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초청된 제인 캠피온의 신작 <브라이트 스타>는 영국의 낭만파 시인 존 키츠(John Keats)의 실화를 토대로 한다. 25살에 폐결핵으로 사망한 그는 생전에 딱히 그 위대한 문학성을 두루 인정받지는 못했다. 어릴 적 천애고아가 되고 생계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어찌어찌 의대를 졸업해 의사 자격증을 3년만에 땄다는데, 그가 의학엔 별 관심이 없고 시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었던 것을 아는 가까운 친구들, 특히 시인 / 시인 지망생 친구들은 그가 3년만에 의사자격증을 딴 것에 대단한 질투와 허걱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키츠는 패니 브론과의 절절한 연애로도 유명한데, 패니가 말하자면, [오만과 편견]으로 쳤을 때 미스터 다아시 같은 남자 하나 낚으려고 사교계에서 좀 나대는, 엘리자베스 베넷 정도 가문의 여자였던 모양이다. 리즈 베넷이야 지성미와 유머가 풍부한 여인이었지만 패니는 또 그런 타입은 아니었던 듯, 영화 <브라이트 스타>에서도 키츠를 후원하는 그의 작가 친구 찰스 브라운은 패니를 너무나 못마땅해 해서, 그녀를 "남자나 꼬시려고 사교계에서 꼬리 흔들고 다니는 무식하고 허영심만 센 여자" 취급을 한다. 하지만 패니를 그리는 제인 캠피온의 시선은 그닥 삐뚜름하거나 시니컬하지 않다. 영화의 초반, 키츠를 처음 사교파티에서 만난 뒤 패니가 키츠의 시를 그 앞에서 읊으면서 작업 한번 들어간 뒤, 그녀는 "시를 공부하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며 다시 키츠를 찾아간다. 물론 이 역시 삐뚜름하게 보자면 '작업의 2차 작전'으로 보일 수 있고 제인 캠피온 역시 그렇게 보일 수 있음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찰스에게 패니의 얄팍함이 폭로당하는 장면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제인 캠피온은 패니의 이런 에피소드를 충실히 구현하면서도, 다른 방향에서 패니의 진정성을 관객들에게 충분히 설득시켜 버린다. 영화가 끝나고 기억되는 것도 그녀가 찰스에게 봉변을 당하며 그 얄팍한 허영심이 폭로당한 것보다는, 키츠에게 시를 배우겠다고 찾아갔을 때 그 반짝이던 눈빛, 그 눈 안에 담겼던 동경과 열망이다. 나처럼 시에 문외한인 사람에겐 그 장면이 더욱 크게 남는다. 나 역시 영화가 끝난 뒤 "키츠의 시를 알고 싶다, 이해하고 배우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들었으니까. 하여간 <브라이트 스타>에 대한 리뷰는 이미 여기에 쓴 바 있고.

Bright Star

존 키츠, 혹은 존 키츠로 분장한 벤 위쇼의 고혹적인 눈. (<브라이트 스타>)

며칠 전 모 극장을 갔다가 바로 옆 서점에서 민음사에서 출간한 김우창 번역의 키츠의 시선집 [가을에 부쳐]를 샀다. 이후 웹 검색을 해보니 그 외에 키츠에 대한 다른 책은 거의 없는 모양이다. (오래 전에 대학출판부 같은 데에서 나왔다가 절판, 절판, 품절.) 이 기회에 영국 낭만파 시인들에 대해 동냥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낭만주의 문학'같은 키워드로 돌려봤지만 역시 헛수고다. 사실 또 다른 방식의 치열한 시대정신이었던 낭만주의가 국내에서는 현실도피용으로 포장되고, 그에 따라 리얼리즘이나 자연주의를 신봉한 이들에겐 또 다시 부당하게 폄하되는, 그런 식의 분위기가 없었던 것 같지 않다. 결국 현실에서 눈을 돌린 채 형식의 외피와 감정적 나르시시즘에만 집착하고 과장한 것 정도로 오해된 분위기가 있달까. 아니 근데 센티멘털리즘과 로맨티시즘이 동의어는 아니잖아, 그게 문학이든, 회화든. 영화쪽으로만 보자면, 근래 들어 국내에서도 조금씩 낭만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기엔 최근 허진호가 내놓은 <호우시절>이야말로, 제대로 된 낭만주의의 본격적인 부활의 바람의 서두에 놓아야 할 것같다. "허진호가 변했다"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외서 쪽을 돌려보니, 옥스포드 대학 출판부에서 문고판으로 그의 주요 시와 편지 일부를 편집해놓은 책이 보인다. 랜덤하우스에서는 그의 시 전체를 모아놓은 책도 내놓고 있는 상태다. 오디오북으로는, 새뮤얼 웨스트와 마이클 쉰이 낭송한 CD도 보이고. 마이클 쉰이, 그러니까 <더 퀸>의 토니 블레어와 <프로스트 vs. 닉슨>의 프로스트로 나왔던 배우인 그 마이클 쉰이 맞나 싶어 찾아보니... 허허, 맞네! 새뮤얼 웨스트는 좀 낯선 이름이라 찾아봤더니 <반 헬싱>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로 출연했다는데 필모그래피가 어째 다 단역 및 조연. 그... 근데, 잘 생겼다? 허걱, <하워즈 엔드>에 조연으로 출연해 BAFTA상 남우조연 부문 후보로 올랐었어? 뭐, 옥스포드 출신? 런던드라마평론가협회 세익스피어상 수상... 엄훠 나 이거 사야 하는 거 맞는 거? 뭣보다 잘생긴 것에 침 주르릅... 아니, 잘생기기도 잘생겼지만 딱 목소리 멋있게 생겼단 말이야! 예컨대 케네스 브래너의 목소리로 세익스피어 낭독을 듣는다고 쳐봐, 그게 그냥 목소리인가? 주르르 몸이 녹아내려 황홀경에 빠뜨릴 천상의 음악이지!

<브라이트 스타>의 말미에도, 그러니까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영화에서 키츠로 출연한 벤 위쇼가 나지막하게 '나이팅게일에 부치는 노래'를 낭송한다. 정확히 자막이 올라가기 시작할 때 나오기 시작해, 마지막 카피라이트 표시와 제작사 로고가 끝날 때 낭송도 끝이 난다. 벤 위쇼의 나직하면서도 팬시하고 발음 좋은 목소리와 키츠의 시가 어우러져, 비록 눈은 자막을 뒤쫓느라 정신없었긴 해도, 도저히 그냥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게 나만 그런 건 아닌 게, 대체로 아무리 영화제라고 해도 엔딩타이틀 올라가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조금씩 웅성대면서 일어날 듯 말 듯하며 짐을 챙기지만 이 영화의 자막 땐 아무도 그러지 않더라. 만약 영화가 국내에서도 정식으로 개봉한다면, 그 시의 낭송을 꼭 즐기시기 바란다.



[부록] John Keats, 'Bright Star, Would I were Steadfast As Thou Art


ps1. 온라인에서 이런 페이지도 발견. 참고하시라.

ps2. 듣자하니 벤 위쇼는 영화 찍기 전엔 키츠의 러브스토리에 대해 잘 몰랐었다고 한다. 그런데 제인 캠피온의 벤 위쇼 칭찬은 정말... 으하하하! 처음 만나자마자 느낀 것이 "세상에, 당신 정말 아름다운 피조물이잖아!"였다니, 난 캠피온 언니의 취향이 듬직한 돌쇠형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출처는 여기(새 창으로 열기).

2009/10/21 02:17 2009/10/21 02:17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던 제인 캠피온의 신작 <브라이트 스타>는 놀랍게도 실화다. 영국의 위대한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실제 사랑을 극화한 이 영화는 다소 실망스러웠던 <인더컷>을 제외하면 1999년작 <홀리 스모크> 이후 별다른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던 제인 캠피온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역작이다. (그나마 그 <홀리 스모크>도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지만.)

25살에 폐병으로 요절한 존 키츠는 죽기 몇 년 전 바느질과 패션에 두각을 나타냈던 패니 브론과 만나고, 그녀가 바로 옆집으로 이사온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이후 3년간 계속된 이 사랑은 존 키츠의 시의 세계를 더욱 깊고 심원한 것으로 만들어주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키츠는 시인으로서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호된 악평에 시달렸다. 어릴 적 부모를 여읜 뒤 만성적인 가난 때문에 의사 자격증을 따야 했던 그는, 시에 전념하기 위해 친구이자 시인이었던 찰스 브라운의 재정적 도움에 전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었다. 찰스 브라운은 패니 브론을 "남자나 꼬시려 들며 시는 전혀 모른다"며 경멸했고, 심지어 그녀와의 사랑이 키츠의 시 세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겨 이들의 사랑을 번번이 훼방놓았다. 특히 키츠가 폐병에 걸린 이후에는 더욱, 그녀와의 사랑이 키츠의 병세를 오히려 악화시킬 것이라 여겨 번번이 그녀와의 사랑을 방해한다.

키츠의 재정적 후원자였던 찰스 브라운의 반대뿐 아니라, 가진 것 하나 없었던 키츠에 대한 주변의 우려와 반대 역시 이들의 사랑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러나 언제나 가장 낭만적인 사랑이란 극렬한 반대와 억압 앞에서 오히려 더욱 찬란하게 불을 태우는 법이다. 가난 때문에 머뭇거리던 키츠도, 남자들의 구애가 장난이었던 브론도 점차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브라이트 스타>가 내뿜는 아름다움은 일견 상호 모순적으로 보일 듯한 요소들이 서로 상충하면서 만들어내는 에너지에 있다. 이들은 서로를 끝까지 '미스터 키츠'와 '미스 브론'으로 칭할 만큼 당시 격식과 예법을 충실히 따른다. 브론의 동생들이 언제나 이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감시(!)한 만큼 단둘이 은밀한 시간을 보내기도 힘들었다. 서로 시구를 주고받으며, 가고 오는 데에만 며칠이 걸리는 편지로 서로의 연정을 확인하고 주고받는 만큼 지금 현대인의 눈에는 지나칠 정도로 억압적이고 답답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손과 손을 맞대고 상대가 창밖에서 거니는 모습을 보며, 상대가 내는 자그마한 기척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이런 와중에 상대가 보낸 편지가 너무 짧다고 자해 소동을 벌이거나, "나비가 되어 함께 날아다녔으면 좋겠다"는 연인의 편지에 온 방안을 나비로 채우는 천진한 열정이 영화의 온도를 그 어느 다른 멜로영화보다도 뜨겁게 올린다. 이들의 '억압 속에 꽃피우는 열정'을, 제인 캠피오는 매우 치밀하고도 섬세하게 그려내며 보는 사람의 가슴을 울린다. 이 영화를 먼저 접한 해외의 평들이 한결같이 "순결한 금욕주의 속에 빛나는 열정적 에로스"를 지적하고 있는 건 바로 이런 측면에서다. 노골적으로 야한 장면은 한번도 나오지 않지만, 서로 깍지를 끼며 머리카락을 쓰다듬거나, 시구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선 에너제틱한 정서적 흥분과 에로스가 흘러넘친다. 이런 '은밀한 에로스'는 엔딩 타이틀이 흐르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엔딩 타이틀의 마지막 카피라잇 로고가 나올 때까지 벤 위쇼가 나지막히 낭송해주는 키츠의 시를 듣고 (자막으로) 보노라면, 시에 전혀 문외한이었던 사람조차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존 키츠의 시집을 사고싶을 정도다. 혹은 영화 초반에 시를 이해하고 배우고 싶다며 키츠를 찾아가 시 수업을 듣는 패니 브론의 장면이 새삼 환기되며 그 마음이, 그 심정이 새삼 다시 절절하게 다가오거나.

<향수>로 주목받은 벤 위쇼는 섬약한 외모 속에서 격정을 뿜어내는 존 키츠를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게 연기하고 있고, <엘리자베스타운>, <골든에이지>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던 애비 코니쉬가 패니 브론 역을 맡아 사랑에 들떠 폴짝거리는 소녀와 현명하고 듬직한 반려자를 섬세하게 연기해 낸다. <러브 액츄얼리>에서 리암 니슨의 아들로 출연했던 꼬맹이 토마스 생스터가 패니 브론의 남동생 사무엘로 출연해 어느 새 훌쩍 자란 모습을 보여준다. <내 책상 위의 천사>와 <쉘로우 그레이브>에서 주연을 맡았던 케리 폭스도 출연해 패니 브론의 어머니 역으로 듬직하게 패니의 어깨를 감싸준다. 영화제 중 상영이 아직 두 번(12일 및 15일) 남아있다.

ps. 프레시안에 기사(새 창으로 열기)로 올린 글

ps2.  급하게 쓰느라 이 모양... 영화 보자마자 한 시간만에 휘갈겨썼으니. 그러니 어쩌면 이 ps2.야말로 진짜인데요.

'격정적인 사랑' 하니까 뭔가 대단히 규격화된 어른의 사랑 같은데다 자고 일어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어쩐지 영화에 대해 제대로 쓴 리뷰 같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이들의 사랑은 딱 사춘기 "소년, 소녀를 만나다"로 요약될 수 있거든요. 귀여워요. 너무 귀여워요. 사실 둘은 한번도 섹스를 안 하거든요. 자고싶다 어쩐다 하는 장면도 여자가 "널 위해 뭐든 할 거야"라고 은근한 암시를 건네자 남자가 "나도 양심이 있지"라며 정식으로 결혼한 뒤를 기약할 정도. 자해소동이니 뭐니 하는 것도 그러니까 딱 10대 중학생 소녀가 울며불며 난리치다가 팔에 1센티짜리 상처내는 것쯤으로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하긴 이들 나이가 20대 초중반이었단 말이죠. 제인 캠피온이 참 대단한 것도, 지금은 '대시인'으로 추앙받는 키츠의 이름에 너무 짓눌리지 않고 그 사람과 패니의 그 '소년, 소녀스러움'을 제대로 살렸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만큼 생동감이 넘쳐요. 오죽하면 이들의 철없고 귀여운 모습에 몇몇 장면에선 웃음이 막 터집니다. 그러면서 격식을 차린 옷과 대화, 동네에 퍼질 소문을 의식해야 하며 주변의 감시(!)를 받는 연애같지 않은 연애를 하면서 자기들끼리는 너무나 심각하고 진정이 넘치기 때문에 이상한 에로스가 넘치는 거지요. 뭐 뻔하고 통속적인 내용이라며 별로 안 좋아할 분들이 더 많아보이긴 하지만, 영문학에 조예가 깊거나 그쪽 빠거나 혹은 빠도 못 되고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동경하는 저같은 사람들에겐 우왕ㅋ굳ㅋ@.@하며 눈물 뚝뚝 흘릴 영화 되겠습니다. 영화가 개봉되면 필히 다시 제대로 된 리뷰를 써야 할 영화.

ps3. 주인공 역을 맡은 애비 코니쉬는 "등발 좋고 덜 날카로운 니콜 키드먼"으로 보이는 면이 있어요. 까만 머리긴 해도 얼굴이 많이 바뀐 지금이 아닌 예전의 니콜 키드먼의 얼굴과 닮은 부분이 있어요. 다만 니콜 키드먼보다는 좀더 무던하고 둥글둥글하달까.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어쩐지 이런저런 면에서 <여인의 초상>의 예술적 실패 지점을 만회하려는 야심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ps4. 벤 위쇼와 애비 코니쉬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이들을 감시(!)하는 애비 코니쉬의 어린 여동생의 모습을 보자니 <피아노>에서 엄마 뒤를 쫄쫄 쫓아다니며 엄마의 사랑을 감시(?)하던 안나 파퀸이 살짝 겹치기도. 하지만 이 소녀는 안나 파귄보다는 어쩐지 살짝 통통한 니콜 키드먼 아역으로 보여요. 얼굴은 안 닮았지만 무엇보다 창백한 피부에 빨간 곱슬머리 때문에.

ps5. 근데 제인 캠피온 영화의 남자 주인공은 대체로 나이가 좀 있는 듬직한 스타일이었는데. (뭐 돌쇠 스타일도 가끔.) 그들과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벤 위쇼는 제인 캠피온 영화치고는 약간 낯선 팬시함을 영화에 불어넣어 주고 있기도 해요. 이 영화에선 그게 매우 성공적이기도. 그러고보니 벤 위쇼는 살짝 고전적이면서도 매우 현대적인 퇴폐미가 항상 있었던 듯.

2009/10/10 07:47 2009/10/10 07:47

이송희일 감독과 처음 알게 된 것은 감독과 기자, 혹은 감독과 영화팬으로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후 감독과 영화팬의 관계가 되었고, 다시 감독과 기자 사이가 되었다. 요즘은 감독과 기자 외에도 인디포럼 상임작가회의에 함께 속해있는 관계, 이기도 하다. (그는 인디포럼 상임작가회의 의장이다.) 이 인터뷰는 지금만큼 친해지기 전, 서로 예의를 지키며 조금 어려워하던 그런 때인데, <디워> 파동이 나고, 그가 말도 안 되는 왜곡 발췌 기사로 어마어마한 오해와 오독 사이에서 악명(?)을 떨치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촛불이 한참 시작되던 딱 그 때였다. 딱히 새 작품이 공개된 시점이 아니라 하더라도 <디워> 파동 때부터 그를 꼭 인터뷰하고 싶었다. 벌써 시간이 훌쩍 흘러, 당시 프리 프로덕션이 한창이었던 그의 두 번째 영화 <탈주>가 곧 열리는 부산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대체로 많은 감독들이 서퍼모어 콤플렉스를 겪는다. 하지만 훌륭한 예외도 많았다. 최동훈 감독의 경우 <범죄의 재구성>이 지나치게 평가절상되었다고 생각했지만 <타짜>에 대해서는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탈주>도 그런 작품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근데 말이다. 이 기사를 쓸 때만 해도 내가 그 다음 해 인디포럼의 프로그래머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냔 말이다. 흐흐.) 이 기사는 처음 프레시안의 이 페이지(새 창으로 열기)에 게재되었다.



지난 6월 5일 폐막한 인디포럼의 상임작가의장이기도 한 이송희일 감독은 장편 데뷔작 <후회하지 않아>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신인감독이다. 불과 1억 원의 예산으로 찍은 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독립영화로서는 기적이라 할 무려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바 있다. 한국영화 위기설이 더 이상 '설'이 아니라 현실이 돼버린지 오래인 지금, 첫 영화에 이어 신작인 <탈주> 역시 저예산으로 준비하고 있는 이송희일 감독은 과연 독립영화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탈주>의 제작상황은 어떻게 돼가고 있을까? 촬영준비로 여념이 없는 이송희일 감독을 <탈주> 제작사무실 한 켠에서 만났다.

- <탈주>의 예산 및 진행상황은 어떤가?

영화진흥위원회 HD지원작에 뽑힌 영화라 4억이 확보됐고 여기에 2, 3억 가량이 더 필요하다. 이 부분 투자가 안 돼서 제작사인 청년필름에서도 고민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경우가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단 찍고 그간 촬영한 분량을 일종의 데모 테입처럼 만들어 중간이라도 투자를 받는 방법은 어떨까 궁리하고 있다. 전체 순제작비를 6억에서 7억 가량 잡고 있는 셈인데, HD 지원작은 마케팅비를 포함해 10억을 넘기면 지원받은 4억을 고스란히 토해내야 하기 때문에 마케팅비까지 10억 안으로 끊어야 한다. 영화는 6월 9일 크랭크인해서 약 30회차에 걸쳐 촬영할 예정인데(편집자 주 - 인터뷰 이후 크랭크인 날짜가 한 주 연기되었다.), 기술 스탭들이 다들 미쳤다고 난리다. 서울에서 첫 촬영을 하고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후 다시 서울에 올라왔다가, 마지막 장면은 다시 지방에서 찍고 싶다. 워낙 돌아다니는 곳이 많기 때문에 스케줄이 좀 빡빡하게 될 듯하다. 마지막 장면은 촬영 맨 마지막에 지방에서 찍었으면 하는 욕심을 내고 있고, 총이라던가 하는 것도 욕심을 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게 저예산 규모에 맞는 영화인가 싶기도 하지만.

- <용서받지 못한 자>의 경우 국방부의 지원을 받지 않았나?

국방부가 원래 좀 예민해서, 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굴었다고 들었다. 우리 경우 나중에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방부의 지원에 대해서는 '원천적 포기'의 입장이다. 탈영병이 무장 탈영하는 얘기는 사실 세지 않나.

이송희일 감독

직접 찍은 (발)사진이라능.

- 처음부터 끝까지 쫓는 자와 도망치는 자의 '달리는' 이야기라고 들었다.

한 마디로 '멈추면 죽는다'는 거다. 마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 풍경과 비슷하다. 엊그제 집회를 갔는데 안 잡히려고 계속 도망 다니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 '멈추면 잡힙니다!'라고 소리치는 걸 들었다. 마치 우리 영화와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예전부터 탈영병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 예전에 혼자 습작해본 소설도 탈영병에 관한 얘기였고. 다만 머릿속에 그렸던 건 좀 올드해서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데에 힘이 들었다. 예전에 단편이나 <후회하지 않아>의 작업을 할 때는 혼자 콘티도 없이 현장에서 배우와 스탭들의 의견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연출부들과 함께 각색했다. 처음 시나리오엔 주인공들이 은행도 털고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과연 그게 맞나 생각이 들어서 결국 뺐다. 주인공 세 명이 탈영하게 된 계기는 모두 실제 사건에서 따온 것이다. 이 영화도 그렇고 다음 영화들도, 장르가 호러가 됐든 아니든 당분간은 쫓기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찍을 것 같다. 세상이 별로 안 좋으니까. 사르트르 시절에 활약했던 보리스 비앙이라는 가수가 부른 '탈영병'이라는 샹송이 있는데 가사가 너무 좋다. 군대 가지 말자고, 죄없는 사람들에게 총을 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원래 가사는 '쫓으려면 얼마든지 쫓으세요, 내겐 총이 있으니까'라는 내용이었지만 가사가 검열되면서 '쫓으려면 쫓으세요, 제겐 총이 없습니다'로 바뀌었다. 프랑스에서는 우리의 '임을 위한 행진곡'만큼이나 유명한 노래다. 그 노래의 정서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 로드무비라 할 수도 있겠다. 쫓는 사냥꾼들의 모습도 넣지 않을 거라고 밝혔는데.

처음부터 쫓는 이의 장면을 넣지 말자고 했던 건 사실 돈이 없어서다. 탈영병의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캐릭터가 부딪히는 가운데 나오는 스릴을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나는 장르영화를 매우 좋아하고 이 영화 역시 그런 장르문법을 어느 정도 차용했다. 그러나 한국영화엔 그런 게 별로 없다보니 투자를 위해 시나리오를 받아본 사람들이 많이 당황하더라. 내겐 너무나 친숙한 장르인데 사람들은 많이 낯설어하곤 한다. 군대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처음부터 탈영병들이 하는 영화는 처음이니까. 굳이 비슷한 영화를 꼽자면 세 사람이 계속 도망친다는 점에서 <세상 밖으로> 정도? 단편들의 경우 군대 내 폭력에 대한 내용을 다룬 영화들이나 탈영병에 대한 이야기도 점점 등장하는 것 같다. 다만 아직 장르화되지 않고 장르의 옷을 입은 예가 별로 없어서 그런가 싶긴 하다.

- 헐리웃 영화들에는 원래 그런 장르의 영화가 많지 않나?

원래 <병사의 시>라는 휴가병에 관한 영화를 보다가 내가 만들고 싶었던 탈영병 영화를 여기에 섞자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에 장르의 옷을 입히는 것이 관건인데, 결국 많이 참조한 게 갱스터 로브무비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나 니콜레스 레이 감독의 영화들 말이다. 전적으로 장르영화에 붙지는 않아서 애매하긴 하지만... 한국적인 내용도 들어가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군대를 막 비판하고 그러는 영화는 아니다.

-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영화를 준비하다가 엎었다.

1억짜리 영화를 찍던 사람이 갑자기 50억짜리 영화를 찍는 게 스스로 맞지 않은 옷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또 하나는 한국영화판이 요 몇 년 안에 바닥을 칠 것 같은데 이런 듣보잡 감독에게 누가 50억이나 투자를 할 것이며, 내 성향이 원래 사회비판적이라 내용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액션영화로 포장한들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싶더라.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려본 거지. 50억을 갖고 하려던 영화 역시 실은 다소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었다. 그 소재는 언젠가 꼭 한번 영화화하고 싶다.

- 하지만 많이들 단편 몇 편 찍다가 바로 웬만한 예산이 들어간 장편들을 찍지 않나.

신인감독을 소비하는 현상 아닐까. 2000년대 초반쯤 한창 거품이 일 때 영상원이나 영화 아카데미 출신의 감독들을 '젊은 천재 감독'이라 포장하며 데려와 눈먼 돈을 끌어들여 영화들을 찍어댔지만 대부분 결과가 안 좋았다. 트레이닝도 제대로 안 돼 있고 탄탄한 기획 마인드로 접근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결과가 안 좋았던 감독들 대부분이 사라졌다. 일종의 소모품으로 쓰고 버려지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신인감독 역시 모두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고, 모두가 나홍진 감독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 독립영화라는 게 개념이 좀 애매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독립영화는 무엇인가?

독립영화란 굳이 얘기하면 1920년대 지하영화들부터 개념이 시작되고, 한국에서 인디영화는 유럽보다는 미국의 개념을 직수입한 면이 크다. 6, 70년대 미국 스튜디오 바깥에서 찍은 영화들 말이다. 인디포럼 행사의 일환으로 독립영화워크숍을 하는데 거기에 가서 '독립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할 때 한 얘기기도 하지만, 고전적인 의미에서 한국 독립영화는 이제 사전적인 의미만 남아있는, 화석화된 개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 독립영화의 사전적 의미가 자본과 검열로부터의 독립인데,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추격자>가 90년대에 나왔다면 검열 대상이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카트린 브레이야 감독의 영화 같은 경우 제한상영가 받긴 하지만 일부의 현상이고. 오히려 이런 검열은 영화보다 방송이 더 심하다. 내 영화는 공중파에서 튼 적이 없다. 공중파에서 내 영화가 상영되면 사회가 그만큼 좋아진 것 아니냐, 하는 좀 건방진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젠 표현수위 때문에 제한을 받는다 아니다는 좀 무의미해진 측면이 있다. 오히려 독립영화들이 훨씬 개인적이면서 멜랑콜리한 감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반면 상업영화들은 장르 안에서 표현 수위 등을 고민하고 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면도 그렇다. 요즘은 거의 국가기관에서 지원받아서 영화를 만든다. 이건 물론 비영리를 목적으로 영화를 공공재로 인식하면서 국가에서 출자하는 돈이긴 하지만, 예컨대 1억, 혹은 4억짜리 영화들을 그런 돈으로 만들었다고 했을 때, 과연 무엇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인가의 문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영진위로부터 돈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극장에서 개봉하면 그 순간부터 '상품'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 아닌가. 엄격하게 기준을 들이대는 순간 모든 게 애매해진다. 그렇다면 독립영화의 정의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건 시스템과 관련한 것이다. 스탭을 어떻게 구성할 것이고 배우 역시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해 감독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과연 얼마만큼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물론 이 역시 애매한 문제이긴 하지만, 단순히 돈의 문제로만 얘기하기도 힘든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신동일 감독의 영화를 보자. 그가 만든 <방문자>나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LJ 필름이 제작사긴 하지만 분명 독립영화의 마인드로 만든 영화가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 인디포럼에서 신동일 감독의 영화를 상영하고, 신동일 감독 역시 자신을 독립영화 감독으로 포지셔닝하며 이번 인디포럼의 트레일러도 제작했다.

- 배급사가 메이저인 프라임인데도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2년 이상 개봉 못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

그렇다. 애매하니까. 사실 청년필름도 상업영화사가 아닌가. <후회하지 않아>도 케이블 판권을 먼저 판 돈으로 제작했고 나중에야 영진위 독립영화 지원책의 일환으로 마케팅비를 2천만원 받았다. 사실 <후회하지 않아> 때문에 독립영화 지원책이 만들어진 면이 있다. 그러니까 1억짜리 영화도 흥행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며 생색내기용으로 만든 제도인데, 이게 살 깎아먹는 역효과가 날 거란 예상이 점점 들어맞고 있다. 1억으로 영화를 찍으려면 스탭 인건비도 그렇게 한계가 너무 명확한데, '1억짜리도 성공한다'는 식의 논리가 횡행한다. KT&G에서도 1억원 지원책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독립영화들은 영진위의 지원금으로 영화를 찍는다. 그래서 독립영화 감독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영진위 영화사의 직원들'이라는 농담이 돌기도 한다. 그렇기에 인디영화란 제작 시스템이란 측면에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전권을 부여받은 소수의 스타 흥행감독들의 영화도 독립영화로 불러야 하는가?

감독의 자율권 그 자체가 아니라, 감독의 자율권이 작동될 수 있는 전체 제작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저예산 영화도 스탭들은 계약을 다 한다. 계약을 먼저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많은 것이 갈리기 때문이다. 이건 연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말이 되려면 스탭 노동에 대해 프랑스의 예술노조처럼 다른 방식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예컨대 프랑스 예술노조에 소속된 스탭들은 5개월간 촬영을 했다고 하면 나머지 기간 동안은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실업수당을 받는다.

저예산영화에서의 계약 역시 상업영화에서의 계약을 재현한다. 그렇다면 독립영화는 무엇이 다른가? 독립영화의 전제는 아무래도 독립영화를 한다는 '공동체'의 측면일 것이다. 예컨대 어떤 영화들은 분명 저예산에 게릴라 방식으로 찍었음에도 왜 독립영화라 칭하지 않는가? 왜 누구는 독립영화 감독이라는 레테르를 붙이게 되는가? 이건 감독이 독립영화를 호출하는 방식, 특히 자신을 포지셔닝하면서 독립영화를 지향하느냐, 독립영화 감독의 공동체에 접속하느냐에 따라 배제의 작동 원리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배제의 논리보다는 긍정과 포용의 논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다소 선언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독립영화란, 독립영화 공동체 안에서 지향하는 바를 얼마나 자신이 지향하는가이며, 장기적으로는 제작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다. 미국도 선댄스영화제가 있기 때문에 저예산 영화는 다 독립영화라 지칭하는 그런 시스템이 존재한다. 저예산 영화가 곧 독립영화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게 결정적으로 선댄스 때문이 아닌가. 유럽은 인디영화란 표현 잘 안 쓴다. 오히려 예술영화냐 아니냐로 구분하다. 전세계마다 다 다른 듯하고, 한국에서도 기자들은 물론 내부에서도 이론이 분분하다. 단편영화만 찍으면 구분이 오히려 쉽지만, 장편 3억짜리를 찍고 나면 스스로도 혼란을 느낀다. 그런 활동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한독협이 요즘은 국가의 돈을 지원받아 집행하는 관료 집단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좀 있기도 하고.

- 장편 독립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숫자가 적다.

장편영화를 만드는 인디감독 중 내가 제일 나이 많다. 내겐 롤 모델이 없다. 모두들 상업영화 씬으로 달려가거나 그나마도 결과가 안 좋아 사라져 버렸다. 홍기선 감독님의 경우 <선택> 이후 별다른 작품이 없고, <선택>도 애매한 경우다. 사실 독립영화 진영에서 장편 극영화는 이제 2, 3년 정도밖에 안 됐다. 이것도 디지털이 보급되면서 제작비가 줄어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 맹아 수준이고,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영화의 숫자도 한정돼 있다. 하지만 인디영화의 시장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상영공간의 숫자가 좀더 확보가 됐으면 좋겠지만.

-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스탭들의 인건비라는 측면은 영화노조와 부딪히는 면이 꽤 있을 것 같다.

사실 독립영화에서 스탭들을 그렇게 쓰는 게 또 다른 착취, 또 다른 도제 시스템인 측면이 분명 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 그 자체와 영화의 공공성 부분을 사유하자는 것이다. 영화 스탭들과 관련해 진보신당에서 굉장히 좋은 공약들을 내놓았는데, 이런 것들을 '귀찮게 괴롭히면서' 연대할 마음도 있다. 사실 청년필름에서 저예산영화를 제작하는 방식도 답이 하나밖에 없다.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예산을 미리 공개하는 대신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 올해 영화노조에서는 제협 측에 제작비 10억 미만의 저예산 영화에 대해 흥행 개런티 지불을 교섭안 중 하나로 요구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건 충무로의 자충수라고밖에 할 수 없다. 노조는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하는 가장 첫 단계인 셈인데, 작년 제협과 교섭안 타결 때 저예산 영화의 부분을 그냥 제끼고 갔다. 그런데 요즘 충무로의 일반 평균 예산이 8억이라고 하더라. 충무로 일반 영화의 예산이 8억이 되면서 작년엔 생략했던 부분에 대해 그런 식의 요구를 하게 된 거겠지. 영화노조와도 잘 연대했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서로 입장이 겹치는 부분이 적다.

- 헬리캠 후원단을 모집하고 있던데, 그건 뭔가.

탈영병에 관한 영화인 만큼 헬리캠을 사용할 계획인데, 이게 1회 대여비가 상당히 비싸서 후원단을 모집하고 있다. 영화라는 게 한번 보면 끝나는 7,000원짜리 상품이라기보다는, 관객들이 놀이의 일환으로 함께 참여하는 무언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편집자 주 - 이송희일 감독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임시로 만들어놓은 영화 소개 페이지(http://gondola21.com/run/escape2.htm(새 창으로 열기))에서 헬리캠 후원단의 일원이 될 수 있다.

2009/10/01 22:22 2009/10/01 22:22

2008년 전주영화제가 '디지털 삼인삼색'을 위해 고른 감독은 우리에게는 낯선 영화대륙, 아프리카 출신의 감독들이다. 혹자들은 아프리카에서도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지만, 아프리카 역시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거장들을 두루 배출해냈다. 2008년의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은 바로 그 아프리카가 배출한 감독들 중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부르키나 파소), 마하마트 살레-하룬(차드), 나세르 하미르(이집트) 감독을 선정했다. 이중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아프리카가 배출한 거장 중 거장이지만 국내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이름이다. 감독은 다른 감독들보다 더 늦게 한국에 도착해 핸드프리팅과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자료들을 찾다가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이 우리가 몰랐을 뿐 전세계적으로 이름이 높은 감독인 걸 알고 깜짝 놀랐고, 기자회견에서 빠진 만큼 따로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위해 준비를 하면서, 심지어 그의 영화는 국내에서 정식 개봉을 한 적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 한 번 놀라기도 했다. (백두대간이 씨네큐브를 처음 개관하면서 선택한 개관작이 바로 우에드라오고 감독의 <야바>였다. 이 영화는 당시에 비디오로도 정식 출시된 바 있다.) 마침 내가 당시 전주영화제에서 번역한 영화 역시 우에드라오고 감독의 <키니와 아담스>였다.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던 셈이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나는 그 감독이 풍기는 아우라에 한동안 뻑갔(...)고, 아프리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그가 이끌고 있는 아프리카 최대의 영화제, 페스파코를 꼭 방문하고 싶다. 그리고 아프리카 영화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싶다. 이 인터뷰는 원래 프레시안의 이 페이지(새 창으로 열기)에 실렸다.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감독인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베니스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는가 하면 미국의 9.11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2001년 9월 11일>에도 참여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는 거장이다. 부르키나 파소 태생인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1989년작 <야바>로 칸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이듬해 <틸라이>로 같은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으며, 1993년에는 <삼바 트라오레(Samba Traore)>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부르키나 파소에서 개최되는 아프리카 최대의 영화제로서 '제3세계의 칸영화제'라 불리는 페스파코(FESPACO : Festival of Pan-African Cinema in Ouagadougou)를 이끌고 있다.

올해 전주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 2008 - 귀향>에 <생일>로 참가한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동 섹션에서 상영될 자신의 장편영화로 97년작인 <키니와 아담스>를 선택했으며, 이 영화는 2일날 상영된 바 있다. 비행 일정 때문에 기자회견과 핸드프린팅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한 그를 프레시안이 따로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한 만큼 우에드라오고 감독과의 대화는 '디지털'에 관한 것으로 시작됐고 그는 아주 열정적으로 질문에 답했다.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폐쇄 직전의 극장 5곳의 운영권을 부르키나 파소 정부로부터 얻은 뒤 이 극장에서 상영할 영화들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은 물론 후배들과 주로 디지털로 작업을 했기 때문에 디지털 작업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또한 이런 경험 때문에 디지털에 대한 견해가 매우 뚜렷했다.

- 필름 작업과 비교했을 때 디지털 매체가 가지는 장단점은 무엇인가?

필름과 디지털은 종류가 아주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차에 비유하자면 메르세데스와 벤츠는 기능과 가격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지 않은가. 다만 디지털이 필름에 비해 여전히 공간의 깊이감을 표현해내지 못한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기술적으로 아직 해결이 안 된 것 같다. 그렇기에 디지털이 가진 고유 특성에 대해 주로 얘기해 보자면, 디지털은 매우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장치이다. 또한 필름 작업이 10배에서 20배의 제작비가 들고 조명과 배경 등 꾸며야 할 것이 많은 반면 디지털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필름과 디지털은 광학적인 면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디지털이란 매체가 가진 고유의 속성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디지털이 필름에 비해 공간적 깊이감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디지털 작업을 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사실 카메라나 필름 혹은 디지털도 모두 유럽의 발명품이 아닌가? 아프리카처럼 햇빛이 강한 곳에서는 하얀 것은 모든 것을 반사하고 검은 것은 모든 것을 흡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디지털로 영화를 찍으면 이렇게 강한 햇빛 하에서는 배경색이 거의 하얗게 뭉개져버리기 때문에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아침에 해가 뜨기 전 혹은 햇빛이 강해지기 전 오전에만 찍을 수밖에 없으며,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야만 한다. 아프리카에서 아주 좋은 디지털 영화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이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게 사실이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올 때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결국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이 되지 않았는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모든 기술적 혁신에는 언제나 제약과 반발,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디지털 매체가 중요한 것은 이미지의 질이 아니라 시간의 지속성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건 필름보다 훨씬 자유롭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진 민주적인 매체라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의 이야기, 남의 눈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를 디지털이 조금 더 쉽게 열어줬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후면 기술이 더욱 발전해서 지금의 제약도 줄어들 것이다.

결국 최종적인 건 같다. 어떤 매체를 사용하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과 같은 인간의 감정이 아닌가. 물론 이것은 이미지를 통해 구현되지만. 디지털이든 필름이든 영화는 이미지다. 다만 도구가 달라지면 제약도 달라지며 작업 도중 얻게 되는 즐거움도 달라진다."

- 영화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국가들도 있는 아프리카에서 디지털이 영화의 발전과 보급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은 시장의 논리를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로 많은 작업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작을 해도 배급이 안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이지리아와 같은 큰 나라를 제외하면 아프리카에는 작은 규모의 국가들이 매우 많은데 이런 나라들은 인구수도 1,000만에서 1,500만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 중 8, 90%에 해당하는 인구가 극장이 하나도 없는 외지나 시골에서 산다. 디지털로 쉽게 찍을 수 있고 없고를 떠나, 극장이 없어 배급이 안 되는 것이 더 문제다. 영화는 예술적 산물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산업적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아시아는 시장이 있기 때문에 계속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우리는 8,90%의 인구가 영화를 볼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

거기에, 세계적으로 봐도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그리 열려있는 사회가 아니다. 과연 한국에서 아프리카 영화가 얼마나 상영되는가? 이것이 오히려 더욱 본질적인 문제이다. 디지털로 아무리 영화를 찍어도 시장이 없고 극장이 없기 때문에 결국 TV에서 방영할 수밖에 없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 <야바>가 한국에서 개봉 및 비디오 출시를 거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Idrissa Ouedraogo

별도의 핸드프린팅 장에서. (JIFF제공)

- 당신이 이끌고 있는 아프리카 최대 영화제인 페스파코에 대해 설명해 달라.

부르키나 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열리는 경쟁영화제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만든 영화들만 상영한다. 여기에는 디아스포라(해외에 흩어져있는 아프리카인들)들의 영화도 포함된다. 물론 관객들은 해외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영화제로 규모가 아주 크다. 전주영화제는 페스파코에 비하면 '아가'에 불과하다. 영화제 기간 전체가 축제다.

-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아프리카에서 페스파코의 역할 혹은 취지와 의미를 설명해 달라.

7일에서 10일 정도의 단기적인 축제라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극장이 없는 곳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오히려 텔레비전이 영화를 만나는 데에 더 큰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페스파코는 원래 처음에는 영화제 형태가 아니었고, 흩어져있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그들이 각자 겪었던 제작과 배급에 관한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단순한 만남에서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도 시장이나 배급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영화를 만들기 힘들지만 감독의 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영화제라는 축제 형태가 된 것이다.

처음에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영화가 아프리카의 문제를 아프리카 사람의 눈으로 다룰 수 있는 우리의 무기로 삼을 수 있을 거라는 인식을 가졌다. 그러나 그런 이상은 곧바로 현실적인 논리 앞에서 깨져버렸다. 영화가 창조적인 예술인 건 사실이지만 자본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 오히려 그 어떤 다른 매체보다 더욱 자본의 구속을 크게 받는 매체라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곧바로 인식 전환이 왔다. 사실 아프리카는 작은 국가들이 많은데 그런 나라들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며 아프리카의 영화들은 90%가 해외의 지원을 받으며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외부의 지원을 받으며 영화를 만들 수만은 없지 않은가? 내부적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직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치품이다.

-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작품은 <야바>와 <틸라이>인데 굳이 <키니와 아담스>를 전주영화제 상영작으로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야바>와 <틸라이>는 아프리카의 자연과 인간, 그리고 아프리카 내부의 고유의 문제를 성찰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인 반면 <키니와 아담스>는 짐바브웨라는 또 다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것은 실제 아프리카의 또 다른 모습이다. 끊임없이 부자가 되려하고 이것을 '차'라는 현대적인 문명의 이기를 통해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서양인들은 아프리카에 대해 보는 눈이나 요구하는 것이 항상 똑같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으며, 아프리카인들 역시 외관상 문화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인간이라는 본질적 모습은 서양인이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 서양인이 요구하는 한 가지 모습이란 어떤 걸 가리키는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식민지 경험을 했고 그 때문에 다른 언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프랑스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고유의 문화가 있으면서 제국주의의 시대에 다른 문화를 타의에 의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두 개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식민지 경험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두 문화가 대화를 하고 내가 다른 문화와 민족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 문화밖에 모른다. 자기의 시선만을 가진 채 다른 이로부터 배우려는 마음이 없는 매우 어리석은 시선이다.

영화 역시 문화적인 산물인데 다양한 교류를 통해 서로 배우려는 노력이 유럽인들에겐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문제다. 그러나 다행이고 긍정적인 것은 아프리카의 많은 젊은이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많이 유학을 하면서 이것이 서로 다른 시각과 사고를 교환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식민지 경험을 한 국가의 출신으로 제국인 프랑스에서 유학한 최고의 지식인이자 예술가인 만큼 당신은 프란츠 파농을 연상시킨다.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프리카에 대해 당신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가?

식민지 시대는 이미 끝났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식민지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을 알아가며 서로 교류하는 것이다. 식민지 경험은 나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통해 다른 문화를 접하고 배울 수 있었으므로 오히려 내가 가진 힘이다. 독립은 1960년대에 됐는데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는가? 아니다, 지금은 옛날의 노예문제보다 더 해결하기 힘든 세계화라는 싸움의 대상이 있지 않은가. 이제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문제가 아니라 세계화라는 현존하는 괴물이 더욱 문제이며 이것은 훨씬 복잡하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석유값은 나날이 폭등하고 아프리카가 아무리 빈곤에 허덕이고 있어도 아시아는 쌀 생산을 무기로 수출을 안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문제이지, 식민지는 문제가 안 된다. 나는 내 몸 안에서 두 문화를 하나로 만들 수 있으며, 이를 배워 힘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사실 식민지 시대에도 아프리카의 많은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파리에서 공부했다. 레오폴드 생고르와 에메 세제르가 죽었을 때엔 프랑스에서 대통령이 헌사를 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 레오폴드 세다르 생고르와 에메 세제르는 모두 아프리카인으로서 프랑스에서 공부했으며 유명한 시인이자 동시에 정치가이다. 둘 다 흑인정체성 회복운동인 네그리튀드를 이끌었다. 레오폴드 세다르 생고르는 프랑스령이었던 세네갈이 독립하자 최초의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1936년에 이 유학생들은 프랑스에서 '흑인학생들'이라는 잡지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 서문은 "우리들은 자본주의 부르주아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고국을 떠나 프랑스에 가서 느꼈던 지적인 갈증은 바로 자유롭고자 하는 갈증이었다. 이는 단순히 자기가 흑인이고 식민지 출신이니 쟁취해야 하는 그런 1차적인 자유가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자유를 뜻한다. 그러니 식민지 출신 지식인의 정체성 같은 건 내 관심사가 아니며, 그런 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

중요한 것은 타 존재가 있고 그와 교류하고 무언가를 배우며 경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것처럼 느끼고 울 수 있다는 건 배우고 경험하면서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경험과 배워서 아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아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나는 아프리카 사람이며 부르키나 파소 사람이다. 내가 한국에서 생활한다면 또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 <키니와 아담스>로 다시 돌아가서, 이 영화를 영어 영화로 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새로운 것에 언제나 관심이 많으며, 다른 언어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사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같은 아프리카에 있음에도 서부 아프리카와는 또 다른, 잘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다. 남아공화국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영화 자본이나 시장을 가질 만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그런 걸 고려하면서 나도 잘 몰랐던, 서부 아프리카인들이 잘 몰랐던 또 다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가 두 아프리카 사이의 통로와 교각의 의미가 되기를 기대한다.

- <키니와 아담스>에서 도시를 동경하던 두 남자가 결국 관계의 파국을 맞는데 이는 결국 자본주의와 물질 때문인데,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 아프리카를 잠식해가는 자본주의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무엇인가?

자본주의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일상적으로 필요한 것들, 예컨대 의료나 교육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소수의 몇몇에 의해 자본의 투기화가 진행돼가고 있다. 이것이 전 지구를 미친 자본주의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을 '야만적 자본주의'라 부른다. 아프리카가 가난한 건 사실이지만 의료나 가난, 빈곤 등의 문제는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유한 나라에도 그 내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가? 결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래적으로 추구하려던 것들, 예컨대 사랑이나 연대 같은 것을 언젠가는 다시 찾으려고 들 거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될 순간이 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엔 굶어죽나 아파서 죽나 총 맞아 죽나 어차피 상관없는 때가 되기 때문에 결국 반란이나 혁명까지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아프리카가 됐건 어디가 됐든 똑같은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이 미친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든 조절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하게 될 것이다.

- <키니와 아담스>에서 두 사람의 우정 관계에서는 아담스가 키니를 동경하고 질투하는 것뿐 아니라 동성애적인 집착도 보이는 듯하다. 감독의 의도인가?

동성애적인 사랑을 의도한 건 아니다. 우정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건 플라토닉한 정신적인 사랑이다. 아담스는 떠나려 하지만 결국 떠날 수 없게 되자 자살하고 만다. 우정이 너무 강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 당신은 어떤 감독들을 좋아하며 누구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는가?

너무 많아서 다 얘기할 수는 없고, 오손 웰즈, 빔 벤더스 등을 들 수 있겠다.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는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이다. 스필버그의 <칼라 퍼플>도 무척 좋아한다. 사실 나는 휴머니티나 사랑, 즐거움 등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하는 영화들을 두루 좋아한다. 때문에 어떤 특정한 영화를 꼽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09/10/01 08:03 2009/10/01 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