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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영 전 네오이마주 편집장 사건 관련 (1) - 2011/08/20 13:23
1.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하여
애초의 성폭력 사건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나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존중한다. 검찰에선 나 같은 제3자는 접근할 수 없는 양쪽 모두의 증거자료와 진술을 자세히 검토했을 거고, 그에 따라 전문가다운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이런 사건에서 법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제3의 권위가, 당사자만이 알고 있는 진실을 제3자의 입장에서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 재구성은 때때로 진실과 상당히 동떨어질 때도 있고, 당사자들도 미처 깨닫지 못한 진실에 근접할 때도 있다. 법의 판단은 언제나 만인에게 만족스럽지 않다. 더욱이 성추행, 성폭력 사건에서는 법이 재단하기 힘든 - 혹은 재단할 수 없는 - 미묘한 성질의 부분들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법적으로 범죄가 되느냐 아니냐, 혹은 그로 인하여 기소를 하느냐 안 하느냐와는 별개로, 다른 차원에서, 특히나 페미니스트인 내 입장에서 비판할 만한 부분이 존재한다.
여기서 잠깐 성추행을 포함하여 성폭력 사건의 본질을 다시 상기해본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오해하고 있지만 성폭력은 ‘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폭력’에 관한 문제이며, 나아가 ‘권력’에 관한 문제다. 당시 일이 “설사 두 사람의 적극적인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가해자가 비난 받아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오이마주라는 매체에서 당시 가해자는 편집장이었고, 피해자는 어린 나이의 신임 에디터였다. 여기서 피해자의 ‘어린 나이’라는 것은, 피해자가 이제 막 영화비평이라는 분야에 발을 내딛어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기 시작하려는 나이, 그리고 이제 막 학교 외 다른 조직 및 사회생활을 새로이 시작하려 하는 나이였다는 점에서 단순히 가해자에 비해 나이가 어리다는 표면적 사실을 뛰어넘는 중요성을 가진다. 피해자의 위치를 가해자에 비해 더욱 취약한 위치로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분명한 권력적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만큼, 나는 법의 판단과 상관없이 도덕적, 윤리적 차원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약자의 위치를 약취한 것이라 생각한다.
2. 불기소 처분 이후
법과는 무관하게,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사후에 ‘성폭력’으로 정의하는 경우에 대해선 다소 민감한 논란거리가 남아있다. ‘당시엔 아니었다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성폭력으로 규정하는’ 경우는 법적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이건, 다양하고 구체적인 온갖 사례들에 일관되게 적용을 해야 하는 보편적/선재적 법이라는 존재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법이 아닌 도덕과 윤리의 차원에서, 나는 대체적으로 이러한 ‘사후의 정의’가 어느 정도 유효하다고 보는 편이다. 사건 당시 설사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합의’가 권력의 상위에 있는 자가 하위에 있는 자에게 ‘강요한 합의’, 그리하여 ‘마지못해 한 합의’인지, 혹은 피해자가 절대적인 권력의 하위의 위치에서 절대적 상위의 위치에 있던 가해자에게 심리적으로 위축된 나머지 ‘자신이 합의해줬다고 착각한 결과의’ 합의인지 애매하기 때문이고, 피해자가 사건 당시 당황해 제대로 행하지 못한 규정과 정의가, 이후에 시간을 들여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누가 봐도 성폭력인 경우에도 피해자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고 당연한 일인데, 이렇게 미묘한 결이 있는 경우는 더욱 피해자 스스로 그 상황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뒤늦게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사후적 규정과 정의’에는 다소 예민한 부분들이, 그리고 보다 신중히 접근해야 하는 면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3. 시간을 거슬러 : 처음 사건이 공개되었을 당시
내가 사건을 안 것은 인터넷에 공개가 된 후였고, 그 직전 네오이마주 에디터를 그만둔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공식입장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활동했던 당시엔 네오이마주 모임에 거의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해서도 거의 몰랐다. 반면 가해자와는 몇 년에 걸친 우호적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내 위치는 대충 ‘가해자 주변’쯤으로 정리가 되는 것 같다. 나는 가해자의 입장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6월 중순경 그와 개인적인 만남의 자리에서 ‘가해자 버전’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사건은 이미 검찰에 송치된 후인 만큼 검찰의 판단이 나온 후 최종적인 판단을 하자고 생각했는데, 저 위에 기술한 내 입장은 가해자를 만나기 전 이미 정리된 내용이자 가해자에게 그 자리에서 전달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지켜온 원칙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버전 이야기에 동요되기도 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한편으로 사건을 알게 된 후 가해자에 대한 끝없는 의심과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예컨대 “사건 공개 이전에 가해자가 내게 했던 (네오이마주와 관련한, 그리고 내가 거절한) 어떤 제안이 실은 이런 게 터질 것을 대비해 나를 일종의 무마용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 아닐까?” 따위. 온갖 혼란과 충격, 공포와 배신감, 그리고 인간에 대한 회의와 의심 속에서 종종 울컥하며 쏟아지는 감정적 폭풍을 겪었다. 원망은 때로 가해자를, 때로 인터넷에서 내 이름을 언급하며 입장을 밝히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향하며 폭발하곤 했는데, 그 와중 “감수해야 할 것들이 있는 법”이라는 조언과, “확인되지 않은 상상의 의심을 증폭시키는 건 쓸데없는 일”이라는 충고가 마음을 진정하는 데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내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부분들도 약간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러나 그 직전까지 네오이마주 에디터였다면,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최소한 신뢰할 수 있는 공식적 기구(이번 경우는 검찰)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는 말을 아끼는 것이 옳다는 생각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내가 새삼 들춰보게 된 것은, 소위 ‘가해자 주변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이렇든 저렇든 ‘대충’ 가해자 주변인으로 몰린 상황은 분명 내게는 새롭고도 충격적인 일이었고, 그만큼 당황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이에 관해 내가 도움을 받았던 글 두 개를 링크한다:
http://www.sisters.or.kr/index.php/subpage/feminism/33
http://stoprape.or.kr/266
그러나, 가해자 주변을 향해 쏟아졌던 어떤 ‘요구’들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아무래도 나 역시 그런 ‘요구’를 들었던 당사자이니만큼 감정이 앞서 글이 간결하게 정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다음 글에서 계속하고자 한다. 일단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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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mm 필름의 황혼기 - 2011/08/04 17:13
지난 7월 18일, 버라이어티지는 디룩스(Deluxe)사와 테크니컬러(Technicolor)사의 35mm 필름부문 사업합병 사실을 보도하며 "필름의 황혼기를 예고하다"라고 제목을 뽑았다. (기사 바로가기: David S. Cohen, "Lab pack heralds twilight of film" Variety) 디룩스와 테크니컬러는, 말하자면 영화산업사상 양대 축을 이루던 세계 최대의 필름 현상소라 할 수 있다. 디지털이 일반화되기 전, 우리가 극장서 헐리웃 메이저 스튜디오의 영화를 볼 때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 그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가면 이 영화를 어디서 현상했는지 현상소의 로고가 나오게 되는데, 99%가 디룩스 아니면 테크니컬러다. 이러한 두 회사가, 양사의 다른 부문들은 그대로 둔 채 35mm 사업부문 간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한편, 버라이어티는 이 기사를 내보낸 지 9일 후인 27일 테크니컬러사와 포스트웍스(PostWorks)사 간 계약을 보도했다. (기사 바로가기: David S. Cohen, "Technicolor acquires LaserPacific" Variety) 테크니컬러가 한편으로는 시네디즘(Cinedigm) 사와 협약을 체결해 디지털 배급을 강화하는 한편, 레이저퍼시픽(LaserPacific)사를 인수해 포토웍스에 후반작업 자산들을 팔면서 디지털 후반작업을 재조정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디지털 혁명이 도래한 후 되도록 저예산으로 영화를 찍는 독립영화는 물론이고 거대 스튜디오의 작품들도 대부분 디지털 소스로 배급하고 있는 지금, 35mm 필름'의 위상이 이전보다 줄어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35mm 필름을 생산하는 회사들이 연이어 도산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일하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도, 독립영화뿐 아니라 고전영화들을 DCP로 상영하는 일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2011 시네바캉스 서울'에서 상영되는 히치콕의 세 작품(<새><현기증><싸이코>)도, 러닝타임 5시간 30분에 달하는 <카를로스>도 DCP로 수급했다. 아마 앞으로는 더할 것이다.
디지털은 35mm 필름의 깊이감과 공간감을 재현해주지 못한다는 말도 이제는 옛말이 될 듯하다. 그만큼 디지털이 발전한 탓도 있겠지만, 새로이 제작되는 영화들이 제아무리 35mm로 촬영됐다 하더라도 후반 작업에서 거의 대부분 DI작업을 거치는 만큼, 이제는 디지털 소스를 다시 필름으로 현상해 필름 프린트로 배급하는 일이 이전만큼 큰 의미를 지니기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거대 체인을 가진 국내 모 멀티플렉스는 앞으로 중앙에서 디지털 상영을 관리하는 '매니저'를 두고 35mm 필름을 더 이상 상영하지 않는 방안(그리하여 나아가 영사기사를 정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영사기사가 사용하는 필름 편집용 테입인 35mm 스플라이서 테입이 국내에서 더 이상 판매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도 들었다. 사라지는 것은 필름만이 아니다. 정말 필름의 시대는 곧 종언을 맞는 것인가, 싶어 새삼 기묘한 기분이 든다.
그런 와중에 최근 Netflix사는, "DVD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온라인배급을 확장하고 강화하고 있다. 필름메이커 지의 스콧 매컬리는 최근 영화제에서 DVD 스크리너로 영화를 보는 경험과 'DVD시대의 종언'에 대한 단상을 칼럼으로 썼다. (Scott Macaulay, "Festival film watching and the death of the DVD" Filmmaker) 기술의 변화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는커녕 아쉬워하기도 벅찬 시대다.
ps. 버라이어티의 기사는 대부분 유료이기 때문에 링크가 잘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ps2. 본문에서 글 짧게 쓰고 설명하기 쉬우라고 테크니컬러와 디룩스를 대충 '현상소'로 표현하며 퉁치고 지나갔는데, 실제로 이제껏 해왔던 사업은 그냥 현상소도 아니고, 우리가 쉽게 생각하듯 동네 사진현상소의 영화 버전회사... 수준이 결코 아닙니다. 말하자면 이건 CJ를 대충 '설탕 만드는 공장' 정도로 표현한 거랄까요. 뭐 돈 된다면 아무 분야나 동네 구멍가게 품목에다가도 손뻗치는 국내 재벌에 비유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ps3. 사실 디룩스나 시네디즘의 표기도 그다지 올바르다고는... '디럭스'라곤 차마 못 쓰겠더라고요, 뭐 이것도 딱히 정확한 발음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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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서의 '아버지'의 위치에 대한 잡담 - 2011/07/19 02:01
예전에 굴리던 제로보드를 오랜만에 들어갔다가 이런 글을 발견했다. 무려 2008년 1월 28일, 오후 7시 28분에 올린 글이다. (월요일이었다고 한다.)
2. 왜 한국영화는 현재 '장르영화', 특히 스릴러에 천착하는가.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고, 글을 써보고 싶은 주제입니다.
몇 년동안, 씨네21 평론가 공모가 나면 글 내야지, 내야지 하면서 결국 못 썼는데, 제가 부여잡고 있던 주제는 '한국영화와 아버지'였습니다. 저도 이제 그저 닥치는 대로 영화를 영화별로만 봤던 때보다 눈이 틔였는지, 일련의 '흐름'이라는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중 가장 중요한 주제가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지금도 이 '아버지'란 주제가 변주되는 양상은 굉장히 흥미롭게 제 눈을 잡아끌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도저히 기성세대를 인정하지 못하는 '고아'들의 방향찾기가 저 스릴러 붐이란 생각을 합니다. 우석훈 식 세대구분으로 따지면 딱 X세대. 386도 아니고, 그들이 가진 권력을 나눠갖지도 못했으나, 정신적 유산은 그들에게 거리를 두려 하면서도 오롯이 공유하고 있는 이들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가 없기에(할 이야기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결국 '장르영화'로 몰려간다는 게 제 대강의 생각.
아울러 아버지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현재 헐리웃에서 아버지가 표현되는 양상은. 정확히 하면, 모든 죄짐을 지고 결국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30대~40대의 남자 주인공이라 생각하는데요. 이들은 아직 누군가의 아들이면서도 이제 막 어린 아이의 아버지가 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헐리웃 영화에서는 이미 권위를 모두 가진 아버지가 아들이 아닌 '딸'에게 자신의 권위를 승계하는 어떤 양식을 거쳤다고 생각합니다. 막 아버지가 된 저 나이 남자주인공들이 자신을 희생하는 건 이에 대한 아버지이자 아들인 그들의 어떤 '대답'이란 생각이 들고, 이 흐름은 꽤나 윤리적이라는 생각. 그러나 한국영화에선, 당분간 가부장들의 아버지 찾기와 인정투쟁이 계속될 것이고, 그 와중에 딸들은 여전히 소외될 겁니다. 그래도 요즘은 변화가 아주 빠른 편이니까, 5년 정도 후면, 아버지들이 점차 아들 대신 딸을 후계자로 삼는 과정이 영화에서 나타나게 될까요? 그리고 나면 또 몇 년 동안 박탈당한 아들들의 울부짖음이 계속될 거고, 현실에선, '페미 다 죽일년들'의 메아리가 더더욱 강하게 울려퍼지겠지요. 계급과 성차가 교차하며 부르주아의 딸이 정말로 노동자의 아들보다 우위를 가져버릴 수 있게 된 ('가질 수 있다'와 '가졌다'는 다르죠.) 이 현실이 제겐 대단히 흥미로운 관찰대상입니다. 내가 부르주아의 딸이 아닌 이상, 이 현상이 이전보단 낫게 보이긴 해도 그렇게 반가운 현상도 아니라는 점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제 관심은 이러나 저러나 그럼에도 버려지고 소외된 가난한 노동자의 딸들이니까요. 이게 제 존재이기도 하고.
그나저나 참, 갑자기 생각난 건데, 프레시안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아마 씨네21 평론공모 같은 거에 응시 자격이 안 될 듯해요. 이 '어정쩡한' 위치, 정말 싫군요.
내개 '아버지가 가부장의 권위를 (아들이 아닌) 딸에게 이양해주는' 장면은 <나이트 플라이트>의 촬영장 사진 한 장의 이미지로 박혀 있다. 바로, 이 사진.
사실 영화 촬영장에서의 한 장면일 뿐인데,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 <나이트 플라이트>가 개봉했던 그때, 이 사진은 그저 촬영장 사진 하나가 아니라 좀더 의미심장하게 보였다.
이 주제를 좀더 진득하게 팠더라면 상당히 흥미로운... 정도는 아니고 나름 나쁘지 않은 평문 하나를 완성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뭐 이미 지나가 버린 버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새롭지도 않게 된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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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댄스, 슬램댄스, 그리고 한국의 독립영화제들 - 2010/12/09 04:11
지난 11월 23일, 선댄스영화제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2011년 선댄스영화제의 변화를 예고하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글이 실렸다. 새로이 ‘다큐멘터리 프리미어’ 섹션이 신설될 것이라는 내용도 흥미로웠지만, 정작 내 눈을 끌었던 건 레드포드가 선댄스재단의 창작자 지원의 원칙과 정신을 다시 한 번 강조한 부분이다. “우리가 창작자들을 지원하는 기준근거는 ‘시장에서의 잠재성’이 아닌 ‘창조적인 장점’이다.” 올해 영화제의 기자회견 때 레드포드가 “뿌리로 돌아가겠다”고 강조했던 것은 빈 말이 아니었다.
사실 선댄스영화제는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거대해졌다’는 비난을 이미 90년대부터 지겹도록 들어왔다. 미라맥스를 비롯해 미니스튜디오를 지향하던 중소배급사들은 물론 때로는 거대 스튜디오들까지 선댄스에서 판권경쟁을 벌였던 만큼, “이제 선댄스에는 헐리웃에 간택되기 위해 적당히 말랑하고 적당히 이색적으로 만들어진 보수적인 영화들만 판친다”는 불만과 비난이 공공연했다. 선댄스가 배출해낸 무수한 감독들이 선댄스에서의 수상을 자산삼아 헐리웃에 진출해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주류’ 감독들이 되면서, 한동안(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선댄스는 ‘헐리웃으로 가기 위한 급행 티켓’으로 작용했던 게 사실이다. 그 와중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슬램댄스영화제를 위시해 무수한 작은 영화제들이 ‘안티 선댄스’ 혹은 ‘선댄스의 대안’을 표방하며 속속 생겨났다. 문댄스, 랩댄스, 트로마댄스, 노댄스, 디지댄스, 엑스댄스, 슬램덩크… 이제는 유야무야 잊혀져버린 영화제도 많지만, 선댄스와 같은 시기, 바로 그 파크시티에 열리며 선댄스에 대항했던 슬램댄스영화제의 경우 16년의 역사를 거쳐 이제 선댄스 못지않은 인기와 규모를 누리는 안정적인 영화제로 성장했다. (참고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도 슬램댄스 출신이다.)
그러나 선댄스를 통해 선보이는 영화들은 여전히 흥미롭고 독창적이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원스>는 새로운 뮤지컬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음악영화의 신기원을 개척했고,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베리드>는 단 한 명의 배우를 출연시켜 오직 관 속에서 촬영을 감행했다.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선댄스의 명성에 혁혁한 공을 세워온 다큐멘터리들 역시 다양한 소재와 영화미학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하며, 선댄스에서의 수상을 경력삼아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하기도 한다. 많은 감독들이 선댄스나 슬램댄스를 통해 여전히 헐리웃행 티켓을 움켜잡지만, 또한 많은 감독들이 여전히 저예산의 독립영화들을 자신들이 했던 방식대로 만들며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다.
선댄스가 슬램댄스의 도전을 받고 안팎의 비난을 받으며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것과 달리, 한국의 독립영화제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독하며, 자본을 경계하고 권력에 대항하며 싸운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히려 비난을 받고 표적감사를 당하는가 하면, 지원이 중단되고 탄압을 받는다. 인디포럼은 석연찮은 이유로 ? 촛불시위에 참가한 단체라며 ? 고작 천만 원에서 천오백만 원 남짓 받던 영진위의 단체지원을 작년과 올해 계속 받지 못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저들의 ‘적’으로 지목돼 표적감사를 당한 한독협이 주관하는 행사라서 올해 영진위와 서울시로부터 지원을 중단당했다. 이 와중 인디포럼과 서울독립영화제가 사랑하고 상영했던 독립영화 몇 편이 G20의 성공을 기원한다는 영화제에 납치될 뻔했다가 ‘물.건’으로 낙인 찍히기까지 했던 에피소드는 웃지 못할 코미디의 절정이기도 했다.
상업화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영화제의 도전을 받았던 선댄스. 그리고 상업적이지 않아서, 상업화를 경계하고 권력에 대항하느라 비난을 받는 인디포럼과 서독제. 어쩌면 다른 의미에서 우리는 매우 행복한 상황에 처해있는지도 모른다. 인디포럼이나 서독제 같은 영화제가 여전히 독립영화들의 정신을 지지하고 그 정신을 오롯이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 스스로의 건강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인디포럼과 서독제가 그 맵고 독한 독립영화의 정신을 언제까지고 잃지 말기를. 9일 개막하는 서독제에서 만날 새로운 영화들을, 나는 오늘도 가슴 두근대며 기다리고 있다.
ps. 한국영상자료원이 운영하는 독립영화DB 웹진 페이지에 기고한 칼럼.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ps2. 마침 서독제 개막식 전날 글이 발행되어 다행이다. 영상자료원 쪽에서 센스있게 날짜를 맞춰주셨다.
ps3. 애초 이 칼럼을 쓰고자 결심했던 게 저 'G20성공기원영화제'의 영화납치사건 때문이었다. "차라리 너무 상업적이라 비난받았던 선댄스가 부럽다"는 자조와 삐딱한 비아냥이 들었던 건데,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선댄스와 슬램댄스를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 서독제와 인디포럼에게 너무 감사해야 할 일이더라. 그래서 마지막 문단이 참 힘들고 어렵게 나왔다. 어쨌든 서독제 개막하는 시점에 서독제에 대해 쓰고 개막식도 한 번 더 강조하게 된 셈이라 차라리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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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아줌마 감독들! - 2010/12/03 04:36
올해 5월 인디포럼 사전감독모임 자리에서 처음 <레인보우>를 연출한 신수원 감독과 만났다. 압도적으로 많은 20대의 새로운 감독들 사이에서, 그녀는 굉장히 뻘쭘해하며 자신을 ‘아줌마 감독’이라고 소개했다. 알고 보니 벌써 고등학교를 다니는 딸을 둔, 아줌마로서도 경력이 긴 감독이었다. <레인보우>가 첫 장편이라는 얘기에, 당연히 그녀의 이전 삶이 궁금했다.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며 자신의 영화도 계속 준비하고 있었으나 매번 엎어졌다고 했다. 지치고 지친 끝에 “저질러버리자!”라고 결심을 하고선 자비를 들여 드디어 첫 장편을 완성했고, 그 영화가 인디포럼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에서 초청을 받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의 영화가 전주영화제에도 초청됐단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영화를 곧 보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이후 몇 번이나 그녀와 마주쳤고, 명함과 전화번호와 짧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인디포럼에서도 전주영화제에서도, 심지어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에서 상영될 때도 나는 <레인보우>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 <레인보우>가 극장서 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선입견이 좀 있었다. 일단 ‘레인보우’라는 다소 ‘말랑한’ 제목에서부터 아줌마 감독의 좌충우돌 이야기라는 설정만으로 “대충 어떤 영화일지 감이 잡힌다”고, 감히 건방진 편견을 가졌다. 언론시사로 드디어 <레인보우>를 보러 갔던 날, 자리를 잡고 앉으면서 빌었다. 제발 이런 류의 영화들이 반복하는 그 상투적이고 허무맹랑한 거짓위로와 희망으로 끝나는 영화가 아니기를. 그런데 내 바람 그대로, <레인보우>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가 끝난 뒤, “소품이긴 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참 귀여운 영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한동안 <레인보우>를 봤던 바로 그 날, <레인보우>를 보기 직전에 본 어떤 영화의 강렬한 이미지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며칠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또 한 주가 지나는데, 언제부터인가 전혀 생각지도 않게 <레인보우>의 그 뚱한 고기주의자 아줌마 지완이 생각나기 시작한 것이다. 개미공포에 시달리며 비명을 지르던 모습, 사무실 바닥에 누워 쪽잠을 자던 모습, 독설을 날리던 프로듀서한테 화를 내다가 마지막 고기 한 점을 기어코 뺏어먹던 모습, 그리곤 깻잎에 그 고기를 싸서 그 프로듀서에게 휙하니 내밀던 모습. 인디밴드를 만난 첫 자리에서 대놓고 “너무 겉멋부리는 거 아니에요?”라고 직설법으로 묻던 모습. 후배감독의 촬영장에서 단역을 맡아 주연배우한테 계속 뺨을 맞다가 결국 울면서 폭발하던 모습. 그리고 퉁퉁 부은 뺨을 한 채, 그녀를 똑 닮아 뚱하기 짝이 없는 아들의 방에 슬며시 이펙터를 선물로 놓고 나가던 모습. 그런데 또 이상하다. 그런 장면들 때문에 입에선 계속 비실비실 웃음이 나는데, 눈은 자꾸 축축해지고 뜨거워지는 거다.
새삼 영화에서는 별로 보여주지 않았거나, 슬쩍 깔아두기만 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의 눈치 따위 안 보고 오로지 자신의 영화만을 생각하는 듯했던 그녀는, 사실 얼마나 보이지 않는 눈들과 힘겹게 싸우고 있었던 걸까. 설거지 따위 아무리 쌓여도 아무도 절대로 대신 해주지 않는 집에서, 실은 얼마나 틈틈이 집안일을 열심히 하고 또 얼마나 자주 “아줌마가 가족과 살림도 다 내팽개치고 밖으로 싸돌아다닌다”는 비난과 직면했던 걸까. 그러고보니 이 영화의 첫 시작장면도 그녀가 찌개를 끓이는 장면이 아니었던가. 무뚝뚝한 아들과 그렇게 친구처럼 지내기 위해서 그녀는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던 걸까. 나는 고작 일곱 살 아래 막냇동생하고도 그렇게 친근하지 못한데 말이다. 게다가 그녀는, 요구된 시간 내에 요구된 수정본 시나리오를 착착 뽑아내는 참 성실하고 근면한 직업윤리를 가졌다.
새삼 우리 사회에서 3, 40대 아줌마들이 꿈을 꾸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생각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한 발 한 발에는 또 얼마나 무시무시한 투쟁들이 필요한가. 20대들에게는 ‘88만원 세대’라며 좌절된 꿈에 대한 뻔한 립서비스의 위로라도 몇 마디 건네지지만, 3, 40대 아줌마들에겐 마치 그런 꿈조차 대단한 사치라는 듯, 아예 꿈 자체를 부정당하기 일쑤고, 그녀의 노력보다는 가족의 특별한 지지와 ‘허락’에 더 관심이 집중되기도 한다. 게다가 아내/엄마의 꿈을 지지한다던 가족들은 또 얼마나 쉽게 지쳐 나가떨어지는가. 예컨대 가사노동을 분담하기도 싫고 가사노동의 혜택도 포기하기 싫어하며 ‘엄마의 이기심’을 탓하기 십상 아니던가. 그렇다고 꿈과 소망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도 지완은 용케도, 그리고 ‘감히’ 꿈을 꾸며 또 계속 그 꿈을 위해 ‘감히’ 노력하고 있었다. 사실은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던 거다.
세상의 모든 아줌마 감독들을 위하여
며칠 전 서독제 사전감독모임에 갔다가 박정숙 감독을 만나 <동백꽃 아가씨>가 극장에서 개봉할 무렵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아줌마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외로운 일인지에 대한 고백에 이르렀다. 너무나 힘들어서 한때 영화를 접을까도 생각했었다는 얘기, 부산영화제의 어느 술자리에서 류미례 감독과 손을 맞잡고 “우리 아줌마 감독들은 특별히 더 힘을 내야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 그리고 ‘밖으로 도는’ 엄마를 섭섭해하는, 아직은 어려 엄마를 이해하지는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얘기 등등. 박정숙 감독에게서, <레인보우>의 지완의 모습이 보였다. 고통이나 고생이나 힘든 것도 그렇지만, 단연코 ‘외로움’이 참 짙어보였다.
“꼭 하고싶은 이야기가 있어”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것은 지완이나, 지완을 만들어낸 신수원 감독이나, 박정숙 감독이나 다르지 않다. 박정숙 감독이 <동백꽃 아가씨>를 만든 것도 이제껏 한센인과 그들의 투쟁에 대해 몰랐다는 사실이 너무도 부끄러워서였다고 했다. 그 부끄러움 때문에 카메라를 들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꼭 하고싶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가슴에 품은, 꼭 하고 싶은 이야기” 때문에 카메라를 놓지 못하는 건 6년만에야 신작 <아이들>을 내놓을 수 있었던 류미례 감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뜨문뜨문 작품들을 내놓는, 다른 여성감독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게 이 ‘아줌마 감독’들이 소중한 건, 무엇보다도 나 역시 나이를 먹으며 아줌마가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경우는 아직 부양할 가족도, 키워야 할 아이들도 없어 요구받는 의무가 훨씬 적기에 그네들만큼 힘든 여건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2010년대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줌마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꾸는 꿈이 나의 꿈이기도 하고, 그들의 현재가 나의 현재이자 미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아줌마 감독들에게 내가 느끼는 동지감과 연대의식의 정체다. 그네들이 카메라를 든다면 나는 키보드를 두드린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게다가 그네들은 언제나 다양한 소외된 이들에게, 참 못나고 평범하고 스스로 세상의 먼지 한 조각처럼 느껴지는 바로 우리에게, 이 세상이 떠들썩하게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냥 감독이 아닌 ‘여성감독’으로서 연대의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자신의 아름다움과 즐거움과 슬픔, 외로움과 상처, 때로는 부끄러움과 수치까지도 정직하게 보여줬다. 많은 남자감독들도 그렇지만 여자감독들, 더 좁히면 아줌마 감독들, 더더욱 좁히면 독립영화를 만드는 아줌마 감독들이 더욱 그랬다.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고,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들고, 한 번 더 부끄럽게 만드는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그저 한 명의 영화관객에 불과한 나는, 우리시대 여성 독립영화 감독들, 아줌마 감독들에게 내 진심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탈탈탈 끌어모아 이 연서를 쓸 수밖에 없다. 당신들이 아니면 접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 당신들이 아니면 절대로 보지 못했을 영화들 덕분에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세상을 좀더 맑은 눈으로 더 열심히 보고, 더 열심히 생각하며, 한 번 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고. 그러니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고 외롭겠지만, 참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부탁인 건 알지만, 제발 다른 감독들보다도 더욱 힘을 내서 계속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온 힘과 마음을 다해 그 영화들을 사랑하겠노라는 조금 민망하고 부끄러운 약속과 함께 말이다.
ps. 네오이마주에 '서독제 특집 1탄'으로 올라간 글. 원문은 여기.
ps2. 손발이 살짝 오글거리지만, '연서'는 원래 고백의 편지고, 고백에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
ps3. 원래는 <레인보우> 리뷰로 시작했으나... 사전감독모임에서 박정숙 감독님 이야기가 인상깊게 남아서,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글이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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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좀 보자, 毒립영화! - 2010/11/29 01:24
올해도 드디어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 서독제는 12월 9일부터 17일까지 9일간 상암CGV에서 열린다. 상영작은 모두 64편. 이중 초청작 20편을 제외한 단편 33편, 장편이 11편이 경쟁부문에서 상영된다. 모두 631편의 공모작 중 사전예심을 거친 작품들이다.
올해 서독제의 달라진 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두 가지는 첫째, 장소가 달라졌다는 점, 그리고 예산이 확 줄었다는 점일 것이다. 작년까지는 명동에 있던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렸지만, 인디스페이스가 작년 말 문을 닫으면서 상영장을 잃어버린 서독제는 결국 상암으로 향해야 했다. 또한 그간 영진위(1억 4천)와 서울시(6천)로부터 받았던 지원금을 올해 받지 못하게 되면서 예년보다 훨씬 줄어든 규모로 치러지게 됐다. 그러나 18일 홍대거리의 한 호프집에서 열렸던 사전감독모임에서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말했던 것처럼, “예산이 없어도 (감독들이)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예산이 없어도 영화제는 치러진다.” 다들 속으로는 울컥하는 숨을 삼켰을 테지만,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올해는 영진위와 함께 치르지 않는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참석자들 일각에서 자그마한 ‘환호성’까지 일었다. 비록 사전감독모임에서조차 참석자들(주로 상영작들을 연출한 감독들)에게서 회비를 ‘각출’해야 했을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형편이지만, ‘파트너’ 자리를 스스로 내팽개친 채 표류하는 영진위와 차라리 잘 갈라섰다는 좌절 반 격려 반의 의미리라. 복잡다단한 뉘앙스의 한숨과 포기가 함께 묻은 환호성이라, 함께 지르는 입도 듣는 귀도 편하지만은 않았다.
‘獨立’만으론 안 돼, 毒해야 돼
예산이 줄고 규모도 줄었지만, 독립영화의 매운 맛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결연하다. 이건 무엇보다도 올해 서독제의 슬로건과 포스터에서 잘 드러난다. “毒립영화 맛 좀 볼래!”라는 커다란 슬로건이 박힌 아래, 독이 뚝뚝 흐르는 사과를 번쩍 치켜든 손이 포스터의 메인 이미지다. “이런 시기에 독립영화는 ‘홀로서는’ 것으로도 부족하고, ‘독한 맛’까지 내뿜어야 한다”는 것이 조영각 집행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한 영화제의 ‘얼굴’을 대표하는 개막작과, 영화제의 의지가 온전히 드러나는 ‘특별초청’ 부문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으리라. 올해 개막작은 윤성호 감독의 따끈따끈한 신작인 <도약선생>이다. 서독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되는 이 영화는 엉뚱한 계기로 장대높이뛰기를 연습하게 된 젊은이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윤성호 감독 특유의 포복절도할 유머와 날카롭게 반짝이는 풍자가 여전히 살아있는 작품일 것이라 기대된다. 영화가 처음 상영되는 개막식 당일날이 돼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특별초청 부문의 주제는, 바로 ‘4대강’, 아니 ‘死강사업’이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공사로 파헤쳐진 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 강과 주변 생태계의 모습들을 담은 작품들이다. 공사장을 기습점거한 환경활동가들의 싸움을 담은 작품도 있다. 각각 7분에서 24분까지 짧은 단편들이지만, 짧지 않은 여운을 남길 작품들로 보인다. 이밖에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 등 2개부문에서 수상한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와 김대승, 신동일, 강이관, 부지영, 윤성현 감독이 참여한 인권위원회 제작의 <시선 너머>, 게이들의 삶을 담은 <종로의 기적>, 장률 감독의 신작 <두만강> 등도 초청작으로 상영된다.
용산, 소수자, 그리고 우리들 삶의 섬세한 단면
경쟁부문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장, 단편을 막론하고 소재며 장르도 다양하기 짝이 없다. 용산을다룬 영화들 중 단순히 소재를 넘어 옹골찬 성찰까지 담아낸 영화들을 선정하느라 고심했다는 예심위원들의 총평이 인상깊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광주의 5월을 담은 영화들, 각종 상처와 폭력을 통찰하는 영화들, 그리고 우리사회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을 다루는 영화들. 충무로에서 만들어지는 주류 상업영화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우리 삶과 사회의 다양한 면들을 비추고 때로 우리의 소박한 삶을, 때로 우리의 감추고싶은 부끄러움도 비추는 독립영화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들이다.
인디포럼도 그렇고 서독제 역시 그렇지만,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의 사전감독모임에서 볼 수 있는 얼굴들은 20대 초반에서 50대 후반까지, 이미 여러 작품들을 내놓은 중견감독들과 이제 막 첫 단편을 완성한 풋풋한 신인감독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경력을 자랑한다. 사실 영화감독들 중에는 ‘수줍은’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고, 카메라 뒤는 익숙해도 카메라 앞에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들이 술 한 잔씩 걸치고 조금씩 입을 열다보면, 어느새 열렬한 수다쟁이들이 돼 있다. 원래 수다스러워서가 아니라, 특별한 공감과 감정이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같은 섹션에서 상영되는 다른 감독들의 이야기, 영화를 찍으면서 겪었던 온갖 ‘모험담’들. 그리고 지향하는 가치들의 공통분모들. 그 와중에도, 다른 독립영화 감독들보다도 더욱 힘들게 영화를 만들며 그렇게 어렵게 신작들을 내놓은 소위 ‘아줌마 감독’들, 남들이 굳이 외면하려 애쓰는 가치들에 카메라를 들이미는 패기만만한 감독들, 그윽한 눈으로 말은 아끼되 평범한 우리들이 감히 보기 어려워하는 곳을 직시하는 용기있는 감독들이 우리 눈앞에 있다. 길거리에서 마주친다면 그 평범함에 쉽게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 속에 뜨거운 불꽃을 꽈악 잡고 있는 이 사람들. 그리고 웬만한 매체들의 기자들이 그냥 넘어가는 이 자리에 굳이 참석해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소수의 특별한 영화글쟁이들. 기자를 (타의로) 그만두고도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이 내게는 참 다행이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당신을 깨울, 약이 되는 독을 품은
모임에 참석한 감독들이 앞에 나와 하나같이 “상영할 기회가 없었는데 영화제에서 상영할 수 있게 돼 기쁘다”는 말로 인사말을 전했다. 한 해만 해도 무수한 독립영화들이 만들어지지만, 극장개봉의 기회를 잡는 영화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나마 두어 번의 상영기회와 ‘관객과의 대화’를 갖는 영화제에서의 상영이, 지금 독립영화 감독들이 가장 지향하는 무대일 가능성이 크다. 상영기회가 흔치 않은 독립영화의 현실에서 서독제가 갖는 의미와 중요함이 그 어떤 말로도 충분히 설명되기 힘든 건 이런 데에서 드러난다. 그건 영화를 만드는 사람뿐 아니라,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 앞에 평소 보기 힘든 무려 64편의 진수성찬이 차려진 영화 밥상이 놓였다. 어느 영화제가 안 그렇겠냐마는, 오늘(24일) 꽤 늦은 시간 한독협 사무실에 전화해보니 다들 영화제를 준비하느라 야근중이다. 독하디 독한 독립영화, 어쩌면 이전의 나를 쓰러뜨리고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강력한 독을 잔뜩 품고있는 이 영화들. 기꺼이 극장에 달려가 봐야 하는 이유는 내가 매조키스트여서가 아니다. 지극히 달달한 맛들로 마비된 감각을 깨워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게 만들, 약이 되는 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ps. 네오이마주에 송고한 글. (2010/11.24) 원문페이지는 여기. '에디터'로서 처음 쓴 글...일 게다. 그 직함 단 건 벌써 몇 달인데.
ps2. 사전감독모임(겸 기자회견, 18일)에 참석한 뒤 그 취재기로 써야했던 글인데 너무 늦게 올리는 바람에 '생생함'은 빠졌다. 대신 올해 서독제를 소개하고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는 차원으로.
ps3. 이 자리에서 <동백꽃 아가씨>의 박정숙 감독과 참 오래 이야기를 했다. (올해 서독제에서 박정숙 감독의 신작 <첫사랑 - 1989, 수미다의 기억>이 초청작으로 상영된다.) 박정숙 감독과 나눈 이야기는 곧 네오이마주에 실릴 <레인보우> 감상문의 일부로.
ps4. 프레시안 기자시절 썼던 무수한 영화제 소개글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 이젠 '기사용', 그것도 근엄한(!) 종합일간지용 기사용이라고 잔뜩 힘줘서 쓸 필요가 없으니까. 소곤소곤하고 감상적인 물기가 아주 없어지진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미칠듯한 만연체와 복문'이라는 나쁜 버릇도 많이 줄어든 편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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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키츠(John Keats) 잡담 - 2009/10/21 02:17
부산에 초청된 제인 캠피온의 신작 <브라이트 스타>는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존 키츠(John Keats)의 실화를 토대로 한다. 25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그는 생전에 딱히 그 위대한 문학성을 두루 인정받지는 못했다. 어릴 적 천애고아가 되고 생계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어찌어찌 의대를 졸업해 의사 자격증을 3년만에 땄다는데, 그가 의학엔 별 관심이 없고 시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었던 것을 아는 가까운 친구들, 특히 시인 / 시인 지망생 친구들은 그가 3년만에 의사자격증을 딴 것에 대단한 질투와 허걱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키츠는 패니 브론과의 절절한 연애로도 유명한데, 패니가 말하자면, [오만과 편견]으로 쳤을 때 미스터 다아시 같은 남자 하나 낚으려고 사교계에서 좀 나대는, 엘리자베스 베넷 정도 가문의 여자였던 모양이다. 리즈 베넷이야 지성미와 유머가 풍부한 여인이었지만 패니는 또 그런 타입은 아니었던 듯, 영화 <브라이트 스타>에서도 키츠를 후원하는 그의 작가 친구 찰스 브라운은 패니를 너무나 못마땅해 해서, 그녀를 "남자나 꼬시려고 사교계에서 꼬리 흔들고 다니는 무식하고 허영심만 센 여자" 취급을 한다. 하지만 패니를 그리는 제인 캠피온의 시선은 그닥 삐뚜름하거나 시니컬하지 않다. 영화의 초반, 키츠를 처음 사교파티에서 만난 뒤 패니가 키츠의 시를 그 앞에서 읊으면서 작업 한번 들어간 뒤, 그녀는 "시를 공부하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며 다시 키츠를 찾아간다. 물론 이 역시 삐뚜름하게 보자면 '작업의 2차 작전'으로 보일 수 있고 제인 캠피온 역시 그렇게 보일 수 있음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찰스에게 패니의 얄팍함이 폭로당하는 장면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제인 캠피온은 패니의 이런 에피소드를 충실히 구현하면서도, 다른 방향에서 패니의 진정성을 관객들에게 충분히 설득시켜 버린다. 영화가 끝나고 기억되는 것도 그녀가 찰스에게 봉변을 당하며 그 얄팍한 허영심이 폭로당한 것보다는, 키츠에게 시를 배우겠다고 찾아갔을 때 그 반짝이던 눈빛, 그 눈 안에 담겼던 동경과 열망이다. 나처럼 시에 문외한인 사람에겐 그 장면이 더욱 크게 남는다. 나 역시 영화가 끝난 뒤 "키츠의 시를 알고 싶다, 이해하고 배우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들었으니까. 하여간 <브라이트 스타>에 대한 리뷰는 이미 여기에 쓴 바 있고.
며칠 전 모 극장을 갔다가 바로 옆 서점에서 민음사에서 출간한 김우창 번역의 키츠의 시선집 [가을에 부쳐]를 샀다. 이후 웹 검색을 해보니 그 외에 키츠에 대한 다른 책은 거의 없는 모양이다. (오래 전에 대학출판부 같은 데에서 나왔다가 절판, 절판, 품절.) 이 기회에 영국 낭만파 시인들에 대해 동냥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낭만주의 문학'같은 키워드로 돌려봤지만 역시 헛수고다. 사실 또 다른 방식의 치열한 시대정신이었던 낭만주의가 국내에서는 현실도피용으로 포장되고, 그에 따라 리얼리즘이나 자연주의를 신봉한 이들에겐 또 다시 부당하게 폄하되는, 그런 식의 분위기가 없었던 것 같지 않다. 결국 현실에서 눈을 돌린 채 형식의 외피와 감정적 나르시시즘에만 집착하고 과장한 것 정도로 오해된 분위기가 있달까. 아니 근데 센티멘털리즘과 로맨티시즘이 동의어는 아니잖아, 그게 문학이든, 회화든. 영화쪽으로만 보자면, 근래 들어 국내에서도 조금씩 낭만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기엔 최근 허진호가 내놓은 <호우시절>이야말로, 제대로 된 낭만주의의 본격적인 부활의 바람의 서두에 놓아야 할 것같다. "허진호가 변했다"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외서 쪽을 돌려보니,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문고판으로 그의 주요 시와 편지 일부를 편집해놓은 책이 보인다. 랜덤하우스에서는 그의 시 전체를 모아놓은 책도 내놓고 있는 상태다. 오디오북으로는, 새뮤얼 웨스트와 마이클 쉰이 낭송한 CD도 보이고. 마이클 쉰이, 그러니까 <더 퀸>의 토니 블레어와 <프로스트 vs. 닉슨>의 프로스트로 나왔던 배우인 그 마이클 쉰이 맞나 싶어 찾아보니... 허허, 맞네! 새뮤얼 웨스트는 좀 낯선 이름이라 찾아봤더니 <반 헬싱>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로 출연했다는데 필모그래피가 어째 다 단역 및 조연. 그... 근데, 잘 생겼다? 허걱, <하워즈 엔드>에 조연으로 출연해 BAFTA상 남우조연 부문 후보로 올랐었어? 뭐, 옥스포드 출신? 런던드라마평론가협회 세익스피어상 수상... 엄훠 나 이거 사야 하는 거 맞는 거? 뭣보다 잘생긴 것에 침 주르릅... 아니, 잘생기기도 잘생겼지만 딱 목소리 멋있게 생겼단 말이야! 예컨대 케네스 브래너의 목소리로 세익스피어 낭독을 듣는다고 쳐봐, 그게 그냥 목소리인가? 주르르 몸이 녹아내려 황홀경에 빠뜨릴 천상의 음악이지!
<브라이트 스타>의 말미에도, 그러니까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영화에서 키츠로 출연한 벤 위쇼가 나지막하게 '나이팅게일에 부치는 노래'를 낭송한다. 정확히 자막이 올라가기 시작할 때 나오기 시작해, 마지막 카피라이트 표시와 제작사 로고가 끝날 때 낭송도 끝이 난다. 벤 위쇼의 나직하면서도 팬시하고 발음 좋은 목소리와 키츠의 시가 어우러져, 비록 눈은 자막을 뒤쫓느라 정신없었긴 해도, 도저히 그냥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게 나만 그런 건 아닌 게, 대체로 아무리 영화제라고 해도 엔딩타이틀 올라가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조금씩 웅성대면서 일어날 듯 말 듯하며 짐을 챙기지만 이 영화의 자막 땐 아무도 그러지 않더라. 만약 영화가 국내에서도 정식으로 개봉한다면, 그 시의 낭송을 꼭 즐기시기 바란다.
[부록] John Keats, 'Bright Star, Would I were Steadfast As Thou Art
ps1. 온라인에서 이런 페이지도 발견. 참고하시라.
ps2. 듣자하니 벤 위쇼는 영화 찍기 전엔 키츠의 러브스토리에 대해 잘 몰랐었다고 한다. 그런데 제인 캠피온의 벤 위쇼 칭찬은 정말... 으하하하! 처음 만나자마자 느낀 것이 "세상에, 당신 정말 아름다운 피조물이잖아!"였다니, 난 캠피온 언니의 취향이 듬직한 돌쇠형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출처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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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합니다! 인디포럼 채무변제 파티 - 그렇다면 십시일반 - 2009/09/07 18:54
프레시안 관련기사 : 어렵고 힘들어? 그럼 십시일반 해야지! - 인디포럼이 채무변제 파티를 여는 이유
기자이면서 인디포럼 상임작가회의에 속해있어 저 기사를 쓰는 데에 좀 애를 먹었습니다. 기자의 양심이란 건, 대체로 자신이 설사 적극 지지하고 있는 대상이라 해도 어느 정도 거리를 취할 때 건사하기가 쉬우니까요. 그래서 웬만하면 어느 단체에 안 속해있는 게 좋은데... 여전히 고민중입니다. 그러나 제가 인디포럼 상임작가회의에 여전히 속해있는 이유는, 한편으로 다른 생각도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것은, 저의 양심을 걸고 지지하는 것입니다. 만약 인디포럼을 비판해야 할 때가 온다면, 그 누구보다도 매섭고 통렬하게 비판하겠다는 의지를 전제하는, 양심을 건 지지란 뜻입니다. 만약 제 양심과 위치가 충돌할 때가 온다면, 그땐 또 그때 가서 가장 현명하고 ‘옳은’ 판단과 실천을 해야겠지요.
인디포럼에서 채무변제 파티를 엽니다. 시절은 수상하고, 들려오는 소식들은 어이가 없거나 암울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치열하게 잘 먹고 잘 자며 잘 놀고 잘 웃으며 힘을 내야 합니다. 말만 ‘초대’지, 실은 오셔서 돈 좀 쓰시란 자리입니다. 하지만 같은 만 원이라도, 좀더 보람차게 먹고 마시며 노는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인디포럼 채무편제 파티가 바로 그런 자리가 될 것입니다. 밑에 붙이는 웹자보를 참조하시고, 기왕이면 웹자보에 안내돼 있는 계좌로 미리 티켓값을 송금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살포시 제 블로그에 비밀댓글을 달아주시면, 파티장 당일 현장에서 티켓을 드리겠습니다. 이 티켓은 액면가 만 원 상당의 술과 안주를 드실 수 있는 티켓입니다. 오셔서 노바리를 찾으셔도 되고 N.을 찾으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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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인디포럼 월례비행 : 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 - 2009/07/23 15:12
7월에도 마지막 주 화요일에 어김없이 인디포럼 월례비행이 열립니다. 이번 월례비행에서는 '미디어'를 주제로 단편 세 편이 상영됩니다. 끝나고 나면 회비 1만원에 뒷풀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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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봉준호 이력의 전환표가 될까 - 2009/05/19 20:58
<마더>는 아직 국내에서 상영된 적은 없다. 공식 언론시사는 내일이고 아마도 매체마다 기자들이 미어터져 나올 것 같다.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지는 가운데 현재 칸영화제에 가 있는 듯한 씨네21 김도훈 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간략한 소개글을 올렸다. 벌써 어제 얘기다.
일련의 386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에서 그 기저에 공통적으로 "애타게 아버지를 찾고 있다"고 일전에 이곳 어느 글에 쓴 적이 있다. (찾아보니 최양일 감독의 <수> 리뷰 본문과 댓글에 주루룩 있다. <괴물> 간단 감상문에도.) <괴물>은 그 정점이었다. 나아가 나는 그 괴물이 <괴물> 속 가정에 결여되어 있는 어머니의 이미지라 보았다. 사실 이건 너무나 직접적으로 제시된다. 그 가족에 어머니는 없고, 괴물의 입속에서 끈끈한 점액질의 타액으로 뒤덮여 있던 아이들을 송강호가 끌어내는 장면은 딱 자궁에서 아이를 끄집어내는 이미지이지 않는가. 거기서 폭압적이고 강한 어머니 / 여성에 대한 공포를 읽었다. <괴물>의 가족에 만약 어머니가 존재한다면, 서울을 풍비박산내는 괴물의 이야기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봉준호는 <괴물>을 아들이 아버지가 되는 - 성장하는 - 영화로 만들어야 했고, 괴물과 대적하는 것 역시 그런 덜떨어진 아들이자 아버지, 즉 송강호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어머니를 등장시킨다면 바로 그 어머니가 아들/아버지의 자리를 대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봉준호가 그려내는 (성인)여성들은 대체로 남자들보다 강하다. 육체적으로 강한 것이 아니라 그냥 우월한 존재,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서의 존재다. 그런데 내게는 봉준호의 그런 강한 여성에 대한 편애와 더불어 공포가 강력하게 읽힌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이성재를 언제나 주눅들게 만드는 잘나가는 아내도 그렇고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의 귀를 파주며 마을의 야매 의사 노릇을 하던 송강호 아내 전미선도 대체로 주인공 남자보다 우위에 서 있는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괴물>에서 '괴물'은 아무리 봐도 암컷이자 어머니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괴물>은 아들이 아버지로 성장하는 이야기이자 동시에, 자신을 폭압하는 어머니에 대적하는 영화가 된다. 이는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어머니는 자식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다 아들의 칼을 맞는 거라면, 살부(殺父) 의식 및 아들의 아버지 권력 탈취라는 전형적인 신화 모티브에서 부모의 성을 역전시킨 것이라 더욱 흥미롭기도 하다. 대체로 강한 아버지와 여기에서 이도저도 못한 채 자식을 아버지로부터 적절히 보호해주지 못하거나 아버지의 폭력의 희생자로 존재하는 어머니, 라는 게 훨씬 전형적이고 공식적인 틀 아닌가. (근데...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여기에다가는 쓴 적이 없더라? 아, 생각났다. 나는 이런 내용으로 당시 씨네21 평론가 공모에 응모하려고 했다. 그리고 결국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헐...)
그런데 <괴물>이 상영될 당시에 그 영화를 그런 식으로 읽는 평이 별로 없어서 좀 놀랐다. (그랬으니 평론가 공모에 그런 내용으로 응모하려 했던 거지만.) 심지어 내가 그 얘기를 당연한 듯 했을 때 두 사람으로부터 "그것 참 놀랍고 참신한 해석"이라는 경탄까지 들었다. (반면 전현직 기자인 한 명은 "그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라고 반응했다.) 그런데 그 바로 다음 작품으로 <마더>가 제작될 것이란 소식을 들었으니, 내가 얼마나 더 놀랐겠는가. <괴물>에선 빠져있던, 오히려 '괴물'로 표현되었던 어머니를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라. 나는 봉준호가 과연 어떤 식으로 <마더>를 만들지 궁금해죽을 지경이었다. 내가 <괴물>을 그리 읽은 결과에 의하면, <마더>는 '무시무시하고 무서운 어머니'에 대한 얘기여야 했다. 사실 <마더>의 시놉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나왔을 때 <괴물>에 대한 내 독해가 완전히 허방다리를 짚은 것 아닌가, 싶어 불안하기도 쪽팔려하기도 했다. 언론이 전하는 '이런 내용이라 카더라' 통신은 주로 눈물겨운 모성애 쪽에 맞춰져 있었으니까.
칸에서 영화를 본 듯한 김도훈의 글을 보노라니, 내가 생각했던 방향이 맞는 거 같아 또 다시 살짝 놀랍다. 역시, 그런 거였군. 그러고나니 이제 궁금해지는 건, 과연 <마더>가 봉준호의 이력에 어떤 터닝포인트가 될까, 하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에서는 극히 절제돼 있거나 억누르고 있던 봉준호 특유의 썰렁한 블랙유머 코드가 <괴물>엔 다소 이질적으로 여기저기서 스멀대며 나오고 있는 걸 보면서, 그리고 <괴물>이 대중적이고 전형적인 장르영화로서의 괴수영화의 문법을 상당히 비트는 것을 보며 예상한 바가 있다. 아마도 다음 작품에선 자신의 본색을 완전히 드러낼 것이며, 그 작품은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만큼 흥행하진 못할 것이라고. 나아가 자칫하면 논란만 불러일으키다 완전히 쫄딱 망할 수도 있겠다고. (사실 나는 자기 색을 살짝 입힌 장르영화를 장르적으로 잘 만드는 사람이 그걸 포기하고 자꾸 예술하려 드는 것은 좀 못마땅하다. 봉준호 감독도 자기 색깔을 적절한 선에서 좀 조절하고 절제하면서 영화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싶은데, <괴물>에서 이미 선을 조금 넘었기 때문에...)
<마더>의 경우 칸영화제 초청이라는 변수 때문에 한껏 주목과 기대를 받고 있는 상태니 흥행도 <살인의 추억>만큼은 되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그보다 그저 조금 못한 수준일 것이다. <괴물> 같은 흥행은 힘들 듯. 그러나 감독의 영화적 경력과 미학적 프레임에서는 충분한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모처에서 진행하고 있는 밀착취재 건을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내일 꼭 <마더> 시사회를 가야겠다. <박쥐>처럼 개봉 전 일반시사는 거의 없을 듯하니.
ps. J.는 방금 <마더>에 있다는 반전에 대해 좀 놀라운 추측을 했는데, 나는 그 추측이 거의 맞겠구나 싶다. 그게 뭐냐면... 직접적으로 쓰진 않겠고, 다만 그 추측이 맞다고 생각한 이유를 밝혀보려 한다. 다만 정말 맞을 경우 원치않은 스포일링, 게다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스포일링이 될 수 있으므로 이 뒷부분을 화이트로 가려놓겠다. 궁금하면 긁어보시라. 위에 <괴물> 사진에서 보면 아이들이 괴물을 피해 동굴에 숨어있는데, 캡션에도 썼지만 동굴 역시 여성의 자궁과 질을 상징한다. 자궁의 이미지는 양면적이다. 더없이 안전한 공간, 더없는 보호를 제공해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이것을 미끼로, 그러니까 어머니가 보호욕을 내세우며 이미 세상에 나온 자식을 자신의 자궁으로 넣으려 하는 순간 그곳은 더없이 폭압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괴물>을 보며 내가 추측한 봉준호의 어머니에 대한 근원적 공포란 결국, 자식을 제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폭압적이고 권위적이며 강력한 어머니인데... 그렇다면 '지능이 모자란 아들'이란 설정은 실은 아들이 정신적으로 미발달한 것이고, 이는 어쩌면 어머니의 권위적인 과보호와 소유욕, 그러니까 아들을 제 자궁에 여전히 (안전하게) 가둬놓고 싶은 어머니의 양육의 결과일지도. 그렇다면... ^^ 그런 엄마들은 자신이 얼마나 헌신적이고 좋은 엄마인지 증명하지 못해 안달이므로... 게다가 다른 여자에게 수작질을 걸었다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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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힘들고 바쁘게 살아도 우리에겐 빵뿐 아니라 장미도 필요합니다. 그 어떤 장미보다도 아름다운 장미가 될 음악회가 이번 주에 열리기에 또 다시 번개를 쳐봅니다. 함께 모여 음악도 듣고 술도 한 잔 하십시다.
회비 있습니다. 일단 입장료 만원 + 뒷풀이비용 알아서. 학생의 경우 제맘대로 뒷풀이비용을 막 깎아드리겠습니다. 오실 수 있는 분들, 일단 7시에서 7시 10분 사이에 장천아트홀 바로 앞에서 뵙지요. 전 7시까지 가있겠습니다. 오실 분들, (비밀)댓글로 이멜주소 알려주시면 제 폰번호 쏘겠습니다. 자, 그럼 금요일 저녁 때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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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포럼, 올해의 신작전 상영작 발표 - 2009/04/24 02:04
인디포럼 올해의 상영작이 지난 월요일 발표됐다. 이제와 고백하자면 나는 인디포럼의 신작전 섹션에서 총 505편의 출품작 중 저 상영작 55편을 선정하는 프로그래머 네 명 중 한 명이었다. 5월말 열리는 인디포럼을 위해 앞으로도 이런저런 것들, 예컨대 카탈로그에 들어가는 프로그램 노트 쓰기라던가 시간표 짜기 같은 일정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가장 크고 어려운 산은 일단 넘은 셈이다. 한 달 남짓 기간 동안 장, 단편 포함해 280편 가량의 영화를 봤다. 지난 한 달 간 글이 거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막판에는 회사에서 일은 때려치운 채 낮에도 영화를 봤고, 밤에는 진한 커피와 박카스와 비타민씨를 먹어가며 거의 매일 밤을 새며 영화를 봤다.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했고 특히 내 일정 때문에 프로그램팀의 다른 멤버들을 힘들게도 했지만, 사실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기도 했다. 특히나 몇몇 작품들은 보면서 엉엉 울다가 웃다가, 이 좋은 작품들을 그 누구보다도 먼저 보고 발굴하는 데에 내가 일조를 한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내가 만든 영화가 아닌데도 괜히 내가 다 뿌듯했고, 몇몇 작품들은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을 정도다. 단편이긴 해도 이건 그대로 극장에 개봉해도 되겠다 싶은 작품도 있었고, 다소 서툴지만 열정과 진심이 느껴지는 작품도 많았다. 찬찬히 그와 그녀의 슬픔과 절망을 들여다보는 작품들, 그리고 어떻게든 어깨를 토닥토닥하고 싶은 감독의 진심도 느껴졌다. 잘찍고 못찍고를 떠나 모든 작품들이 참 소중하고 예뻤다. 오히려 어렵고 힘들었던 건 영화를 줄기장창 보는 게 아니라, 50여 편을 골라내는 거였다. 아깝게 탈락한 작품들이 너무 많다. 영화제 기간만 더 길고 상영관이 더 있었다면 얼마든지 틀었을 작품들. 하지만 인디포럼에선 상영이 안 됐더라도, 다른 영화제에서나마 상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보는 순간 반해버린 데다, 보는 내내 가슴을 부여잡으며 엉엉 울었던 영화가 있다. 다른 훌륭한 작품들도 너무나 많았지만, 280여 편 중 내게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그 작품은 결국 올해 인디포럼의 폐막작이 됐다. (올해 인권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하다.) 워낙 이 영화를 강력하게 지지했던 터라 폐막작에 대한 소개글을 내가 쓰게 됐는데,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보는데도 여전히 눈물이 펑펑 솟는다. 특히 맨 마지막에 박힌, '고 이근재 님께...'라는 자막을 보고선 더 그러하다.
수많은 죽음들이 너무 쉽게 잊혀진다. 그렇게 잊혀진 수많은 죽음 중 하나를, 이 영화가 다시 상기시켜주었다. 그걸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 새삼, 영화기자가 되기를 너무 잘했다, 생각한다.
올해 인디포럼은 5월 29일부터 6월 5일까지 열린다. 홈페이지는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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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금) 번개공지 (저녁 7시, 종로 보신각 앞) - 2009/04/15 20:15
4/17 금요일 저녁에 번개를 치면 과연 얼마나 모이려나요. 이곳 Cinema Blues 드나드시는 분들, 제 개인 블로그 드나드시는 분들, 함 모이죠.
그날 국립오페라합창단 + 기륭전자 분회 등 비정규 투쟁장 공동 촛불음악제가 열립니다. 7시 종로 보신각 앞. 참, 가깝고 가기 쉽죠~잉? 음악도 듣고 투쟁구호도 함께 외치다가, 근처 술집으로 이동해 맥주나 한 잔 합시다. 올 수 있는 사람들 댓글 달아줘요. 전 요즘 급 바쁜 일이 있어서 오래 있지는 못하지만, 최근 인기리에 프레시안에 영화칼럼을 연재하고 계신 이택광 교수님과 [키보드 워리어 전투일지]라는 책을 내고 인기 책 저자로 등극한 한윤형 씨가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꼬셔볼 예정입니다. 그러고보니 아직 말도 못 꺼냈네. 윤형 씨, 올 거죠? 이택광 선생님께는 며칠 전 얼핏 말씀을 드리긴 했는데. 인기 캡숑 짱 저자인 쟁가님도 웬만하면 오시도록 꼬셔보겠습니다. (장담은 못 함.)
얼굴도 잘 몰라 부끄러워 못 올 거 같다는 분들. 초면이면 뭐 어때요. 제가 슈퍼울트라캡숑 빅 스마일을 만면에 띄고 뜨거운 환대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접선을 하느냐... 요건 오늘 내일 고민 좀 해보죠. 아이디어 내셔도 좋구요. 뭐 다 같이 "비정규직 좀 철폐하라능?" 뭐 이런 문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다던가... 초에다 빨간색 띠를 두른다던가... 음악회에만 왔다가 가셔도 좋아요. 사실 이 번개의 진짜 목적은 음악회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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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역시 대단하다. 새로운 연예잡지 <하이 컷> - 2009/03/21 03:14
일하다 말고 이 새벽에 편의점에 간식을 사러 갔다가, HIGH CUT이라는 제호의 새로운 신문/잡지를 봤다. <꽃남>의 구준표의 사진이 1면에 커다랗게 표지로 박혀있는데 종이질이나 사진, 편집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건... 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데? 매주 1, 3주 금요일 발행하는 격주간에 창간호라 한다. 가격은 무려 3백원. 어라, 모델로 삼아야지, 반가워하며 사왔다. 게다가 이 판형에 이런 형식은, 오늘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전화로 나눈 얘기도 있거니와, 오프라인 영화잡지가 가야할 더없이 적절한 대안으로 보였다.
오는 길에 신도 났고 기대도 컸다. 프레시안에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원고를 실으며 정작 글을 쓴 김 프로그래머는 아쉬움을 표하는데 내가 막 우쭐하고 뿌듯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영화 저널리즘에 대해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대에 차 있었다. 이번 주 내내 김 프로그래머와 통화를 하며 나눈 얘기도 그거였고. 거기에 어쩌면, (물론 준비 기간이 걸릴 테고 준비를 위한 기초 조사를 내가 해야 하는데 시작조차 못 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타블로이드 지를 만드는 계획에 대한 얘기가 모처에서 있기 때문에, 이 잡지가 비록 연예인 화보나 가십만을 다루고는 있지만, 이 형식을 빌어 좀더 고급스러운 글을 실은 매체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집에 와서 첫 면을 펼치고 에디터 페이지를 보는 순간... 참담했다. 발행인/대표이사 방성훈. 에디터 페이지 맨 밑에는 <HIGH CUT>은 <스포츠조선>과 함께 한다고 써 있다.
참, 역시 대단한 조선일보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조선일보는 언제나 매체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선도해 나가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조선일보가 내가 지향하는 가치와 다른 가치를 지향해서 그렇지, 이들의 이런 능력은 질투가 날 정도로 뛰어나고 감각적이다. 좌파들이 이거 본받아야 한다니까... 그러나 문제는 역시, 자본일 터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판형에 이런 고급스러움으로 영화 매체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변함이 없다. 시장조사부터 슬슬 시작을 해야겠다.
ps. 여기를 누르면 이 잡지 1면 전체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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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성영화제, 기대된다 - 2009/03/13 02:26
프레시안 기사 : 올해 여성영화제, 첨예한 여성 정치성 전면에
누차 강조하지만, 일상에서 정치와 일상을, 혹은 정치와 문화를 무 자르듯 나누고 정치를 강조해 발언할수록 일상의 정치는 소외된다. 그것은 일상은 정치와 동떨어져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확산시키며, 이는 결국 여의도 정치에만 목을 매다는 결과로 나아가며, 이것은 곧 냉소와 정치 무관심, 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직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여성영화제의 프로그램은, 여성영화제가 언제나 그랬지만서도 유난히 정치성을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이라할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프로그램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이 찔끔날 정도로 감동했다. 더욱이 홈에버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여성노동자'로서 주체로 서는 과정으로 묘사한 영화, 사당동에서 철거된지 22년간 철거와 빈곤의 되물림을 3대에 걸쳐 조망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것이 상영된다고 하는데이 어찌 흥분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여성노동과 빈곤이, 이번 여성영화제 특별전 두 개 중 하나의 주제다. 그래서 국제학술회의도 열린다. 게다가 고령 여성들의 성과 사랑은 물론, 자아 찾기 등을 다룬 영화들도 상영된다 한다. 이것이 다른 특별전 주제다. 이 두 섹션만 성실히 봐도 올해 여성영화제는 개개인에게 보석으로 남을 것임에 틀림없다.
또한 10대 여성이 직접 찍은 영화 중, 자신을 스스로 비디오 액티비스트로 정체화한다거나, 혹은 로드스쿨러라 명명하는 영화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또 감동했다. 이주노동자 워크숍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사람 하나가 갑자기 애 낳으러 실려가느라 졸지에 그 남편은 출산기를 찍었다는 얘기도 반가웠다. 이렇게 삶과 영화와 정치는 하나이다.
그리고 올해에도, 아녜스 바르다 할머니가 온다. 프랑스는 유난히 여성배우들과 여성감독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곳이지만, 역시 아녜스 바르다의 활동은 눈부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그녀의 가장 유명한 영화, <3시에서 5시 사이의 클레오>는 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남편, 자크 드미 감독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영화는 보고 감동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남편의 영화 세계를 조망하는 다큐멘터리 한 편과, 자신이 헌신적으로 돌본 남편의 말년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찍은 터다. (나는 자크 드미의 아름다운 세계를 전적으로 아녜스를 통해, 그녀가 만든 <자크 드미의 세계>를 통해 입문했다.) 그리고 올해, 자신의 해변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아녜스의 해변>을 들고 서울을 찾는 것이다.
이밖에도 현재 한국 밖, 전세계를 돌며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는 김소영 감독의 <나무 없는 산>과 이경숙 감독의 <어떤 개인 날>도 상영된다.
나는 언제나 매해 영화제 시즌의 맨 처음을 알리는 여성영화제가 올해, 예산도 줄고 상영작도 줄고 전체 규모가 준 가운데에서도 이토록 야심만만하게, 잘 벼리고 벼린 칼을 마침내 툭 내밀듯 자신만만하게 상영작들을 내세워준 것, 그리고 그 전면에 이토록 첨예한 정치를 툭 내밀어준 것에 너무 감사하다. 아울러 가슴이 너무 뛰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기대하고 있다. 작년 10주년을 지내고 11회를 맞으며 '처음부터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 영화제를 하겠다는 여성영화제의 약속은 과언 허언이 아니었다. 한동안 오르가즘을 찾는 데에만 너무 골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짝 했었다. 이건 사실 몇 년간 여성영화제를 제대로 못간 나의 지독한 편견과 잘못된 생각일 가능성이 더 많지만... 단적으로 여성영화제에서는 마르가리타 폰 트로타 특별전을 한 적도 있으니까. 근데 올해는, 정말 멋진 여성영화제로 아주 단단히 심기일전을 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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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로비의 풍경들 - 2009/02/24 00:02
발사진이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조리개고 셔터스피드고 화밸이고 나발이고 걍 아무렇게나 셔터부터 눌러대는 버릇 때문에 저 모양 저 꼴이다. 뭐 못 찍으니까 강좌도 들으러 다니고 그러는 건데. 실내 시네토크 사진이 없는 건 한번도 참석을 못한 데다가, 안은 너무 어두워서 어차피 이것보다도 개판 오분전으로 나온다능. 아악 언제 돈 벌어서 밝은 렌즈랑 스트로보 사나효.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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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기 위하여 - 2009/02/23 18:53
다음은 현재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아트시네마의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운영하는 친구들영화제 웹데일리 블로그에서 최근 올라온 글로, 얼마 전 '영화의 고전과 미래의 시네마테크'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을 요약한 글이다.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다양한 고민과 논란을 정리하는 데에 아주 유용한 자료가 될 듯. 총 2개로 나누어져 있으며 이 포스트에서는 해당 글의 링크만 제공한다. 그리 길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일독을 권한다.
포럼 1 : 또다른 친구와 시네마테크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며
포럼 2 : 시네마테크와 관련한 진전된 문화적 합의가 필요하다
혹시나 "난 모니터상에서 글 못 읽어요 징징징" 하실 딱 나같은 사람을 위하여 밑에 한글편집본을 걸어둔다. 이건 철저하게 내 취향대로 (폰트, 자간, 줄간, 기타 등등) 편집된 만큼, 불편하면 알아서 고치시든가 말든가...
이 글과 함께 읽으면(그리고 그 글 안에 링크된 글들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다. : 서울아트시네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고백하자면 이 글의 내용 구성에 있어 상당부분의 출처는... 말 안 하련다. 당사자분이 밝혀도 된다고 하시면 그때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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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 2009/02/17 18:29
연합뉴스 : 시네마테크 지원 놓고 영진위 - 업계 갈등
한겨레 : '워낭소리' 독립영화 마지막 '울림' 될라
네오이마주 :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를 지켜라!
각종 매체들 중 이 문제를 제일 먼저 보도한 건 프레시안. 물론 이런 걸로는 절대로 특종하고 싶지 않다. 지난 주 들었던 가장 암울한 소식 중 하나. 고작해야 지원사업 하나를 공모제로 전환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공적자금을 들이는 사업인데 공모제가 맞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사업이 영진위 거여서 사업비고 인건비고 다 영진위에서 나가는 사업이었다면 공모제가 맞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게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시네마테크 사업은 영진위가 주도해온 사업이 아니라, 철저히 민간에서 운동으로 시작해 해온 사업이다. 다양한 시네마테크들이 전용관을 세우고 여기서 안정적인 프로그램을 돌릴 필요성을 느껴 연합체를 만들고 탄생시킨 공간이 바로 서울아트시네마다. 이 공간의 공공성에 동의한 영진위가 위탁의 형태로 이제껏 전체 예산의 고작 30% 정도를 지원해준 것에 불과하다. 그런 상황에서 시네마테크 전용관 지원사업을 공모제로 하겠다고 나서는 건, 이 사업을 영진위 주체로 가져가면서 그간 이 활동을 해온 주체들을 공공기관의 하위로 두겠다는 말이기도 하고, 국가의 돈으로 이 사업 자체를 좌지우지하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껏 전액을 지원해오며 사업을 주도해 왔다면 다른 문제겠지만, 사업 자체가 영진위 사업이 아니었던 데다 고작 30%를 지원해온 상황이라면 부당할 수밖에 없는 처사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건물 임대료 조금 보태주던 사람이 내 사업을 통으로 먹겠다고 건물주인 행세를 하며 나서는 꼴이라 해야 할까.
거기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문제를 덧붙여 질문할 수 있다. 과연 시네마테크 사업에 공모제가 어울리는가 하는 것이다. 시네마테크 사업이란 게 그저 때 되면 대충 영화 몇 편 모아서 트는 걸로 보이시는가? 시네마테크를 '영화의 도서관'이라고 말들을 한다. 가장 중요한 기능이 교육적 기능이고, 그렇기에 '비영리 공공성'으로 운영되는 거다. 기본적으로 자료를 수집, 분류하고 보관하며, 보수하면서 지속적으로 관객에게 선을 보일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하며, 그러러면 계속해서 약 2주에서 3주 간격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의 기획전을 1년 내내 계속 돌릴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이를 통해 부가적으로 지역 주민과의 소통과 공공 문화사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걸 할 수 있는 역량이란 이벤트성으로 어쩌다 한번 기획전 하는 정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매우 특수하고 전문적인 분야의 일이고 규모도 방대하다. 가장 중요한 문제로는, 프로그래밍에 있어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의한 관의 간섭을 받지 않을 자유를 누려야 한다.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정부가 정작 규제가 필요한 대기업 독점 사업들에는 각종 특혜와 규제 완화를 베풀어주면서 정작 민간의 자율에 맡겨야 할 사업에는 공공기관이 개입해서 날로 먹어 좌지우지하려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작 공공화를 지켜야 할 수도, 가스, 전기, 철도에 대해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민영화(라고 쓰고 '사영화'로 읽어야 한다) 얘기를 던지면서, 민간에서 멀쩡하게 잘 해오고 있던 사업을 이런 식으로 관이 개입하고 간섭하려 하는 것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시네마테크에 대한 논쟁과 토론을 보다 한 차원 끌어올려 진행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문제의 발언을 쏟아낸 그 세미나 자리에서, 강한섭 위원장은 "과거를 철저히 단절시킨 채 뿌리도 없이 아무 기반과 맥락도 없이 무작정 미래의 상을 끌어와 현실에 접목시키려 했다"며 과거 영진위 구성원들을 비판한 바 있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 일정부분 동의하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고쳐져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랬던 강한섭 위원장이 정작 시네마테크를 만들어온 사람들의 10년 노력은 깡그리 무시한 채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허허벌판에서 대단히 새로운 걸 시작하는 양 하고 있다. 이 아이러니는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설사 공모제가 '일단' 철회된다 하더라도, 안심하지 말고 이 문제에 대해 더욱 깊게 고민하고 논의가 오가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공공성과 민간의 자율성, 그리고 공적 지금 자원이라는 것이 복잡하게 얽힌 이상,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관의 일방적인 통고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자발적이고 구체적인 논의와 토론이 필요하다. 우리가 계속 시네마테크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ps. 한겨레 기사의 문제 : '다양성 영화'라는 말을 사용한 건 지금 영진위가 아니라 이전 영진위에 의해서다. 이전 영진위는 '다양성 영화'와 '독립영화'란 말을 동시에 사용했으며 전자를 후자의 상위 개념으로 사용했다. 현재 영진위가 '독립영화'란 말을 없애려는 건 독립영화 제작지원 제도라는 멍칭을 '단편, 중편, 다큐멘터리 제작지원 제도'로 바꾸면서 독립장편 영화를 '한국영화 제작지원' 제도에 편입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ps2. 아울러 여러 기사들에서 쓴 바, 올해 들어 폐지됐다는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내지 '독립영화 개봉지원' 제도의 원래 정식 명칭은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 개봉지원' 제도다. 2006년에 '다양성영화 개봉지원'에서 '아트플러스 시네마네트워크 개봉지원' 제도로 정식 명칭이 바뀌었다. 독립영화계에서 이전의 습관에 따라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독립영화 개봉지원'이라 말한 것을 기자들이 그대로 받아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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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발목은 누가 붙잡고 있나? - 2009/02/12 16:14
정치, 사회적 빈곤함이 문화적 빈곤함을 확대시키고 있는 와중에, 이 기사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그저 신호탄에 불과하다. 그저 영화 한 분야를 다루고 있을 뿐, 이미 다른 영역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한 편이 개봉됐을 때 과연 그 영화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어떻게 반영돼 있는지, 그 가치가 무엇인지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 영화의 흥행수익이 자동차 몇 대, 컴퓨터 몇 대를 판 것과 같냐를 따지는 세상이 된지는 오래됐다. 지금 문화관광부에서도, 심지어 청와대에서도 <워낭소리> 보고 싶다고 프로듀서에게 전화가 오는 상황이지만, 과연 <워낭소리>가 30만 흥행을 하고 그렇게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이 그런 영화가 있는지 없는지 신경이나 썼을까? 제작비 대비 얼마를 뽑았다더라, 하는 얘기는 영화도 산업인 이상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 경우 산업계에서 종사를 했던 만큼 산업적 부분을 신경쓰지 않는 소위 '예술지상주의자'들을 한심하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영화는, 산업인 동시에 문화다. 문화란 눈에 보이는 숫자의 성과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가 무엇인지 함께 고려해야 할 영역이다.
지금 충무로의 수많은 제작자와 감독들이 과거 독립영화를 만들었다. 지금의 독립영화 감독이 내일의 최고의 감독, 제작자가 될 수 있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더라도, 독립영화는 독립영화로서 이미 그 가치를 가진다. 남들이 듣고싶어하는 얘기만이 아니라, 남들이 모르거나 듣고싶지 않아 했던 이야기마저 용감하게 할 수 있는 게 바로 독립영화다. 그런 만큼 독립영화는 충무로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이나 헐리웃을 통해 한국에 들어오는 수많은 외화들보다도 오히려 중요하다. 그 중요한 영화들의 발판이 지금 위험에 빠져있다.
기사가 무지 길다. 영화 '정책'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재미있는 기사도 아니다. 일반관객들이 즐겨찾는 흥행영화가 아니라 독립영화에 관한 이야기라 더하다. 하지만 최근 내가 쓴 영화기사 중 가장 중요한 기사가 아닌가 싶다. 꼭 읽어주시기 바란다. 후속기사도 기획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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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 인터뷰 후기 - 2009/02/06 19:08
설 연휴적 인터뷰한 걸 거의 열흘간에 걸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회사엔 지각출근을 일삼으며 낑낑댄 끝에 드디어 기사 완성. 이 인터뷰는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쥬의 백건영 편집장과 함께 진행한 것으로, 네오이마쥬 버전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날 인터뷰는 다소 어두운 분위기에서 전개됐다. 아무래도 인터뷰를 한 장소가 조명이 적어 어둑해서였을까, 아니면 워낙 몸과 마음이 춥고 고통스러운 시대여서였을까. 그래서 나오는 이야기들도 대체로는, (직접적으로 명시되고 있지는 않지만) 이명박 정부와 보다 엄혹해진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해 더욱 암울해진 영화풍경을 주제로 한다.
많은 이들의 오해와 달리, 영화는 사회적 산물이고 영화를 상영하고 보는 행위 역시 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고전영화/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고 본다는 것이 '스노브하고 우아한 척하는 사람들'의 행위로 오인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그 어느 곳보다도 사회 현실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곳 중 하나가 이곳, 서울아트시네마이기도 하다. 문화적 빈곤함은 곧 사회적, 정치적 빈곤함으로부터 비롯된다.
개인적으로 이 인터뷰 기사는 내가 썼던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자랑스러워할 만한 기사들 목록에 포함시킬 수 있다. 물론 나와 백건영 편집장님이 워낙 인터뷰 진행을 잘 해서...는 아니고, 영화가 사회의 산물임을 명확하게 전제하고 있는 김성욱 프로그래머가 폭넓은 식견과 통찰력으로 오히려 인터뷰를 주도해갔기 때문이다. 평소 그렇게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고, 오히려 조용한 목소리로 필요한 말만 해서 씨네토크 같은 데에서 감독들의 놀림을 받기도 했던 그를 이토록 말을 쏟아내게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행복'을 말하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 인터뷰에 이 답이 있다고 믿는다.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우리는 불행의 시대를 헤쳐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방점을 '불행'이 아니라 '헤쳐나가'는 데에 찍어야 한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백지화돼서 불행한 게 아니라, 불행한 시대이기에 전용관이 백지화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인터뷰 말대로라면, 우리는 섣불리 절망할 필요도 없고, 절망해서도 안 된다. "영화는 언제나 패배해왔다."는 말이 패배주의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럼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로도 들린다. 혹자들은 그의 말에서 '영화' 대신 '민중' 혹은 '노동자'를 넣어도 통하는 말임을 눈치챌 것이다.
이 블로그에서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주장을 선명하게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글과 모든 일상과 모든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정치 따로, 문화 따로 말을 하는 순간 '일상의 정치'는 사라진 채, 저 견고한 벽 너머 '그들만의 정치'와 그들에게 꼭둑각시가 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일상'이 분리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오늘, 이 글을 이렇게 쓴 것은, 저 인터뷰가 혹여 나의 부족한 정리 때문에 오해될까 하는 염려에서다. 혹은 고전영화나 예술영화를 보는 행위 역시 매우 정치적인 행위일 수 있음을 한번쯤은 직설법으로 전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정리된 기사를 읽다보니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당연히 저 인터뷰에서 전제되고 있었던 정치성이 좀더 모호하게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다 내 인터뷰 정리 능력이 떨어져서다. 네오이마쥬 버전과 비교해서 읽으면 그런 면이 보완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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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내 최대 인기글, 배창호의 <황진이> 리뷰 - 2009/01/15 17:48
오른쪽 사이드바 메뉴 중 Entry Hit Chart는 이 블로그에서 1년간 쓴 글 중 가장 높은 히트수를 차지한 글 순서대로 나오는 순위이다. 기간은 정확히 오늘부터 365일 전까지, 자동으로 1년간을 기준으로 삼도록 설정돼 있다. 얼마 전 배창호 감독의 <황진이>에 대한 리뷰글이 대망의 1위에 올랐는데, 검색봇의 클릭 등을 제외한 순 클릭수가 현재 4,165이다. 이 블로그에 있는 글 전체를 통틀어도 3위다. (1위는 <타짜> 리뷰, 2위는 <캐리비언의 해적 2 : 망자의 함> 리뷰이다.)
어쨌든 이 포스트는 <황진이> 글이 대망의 1등을 먹은 것에 대한 자축글이다. 이 블로그가 이제껏 견지해온 방향은 그저 엔터테인먼트로서 최신 영화에 대한 정보 제공이 아니라, 시대와 국적을 막론하고 대중'예술'이기도 한 영화들에 대한 좀더 진지한 접근을 하는 쪽으로 방점을 찍어왔기 때문이다. <황진이> 1등은 이 방향이 잘 지켜져왔다고, 이 블로그가 그런 입장을 공유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 내지 신뢰를 주고 있다고, 그렇게 '자뻑'해도 된다고 확인 도장을 받은 듯한 기분이다. 나는 그 어떤 영화들보다도, 이 블로그에서 무려 11편이나 다루고 있는 배창호 감독의 영화글 중 하나가 가장 사랑받기를 원했다. 그 바람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배창호 감독의 다른 영화인 <기쁜 우리 젊은 날>에 대한 글도 10위에 올라있다.
순위에 올라있는 글들 중엔 정태춘, 박은옥의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 노래를 담은 글도 있다. 이 글은 얼마 전 <황진이> 리뷰 글이 1등을 먹기까지 계속 1위였다. 나도 가슴이 답답해서 올린 노래인데, 영화 관련한 포스트도 아닌 이 글이 계속 1위였다는 건 지금 이 시대가 얼마나 재미없고 우울한 시대인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과 같다. 그래서 더욱 속이 상한다.
프레드 진네만의 <지상에서 영원으로> 리뷰 글도 꽤 높은 등수에 랭크돼 있다. 현재 힛수는 3,917. 이 블로그에서 가장 단기간 내 가장 많은 클릭수를 낳았던 <다크 나이트> 리뷰는 6위다. 그땐 하루에 몇천 명도 들어왔는데(현재 평균 하루 600여 명), 등수는 아직 그렇다. 현재 힛수는 3,372. <황진이>나 <지상에서 영원으로>보다 관심을 덜 받는 <다크 나이트>라, 아마 이 블로그에서나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블로그가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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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일지매, 그리고 미네르바 - 2009/01/14 13:37
허균의 텍스트에 나오는 홍길동과 이 텍스트가 오랜 시간을 통과하며 고전이 되는 와중 새로 의미가 덧붙여지고 해석이 풍부해지는 가운데 수정 보완된 홍길동, 아울러 이의 일환으로 결정적으로 작년 초 방영됐던 드라마 <쾌도 홍길동>의 결을 통과한 뒤의 홍길동은 좀 다르다. <쾌도 홍길동>에서의 홍길동은 처음에 본인이 대중의 영웅, 인민의 영웅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행했던 어떤 일들이 민중들에게 의적행위로 '오해'를 받았고, 그 와중에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점차 사회에 눈을 뜬다. 그는 대중의 '호출'과 '요청'에 따라 점차 영웅이 되어갔고, 그는 그런 영웅이 될 만한 충분한 노력과 스스로의 존재증명을 하며 정말 영웅이 되었다. 그는 자신이 지지한 이가 왕이 된 뒤에도(그를 왕으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아예 왕정 자체를 비판하며 계속 싸우고자 한다.
이건 이준기가 나왔던 드라마 <일지매>와도 대조가 되는 설정이다. 이준기의 <일지매>에서 일지매는 순전히 개인적 필요에 의해 일련의 행동을 하면서 의적으로 오해받자 그 오해를 고스란히 자신의 명예로 취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사적인 복수에만 집착한다. 당시 벌어지고 있던 촛불집회의 이미지까지 끌어들인 항의집회에서 그는 민중들의 분노와 저항을 졸지의 자신의 영웅놀음으로 탈바꿈시키고 집회에 참여한 이들을 순식간에 영웅에 환호하는 구경꾼으로 전락시키는 놀라운 뻔뻔함을 과시하기까지 한다. 내가 배우들에게 느낀 호감과 별개로 이 드라마에 분노를 느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반면 <쾌도 홍길동>에서의 홍길동은 자신의 사적인 일련의 행동들이 의적의 정의로운 것으로 허구화되는 와중에도 무심하다가 각성을 거치면서 정말로 민중의 요구와 희망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왕의 위협에 겁을 먹은 민중들에게 얻어터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자신과 동지들이 건설한 꼬뮨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죽는다. 나는 여전히 홍자매가 만들고 강지환이 그려내 준 <쾌도 홍길동>의 홍길동이 진정한 의미의 모범적인 민중영웅이라 생각한다. 이는 심지어 원작의 홍길동의 한계까지 전복시킨 것이다. 원작에서의 홍길동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이끌고 율도국을 건설한 뒤(홍길동이 실존했으며 율도국의 지리적 위치가 일본이라는 설이 있다) 거기서 왕이 되지 않았는가. 극본을 썼던 홍자매의 지적대로, 신분제에 저항한다면서 또 다른 신분제에서 자신이 왕 자리를 먹은 홍길동이라는 건 역시 양반 출신인 허균의 한계다. 결과적으로는 민중을 팔아먹고는 이씨가 아닌 자신이 왕이 된 것이니.
<쾌도 홍길동>에서 드라마 말미에 가면, 홍길동은 죽었지만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언제 어느 시대에나 홍길동은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영원히 죽지않고 계속 되돌아오는 민중영웅’을 직설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사실 그 드라마에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건설한 꼬뮨(=산채)에서 관군의 불화살에 육체적 목숨을 바친 홍길동도 진짜 영웅이지만, 활빈당 식구들 모두가 멋진 영웅들이었다. 홍길동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야 한다며 가장 나이어린 곰이를 굳이 밖으로 내보내는데, 연씨는 곰이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한다. 허이녹은 왕의 아내가 될 수 있었음에도 홍길동 곁에서 함께 싸우기를 ‘스스로 선택’한다. 이들은 모두가 산채를 끝까지 지키며 죽음을 맞지만, 그 죽음은 비참하고 아픈 죽음이 아니라 관군의 불화살을 밤하늘에 가득 핀 불꽃으로 치환시키면서 기쁨과 설레임으로 가득한 또다른 시작이자 꼬뮨의 완성으로 묘사된다.
애초 미네르바는 sonnet님이 지적한 바로 그 이유, 그리고 2071님이 언급하셨던 비슷한 이유로 나의 영웅이 아니었기에 별 관심도 없었고 잡힌 사람이 진짜인지 아닌지도 관심이 없지만, 직업상 대중문화/대중예술이라 할 만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다 누구의 말을 빌면 사회학적 더듬이와 상상력이 발달해있는 편인 나한테 흥미로운 건 이런 물음들이다 : 왜 사람들은 미네르바를 이토록 숭앙하고, 잡힌 그를 보며 가짜라고 확신하는가. 여기에서 감지되는 대중들의 욕망은 무엇이며 이 현상에서 정작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반-이명박 전선으로 대동단결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모두가 말하는 근래, 사람들은 경제에 대해 특히 이명박 반대의 입장에서 뭔가 그럴 듯해 보이는 글을 연거푸 쓰는 몇몇
사람을 스타로 만들었고, 그들이 자신들이 바란 욕망을 대변해주는 영웅이 되길 바란 듯 보인다. 그 중 미네르바는 심지어
‘인터넷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다는데, 결국 주식과 재테크로 요약되는 글을 써온 그가 대중들의 영웅이 된 데에서 그 욕망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전통적인 부자가 아니라 졸지에 부자가 된 사람들 천지인데, 일확천금을 꿈꾸는
게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닌 시대가 된 건가? 그런데 그가 잡혔고, 신상이 공개된다. 음모론이 만개한다. 그 와중에 우석훈은
미네르바를 홍길동이라 추켜세운다. 다만 우석훈의 홍길동은 율도국에서 스스로 왕이 된 홍길동이다.
사실 <쾌도 홍길동>의 홍길동의 경우는 대중이 영웅을 호출해내고 거기에 욕망을 투영한 뒤 거기에 선택된 이가 대중의 호출과 욕망에 걸맞게, 그리고 영웅의 이름에 걸맞게 성장한 아주 해피한 케이스에 속한다. 현실 속에서 그런 해피한 케이스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대중/민중의 영웅이라는 것이 탄생하는 과정은, 그가 워낙 대단하고 뛰어난 영웅이기에 대중이 그를 영웅으로 인정하고 떠받들게 되기보다는, 대중들이 끝없이 영웅을 갈망하고 호출하고 있으며 그렇게 호출된 '가상의 영웅'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시키고, 거기에 일견 조건이 맞아들어가는 것 같은 후보를 골라 그 후보가 자신들이 바라는 바로 그 영웅이 되기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이 난리법석은, 대중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허상의 영웅 미네르바와 검찰에 잡혔다는 사람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일 터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결국 지금 잡힌 미네르바는 아무리 진짜라도 당연히 가짜일 수밖에 없고(아니 가짜여야만 하고), 앞으로 그 어떤 누가 진짜 미네르바라 나오거나 잡힌들 진짜가 될 수 없다. 결국 모든 미네르바는 가짜일 수밖에 없으며, 뒤집어 말하면, 진짜 미네르바는 없다.
그렇다면 더욱 중요한 건, 결국
미네르바를 통해 대중들이 이루고 싶어했던 그 욕망이 무엇인가, 가 아닐까. 그리고 왜 미네르바 현상이 발생했는가, 가 아닐까.
사실 '미네르바 현상'은 이름과 인물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 근래들어 계속 반복해 일어나고 있다. 황우석, 심형래, 신정아,
미네르바를 가로지르는 공통점은 그들이 실제 권위에서 출발했건 허상의 권위에서 출발했건, 사람들의 영웅 취급을 받았으며 그 뒤
그들 스스로 자신의 권위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노력과 경력과 성과를 통해 권위를 부여받고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날조한 권위를 스스로에게 덧칠하는 형식으로 이들은 점차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만들어나갔고, 어느 순간 그 거품이
터지자 대중의 격렬한 반감과 지지/연민의 충돌점 한가운데에 놓이게 됐다. 날조와 기반의 바탕 위에서 진짜 경력을 만들었거나
만들려다 실패한 이들을 영웅으로 만든 대중의 욕망은 왜곡된 영웅에 대한 욕망, 현실을 도피하려는 욕망이며, 대단히 잘난 누군가가
우리의 꿈을 이루어주기를, 그리하여 그 떡고물이 나한테도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그런 욕망이기도 하다. 좀더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주로 백인들의 나라인 세계 선진국들로부터 별로 꿀리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빳빳이 세울 수 있는 나라에서 어깨에 힘줄 수 있는 정도의 돈벼락을 어느 날 맞게 되는 것. 이를 위해 잘난 누군가가 내게 그 정보를 아무 조건없이 그냥 풀어주는 것.
신정아는 실패했지만 나머지 셋은 강한 권력자로부터 핍박받는 순교자, 그럼에도 불의의
권력에 항거하는 투쟁자의 이미지를 지닌다. PD수첩이라는 언론권력과 나아가 제국인 미국, 돈 많은 유태인 지배자들으로부터
핍박받고 협박당한 황우석. 영화권력 충무로로부터 왕따당한 심형래. 그리고 극악한 독재정부로부터 탄압당하는 미네르바. 나는 미네르바가 긴급체포가 된 것에도, 구속영장이 떨어진 것에도 매우 비판적이긴 하지만, 미네르바로 상징되는, 그리고 계속 반복되는 것 같은 어떤 일정한 경향이 더욱 우려스럽다. 단적으로 말해, 파시즘보다도 포퓰리즘의 위험이 더 커보이고 무섭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택광도 히틀러가 등장할 만한 시기로 지적하고 있고, 나는 미네르바 현상에서도 그 흔적을 본다. 쟁가님 역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면, 시청율에 있어 <쾌도 홍길동>은 <일지매>의 적수가 못 됐다. 물론 드라마의
시청율을 좌우하는 것은 매우 다양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한국의 대중들에겐 쾌도 홍길동보다는 용이 일지매가
훨씬 더 친숙한 영웅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 영웅은 철저히 사적인 복수만을 진행시키는 가운데 가끔 떡고물로 돈을 던져주고, 민중
앞에서 쇼를 하며 환호를 챙긴다. 그래도 영웅이라는데. 자기 복수만이 관심사이건 말건 어쨌건 우리한테 가끔 돈을 던져주는데, 정부에 저항하는 것 같은데. 바야흐로 사짜가 횡행하는 세상, 그리고 그 사짜가 정말 사짜가 아닐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과
기대가 정부에 항거하는 민주주의 투쟁으로 둔갑하는 시대가 왔다. 이는 앞으로 더해질 것이다. 향후 10년간, 사짜들이 더욱
횡행할 것이라는 게 내 예상이다. 그럴 수밖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기는커녕 다 날리고, 아예 20대가
열심히 일해서 일관된 자기 경력 하나 만들기가 대단히 어려운 시대가 됐으니까. 사짜 경력 만들고 가짜 권위를 만들기라도 해야
사람들이 비로소 눈 한 번이라도 봐주는 시대인데, 재주 좀 있는 놈들이 그런 식으로 가짜 권위를 만들어내려 하는 것도 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으로까지 보일 정도다. 이건 벌써 일부 20대들도 재빨리 받아들여 활용하고 있는 처세술이기도 하다.
애초 글을 시작했던 며칠 전의 의도와 달리 글이 지나치게 시니컬하게 돼버렸는데, 이렇게까지 깝친다 해도 아마 단 한 마디 문장만 마지막으로 덧붙인다면 무수한 미네르바
지지자들로부터 이 글이 돌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그 마지막 문장이란 이거다.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
ps. 미네르바 잡혔단 얘기에 가짜란 소리까지 돌면서 쓰기 시작했는데 결국 다 지난 떡밥이 됐다. 뒷북글을 굳이 올린 건, 쓴 게 아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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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해방전선>으로 인상적인 장편데뷔를 한 윤성호 감독이 예전(2004년)에 만든 단편. 인터넷에서 화면과 싱크가 맞지 않는 버전이 돌아다니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윤성호 감독이 소위 '고출력 버전'을 직접 유튜브에 올렸다. 출처는 여기이다. '공유 환영' 메시지에 힘입어 이 블로그에도 퍼온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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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풍경, 2월 15일 ~ 27일 - 2008/02/28 00:19
2월 15일.
<보딩게이트>, 필름포럼 - <바보>를 건너뛰고 <보딩게이트>를 보러가는데, 집에서 넉넉히 출발했음에도 택시를 탔다가 길이 왕창 밀려 10분을 놓쳤다. 아, 정말 주 내내 이상했다. 이게 뭐야. 올리비야 아싸이야 감독 영화는 처음이었는데, 이 감독 의외로 애증과 집착과 배신과 기타 등등의 그 끈적하고 징글한 감정을 제대로 뽑아내는 분이구나 싶다. 난 또 장만옥의 <이마 베프>나 <클린> 같은 영화들, 스틸 한 장씩만 보고 엄청 우아한 감독인 줄 알았다는. 근데 거참 극장 안 분위기는 난삽하더라는.
2월 22일.
<데어 윌 비 블러드>, 용산CGV -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6편을 모두 제끼고 금요일 딱 이거 보러 갔다. 간만에 J.가 동행. 꽤 보고싶어했던 <27번의 결혼리허설>은 <데어 윌 비 블러드>와 딱 겹치는 바람에 통과. 그나저나 이거 제목 꼬라지 봐라. 전날 잠을 제대로 안 자고 갔다가 죽을 뻔했다. 몸의 진을 다 빼놓는 영화, 난 나오면서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라고 잠깐 생각했다니깐.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나보다 겨우 4살 많은 주제에 무슨 도인이 돼버렸다냐. 이거 완전 호러영화라는. 영화란 매체의 시적 구현, 근데 서사시다. 아웅, 이거 다시 보러 가려면 각오 단단히 해야 할 듯.
2월 25일.
<잘 나가는 그녀에게 왜 애인이 없을까>, 신촌 메가박스 - 그놈의 졸업식 때문에 이대 앞에서 차가 꽉 막혀서 무려 15분 지각, 그러나 놓친 건 5분 정도인듯. 아놔 헤더 그레이엄 너무 귀여우셔. 진작 좀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들 하시지, <부기나이트>부터 야한 역할들만 맡으셔서리. 전반적으로 라이트한 연기를 하면서도 꽝 뱃속 깊게까지 때려주는 연기, 이 언니 그냥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확실히 연기를 잘 하시는구나. 근데 난 아무리 봐도 브리짓 모이나한은 영 안 끌리던데(몸매는 좋더라만), 미국애들은 이 아가씨가 엄청 섹시하다고 생각하나 봐? 흥, 나도 위 아래 짝 맞춘 비싼 속옷 사모을 거야! 함박눈이랑 묘하게 잘 어울리는 영화였어.
<마이 뉴 파트너>, 서울극장 - 눈길에 늦겠다 싶어 지하철 타고 급하게 날아왔는데 다행히 시간 딱 맞게 도착. 조한선 군을 비롯해 안성기와 기타 등등 배우들이 무대인사를 했는데, 기자간담회는 가볍게 생까고 걍 집으로 왔다. 와, 조한선 키 크더라.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리도 길고, 의외로 어깨 넓고 상체가 우람한 몸매고, 그럼 당연히 내 가슴도 조금은 벌렁여야 하는데, 그것도 참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어쩜 아무 매력이 없을 수가 있니. 안성기 아저씬 여전하심. 근데 언제나 멋지신 최일화 아저씨가 안 오셨어 어째. 영화는... 착각을 좀 많이 하셨더라.
2월 26일.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신촌 메가박스 - 이틀 연짱 신촌메박. 배우님들 짱이셔요. 주드 로도 좋지만 레이첼 와이즈 언니 너무 멋지셔요. 나 울 뻔했자나. (데이빗 스트래턴도 무지 좋았다는.) 사실 한번도 왕가위한테 열광하면서 좋아한 적은 없으니 '지나간 내 청춘' 운운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래도 왕가위 영화는 <2046> 빼고 다 봤을걸. 근데 왕가위는 그러니까, 결국 (서)유럽인으로 태어나지 못해 좌절한 아시아인이었던 거야? <중경삼림>까지 기분나빠질려고 그래. 필름2.0에 Bad 쪽으로 단평을 보냈다.
2월 27일.
<허밍>,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점 - 걍 두 마디만. 이게 영화면 내가 심은하다. 한지혜가 영화배우면 난 철인3종경기 세계챔피온이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 시네마 상상마당 - 가뜩이나 참석한 기자 수도 적었지만 영화 끝나고 기자간담회 때 남은 기자가 겨우 3명. 평소에 창피하다고 절대 하지 않는 질문을 그래서 기자노릇 시작한지 1년만에 처음으로 해봤는데, 나 혼자 질문을 네 개인가 하면서 1:1 토론 분위기가... 끝나고 나와서 감독님과 인사하고, 마케팅팀 이목 제대로 끌고. (아우 창피해.) 김세진, 이재호 열사 기념사업회에서 의뢰하여 만들어진, 인터뷰로만 구성되어 기존 다큠벤터리 공식을 다 깨버리는 다큐멘터리다. 이건 제대로 기사를 쓰고 싶다. 여력이 된다면 인터뷰도 제대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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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개봉작 - 2008년 2월 넷째 주 - 2008/02/24 19:48
아카데미 시즌의 정점이라 해야 할까요. 이번 아카데미상의 작품상 후보는 총 5편, 이중 작년에 이미 개봉한 <마이클 클레이튼>을 빼면, 나머지 4편 중 3편이 이번 주에 한꺼번에 개봉합니다. 세 편 다 날씬하게 잘 빠진 영화들인 데다 재미도 훌륭해서 별 이견없이 추천할 수 있는 작품들이에요. 세 편 다 이번 아카데미상의 주요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부문에 다 후보로 올라있죠. 8개 부문, 7개 부문, 4개 부문. 세 작품 다 각본상이나 각색상, 작품상, 감독상, 거기에 여우조연상이니 남우조연상이니 하는 상들까지. 하지만 제가 추천작 중에서도 추천작으로 꼽을 '이주의 추천작'은 아카데미상에서 고작 사운드상과 음악상 2개 부문에 만 오른 <3:10 투 유마>입니다.
작년에 한국영화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당장 생각나는 영화가 <기담>과 <스카우트> 정도밖에 안 되니까...) 헐리웃은 물건들이 쏟아진 해였던 듯. 아카데미상이고 골든글로브고 전미/뉴욕/LA 비평가협회고 다들 상 뽑으면서 신났겠다 싶습니다. 올해 한국영화들은 사정이 좀 나아지려나요. 나아지길 빕니다.
이주의 추천작
3:10 투 유마
감독 : 제임스 맨골드 | 주연 : 크리스천 베일, 러셀 크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끊겨있던 서부영화의 맥을 잇는다는 홍보사의 자랑스러운 문구가 전혀 과장이 아닌
영화이긴 한데, <용서받지 못한 자>는 사실 기존 서부영화를 배반하는 서부영화이기도 했죠. <3:10 투 유마>가 딱
그렇습니다. 멋진 영웅들이 활약하는 서부가 아니라, 야만적이고 지저분하며 잔혹한 약육강식의 질서가 지배하는 서부를 배경으로 두 남자가 '적대적
우정'을 만들어갑니다. 서로 적이기에 결국 어느 한 쪽이 죽을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두 사람의 우정은 더욱 짠해질 수밖에 없지만, 그 우정이 기반하고 있는 곳, 그러니까 두 사람이 서로 동의하게 된 어떤 지점은 상당히 미래지향적이에요. 결국 자식 세대를 위한 거니까... 만약 두 사람이 저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군요. 전 두 주인공이 결국 한 사람의 이면이란 생각을 합니다. 이 둘이 그토록 배려하고 구하려던 존재는 결국 댄의
아들, 윌리엄이고, 그래서 혹자들이 고개를 저었던 마지막 엔딩이 저는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살짝 늘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원래 제임스
맨골드는 플롯이나 미장센보다는 캐릭터, 그래서 캐릭터를 위해 플롯이 살짝 늘어지거나 망가지는 일이 제임스 맨골드 영화에 왕왕 있지요. 한번 다시 보고 긴 감상문을 쓰고 싶군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감독 : 이선 코언, 조엘 코언 | 주연 : 조쉬 브롤린, 하비에르 바르뎀
영화광들 사이에 코언 형제의 유머를 이해 못 하는 건 촌스러운 것이란 식의 스노비즘이 오랫동안 존재해왔습니다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코언 형제의 유머나 그들의 영화세계는 저와 맞지 않고 제 취향도 아닙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도 마찬가지, 그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이 영화의 완성도라는 건 정말 억 소리가 나오게 훌륭합니다. 영화 자막 올라갈 때 그저 '허허허' 이럴 수밖에 없었다는. 원래 존재하는 원작을 각색했다던데, 그럼에도 이 영화는 천상 코언 나라의 코언 영화. 그러면서도 뭐랄까, 과거의 코언 영화에서 한 단계를 또 훌쩍 뛰어넘은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뭐랄까, 숭고한 느낌이랄까. 원래 코언의 세계를 좋아했던 미국 평단이 이 영화에 그토록 호들갑떠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톤먼트
감독 : 조 라이트 | 주연 : 키라 나이틀라, 제임스 맥어보이
<오만과 편견> 감상문이 여기 뒤져보면 어딘가에 나올 텐데, 역시 전 조 라이트와는 맞지 않습니다. 특히 이 사람이 인물들의 심리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퀵줌을 쓴다던가 하는 식의 카메라 장난을 부릴 땐 거부감이 팍 들어요. 뭐랄까, 그런 식의 격렬한 카메라 움직임이 영화의 전체 분위기와 따로 논다는 느낌. 그럼에도 이 영화가 <오만과 편견>보다 낫다면, 그건 10대 초반의 소녀(브라이어니)의 성적인 호기심이나, 10대 중후반 소년 소녀(세실리아와 로비)의 에로스에 대한 그 미묘한 태도와 행동들이 아주 잘 묘사가 되었다는 겁니다.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 연기도 아주 좋네요. 어린 브라이어니를 연기한 시어샤 로난(Saoirse Ronan, 전통 게일어 이름이라 발음이나 표기가 쉽지가 않네요. Shaoirse는 게일어로 '자유'란 뜻, 대강 seer-sha 내지 sur-shuh로 발음이 된답니다.)의 연기는 특히 빛이 납니다.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로 올랐던데, 아무리 아카데미 협회가 매년 욕을 먹는다고 해도 그래도 이 사람들 기본적으로 눈이 있단 말이죠. 원작소설을 사놓은 상태, 곧 읽을 예정입니다.
주노
감독 : 제이슨 라이트먼 | 주연 : 엘렌 페이지, 제니퍼 가드너
성과 사랑을 제대로 알기 전에 임신부터 덜컥 한 16살의 쿨한 소녀 주노의 아기낳기. 작고 재미있으며 감동적인 영화지만 미국에서 그렇게까지 열광했던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반은 대사, 나머지 반은 주노의 캐릭터와 엘렌 페이지의 매력 때문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는데, 자막을 통해 접하는 우리로서는 대사가 주는 재미의 반은 날려먹을 수밖에 없죠. 주노의 캐릭터와 엘렌 페이지의 매력은... 물론 동년배들에게도 어필하겠지만, 제가 의심하고 있는 건 영화 속 마크가 그랬듯 3, 4, 50대 아저씨들한테 우리 식으로 하자면 '국민여동생' 모드로 어필한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만두소희가 저 임신했어요, 하는 캐릭터로 나올 때 아저씨들의 반응이라 해야 할까. 물론 영화는 귀엽고 사랑스러우며 믿음직하게 감정변화를 묘사하고 있고, 바람직한 가족상도 보여주기 때문에 감동적인 것도 사실이지만요.
기냥저냥 나머지들
보딩게이트
감독 : 올리비야 아싸야스 | 주연 : 아시아 다르젠토, 마이클 매드슨, 오가룡
크게 보자면 현재의 연인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과거의 연인을 죽이는 여자의 이야기. 그런데 이게 만만한 얘기가 아닙니다. 과거의 남자는 금융계의 큰 손이었으며 지금은 몰락의 위기, 거기에 꽤나 가학적이고 지배력이 큰 남자로, 과거 그녀에게 사업상 파트너를 접대(!)하도록 강제한 일이 있죠. 그녀는 더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지만 그의 지배력과 영향력 하에서 빠져나오기가 힘이 듭니다. 킬러이기도 한 현재 연인에게 저 과거의 남자를 처단해 달라는 청부살인 의뢰가 왔을 때 그녀가 참여한 건 어쩌면 돈보다도 과거를 끊는다는 이유가 더 강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영화보다도 장만옥의 남편으로 더 잘 알려진 프랑스의 노장 올리비야 아싸야스 감독의 신작. 약간 B스럽고, 저는 꽤 좋았는데 남에게 추천했다간 원성을 더 많이 받을 것 같은 영화로군요.
미확인 개봉작
아주르와 아스미르
감독 : 미셸 오슬로
미셸 오슬로가 처음으로 3D 컴퓨터 그래픽을 차용했다고 하던데, 일반시사회 일정까지 받아놓고 너무 피곤해서 결국 확인을 못 한 영화. 보고 싶어요, 흐윽.
나비두더쥐
감독 : 서명수 | 주연 : 판영진
지하철 2호선의 베테랑 기관사의 이야기. 지하철 2호선도 베테랑 기관사도 모두 제 관심을 끄는 소재들. 한동안 가보지 못했던 인디스페이스에 나들이 가야겠습니다.
내부순환선
감독 : 조은희 | 주연 : 양은용, 배용근
같은 이름을 가진 남녀의 엇갈리는 인연에 관한 얘기라고 합니다. 게다가 남자 주인공의 직업은 또 지하철2호선 기관사라네요. 역시 가서 확인해 봐야죠. 인디스페이스 개봉작.
데스노트 L : 새로운 시작
감독 : 나카다 히데오 | 주연 : 마츠야마 겐이치, 쿠도 유키
이전 <데스노트>도 만화도 보지 않아서,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지만 감독이 나카다 히데오라고 해서 슬쩍 궁금증이 들었다가, 그러나 굳이 보러 갈 것 같지는 않군요.
IT 버블과 함께 잔 여자
감독 : 사토 후토시 | 주연 : 가네코 노보루, 마츠야 요코
현대판 신데렐라 얘기라곤 하는데 과거 원작소설 및 영화화 버전이 금융계 큰손과 엮이는 여자 얘기였다면 이번 리메이크는 IT업계 큰손과 엮이는 여자 얘기라고 합니다.
도발적 관계 : M
감독 : 히로키 류이치 | 주연 : 미원, 코우라 겐코
누구에게나 설정을 듣는 것만으로 보기 싫어지는 영화들이 전세계 영화의 반이라곤 하지만, 특히 성을 소재로 한 영화들의 경우 십중 팔구는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것이다보니 (뭐 명분이야 이것저것 잘도 갖다 붙이지만요), 이런 설정을 갖고 있는 영화는 줄거리만 들어도 일단 거부감이 듭니다. 뭐 정말 좋은 영화를 편견 때문에 놓치는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굳이 제가 가진 게 편견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픈 생각도 들지 않는 거 보면...
일렉트로닉 걸
감독 : 유보현 | 주연 : 안천문, 왕서기
설정은 좀 웃긴데, 역시나 제가 별로 재미있어 할 영화 같지는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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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풍경, 2월 11일 ~ 14일 - 2008/02/15 06:25
2월 11일.
<주노>, 대한극장 - 한국의 많은 여자들이 주노보다 배의 나이를 먹고서도 주노만큼의 처신도 못 하는 경우가 많은 건 이 사회가 편견에 맞서 내 식대로 살겠다 결심하기엔 너무 험악하고 터프하며, 여자들에게 특히 더 그러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선 <주노>가 코미디였을지 몰라도 한국에선 참 많은 여자들을 몰래 눈물짓게 할 영화가 될 게 틀림없다. 인터넷에서 더러운 방식으로 왈왈대는 남자들과, 애 낳는 날 운동복 입은 채로 뛰어와 주노를 꼭 끌어안아 주고 있는 폴리 사이의 간극.
<터질 거야>, 하이퍼텍 나다 - 좌석수도 많지 않은 하이퍼텍나다인데, 여기서 하는 시사회는 언제나 자리가 널널하다. 스크린이 좀 작은 걸 빼면 참 운치있는 곳이다. 예전엔 자주 다녔는데, 근래엔 시사회 아니면 거의 올 일이 없는 듯. 여기서 <그 남자는 거기에 없었다>를 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그저 그랬다. 자의식에 똘똘 뭉쳐있는 것도 별로인데 안 그런 척 하는 건 많이 짜증난다.
<매뉴얼 오브 러브>, 명보 - 3호선 을지로3가 역과 명보극장은 참 가까운데 이상하게도 출구에서 극장까지 5분이 넘게 걸린다. 이유가 뭘까. 자국에서 흥행폭풍을 일으키는 영화들은 분명 이유가 있고 봐두는 게 좋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다. 사랑과 결혼에 대해 나도 이토록 여유롭고 유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달달한 영화도 좋아라 하는 거 보면 역시 내 취향은 꼼짝없이 상업 기획 장르영화인데(이게 뭔 말이다냐), 종종 예술영화 애호가로 오해받곤 한다.
2월 12일.
<점퍼>, 용산CGV - 맨 앞에서 보려니 눈이 훽훽 돌아가두만. 조금 늦게 도착해서 허겁지겁 명함을 냈는데, 난 늦게 와서도 여유만만한 기자들은 이해를 잘 못하겠어;;; 마음은 급한데 앞에서 떡하니 막고는 시간 질질 끌 때는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다행히 예고편을 여러 개 상영해준 덕분에 처음부터 제대로 봤다는. 덕 라이먼이 원래부터 그러지 않았던 거 같은데 자기 작품 후속편의 폴 그린그래스 영향을 받았나, 컷을 너무 짧게 끊어 우다다 붙인 장면들이 많다. 액션씬을 이렇게 찍어놓으면 참 난감하다.
<밤과 낮>, 용산CGV - 사실 이 영화 때문에 DSLR을 낑낑대며 가져갔는데, 감독, 배우들이 베를린에서 아직 안 왔다고 그냥 영화상영만. 그러고 나서야 감독, 배우 안 온단 보도메일을 본 것 같아서 요즘 안 그래도 멍청한 실수를 연발하는 자신을 탓하고. 일반관객 시절엔 절대 볼 일이 없던 홍상수 영화지만, 지금 내 처지에는 개인적 호불호와 상관없이 봐야만 한다는. 영화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아니면, 홍상수 영화가 원래 30~40대 감성이었던 거거나. 아니면 내가 이제 남자들처럼 적당히 타락한 거거나.
<스파이더위크 가의 비밀>, 용산CGV - <매뉴얼 오브 러브>와 마찬가지로 일반시사의 자리 한 켠에서 본 것. 사람이 너무 없어서 상영관 맞나 하고 직원에게 물어봤을 정도. 아동 대상 판타지라고 하면 영화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무조건 안 보는 경향들이 있나 보다. 이 영화는 분명 아동 대상, 그것도 저연령 아동층 대상이 맞지만 영화는 또 나름 훌륭하셔서. 이 집안에서 자발적 동의에 의한 가모장 가정이 완성되는 그 폭력의 순간이야말로 정서적으로 클래이막스 장면일 터이다.
2월 13일.
<3:10 투 유마>, 용산CGV - "3시 10분 유마행 기차"라고 제목을 붙였으면 더 좋았을걸. 이틀 연속 세 편씩 본데다 잠이 부족했더니 이 영화를 보면서 우왕ㅋ굳ㅋ 하면서 보는데도 계속 졸았다는. 이럴 때가 괴롭다. 재밌다고 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정신차려 보면 깜빡 졸았고, 근데 존 시간은 길지 않았던지 장면은 그럭저럭 다 연결되고, 이게 계속 반복되고. 영화를 제대로 못 봤다는 느낌 때문에 짜증은 쌓이고 몸도 너무 힘들어진다. (차라리 푹 자버리면 몸은 덜 힘들지.) 제임스 맨골드는 딱히 팬은 아니고, 언제나 연출에 좀 문제있거나 지지부진해지곤 하지만 캐릭터를 워낙 잘 뽑아낸다, 라고 생각해왔다. 이 영화도 그런 듯. 난 모두가 좀 아니라고 하던 이 영화의 엔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내가 추측하고 있는 헐리웃 영화들의 어떤 경향을 보여주고 있고, 그건 영화미학적 고뇌보다는 윤리적 고뇌의 결과라 생각한다. 하여간 다시 봐야 할 영화.
2월 14일.
<4개월, 3주... 그리고 2일>, 명보 - 저 쩜쩜쩜을 '그리고' 다음에 붙였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기사 하나를 급히 쓰느라 <데쓰노트 L> 시사회는 패스하고, 이 영화는 워낙 칸영화제 수상작이라 반드시 챙겨봐야 한다며 보러 갔는데, 결국 5분 지각. 아쒸 사무실과 극장은 겨우 지하철 두 정거장,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인 데다 15분 전에 나왔는데 5분을 늦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눈앞에서 지하철 한 대 문닫는 걸 놓치고 다음 차 기다리는데 플랫폼에서 5분이 지나도 안 오더라고. 4호선은 3분 간격으로 제깍제깍 오는데 3호선은 종로3가 을지로3가 같은 곳을 지나는 주제에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래도 영화는 좋았다. 이 단순한 얘기를 이렇게 단순하게 찍으며 픽스된 카메라로 롱테이크 씬 남발하는 주제에 어쩜 2시간 내내 조금도 지루할 틈없이 얘기를 끌어나갈 수가 있는 거지? @.@애초 이 시리즈를 써보자 했던 직접적인 계기는 <어톤먼트> 시사회였는데, 그놈의 구정 연휴 때문에. 음, 근데 이런 게, 재미가 있나... 서너 번 더 해보고 재미없으면 때려칠 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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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개봉작 - 2008년 2월 셋째 주 - 2008/02/14 11:31
설연휴는 지난 주였는데, 어째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들이 숫자도 많고 면면도 더 화려합니다. 이번 주에 개봉하는 영화는 총 10편, 그런데 이번 주에는, 추천작 / 난감작 / 나머지로 구분하는 게 좀 힘들군요. 10편이나 되는데도 별로 쳐지는 영화 없이 골고루 수준작들이에요. 1년에 이런 신기한 날이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냥저냥 나머지'로 분류된 영화들도 영화가 별로라기보다는 아무에게나 선뜻 추천하기가 힘든 영화들이어서 그렇지 완성도들은 꽤 괜찮은 편입니다. 이주의 난감작도 평소라면 그냥 '나머지'로 분류됐을 만한 영화고요.
어쨌건 그 중에서 '추천작 중 추천작'을 고르라면 역시 <추격자>. 물론 신인감독의 영화인 만큼 살짝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뭐랄까 한국 영화계에서 그간 계속돼온 '스릴러 장르에서의 삽질'을 한 방에 재우는, 그간의 삽질이 결국 이런 영화가 나오기 위해서였구나 싶은 그런 기특한 영화라 그렇습니다.
이주의 추천작
감독 : 나홍진 | 주연 : 김윤석, 하정우, 서영희
스토리는 명쾌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소름 끼치도록 훌륭합니다. 전체적으로 조율이 잘 됐고 연출리듬도 좋은 편, 심지어 타악기를 잘 살린 사운드도 좋습니다. 특히 제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하정우가 연쇄살인범을 묘사하는 방식, 그리고 서울 강북의 그 특유의 골목길 표정을 잘 살렸다는 것. 과한 부분들도 없잖아 있고 중간에 호흡이 아주 살짝 산만해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는 사람도 같이 발바닥에 땀이 날 것만 같은 영화. 사실 제 취향에는 좀 과하고 센 영화라서 마구 열광은 못 하겠습니다만, 그런 거죠, 취향과 어긋나는 데도 감탄해서 기특해할 수밖에 없는 영화의 케이스예요. 영화개봉 직후 좀 긴 감상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여간 윤석 아저씨 만세! 하정우 화이팅!
화성아이, 지구아빠
감독 : 메노 메이어스 | 주연 : 바비 콜먼, 존 큐잭
일단 애가 너무 귀엽습니다. 어린애답지 않게 약간 쉰 듯한 목소리와 무심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애어른같은 연기를 합니다. 자신이 화성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동안엔요. 맨마지막에 비로소 마음을 열었을 때 아이다운 얼굴과 표정이 나오는데 이 장면 정말 눈물 펑펑. 기본적으로 아주 착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 보면서 같이 막 웃으면서도 눈물 줄줄입니다. 게다가 존 큐잭과 조운 큐잭 남매의 찰떡 궁합 코믹 연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보셔야 할 영화입니다. <추격자>와 저 색깔박스 자리를 놓고 가장 각축을 벌였던 영화. 다만, 영화의 느낌이 약간 80년대 같다는 느낌은 쪼금 감수하셔야 할 듯. 스토리 자체가 그 느낌의 설정이니 어쩔 수 없잖겠습니까. 사용된 음악들도 다 그런 음악들이니, 이건 애초에 의도된 것이라 봐야 할 거 같아요.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
감독 :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 감독 : 벨렌 루에다
기본적으로 벨렌 루에다의 원맨쇼. 남편, 아이와 함께 어릴 적 자신이 있었던 고아원 건물을 구입해 이사왔는데 애는 실종되고 이에 대한 비밀을 풀어나가는 엄마의 얘기로, 결국 심리호러극입니다. 일단, 아이들이란 존재가 철이 없고 악의가 없기때문에 오히려 아주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고, 그럼에도 그 아이들을 아주 안쓰럽고 아끼는 애정의 눈으로 보는 게 참 좋았고요. 주인공이 계속 가지고 있었던 어떤 결핍과 상처, 그리고 모종의 죄책감(결코 그녀의 잘못도 아니었음에도), 그리고 나아가 상실과 아픔과 슬픔 같은 심리들이 아주 아름답게 표현되었어요. 이 사람도 기본적으로 가슴에 사랑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이를 연기하는 벨렌 루에다의 연기도 아주 호연. 요즘은 이런 주인공들을 보는 게 좋더군요.
잠수종과 나비
감독 : 줄리앙 슈나벨 | 주연 : 마티유 아말릭
아
시다시피 전 엘르 편집장이었던 장-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중으로 전신마비가 된 후 왼쪽 눈 깜박임만으로 쓴 자서전으로 만든 영화.
왼쪽 눈으로만 세상과 연결돼 있는 보비의 그 고독감과 답답함을 되도록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카메라 곳곳에 보입니다. 한
인간의 위대한 의지의 승리와 그 상화에서 잃지 않는 유머감각도 감동적이지만, 한 사람을 깊이 탐구하고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카메라의 노력이 더욱 감동적이었습니다. 마티유 아말릭의 연기도 참 좋고요.
매뉴얼 오브 러브
감독 : 지오바니 베로네시 | 주연 : 카를로 베르도네, 모니카 벨루치
이탈리아판 <러브 액츄얼리>라 할 만하네요. 매뉴얼 오브 러브라는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 접수된 사연 네 개를 묶는 형식의 옴니버스 구성이에요. 에피소드 네 개가 다 기본적으로 로맨틱 코미디이지만 사연의 종류도 표현의 방식도 다르네요. 어떤 건 에로틱한 판타지가 강조되고, 어떤 건 두 명의 버디 콤비 만담이 강조되고, 기타 등등. 모니카 벨루치는 점점 더 여신이 돼 가는 듯합니다. 더욱 아름답고 숭배할 수밖에 없지만 정작 당사자는 점점 더 인간세상과 멀어지는... 그래 특정 상징과 아이콘으로만 소비될 수밖에 없는. 각 에피소드가 다 재미있지만, 셋째 에피소드는 마음이 아주 짠하기도 하고.
이주의 난감작
점퍼
감독 : 덕 라이먼 | 주연 : 헤이든 크리스텐센, 제이미 벨, 새뮤얼 L. 잭슨
평소라면 '나머지들'로 분류될 영화고, 이주의 난감작으로 결코 선정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만, 이번 주는 워낙 영화들이 다들 쟁쟁해서 말입니다. 주연배우들에 대한 무한한 빠심팬
심이 있다면 얼마든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고, 순간이동을 묘사하는 카메라도 매력적이고, 배우들도 예쁘고요. 하지만 듀나의 말을 빌자면 또렷하게 완결성을 가진 얘기가 전개되기보다는 '떡밥만 그득한' 영화, 게다가 그 무한한 팬심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 하자면 우리 아가 이든이는 아직 원톱 주연은 안 되는구나 싶습니다. 이든이보단 제이미가 훨씬 매력적입니다. 캐릭터도, 연기도요. 이 녀석은 또 언제 이렇게 컸담. 그러나... 아가 이든이가 까불며 살다가 열라 쳐맞고 고생하고 가까스로 사람 되는 얘기니까, 팬들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될 거예요. 우훗.
기냥저냥 나머지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감독 : 줄리 테이머 | 주연 : 짐 스터져스, 에반 레이첼 우드
<클로버필드> 다음 날 시사회로 봤는데, <클로버필드>로 오염된(?!) 눈과 시신경과 뇌를 정화시켜 주는 느낌이더군요. 무척 아름답습니다. 다만 중반 이후부터는 많이 늘어지는 편이고, 이미지 과잉이다 싶은 부분들도 많은 게 사실. 게다가 비틀즈의 광팬으로 리메이크들을 좋아하지 분들껜 고역일 거예요. 그러나 저는 비틀즈는 원곡보다 리메이크를 더 좋아한다는, 그래서 이 영화도 개인적으론 꽤 좋아한다는.
스파이더위크 가의 비밀
감독 : 마이크 워터스 | 주연 : 프레디 하이모어, 사라 볼저
영화 자체는 아주 재미있고 짜임새도 좋고 아름답게 촬영된 데다 연기들도 발군이에요. 다만 아무래도 저연령층 아동에게 좀더 어필하는 영화다 보니 성인 입장에서 볼 때 마구 빠져들기는 아무래도 힘들다는. 연기신동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1인 2역을 맡은 프레디 하이모어의 연기도 좋고, 메리-루이스 파커, 닉 놀테, 마틴 쇼트, 크리스 록, 데이빗 스트래턴처럼 연기 잘 하는 성인배우들이 든든하게 조연으로 받쳐주고 있습니다. 사실은 추천작으로 넣고 싶은데 ㅠ.ㅠ
미확인 개봉작
아름답다
감독 : 전재홍 | 주연 : 차수연, 이천희
전재홍 감독은 김기덕 감독 2라고 하네요. 애초 영화의 시작도 김기덕 감독의 짧은 시놉에서 출발했고 제작도 김기덕 감독이 해줬다는. 아름다운 여자를 착취하는 내용의 영화는 사실 별로 보고 싶지 않지만, 시사회를 놓친 건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스폰지는 다른 영화 시사 스케줄 따윈 별로 고려하지 않고 시사회 일정을 잡곤 하더군요.)
대한이, 민국씨
감독 : 최진원 | 주연 : 최성국, 공형진
한국판 덤앤더머? 이미 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다소 사악한 장난기를 가지고 있었던 덤앤더머가 아니라그냥 발달장애를 앓는 순수한 두 사람, 이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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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시사회 잡담 - 2008/02/13 04:19
온라인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일반관객들이 의외로 기자시사회에 관해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기자시사회에 대해 잠깐 잡담을 늘어놓고자 합니다.
한국영화 시사회
무대인사, 눈치보기 및 탐색전
무대인사 때 영화의 질을 잠정 예측할 수 있습니다. 보통 영화가 잘 나왔다 싶은 경우는 감독도 배우도 굉장히 자신만만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유난히 '애정'과 '관심' 나아가 '요즘 한국영화 어렵다'는 약간의 협박과 '우리 영화는 그냥 오락영화다'라는 변명이 강조됩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감독, 배우들이 의례껏 하는 '열심히 했거든요, 잘 봐주세요' 하는 말을 좀 웃기다고 생각하지만(열심히 안 하는 배우, 감독도 있나요?), 생각해 보면 딱히 할 말이 없는 상태에서 저런 말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겠단 생각이 들어 일종의 관용어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기자간담회, 공격과 방어
기자간담회는, 역시 영화가 재미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나오는 얘기도 갈립니다. 사실 저는 이 기자간담회 자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기자들의 질문도 뻔하고 대답하는 사람들의 대답도 뻔하기 마련인데, 문자 그대로만 보면 뻔하고 의례적이지만 대단히 정치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경우들도 간혹 있어요. 말하자면 예의바르고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말들이 실은 치열한 공격과 방어인 경우들이 있는 거죠. 하지만 별로 아닌 영화에 기자가 호들갑을 떨면서 막 칭찬을 해대거나, 수준 이하의 질문들이 나오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예컨대 <기담> 기자간담회의 경우, “정남(진구가 연기한 초짜 의사 캐릭터)의 머리칼이 왜 새는 거냐?”라는 질문이 나왔을 땐, 제가 다 민망해서 얼굴이 화끈해지더라고요. 물론 예컨대 <천년학> 때처럼 “영화가 전체적으로 좀더 밝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색감이 의도한 것 맞는가, 아니면 서울극장 영사기 렌즈가 의도보다 좀 어두운 것인가?” 같은 멋진 질문이 나오기도 하지만요. (네, 이건 서울극장에서 원래 의도보다 어둡게 영사된 게 맞다고 합니다.) 보통은 영화가 좋으면 감독에게 질문이 몰리고, 별로였으면 배우들에게 신변잡기에 관한 질문이 몰리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영화가 좋아도 (너무 좋아서) 질문 없이 썰렁~한 경우도 봤어요.
상영도중, 무매너 전쟁터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여타 모든 영화관람 환경 중 기자시사회 때가 가장 개판으로 안 좋습니다. 일반 관객들의 눈에는 영화기자란 사람들이 영화보는 매너가 없다고 욕하기 쉬운 문제이긴 한데, 실제로는 좀 다른 시선으로 봐야 합니다. 기자시사란 게 아무래도 영화를 보는 거니 남들에겐 노는 걸로 보일지 몰라도 당사자들에겐 엄연히 ‘일’이거든요. 회사에서 언제 급한 연락이 올지 모르는데 전화기를 꺼버릴 수가 없는 거고, 영화 도중 전화가 온다면 받을 수밖에 없겠죠. 영화가 엉망이라면 앉아있는 게 고문이 되는 자리. 한 시간 반동안 꼼짝 못하고 화면만 봐야 하는데 그게 놀이가 아니라 일의 일환이라면, 자막이 올라가기가 무섭게 튀어나가고 싶은 게 사람 심리죠. 기자시사회장에는 핸드폰 불빛 켜고 시간 확인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여기 반짝 저기 반짝 반짝반짝 작은 별... 저도 요즘은 무작정 전화 꺼놓기가 무서워지기도 하고, 헐레벌떡 뛰어들어간 경우 전화기 끄는 걸 깜빡 하기도 합니다만, 아무리 이해가 가도 짜증나는 건 마찬가지.
파레토 왈,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거의 매일 시사회가 있는데 하루에 한 편 혹은 두 편, 많은 경우 세 편까지 보고나면 녹초가 되고(어제 오늘 연속 세 편씩 봤더니 아까 코피가 나더라는.), 가끔은 굉장히 고역으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며, 분노만 가득 안고 시사회장을 나오게 되는 일도 허다합니다. (개봉하는 모든 영화가 다 좋은 영화일 리 없고, 행여 계속 며칠째 안 좋은 영화만 보다보면 급기야 폭발하기도 하고요.) 제가 <클로버필드>에 대해 영화 매체 자체의 폭력을 극대화했다며 그토록 격렬하게 반응한 것도 실은 이런 환경들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사를 쓰지 않더라도 일단 개봉되는 영화들은 되도록 많이 봐두려는 노력을 하다보니, 개별 영화보다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 그리고 지금 현재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는 이야기들의 경향과 시대의 흐름 같은 걸 더 많이 생각하게 되더군요. 이제껏 이 블로그는 주로 개별 영화의 감상문으로 채워졌지만, 앞으로는 아마 앞에 있는 경성에 관한 글처럼 개별영화를 넘어서서 여러 영화를 함께 다루고 경향성을 찾거나 하는 글도 자주 쓰게 될 거예요. 어쨌건 원래 영화 보고 글 쓰는 걸 좋아했고, 입을 댓발씩 내밀고 투덜대면서도 "나처럼 신선놀음하며 사는 사람도 없어"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매일 시사회 전선에 나가고, 좋았던 영화는 개봉한 후에 제 돈 주고 다시 반복해서 보기도 하며, 주말만 되면 "영화는 징글징글해!"라고 외치면서도 어찌어찌 시간을 쪼개서 아트시네마에 가서 이런저런 회고전이나 특별전의 영화들을 보고 있는 자신을 보노라면, 저 확실히 영화중독자 맞구나 싶습니다. 제게 영화는 여전히 '수줍은 소녀의 팬심'의 대상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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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새로운 영화적 판타지의 공간 - 2008/02/12 09:39
경성, 새로운 영화적 판타지의 공간
영화계에 불고있는 '경성 트렌드' 집중분석
'경성 트렌드'가 불고 있다
일제시대의 경성은 잔혹한 일본군의 통치하에 어둡고 숨막히는 억압의 도시, 혹은 비장한 독립운동가의 결연한 의지와 천박한 친일파의 탐욕이 극명하게 선악의 대립을 이루는 도시로만 존재했던 곳이다. 조금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우리영화에 있어 경성을 그리는 방식은 그저 <장군의 아들>의 방식만이 유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일제시대는 우리에게 수탈과 저항이라는 이항대립으로만 존재하는 시대였다. 그랬던 경성이 이제 영화계에서 중요한 화두를 차지하고 있다. 작년에 개봉했던 <기담>을 비롯해 현재 상영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라듸오 데이즈>은 본격적으로 일제시대의 경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며, <모던 보이>는 올 4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밖에 김지운 감독의 신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으로 표기)은 경성은 아니지만 일제시대 치열한 무장독립투쟁의 장이었던 만주를 배경으로 한다. 도대체 영화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왜 이제껏 그토록 기피하던 일제시대, 그것도 경성이 갑자기 이토록 각광받는 영화의 배경으로 떠오른 것일까?
이미 공중파에서 드라마 <경성 스캔들>이 방영되어 화제를 모았고 이 드라마가 경성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소설 [경성애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영화계에서 경성을 주목하는 건 오히려 매우 뒤늦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물론 평균 제작기간이 2년 이상 걸리는 영화라는 매체 특유의 특성 때문이기는 하지만, 대규모 자본이 집약되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장르로서 그만큼 일제시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제작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출판계에서는 이미 앞서 말한 [경성애사]나 [경성 트로이카], [경성기담], [모던보이 경성을 거닐다]처럼 소설 혹은 교양인문서적의 형태로 경성을 그리는 책들이 스테디셀러에 오른 지 오래이며, 이런 책들에 일종의 선구자격 노릇을 했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가 이미 1999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10년 가까이 경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조금씩 축적되어 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왜 경성인가?
분명 일제시대는 피식민지의 시대로 우리 역사의 크나큰 상처로 자리잡고 있는 역사이지만, 서양문물이 봇물처럼 밀려들어오면서 국적을 불문한 다양한 문화들이 적극 수용되어 혼재하며 영향을 끼치고 있던 시대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위 '신문물'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던 이 당시는 소위 신여성, 모던보이로 칭해지는 '근대인'의 등장을 알린 중요한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이 시기는 그렇기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현대인의 연원과도 같은 시기이다. 이러한 '근대성의 시발점'으로서의 일제시대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 바로 경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경성은 3, 40년대의 상하이와 같은 곳이었으며, 상류층을 중심으로 퇴폐적 낭만주의가 극단까지 퍼져있었던 곳인 것이다. 파리의 물랑루즈가 우리 식으로 존재했던 도시인 셈이다.
이제껏 지독한 '상처'였기에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시대였던 일제시대는, 광복 5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나름 비판적으로 직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시간이 지났고, 민주화 이후 우리의 뿌리를 재확인해야 할 필요성에서 비로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학계에서도 동아시아학술원의 윤해동 교수를 비롯한 일군의 소장학자들이 과거의 '식민지 수탈론'(수탈-저항)과 '식민지 근대화론'(수탈-개발)의 오래된 대결구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식민지 근대론'의 형태로 일제시대를 재구성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윤해동 교수에 따르면,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은 둘 다 민족주의와 근대화론 공동으로 기반으로 삼고 있는 이론이다. 전세계 모든 근대국가가 식민지를 경영했거나 식민지였던 만큼 "모든 근대는 식민지 근대"이며, 피식민지 역시 다른 식민지에게는 제국의 일환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 단적으로 싱가포르나 태국에게 조선은 '같은 피해국'이라기보다는 '제국의 연장선상'에 있는 국가로 받아들여졌으며, 따라서 전후 전범재판에서 처형된 이들 중 조선인이 껴 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명확한 '역사적 사실'인 것이다. 그만큼 민족주의에 기반한 '반일감정'으로만 사고할 수 있었던 일제시대를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경성이 특히 매력적인 이유
그렇다면 유독 영화에서 이토록 경성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전에, 우리는 이미 개봉한 영화들이나 앞으로 만들어질 '경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철저하게 '장르영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미 개봉한 <기담>, <원스 어폰 어 타임>, 그리고 <라듸오 데이즈>와 경성의 관계를 잠깐 짚어보기로 하자. 영화 <기담>은 경성에 세워진 당시 최첨단 서양식 병원을 배경으로 기이한 이야기 세 편을 풀어내는 호러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양복을 한껏 차려입은 신사 옆에 기모노를 입은 여성, 그리고 그 옆에 한복 저고리를 입은 소녀가 나란히 서있어도 전혀 낯설지 않다는 사실, 혹은 우리의 전통적인 처녀귀신이 기모노를 입고 등장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바 있다. 온갖 국적의 문화들이 혼재하고 있던 일제시대의 경성은, 이렇게 신문화의 폭발을 경험하던 이른바 '문화의 무국적화'가 실현됐던 공간이다. 그런가 하면 이렇게 새로이 밀려드는 문물 앞에서 한껏 호기심을 느끼며 그것에 우리 식대로 적응하는 시기이기도 했는데, 경성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을 배경으로 하는 <라듸오 데이즈>가 묘사하는 것은 이러한 문화충돌을 다루는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의 경우는 좀더 흥미로운 케이스이다. 헐리웃 고전영화들의 각 장르의 문법들을 멋대로 가져와 섞어놓고 있는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스팅>과 같은 사기영화와 서부영화, 버스터 키튼 혹은 성룡 식의 '주변 지형지물을 이용한' 액션 코미디, 거기에 심지어 2인 만담과 홍콩 누아르의 장르문법까지 끌어들여 '영화적 판타지'의 모든 것을 실험한다. 이러한 실험을 가능케 하는 공간으로서 호출되는 공간이 바로 '경성'이다. 정치적으로는 일본의 식민지 상황이었지만 문화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문화들이 밀려들어오고 있던 바로 그 '경성'이야말로, 영화적 판타지를 그대로 현실화시켜주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영화 속 경성이 갖는 의미
기존의 시선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경성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대중예술인 '영화'에서 시도되고 있다는 것은 여러 모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컨대 <판의 미로 : 오필리어와 세 개의 열쇠>가 스페인에서 실패한 혁명의 역사를 판타지라는 장르를 통해 오히려 민중의 승리의 역사로 바꿔놓았던 사실에서 볼 수 있듯, 철저히 장르영화의 문법과 서사를 통해 상처의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국가 혹은 민족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고통을 직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유효적절한 기회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경성에 대한 탐구는 우리의 근대성의 연원을 찾기 위한 시도의 일환이고, 이러한 연원 탐구는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을 모색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과거와 단절된 채 뿌리 없이 부유하는 현대인의 방황만을 피상적으로 그리곤 했던 한국영화는, 이제야 비로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통시성을 획득하고 그 의미를 탐구하는 첫발을 내딛고 있다.
ps. 프레시안무비 기사로 올라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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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개봉작 - 2008년 2월 둘째 주 - 2008/02/09 02:25
연휴라고 댕글거리고 놀다 보니 깜빡 하고 있었네요. 수요일부터 연휴 시작이었던지라 설 연휴 극장가 전쟁은 이미 지난 주부터 시작됐고, 이번 주에 새로 개봉하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금도 아마 지난 주에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더 게임>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각축을 벌이고 있을 거고, <원스 어폰 어 타임>과 <라듸오 데이즈>는 그럭저럭한 성적을 차지하고 있겠지요. 새로 개봉한 영화들이 이 경쟁판에 대단한 변수가 되지는 못할 듯. 오히려 다음 주에 개봉하는 영화들이 좀더 흥미로운 영화들이 많은지라 그때가 돼야 좀 파란이 날 거예요. 어쨌건 이번 주에는 한국영화 두 편, 외화 세 편이 개봉합니다. 아쉽게도 이 중 제가 본 건 두 편뿐. 게다가 그 두 편도 남에게 딱히 추천하고픈 영화는 아니네요. 풍요 속의 빈곤이라 해야 할까요. 연휴 때면 언제나 '대마'가 돌풍을 일으키곤 했는데 이번 설은 영화 편수는 많지만 딱히 대마라 부를 수 있는 녀석은 없으니 말입니다.
이주의 추천작
이주의 난감작
6년째 연애중감독 : 박현진 | 주연 : 김하늘, 윤계상
제목에서도 보이듯 장기 연애를 하고 있는, 그래서 더이상 두근거림이나 설렘이 아니라 '일상'이 된 관계를 맺고 있는 두 남녀의 그 '일상의 연애'를 보여주는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만, 그건 몇 마디 대사들로 떼우고, 곧장 각자 바람피우는 에피소드로 가더군요. 뭐 커플이 오래 사귀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무의식적으로 자극을 바라는 나머지 일부러 나쁜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만, 그걸 그리는 방식마저도 이렇게 진부해야 하는 걸까요. 애초 영화의 목적과 의도를 스토리가 전혀 따라가지 못한 케이스, 저는 김하늘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캐릭터, 즉 적당히 평범하고 적당히 잔머리 쓰며 적당히 앙큼을 떠는 젊은 여자를 그리는 연기엔 김하늘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생각하고 윤계상 역시 앞으로 좋은 배우가 될 수 있겠다 생각은 합니다만, 공감할 만한 대사 몇 줄 있다고 이런 식의 안이한 영화에 그렇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진 않습니다.
기냥저냥 나머지들
빨간 풍선감독 : 허우 샤오시엔 | 주연 : 줄리엣 비노시, 송팡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이 분류에 넣는 것이 일부 사람들에겐 심지어 '불경'으로조차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비정성시>를 아직까지도 보지 못한 저로서는, 이 영화만으로는, 그냥 흥, 하게 되네요. 아무리 제가 중간에 졸았다고 하지만, 느린 카메라, 특별한 사건이 없는 스토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확실히 '일상적인' 연기를 하는 줄리엣 비노시의 외모도 연기도 참으로 아름답고, "카메라가 손이 되어 만진다"는 씨네21의 정한석 기자의 20자평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그 따뜻하고 나른한 풍경들은 대단히 팬시하게 조작된 감성만 (풍선처럼) 떠다는 게 아닌가, 하는 게 제 솔직한 심정. 줄리엣 비노시가 히스테리를 부리는 장면마저도 팬시하게 감상적이에요. 저에겐 그 팬시함이 현자의 여유보다는 퇴행으로 느껴집니다.
미확인 개봉작
찰리 윌슨의 전쟁감독 : 마이클 니콜스 | 주연 : 톰 행크스, 줄리아 로버츠,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
마이클 니콜스 감독의 신작이라면 당연히 가서 확인을 해야 할 터이고, 오랜만에 컴백한 줄리아 로버츠도, 제가 원체 좋아하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도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만, 시사회를 고만 놓치는 바람에. (지난 주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줄줄이 영화들을 쨌다죠.) 주말에라도 보러 갈 수 있음 좋겠군요. 어차피 오래 상영은 못 할 것 같으니.
마지막 선물
감독 : 김영준 | 주연 : 신현준, 허준호
스토리라인은 꽤 재미있어요. 전 강력한 눈물을 제공하는 정공법의, 대놓고 신파영화들도 꽤 좋아합니다. 하지만 감독이나 배우의 이름들은 그닥 신뢰하진 못 하겠어요. 뭐 꼭 이런 이유로 시사회를 짼 건 아니지만, 어쨌건... 그렇게까지 보고싶은 영화는 아닌데, 전체적인 평들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의외로 괜찮다는 얘기가 나오면 확인할 생각입니다만, 별로 그럴 것 같지가 않아서...
크레이지
감독 : 장 마르크 발레 | 주연 : 마크-앙드레 그롱댕, 미셸 코테, 다니엘 프룰
캐나다 특히 퀘백 지역의 영화들이 간간이, 하지만 꾸준히 한국에 수입되고 있는 듯합니다. 지난 번에 개봉했던 영화 <마이 걸, 마이 엔젤>도 미셸 코테가 주연을 맡은 영화였는데, 이 영화도 그렇군요. 재밌을 것 같긴 한데 개봉관이 서울 세 곳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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