편을 먼저 봐서인지 오웬 윌슨의 ‘뺀질뺀질한 블러핑의 대가’로서의 코믹한 캐릭터와 성룡의 ‘진중하고 현명한' 성격이 확실하게 드러나며 대조되는 <상하이 나이츠> 쪽이 내겐 더 익숙해서 <상하이 눈>은 다소 인물들이 흐리멍덩한 데다 성룡은 오웬 윌슨을 보조하는 듯한 느낌이다. '신기한 몸언어를 구사하는' 구경거리 배경으로 존재한다는 느낌. 하지만 <상하이 나이츠>에서 성룡은 오롯이 씬 전체를 이끌고 가며 오웬 윌슨과 찰떡궁합을 과시한다. 액션도 훨씬 아기자기하고, 이것이 '걸작씬 패러디'와 만들어내는 상승효과는 더욱 큰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상하이 나이츠>의 모든 즐거운 유머는 실은 <상하이 눈>에서 이미 씨앗이 뿌려진 것들이다. 예컨대 (밝힐 수 없다고 했던 문화영웅 중 한 명을 밝히는 결과가 되겠지만) 영화 속에서 성룡이 맡은 캐릭터의 이름은 ‘천왕’인데, 중국어 발음이 낯선 미국인들은 그를 처음부터 '존 웨인'이라고 부른다. 위기에 처한 두 남자를 번번이 멋지게 구해주는 건 성룡이 어쩌다 결혼하게 된 인디언 부족의 여성이다. 문제는 <상하이 눈>이 이러한 재치를 씨앗만 뿌린 채 싹도 제대로 내지 못한 반면, <상하이 나이츠>는 싹뿐 아니라 줄기를 키우고 열매까지 맺게 했다는 점. 게다가 대거 응용까지 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 '백인'인 오웬 윌슨은 능글능글한 속물 약탈꾼에 사고뭉치의 자리로 확실히 이동하고, 전편에서 거의 바보 취급을 당했던 성룡의 캐릭터는 더없이 현명하면서도 깊은 문화적 유산을 가진 든든한 주인공의 자리를 꿰찬다. 강인한 여성이라는 설정을 그저 주인공들을 위기에서 빼내주는 기능적인 역할(그리고 시나리오의 난점 전담 해결사의 역할)로만 한정시켰던 <상하이 눈>과 달리, <상하이 나이츠>는 맹활약을 펼치도록 든든한 무대를 마련해 준다. 이러한 변화들에서 이 영화는 자연스럽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태생적 한계와 그러한 땅의 백인 미국인이 가질 수밖에 없는 오만함에 대한 애교스러운 자조를 슬쩍 드러내면서 스스로 웃음거리로 만든다. 동양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깊고 풍부한 전통들에 대한 열린마음의 존중도 살짝. 이것들을, 정치적 공정함에 강박을 느끼는 영화들이 의례 갖게 되는 구색맞추기적 어거지나 훈계적 경직성을 거의 갖지 않은 채 자연스럽고 유쾌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상하이 나이츠>가 정말로 칭찬받아야 할 부분은, 이것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이니까 가장 본래의 취지로 돌아가 보자면, 미장센을 구성하는 방식에 있다. 아다시피 성룡 액션의 주안점은 “주변 소품 이용하기”와 “아슬아슬 곡예”이다. 악당을 멋지게 제압해버리는 이소룡과 달리 성룡은 매번 아슬아슬하게 악당의 칼질이나 주먹을 피하며 애처로울 정도로 몸을 혹사한다. <상하이 나이츠>의 액션씬은, 성룡 액션의 핵심을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룡 액션이 특징이 20년대 미국 무성영화, 특히 버스터 키튼 영화의 특징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를 훌륭히 파악하고 있으며 이것을 최대한 드러내도록 구성하고 있다. 카메라는 성룡 액션의 장점을 최대한 드러내면서도 매끈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편집의 리듬 역시 적재적소에서 끊고 잇는 노련한 솜씨를 과시한다. 그런데 이것을, 그 무수한 고전들과 다른 유명한 영화들(심지어 <상하이> 시리즈와 비교하기 좋은 <러시아워> 포함하여)에서 따온 씬들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다.
<상하이 나이츠>가 인용하고 있는 영화들은 사실 imdb.com에도 30편 가량이 올라와 있는데, 영화광이 아닌 일반관객들이라도 이 영화가 <싱잉 인 더 레인>을 시침 뚝 떼고 패러디하는 장면 같은 걸 보다보면 그야말로 ‘뒤집어질’ 수밖에 없다. 노골적이건 은근하건 이러한 인용을 영화 전체 분위기에서 튀지 않고 매끈하게, 너무나 잘 어울리게 변형해가며 수행하고 있는 이 영화는, <러쎌 웨폰> 시리즈 이후 사라진 것 같았던 버디영화의 낡은 공식, 즉 까불이 사고뭉치와 뒷수습 전담반 커플이라는 설정이 여전히 강력한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까지 한다. 결국 이 영화는 종래의 영화들의 온갖 장르와 장르문법을 뒤섞고 패러디하는 하이브리드(‘잡종’이라고 쓰면 왠지 비하의 느낌이...;;)이면서도 가장 고전적인 영화전통들을 한 편의 영화속에서 아름답고 통일성있게 되살려내는 괴상한 미덕을 가지고 있다. 엔딩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웃겨주시는 섬세한 감독의 센스는, 성룡 주연의 영화에 언제나 따라붙는 ‘NG모음 보너스’를 더욱 즐겁게 보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ps. 방금 imdb를 검색하면서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이 영화가 두 번째 연출작인 데이빗 돕킨 감독의 바로 그 다음 작품이 <웨딩 크래셔>라는 사실이다.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이 영화는 (최근 들어 벤 스틸러 - 오웬 윌슨파 유머그룹에 편입된) 빈스 본과 오웬 윌슨을 주연으로 아무 결혼식마다 가서 깽판을 치는 악동 둘의 모험(?!)을 다루는 코미디인데 9월경 미국에서 호평을 받으며 개봉하여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눈여겨보고 있던 영화의 감독이 우연찮게 건진 너무 귀여운 영화를 찍은 그 사람이란 사실을 알게 될 때의 즐거움이란 언제나 “그럼 그렇지!”하는 반가운 기쁨을 동반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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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한동안 벤 스틸러의 영화를 찾아보면서 심지어 <디재스터>도 봤는데, 그리고 제이 로치 영화 찾아보면서 심지어 <알라스카, 미스테리>도 봤는데, <미트 페어런츠>는 분명히 봤을 법한 영화이건만 마치 처음 보는 영화 같다. 아니, 정말로 처음 보는 영화인가봐. 번역 마감으로 쫓기는 와중에 왜 하필 케이블에서 이걸 해주냐고. 그래서... 봤다.
젠장, 보면 볼수록 잭(로버트 드니로)은 요다/윈두, 그렉(벤 스틸러)은 아나킨으로 보이는 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그 온갖 실수들이 벤 스틸러가 븅신 같아서 혹은 악해서 일어나는 실수들이냐고. 처음부터 사시미 눈깔 뜨고 사람을 그딴 식으로 몰아가니까 소심한 인간이 잘 해 보려고 버둥버둥대다가 오히려 사건이 커지는 거 아니냐고.
나에게 이런 영화는 사실 코미디가 아니라 재난영화다. 난 이런 류의 영화를 코미디로 받아들이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을 정말로 부러워한다. 그 사람은, 벤 스틸러같은 실수들을 별로 안 하고 주변에서 능력있고 똑똑하다고 인정받으며 사는 사람이거나, 자신의 민망한 실수도 웃음으로, 인생의 해프닝으로 여길 줄 아는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일 테니까. 어차피 나는 전자는 절대로 못 되니 후자나 되었으면 좋겠다.

그렉 수난곡...
근데 이 영화에서 벤 스틸러 캐릭터가 내게 감동을 준 건, 되지도 않을 임기응변으로 이래저래 하다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치고, 맹하게 굴고, 거짓말을 해도, 본질적인 면에서 언제나 진실하고 성실하며 착하고 타인에 대한 신뢰가 있는 사람이란 것이다. 난 일단 이런 사람이 너무 좋다. 근성과 배알이란 게 또 없진 않아서 비록 카메라를 향해서이긴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장인에게 '덤벼봐~' 하면서 쿵푸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눈 똑바로 뜨고 대들면서 자기 할 말을 하는 데다 상황 역전도 시켜버리더란 것이다. 공항 사무실에서 거의 '취조당하며' 거짓말 탐지를 받던 벤 스틸러가 어느 순간 로버트 드니로에게 취조를 퍼붓는 걸 보면서 어찌나 벤 스틸러가 늠름하고 멋있게 보이던지.
그러면서 또 한 편으로 든 생각. 그 막나가던 꼴통 장인도 딸의 행복을 위해 그 마음에 한참 안 차고 뒷꼭지마저 미워죽겠는 사윗감을 잡으러 달려가는데, 우리 아나킨에게 그만큼의 마음을 보인 게 과연 누가 있었나 하는 거다. 아무리 그 애가 제다이고 초우즌 원이라 한들, 한창 피끓는 이십대 초반 어리디 어린 애한테 사시미 눈깔을 뜨고 이거 해봐, 저거 해봐, 그러다 부족한 거 나오면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넌 역시 그 따위야, 이러면서 애 몰아세우고, 돌이킬 기회라는 건 단 한 번도 줄 생각도 않고, 엄한 짓거리나 시키고, 애가 왜 그 따위로 막 나가는지에 대해 정말 속을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게다가 더 용서가 안 되는 건, 요다가 900년간 제다이를 훈련시킨 노인네란 거다. 평범한 휴머노이드 세계에서도 개망나니 출신이 나이 칠십이 되어 현자가 되는 일이 가뭄에 콩나는 격이나마 생기긴 생기는데, 최고 제다이라면서 구백살이나 처먹으며 그간 온갖 볼 꼴 못 볼 꼴에 온갖 종류의 제다이들 다 보고 훈련시켰을 노인네가 그따위로밖에 굴지 못한다는 건, 진정 용서가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요다를 이렇게 불경하게 부르게 될 줄, 상상이나 했던가.)

사랑이 요물이여...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를 내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트레이닝하는 게 아니라, 사시미 눈을 뜨고 잘 하나 못 하나 감시하면서 일일이 점수 매기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내 길이 옳으니 무조건 내 길로 오라고 멱살잡고 끄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믿고, 내가 줄 수 있는 걸 주며, 헌신하는 것일 게다. 그게 부모 자식 간이든, 연인간이든, 자매간이든, 친구간이든. 자신에게 떳떳하고, 그 떳떳함과 자긍심으로 상대를 열렬히 사랑하는 것. 그저 욕망이 아닌, 그저 내 옆에 두고픈 것이 아닌, 상대의 행복을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 벤 스틸러처럼. 혹은 막판의 로버트 드니로처럼. 그러므로 나는, 저 요다가 아니라, 아나킨도 아니라, 모자라긴 해도 벤 스틸러가 되기 위해, 내 사람관계를 다시 돌아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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