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9일)자 보도메일로 받은 <아이언맨 2>의 티저 포스터입니다.

Iron Man 2

아아 저 보석같은 눈! 그 분이 돌아오십니다.

이제 좀 안정됐나 하면 또 마약으로 잡혀 들어가고, 잡혀 들어가고 하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일명 RDJ)가 완전히 정신을 차리더니만 이렇게 즐거운 눈요기거리를 계속 던져주고 계십니다. 전 이 사람의 출세작인 <채플린>(... 그 전에 출연했던 청춘물들은 잠시 제껴놉시다. 아직 '배우'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보여주진 못했으니까)은 아직까지도 못 봤지만, 안토니오니 감독의 <구름 저 편에>의 한 에피소드에서 이렌느 야곱과 나왔을 때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우연히 처음 본 여자한테 작업을 거는 거리의 소매치기인 그는 너무나 맑은 눈에 순정과 진심을 가득 담고 있으면서 쉬이 상처받을 연약함을 내비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경력을 좀 쌓아나간다 싶으면 마약, 나와서 좀 정신차리고 다시 경력 쌓나 하면 또 마약, 해서 어느새 관심 밖으로 밀쳐놨었지요. 지금 다시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이런, 전 RDJ와 헤더 그레이엄을 보겠다고 <인 드림즈>나 <투 가이즈 앤 어 걸> 같은 영화도 찾아본 주제에 <숏컷>이나 <사랑의 동반자>, <내츄럴 본 킬러>, <원 나잇 스탠드>, <진저브레드맨> 출연 때의 모습은 기억이 안 나는군요. 그나마 인상깊었다면 <원더보이스> 때 정도. <회색도시>는 케이블서 방영할 때 녹화도 떠놓고는 안보고 테입도 잃어버린 듯해요. 그 안타까움이 극에 달했던 건 아마도 TV시리즈 <앨리 맥빌> 때였을 겁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시리즈 자체가 불안불안해진 가운데 갑자기 나타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그 시리즈를 구원하는 듯했지만, 웬걸, 또 마약으로 들어가더군요. 이쯤되면 거의 포기하라는 거죠.

그런데 그는 기적적으로 기사회생합니다. 단편영화 주연이나 장편의 조연으로 조금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고 <퍼>와 <조디악>, <찰리 바틀렛> 같은 영화에 출연을 하죠. 특히나 <찰리 바틀렛>에는 마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맥스처럼 어린애 주제에 어른처럼 굴려는 찰리 바틀렛을 보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본인은 알콜중독으로 몸을 휘청대는 교장선생님 역을 하면서, 마약으로 휘청대던 젊은날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해 보여주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불행했던 시절을 소재로 멋진 유머로 소화해내는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리고 <아이언맨>으로 '스타'의 자리를 찾습니다.

사실 <아이언맨>에서 RDJ의 모습을 제대로 처음 본 젊은 관객들에게야 RDJ가 '새로운 발견'으로 보였겠으나, 저같은 사람들에겐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기적의 한 장면'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나이가 들고 폭풍같은 시기를 지낸 그는 여전히 선하고 순수한 눈에 '그윽한 깊이'를 함께 담고 있었지요. 혹자들은 <아이언맨>이 역시나 팍스아메리카나를 외친다며 고까워했지만, 저는 아이언맨을 연기하던 RDJ의 연기톤이 매우 특수한 '냉소'와 '자조'를 띄고 있던 걸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젊은 날을 스스로 개그의 소재로 삼듯, <아이언맨>에서의 RDJ는 자신의 캐릭터를 스스로 놀려먹는 듯한 뉘앙스를 띄면서도 그 캐릭터를 더없이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듦으로써, 진부한 팍스아메리카나 히어로에 미묘하게 다른 옷을 입히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트로픽 썬더>에서의 연기는, 아... 정말 말이 필요없지요.

내년 4월, RDJ는 아이언맨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 전에, 올 겨울엔 다소 다혈질에 사고뭉치인 셜록 홈즈를 연기할 예정이고요. 주먹질을 일삼고 자기과시와 허영기가 있으며 실수를 연발하고 왓슨의 뒤수습에 의존하는 셜록 홈즈라니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설지만, 그걸 RDJ가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아마 셜록 홈즈를 광적으로 사랑하는 다수의 셜로키안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겠지만, RDJ라면 그런 셜로키안들조차 잠잠하게 만들 멋진 셜록 홈즈를 보여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때 게이설이 돌았을 정도로 동료 남자배우와의 케미스트리가 좋은 만큼, 주드 로와의 궁합도 기대되는 요소입니다. 어쩐지 너무 일찍 힘이 빠져버린 듯한 가이 리치는 조금 염려스럽지만, 이참에 과거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 시절의 명성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므로 통과.

<아이언 맨 2>는 속편답게 규모나 물량도 커지겠지만, 스칼렛 요한슨이 등장해 귀네스 펠트로와 신경전을 벌인다니 그것도 무척 기대됩니다. 그나저나 미국개봉은 5월 7일이라면서 국내개봉은 4월이라니, 이거 가능한 얘기인가요? 전세계 혹은 한미 동시개봉은 봤어도 이런 대작을 국내에서 먼저 개봉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혹시 이거 얘기 들으신 분?

2009/12/10 15:16 2009/12/10 15:16

전우치

아이고 저 표정 봐라, 우째 저래 이쁘노.

... 무조건 예쁘게 나오면 흥행 성공한다.

... 라고 강동원을 예뻐하는 사람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명세 감독의 <형사>는 그래도 컬트팬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반면<M>이 그러지 못한 것은 <M>의 강동원의 모습에서 대머리 기가 보였기 때문... 이라고들 하죠. 물론 정말로 그에게서 대머리 기가 보인다는 건 아닙니다, 단지... 짧은 M자 머리가 보기에 살짝 부담스러웠던 거겠죠. 아직 꽃다운 '소년'(잘해봤자 '청년')을 '어른 남자'로 그리는 것에 대한 반발감이라 해야 할까. 이 면에 대해선 이명세 감독님이 조금 "성격이 급하셨다"는 게 저의 해석입니다. 몇 년만 참으셔도 됐을 것을, 얜 아직 군대도 안 갔다왔다고요. 군대 갔다오기 전에 되도록 샤방하고 예쁜 모습을 많이, 라는 게 누나팬들의 공통된 심정이랄까. 그것도 이제 거의 끝난 듯, 어쨌든 공익 가기 전 마지막 작품이 될 <전우치>에선 강동원이 아주 예쁘게 나올 듯하니 다행입니다만. 다음 주 월요일 언론시사를 보고 나면 알게 되겠지요.

강동원이 예뻐서 <늑대의 유혹>도 앉은 자리에서 DVD 코멘터리로 보는 것 포함 두 번 정주행하고 장면 발췌보기로 또 돌려본 저라고는 하지만, 최동훈 감독이 처음에 강동원 데리고 <전우치> 찍겠다고 그랬을 땐 아니 감독님하 뭐 잘못 드셨나요, 라는 게 솔직한 제 심정이었습니다. 모델에서 배우로 전업한 또래들 중에선 그래도 강동원이 의외로 연기자로서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사실이고 <그녀를 믿지 마세요>같은 영화에선 굉장히 잘 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대작의 주연으로서는 아직 검증 안 된 것도 사실이죠. 거기에, 사실 최동훈 감독의 이전 두 작품도 보면 매우 능숙한 배우들에게 기댄 면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범죄의 재구성>이나 <타짜>나, 모두 제자리에서 제 몫 알아서 똑소리나게 해먹는 배우들이 잔뜩 포진하고 있지요.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박신양도 그랬고, 조승우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백윤식 선생이나 김윤석, 이문식, 천호진, 주진모... 데뷔작인 <범죄의 재구성>에선 너무 잘하시는 백윤식의 연기를 오히려 살짝 눌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오히려 살짝 삑사리가 났다고 생각할 정도인데.

설상가상, 촬영이 끝난지 한참 지나서도 좀처럼 개봉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기자들 사이에서 영화가 영 안 나왔단 소문이 파다하기 돌았습니다. 물론 CG를 잔뜩 사용하는 영화들은 원래 후반작업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긴 합니다만, 대체로 후반작업이 길어지고 개봉이 늦춰지면 늦춰질수록 '본 촬영분이 나빠서 배급사에서 개봉을 미루며 덧손질을 많이 한다'는 소문이 나기 십상입니다. 이건 많은 영화들의 케이스에서 일정부분 사실이라고 증명되기도 했었으니, 100억이 넘게 들어갔다는 <전우치>에 대해 무성한 뒷말이 많았던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긴 합니다.

제가 기대를 갖게 된 건 지난 번 제작발표회에 다녀와서(새 창으로 열기)입니다. 맛뵈기 동영상 속에서 강동원의 전우치는 매우 이쁠 뿐 아니라 발랄하고 유쾌했고, 임수정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예뻤으며, 염정아는 얄팍해서 웃기지만 밉지는 않은, 오히려 귀여운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고 있었습니다. 김윤석의 카리스마야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감독이나 배우들의 자신감도 꽤 있어보였습니다. 최동훈 감독의 자신감은 봉준호 감독과는 또 다른 면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게 사실이에요. 봉오빠가 등장할 때 제가 같이 들떴던 게 "드디어 한국에서도 '영화를 갖고 노는' 감독이 나타났다"는 거였는데, 최오빠 역시 그렇습니다. 상영된 메이킹 장면들에서, 물론 힘들고 고민하거나 심지어 험악한 때도 많았겠고 그건 모두 잘라냈겠습니다만, 그래도 영화 만들면서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아이의 표정이 많이 보였습니다.  다만 조금 걱정되는 건 CG인데요. 맛뵈기 동영상에선 얼마 보이지 않았지만, 얼핏얼핏 보이는 CG의 수준이 약간 조잡해 보였습니다. 아마도 본편에서 색보정과 기타 다른 보정을 거치면 달라지겠으나, 예고편에서 드러나는 밤의 추격씬 화질도 다소 조악했고요. 물론 그런 거 보정하는 것도 후반작업 중 일부이고 제작발표 할 때에도 한참 CG 작업중이라고 했었으니, 본편에선 보다 나은 화면을 볼 수 있겠지요.

기사를 쓰기 위해 찾아본 전우치와 서화담의 기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전우치가 실존인물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기정사실인 것 같군요. 생몰연도는 확실하지 않으나 당대 여러 기록에서 전우치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고, 장난기와 유머가 가득한 선행의 기록도 있지만 치기와 악동의 기록도 꽤 됩니다. 남 골려주고 소소하게 복수해주고 상사병 걸린 친구 돕겠다며 정절 지키고 있던 과부 보쌈하는 행태까지... 전우치가 "발라버리겠다"고 자신만만 찾아갔으나 오히려 된통 깨지고 스승으로 모셨다는 서화담이, 우리가 황진이와의 에피소드로 알고 있는 그 화담 서경덕 선생이 맞다는 사실도 매우 흥미롭지요. '리'는 개무시하고 철저한 주기론을 펼쳤다는 이 양반이 한편으론 노장사상에도 관심이 많았고 토정 이지함의 스승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신비술이나 동양적인 은비학, 도술에 관심이 컸다는 얘기가 그럴싸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랬던 양반이 영화 <전우치>에선 악당으로 나온다니 기분이 좀 묘하기도 하네요.

어쨌거나 <전우치>가, <타짜>때 쩍 벌렸던 제 입을 두 배로 더 쩍 벌리게 해주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습니다. 최동훈 화이팅!

2009/12/10 14:25 2009/12/10 14:25

장편 데뷔작 <죽어도 좋아>에서부터 <너는 내 운명>과 <그놈 목소리>, 그리고 추석 시즌작으로 이번 주에 개봉하는 <내 사랑 내 곁에>까지, 박진표 감독은 이제껏 모두 다 징한 사랑 영화를 만들어왔다. 실제 유괴, 납치 사건을 다뤘던 <그놈 목소리>조차도 아이에 대한 절절한 부모의 사랑과 상실감을 중심에 놓는 영화다. 신작인 <내 사랑 내 곁에>에 대해 감독 스스로는 "이번에는 좀 말랑말랑하게 만들었다"고 표현하지만, 이 영화 역시 루게릭 병이라는 희귀 불치병에 걸린 남자와 장례지도사의 격정적인 사랑을 다룬다. 신파 멜로라고? 맞다. 하지만 박진표 감독의 영화가 신파 멜로가 아닌 적도 있었던가. 다만 우리가 흔히 비하적 뉘앙스를 덧붙여 말하는 그런 신파 멜로가 아닐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영화를 보며 매번 눈물을 흘리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며, 우리의 삶과 사랑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때때로 소재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그가 그런 영화를 해온 이유가 뭘까. 왜 이토록 징글징글한 멜러만 만드는 것일까. <내 사랑 내 곁에>는 그의 이전 작품들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내 사랑 내 곁에

왼쪽부터 김명민, 박진표 감독, 하지원. (홍보사로부터 제공받음.)

- 추석 시즌작으로 개봉하게 됐다. 기분이 어떤가.
그러게, 그렇게 됐네. 추석시즌 가족용 영화가 됐다. 등급도 좋게 나왔더라.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많이 두렵고 떨린다.

- 네 번째 영화인데 아직도 두렵고 떨리나.
당연히 그렇다. 갈수록 더하다.

- 전작 세 편이 두 실화 소재에 논쟁적인 영화였다. 이번 영화는 실화가 아닌가?
이번에는 실화 아니다. 부담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본의 아니게 부담을 드렸고, 나 자신도 그간 부담이 컸다. 특히 전작에서는 이른바 '선동'까지 했지 않은가. 특별한 목적으로 강요도 했고. 이번에는 양적인 부담을 줄이고 편안하게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 그래서 정말로 편했는가.
그렇다. 아무래도 그런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경계를 잘 타야 하는 문제인데, 이번에는 더 자유로웠다.

- 왜 하필 루게릭 병인가? 특별한 개인적인 계기라도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병 자체가 워낙 잔인한 병인데도 사람들이 너무나 모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환우나 가족들이 겪는 소외감이 크다. 많이 알려져야 치료약 개발이나 요양소 건립같은 것도 될 텐데. 그게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아런 거다. 병으로 구체적으로 들어갔을 때 루게릭 병은 온몸이 근육이 빠져서 점점 마비가 되지만 정신은 또렷해서 자신이 죽어가는 걸 스스로 보게 되는 병이다. 대단히 영화적인 설정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주인공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며 진행이 되니까 앞과 뒤가 강렬하게 대비가 되고, 배우들도 있으니까. 그것을 통해 삶이나 죽음, 사랑에 대해 내가 하고싶었던 얘기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처음으로 픽션이어서일까, 이전 영화들과 약간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전형적인 신파멜로의 공식을 충실히 따라가는 듯 보인다.
말랑말랑해졌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 지수가 '완전'이란 말을 많이 쓰던데.
내가 '완전'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완전', '절대' 이런 단어들. 결론을 지을 때 잘 쓰는 말이다.

- <내 사랑 내 곁에>로 오면, 종우(김명민 분)가 먼저 사귀자고 하는 장면부터 인상적이었다. 보통의 신파 멜로에서는 반대이지 않은가.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는 한사코 거부하고 다른 쪽은 순정적으로 설득하며 헌신하고.
일부러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 건 아니다. 그런 식의 강박관념도 없고. 이야기를 구성하다 보니 우연히 그렇게 됐을 뿐이다. 마지막에 보면 종우가 사귀자고 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나. 영화의 형식적인 구성에 대해서 고려했을 뿐이다. 다만 죽음을 다루는 여자,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손을 가진 여자, 그러나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컴플렉스를 가진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하는 남자의 마음은 뭘까, 그걸 생각했다.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마지막에 이유가 드러나니까.

- 두 사람은 결과를 알면서도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비극이 예정돼 있다고 하면 일단 피하지 않는가.
그것도 실은 편견일 수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다만 내가 보고싶은 사랑이 그런 사랑이었던 것 같다. 사랑이란 감정은 때론 삶의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괴로움이 되기도 하고, 욕망이, 설레임이 되기도 하다. 다양하다. 내가 보기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단어에 불과한 것 같다. 여러 가지 감정을 포괄해서 써놓은 그냥 두 글자의 단어. 그래서 좀 뜬구름 같고, 속에 들어가 보면 굉장히 많은 감정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걸 다 뭉뚱그려 사랑이라 부르는 것 같고. 그런 걸 그려보고 싶었다. 이 영화에서의 사랑에도 희생이나 지켜주고 싶은 마음, 설레임, 고통, 후회... 다 들어있지 않나. 결국 이 영화는 사랑이 삶이 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사랑이란 것엔 해답이 없다.

-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사랑을 특별한 무엇으로 여기지 않는가.
그 수많은 감정들이 합쳐져서 그것이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걸 '사랑'이라 부르는 거지. 연애 초기의 설레임도 사랑이지만, 점차 지내면서 갖게 되는 애증이나 헤어지기 직전 갖게 되는 증오도 다 사랑에 속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 희생하고 이해하는 것도 사랑이고, 질투도 사랑이고...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

- 영화마다 '사랑'의 의미가 변화하고 확장되는 것 같다.
글쎄, 변화는 아닌데. <죽어도 좋아>가 설레임과 열정의 사랑을 담았다면 <너는 내 운명>은 상대를 지켜주고 이해하는 사랑을 담았다. 설레임도 있긴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거지. <그놈 목소리>는 좀 다른 부모와 자식 간에 있는 좀 다른 의미의 큰 사랑이고. <내 사랑 내 곁에>에서는 또 여러 형태의 사랑들이 있다. 그냥 다른 종류의 사랑들인 거지. 확장된다는 말은 맞는 것 같긴 한데.

- <내 사랑 내 곁에>가 <너는 내 운명>과 쌍둥이 같은 영화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외견상 비슷하긴 한데 성격은 정반대인 쌍둥이 말이다.
아무래도 순정적인 측면에서 곁에서 끝까지 지켜준다는 점 때문에 그렇겠지. "어떻게 저렇게 끝까지 지킬까, 나라면 과연 할 수 있을까, 너라면 과연 해줄 수 있니?" 마음 속에는 있으나 실행하지 못하는 그런 것들인 셈이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얘기는 두 영화가 분명 다르다. 본질이나 질과 양이 다르다기보다는 그냥 종류가 다른 슬픔인 거다. 눈물이 나도 다른 눈물이 날 것이라고, 만들면서도 생각을 했다. 본 사람들도 다르단 얘길 하고. 똑같이 울어도 그 눈물과 이 눈물은 차이가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양은 잘 모르겠는걸. <너는 내 운명> 쪽이 더 많지 않을까 싶은데. (웃음)

- 사랑이란 것 자체에 이기적인 속성이 있지 않나. 치사하거나 비굴하거나 폭력적이기도 하고. 이 영화에선 그런 걸 감추지 않고 직설적으로 드러내 버린다. 혹은 보통 다른 영화에서는 '눈빛만으로도 다 통한다'는 식의 설정을 쓰면서 낭만화하는데, <내 사랑 내 곁에>에서는 종우가 눈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됐을 때도 종우의 의도를 지수가 제대로 캐치 못하고 멋대로 해석하는 씬도 나온다. 그러고 보면 당신은 언제나 격정적인 사랑을 다루지만 실은 냉정하다는 느낌이 있다.
내가 냉정하다고? 그렇진 않은데 (웃음). 다만 사랑이란 것이 언제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니까. <너는 내 운명>에서의 커플은 그런 사랑이 가장 어울리는 사랑인 거고, 이 커플은 이 커플의 상황이 있으니 이런 사랑이 어울리는 거고.

- 영화를 보면 언제나 굉장한 격정을 담는데 정작 이를 그려내는 감독의 방식이나 시선은 냉철하고 건조하다는 느낌을 매번 받는다. 인물들의 끓어오르는 에너지와 냉정하고 건조한 시선이 충돌하면서 다시 에너지가 발생하기도 하고.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게 과연 뭘까? 당신은 왜 그런 것 같은가?

- 디테일한 부분에 강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랑찬가들이 생략하는 부분을 굳이 보여줘서인 것 같기도 하고, 글쎄, 나도 당신의 영화에서 왜 그런 느낌을 받는 건지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런 식의 영화들이 취하는 일반적인 영화적 장치나 방법을 쓰지 않고 과정을 솔직하게 그리니까 그런 것 아닐까? 당신처럼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 지나친 미화도 하지 않고 말이다.
더 영화적으로 할까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마지막에 둘이 여행을 간다는 설정을 하거나, 다른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 그러지 않은 것은 그럴 여유도 없을 뿐더러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외출 정도라면 몰라도... 그것도 이 영화에선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여자가 남자를 끝까지 사랑하다 행복하게 보내주는 것이니까. 보내주는 것이 슬프고 가슴아플 수도 있지만 오히려 보내주는 사람도, 그 손을 통해 가는 사람도 행복할 수도 있다. 마지막 씬에서 보내줄 때 하지원 양에게 울지 말자, 잘 보내주자고 말했다. 종우도 행복하고 보내는 지수도 행복하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 결국 죽음을 맞고 아파한다는 점에서 비극이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통해 마지막을 정리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보내준다는 면에서 행복한 죽음이기도 하다.
어차피 종우는 처음의 소망대로 된 것이고, 난 작위적이라 해도 해피엔딩이 좋다. 누군가 죽었기 때문에 언해피한 건 아니지 않는가. 그게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난 이 영화가 비극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극이라고 한다면 통념을 따르는 사람이겠고, 비극이 아니라고 생각해준다면 나의 의도에 부합해주는 사람이겠지.

- 근데 영화 앞부분에서 서로 연애하는 장면은 조금 닭살이던데.
다들 그렇게 사랑하지 않나? 다만 우리가 들키고 싶지 않고 꺼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보통은 다들 처음에 그렇게 시작하고 절정에 이를 때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는 그것을 솔직하게 보여줬을 뿐이다. 그걸 닭살스럽다, 유치하다고 하면, 일종의 부끄러운 감정 때문이 아닐까? 정작 연애를 하는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데 남들이 보면 그럴 수 있으니 보여주기가 싫은 거지. 난 그게 솔직한 연애라 생각한다.

- 역시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이 너무 직설적이고 작위적이란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긴 한데, 나는 굉장히 좋은 매치라고 생각했다. 그 매치가 상호작용을 일으켜 극적 장치가 될 수도 있고, 죽음에 대해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길 담을 수도 있으니까. 행복하게 준비하는 죽음을 얘기하고 싶었다. 죽음엔 정말로 순서가 없고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죽는 순간 스스로도 저렇게 행복하게 준비하면 좋겠다 싶더라.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있다면 좋겠다 생각했다. 지수를 장례지도사로 설정한 건 일부러 그렇게 했다기보다, 말하자면 '우연히 했지만 결국 운명'이었던 결과다. 실제로 장례지도사를 만났다가 그 분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다. 물론 환자를 곁에서 끝까지 지켰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직업이 장례지도사이고 세상의 편견을 받는 분이었다. 가족 중 한분이 돌아가셨을 때 만났는데 실제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이 분이 영화 마지막의 자막에서 스페셜 땡스투에도 나간 분이다. 우리 영화에서 장례지도 자문도 해주셨다.

- 서양에선 삶과 죽음을 대척적인 것으로 보고 동양에서는 죽음을 삶 안에 있는 것으로 본다고 보통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실제 우리 삶에선 안 그런 것 같다. 영화 속 노인분들의 장면도 그렇고.
그런 행사를 하면 영화에서 나온 대로 정말로 노인들에게 두들겨 맞는 게 현실이다, 아이러닉하긴 하지만. 그래서 관념과 통념이 무서운 거다.

- 사실 당신의 영화들은 절절한 사랑을 다루고 순정을 중요한 키워드지만 네 편의 영화 모두에 죽음이 직접적으로 있거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죽음과 사랑 간의 관계를 동전의 양면으로 보는 건가?
그런 건 아닌데.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왜 그런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지. 글쎄, 지금의 감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 <너는 내 운명>에서 "하루를 살아도 은하랑 살다 죽을래"라고 하는 것도 지금이 더 중요하단 얘기니까. 이번의 사랑도 그렇다. 오히려 지금의 삶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죽음이 드리워져 있을 순 있겠지만. 일부러 계산한 건 아닌데.

- 죽음이 앞에 있기에 더 처절한 사랑을 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네 편 다 그렇다.
그런가? 내가 어디 가겠는가, 박진표인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다.

- 사실 어제 <그놈 목소리>를 다시 봤다.
보는 게 부담스러웠을 거다.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보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부담스러우면 그건 행복하지 않은 것이니까. 그나마 공소시효가 늘어나서 기쁜 마음은 있다. 물론 내 영화 때문은 아니고, 계속 움직임이 있었던 거지만, 어쨌든 <살인의 추억> 때부터 촉발돼서 끝마무리 되는 데에 기여했다는 점에선 좋더라. 아마 10년이 늘어나서 25년이 됐지? 물론 소급은 안 됐지만. 공소시효나 그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도 신도 아닌데 누가 누구를 벌할 것이며 기간을 얼마나 어떻게 할 것인가를 어떻게 정하는가.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소위 사회의 통념을 이끄는 사람들, 규칙을 만드는 사람은 사회의 소수이다. 이게 참 말이 안 되는 거라 생각한다. 그 아픔을 피해자가 용서 안 했는데 법이, 나라가 어떻게 용서하는가? 여기서 신까지 간 것이 <밀양>일 것이다. 희생정신, 용서, 이런 게 신의 뜻이기도 하지만... 난 모르겠다, 우린 인간인데, 어떡해야 할지. 그런 답답함이 있다. 난 학문적, 철학적으로 정립이 안 된 인간이라 적확한 단어로 구사할 수 없지만, 상식의 수준에서 말했을 때 그런 식의 답답함이 있다.

- 다시 <내 사랑 내 곁에>로 돌아와서, 주인공은 종우와 지수지만 병실의 다른 환자들의 사연도 비중있게 다룬다.
애초에 구상의 시작이 병실이었다. 그 중 메인을 이끌어가는 사람들로 커플을 설정하고 옆에 나머지 사람들의 사연을 배치한 거지. 그 커플뿐 아니라 다들 나름대로의 사랑과 희생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곁에서 지켜주는 게 얼마나 힘든가, 곁에 있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 숨쉬고 살아있단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다. 그게 잘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는데, 종우와 지수 위주로 볼 때에는 그 장면들이 감정이입에 방해가 된다고도 하더라. 어떤 것을 기대하고 보는가에 따라 달라질 텐데 나에겐 병실 사람들이 다 소중한 존재들이다.

- 병실 자체가 죽음과 삶이 사이좋게 공존해있는 공간의 느낌이었다.
병실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면 내가 굳이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죽음과 사랑 외에도 유머가 있지 않나. 웃기려고 집어넣었다기보다 그런 처지나 상황에 놓여있어도 '사는 건 사는 거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밥도 먹고 웃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좌충우돌도 하는 거지. 이런 것들은 그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들한테도 특별한 거다. 보여주기에 급급하다는 평을 받을 수도 있지만, 보여주고 열거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도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 보통의 신파 멜로에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이와 사랑에 빠지는 상대들은 아무리 그것이 숭고한 희생이나 사랑으로 포장된다고 해도 다소 피학적이거나 자기연민으로 치닫는 듯한 느낌을 주곤 한다. 그런데 지수는 오히려 남들이 두려워 외면하는 것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하고 대면하는 인물로 보였다.
그런 직업을 가졌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봐왔고. 고인들을 자신의 손으로 천국으로 보내드리는 직업을 가졌고. 그렇기 때문에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런 양면을 가진 인물이다.

- 직업이 그런 거랑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그런 상황인 건 다른 문제 아닌가?
그러니까 중간에 갈등하는 거지. 지수를 단순한 한 명의 여자로 보자. 그녀의 여자로서의 가장 큰 약점은 뭘까? 손일 것이다. 결국 이것도 편견의 결과물이지만. 그런데 가장 콤플렉스인 손을 가장 예쁘다고 말해주는 남자를 만난 거다. 여자로서의 지수만 보면, 그게 가능할 것 같다. 아무리 얼마 안 있어 죽는 남자일지라도. 그게 무리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런 천사가 어딨냐"고 반응할 텐데, 그런 사람에겐 이 영화가 판타지가 될 것이고, 나같은 사람에겐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거겠지.

-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오히려 닥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란 생각도 든다. 사실 기존의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교육받은 바로는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먼저 보내줘야 할 것 같고, 영화에서 종우도 그러지 않나. 그런데 만약 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지금 날 버리면 넌 정말 나쁜 놈이다"라고 협박꺼지 해가면서 매달리고 싶을 것도 같다. 옳은 것과 하고 싶은 건 서로 다른 거니까.
그래서 그게 다 마음속에 있는 거라는 대사도 있다. "가장 먹기 힘든 게 마음이고 가장 버리기 힘든 게 욕심이다."라고 하잖아. 진짜 마음속에 들어가 보면 어떨까? 삶에 정답은 없는 거다. 만약 마음의 끝까지 가보면 어떨까, 과연 한 마음만 있을까? 그런 여러 가지 생각이 공존할 것 같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마음 속 끝까지 들어가서 토해내는 영화. 내공이 쌓이면 나중에 할 수 있지 않을까.

- 당신이 말하는 '끝까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사랑 내 곁에>도 다른 영화들이 미처 가지 않은 단계까진 간 거 같은데. 지수를 대하는 종우의 태도도, 이기적이라곤 하지만 난 그래서 더 좋았다.
옥연 할머니가 남편의 따귀를 때린달지 하는 장면은 비교적 끝까지 간 거긴 하다. 그런 마음에 의문이 들기도 하고 알고 싶기도 하다. 어쨌든 사람의 마음이니까. 우리는 심지어 사람의 사람까지도 좋게 말하면 상식, 아니면 통념이라고 할 만한 것들에 자꾸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 "너 그렇게 살지 마" "그건 옳은 생각이 아니야" 등등. 그게 맞는 경우도 있고, 아닌데 통념인 경우도 있겠지. 죽을 날을 받아놨다고 해서 프로포즈를 못할까? 저게 말이 되느냐 싶은 거라면, 결국 그런 통념에 맞춘 생각이겠지. 난 그냥 만약 그렇게 프로포즈한다면 어떨까 싶었다.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분명한 이유가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보면 이유가 충분히 있다.

- 한쪽이 신체적으로 불행을 당하거나 했을 때 곁을 지키는 것을 두고 보통 '숭고한 희생'이라고 찬사를 바치는데, 그런 찬사가 약간 껄끄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렇지. 영화 속에서건 실제에서건, 그런 사람들이 찬사를 받자고 그런 것도 아닐 텐데. 그게 꼭 자기는 싫지만 순전히 상대방을 위해서만 하는 그런 것만도 아니다. 자기가 싫으면 하겠는가. 자기도 좋으니까 하는 거지. 그것을 판타지라고만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스스로를 가두는 게 아닐까.

- 지나친 찬사가 오히려 그런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사랑 내 곁에> 같은 순애보가 영화 속에서만 있을 일이라고 하면 정말로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게 돼버릴 것 같아서.
맞다. 물론 사람들이 보기에 집착, 욕망, 승부욕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 당신이 앞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그런 집착이나 욕망, 승부욕도 결국 사랑의 한 얼굴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 남녀가 만나서 에로스적인 사랑을 할 때 보면 승부욕도 분명 사랑의 모습이다. 자기만족도 분명히 있고. "너 아프지 마, 너 아프면 내가 아프잖아."란 말도 따지고 보면 자기 마음 괴롭지 말자는 얘기가 되기도 하잖아. 사랑이란 걸 계속해서 해석해보면 결국 자기만족적인 부분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사랑이 변한다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거고. 그런 사람들한테는 사랑의 대상이 그 누구여도 상관없겠지. 그 사람도 자기가 그렇다는 걸 스스로 잘 모른다. 상대를 사랑하는 건지 사랑을 사랑하는 건지. 아무래도 나중에 "사랑을 사랑하다" 같은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 보다.

- 그런 말씀을 하시니 사랑에 대해 시니컬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맞다, 나 시니컬하다. 맹목적이지 않고 사랑을 믿지 않는 편에 속한다. 하지만 속마음으로 들어가면, 내가 그리는 이런 사랑을 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듣고 싶다. 그런 사랑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마음 속에는 그런 게 있다, 나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거지.

- 사랑을 쉽게 믿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는 얘기인가.
판타지지 뭐. 만들고 있는 나도 그런데. 사랑을 관통하고 있는 것을 끝까지 가보면 결국 그런 거 아닐까 싶다. 영화를 만들다 보니 계속 연애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더라. 이런 감정은 뭘까, 저런 감정은 뭘까, 여기 연기는 어떻게 할까, 이후 감정은 어떻게 될까 등등. 그러다 보니 마치 잘 아는 듯 얘기할 뿐인데 사실 내가 뭘 알겠는가.

- 영화로 표현할 뿐 사랑에 대한 철학자가 아닌가.
철학은 좀 갖고 싶다. 학문이나 지식, 철학하곤 거리가 먼 사람이라서.

- 이전에 했던 어떤 인터뷰를 보니, <죽어도 좋아>는 영화감독이 되도록 해준 작품이고 <너는 내 운명>은 상업영화 감독으로 소통할 수 있는가 없는 게 가늠하게 해준 작품, <그놈 목소리>는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게 해준 작품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내 사랑 내 곁에>는 어떤 의미가 되는 영화인가?
아무래도 <그놈 목소리> 개봉 때라 그 영화 위주로 그렇게 말한 것 같다. 사람들의 투사라고 생각해 완곡하게 한 대답들이지. 거기서 '상업'이란 말을 빼도 되겠다. 그래서 이번 영화가 어떤 의미냐... 영화를 오래 만들고 싶어서 좀 유해지려고 생각했고 만든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이거 참 어려운 질문이네.

- 꾸준히 만드시지 않았나.
이제 고작 네 편이다. 10편은 넘게 만들어야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거지. 우리나라에서 패턴이나 유행이 짧아서 빨리 하고 빨리 없어지고 이러니까, 그러지 않고 오래 하고 싶은 욕망을 담은 영화다.

- 타협했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타협 맞다, 타협하고 싶다. 타협해야 대화도 되고 소통도 되는 거지, 타협 않고 나 혼자 달려가면 결국 외면받지 않을까? 영화를 통해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은 건데. 괜찮다, 타협이라 비난해도. 하도 많은 얘길 들어서. 타협은 중요하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

 

 

ps. 프레시안무비에 기사(새 창으로 열기)로 실림 (2009.9.23)

2009/11/20 14:20 2009/11/20 14:20

이송희일 감독과 처음 알게 된 것은 감독과 기자, 혹은 감독과 영화팬으로서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후 감독과 영화팬의 관계가 되었고, 다시 감독과 기자 사이가 되었다. 요즘은 감독과 기자 외에도 인디포럼 상임작가회의에 함께 속해있는 관계, 이기도 하다. (그는 인디포럼 상임작가회의 의장이다.) 이 인터뷰는 지금만큼 친해지기 전, 서로 예의를 지키며 조금 어려워하던 그런 때인데, <디워> 파동이 나고, 그가 말도 안 되는 왜곡 발췌 기사로 어마어마한 오해와 오독 사이에서 악명(?)을 떨치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촛불이 한참 시작되던 딱 그 때였다. 딱히 새 작품이 공개된 시점이 아니라 하더라도 <디워> 파동 때부터 그를 꼭 인터뷰하고 싶었다. 벌써 시간이 훌쩍 흘러, 당시 프리 프로덕션이 한창이었던 그의 두 번째 영화 <탈주>가 곧 열리는 부산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대체로 많은 감독들이 서퍼모어 콤플렉스를 겪는다. 하지만 훌륭한 예외도 많았다. 최동훈 감독의 경우 <범죄의 재구성>이 지나치게 평가절상되었다고 생각했지만 <타짜>에 대해서는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탈주>도 그런 작품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근데 말이다. 이 기사를 쓸 때만 해도 내가 그 다음 해 인디포럼의 프로그래머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냔 말이다. 흐흐.) 이 기사는 처음 프레시안의 이 페이지(새 창으로 열기)에 게재되었다.



지난 6월 5일 폐막한 인디포럼의 상임작가의장이기도 한 이송희일 감독은 장편 데뷔작 <후회하지 않아>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신인감독이다. 불과 1억 원의 예산으로 찍은 영화 <후회하지 않아>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독립영화로서는 기적이라 할 무려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바 있다. 한국영화 위기설이 더 이상 '설'이 아니라 현실이 돼버린지 오래인 지금, 첫 영화에 이어 신작인 <탈주> 역시 저예산으로 준비하고 있는 이송희일 감독은 과연 독립영화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탈주>의 제작상황은 어떻게 돼가고 있을까? 촬영준비로 여념이 없는 이송희일 감독을 <탈주> 제작사무실 한 켠에서 만났다.

- <탈주>의 예산 및 진행상황은 어떤가?

영화진흥위원회 HD지원작에 뽑힌 영화라 4억이 확보됐고 여기에 2, 3억 가량이 더 필요하다. 이 부분 투자가 안 돼서 제작사인 청년필름에서도 고민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경우가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일단 찍고 그간 촬영한 분량을 일종의 데모 테입처럼 만들어 중간이라도 투자를 받는 방법은 어떨까 궁리하고 있다. 전체 순제작비를 6억에서 7억 가량 잡고 있는 셈인데, HD 지원작은 마케팅비를 포함해 10억을 넘기면 지원받은 4억을 고스란히 토해내야 하기 때문에 마케팅비까지 10억 안으로 끊어야 한다. 영화는 6월 9일 크랭크인해서 약 30회차에 걸쳐 촬영할 예정인데(편집자 주 - 인터뷰 이후 크랭크인 날짜가 한 주 연기되었다.), 기술 스탭들이 다들 미쳤다고 난리다. 서울에서 첫 촬영을 하고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후 다시 서울에 올라왔다가, 마지막 장면은 다시 지방에서 찍고 싶다. 워낙 돌아다니는 곳이 많기 때문에 스케줄이 좀 빡빡하게 될 듯하다. 마지막 장면은 촬영 맨 마지막에 지방에서 찍었으면 하는 욕심을 내고 있고, 총이라던가 하는 것도 욕심을 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게 저예산 규모에 맞는 영화인가 싶기도 하지만.

- <용서받지 못한 자>의 경우 국방부의 지원을 받지 않았나?

국방부가 원래 좀 예민해서, 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굴었다고 들었다. 우리 경우 나중에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방부의 지원에 대해서는 '원천적 포기'의 입장이다. 탈영병이 무장 탈영하는 얘기는 사실 세지 않나.

이송희일 감독

직접 찍은 (발)사진이라능.

- 처음부터 끝까지 쫓는 자와 도망치는 자의 '달리는' 이야기라고 들었다.

한 마디로 '멈추면 죽는다'는 거다. 마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 풍경과 비슷하다. 엊그제 집회를 갔는데 안 잡히려고 계속 도망 다니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 '멈추면 잡힙니다!'라고 소리치는 걸 들었다. 마치 우리 영화와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예전부터 탈영병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 예전에 혼자 습작해본 소설도 탈영병에 관한 얘기였고. 다만 머릿속에 그렸던 건 좀 올드해서 현대적으로 각색하는 데에 힘이 들었다. 예전에 단편이나 <후회하지 않아>의 작업을 할 때는 혼자 콘티도 없이 현장에서 배우와 스탭들의 의견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연출부들과 함께 각색했다. 처음 시나리오엔 주인공들이 은행도 털고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과연 그게 맞나 생각이 들어서 결국 뺐다. 주인공 세 명이 탈영하게 된 계기는 모두 실제 사건에서 따온 것이다. 이 영화도 그렇고 다음 영화들도, 장르가 호러가 됐든 아니든 당분간은 쫓기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찍을 것 같다. 세상이 별로 안 좋으니까. 사르트르 시절에 활약했던 보리스 비앙이라는 가수가 부른 '탈영병'이라는 샹송이 있는데 가사가 너무 좋다. 군대 가지 말자고, 죄없는 사람들에게 총을 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원래 가사는 '쫓으려면 얼마든지 쫓으세요, 내겐 총이 있으니까'라는 내용이었지만 가사가 검열되면서 '쫓으려면 쫓으세요, 제겐 총이 없습니다'로 바뀌었다. 프랑스에서는 우리의 '임을 위한 행진곡'만큼이나 유명한 노래다. 그 노래의 정서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 로드무비라 할 수도 있겠다. 쫓는 사냥꾼들의 모습도 넣지 않을 거라고 밝혔는데.

처음부터 쫓는 이의 장면을 넣지 말자고 했던 건 사실 돈이 없어서다. 탈영병의 얘기를 하고 싶은 거지,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캐릭터가 부딪히는 가운데 나오는 스릴을 그리려는 것도 아니고. 사실 나는 장르영화를 매우 좋아하고 이 영화 역시 그런 장르문법을 어느 정도 차용했다. 그러나 한국영화엔 그런 게 별로 없다보니 투자를 위해 시나리오를 받아본 사람들이 많이 당황하더라. 내겐 너무나 친숙한 장르인데 사람들은 많이 낯설어하곤 한다. 군대 내부는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처음부터 탈영병들이 하는 영화는 처음이니까. 굳이 비슷한 영화를 꼽자면 세 사람이 계속 도망친다는 점에서 <세상 밖으로> 정도? 단편들의 경우 군대 내 폭력에 대한 내용을 다룬 영화들이나 탈영병에 대한 이야기도 점점 등장하는 것 같다. 다만 아직 장르화되지 않고 장르의 옷을 입은 예가 별로 없어서 그런가 싶긴 하다.

- 헐리웃 영화들에는 원래 그런 장르의 영화가 많지 않나?

원래 <병사의 시>라는 휴가병에 관한 영화를 보다가 내가 만들고 싶었던 탈영병 영화를 여기에 섞자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에 장르의 옷을 입히는 것이 관건인데, 결국 많이 참조한 게 갱스터 로브무비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나 니콜레스 레이 감독의 영화들 말이다. 전적으로 장르영화에 붙지는 않아서 애매하긴 하지만... 한국적인 내용도 들어가야 하고 말이다. 하지만 군대를 막 비판하고 그러는 영화는 아니다.

-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영화를 준비하다가 엎었다.

1억짜리 영화를 찍던 사람이 갑자기 50억짜리 영화를 찍는 게 스스로 맞지 않은 옷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또 하나는 한국영화판이 요 몇 년 안에 바닥을 칠 것 같은데 이런 듣보잡 감독에게 누가 50억이나 투자를 할 것이며, 내 성향이 원래 사회비판적이라 내용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데 아무리 액션영화로 포장한들 누가 투자를 하겠는가 싶더라.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려본 거지. 50억을 갖고 하려던 영화 역시 실은 다소 사회 비판적인 내용이었다. 그 소재는 언젠가 꼭 한번 영화화하고 싶다.

- 하지만 많이들 단편 몇 편 찍다가 바로 웬만한 예산이 들어간 장편들을 찍지 않나.

신인감독을 소비하는 현상 아닐까. 2000년대 초반쯤 한창 거품이 일 때 영상원이나 영화 아카데미 출신의 감독들을 '젊은 천재 감독'이라 포장하며 데려와 눈먼 돈을 끌어들여 영화들을 찍어댔지만 대부분 결과가 안 좋았다. 트레이닝도 제대로 안 돼 있고 탄탄한 기획 마인드로 접근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결과가 안 좋았던 감독들 대부분이 사라졌다. 일종의 소모품으로 쓰고 버려지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신인감독 역시 모두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고, 모두가 나홍진 감독처럼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 독립영화라는 게 개념이 좀 애매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독립영화는 무엇인가?

독립영화란 굳이 얘기하면 1920년대 지하영화들부터 개념이 시작되고, 한국에서 인디영화는 유럽보다는 미국의 개념을 직수입한 면이 크다. 6, 70년대 미국 스튜디오 바깥에서 찍은 영화들 말이다. 인디포럼 행사의 일환으로 독립영화워크숍을 하는데 거기에 가서 '독립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할 때 한 얘기기도 하지만, 고전적인 의미에서 한국 독립영화는 이제 사전적인 의미만 남아있는, 화석화된 개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 독립영화의 사전적 의미가 자본과 검열로부터의 독립인데,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추격자>가 90년대에 나왔다면 검열 대상이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카트린 브레이야 감독의 영화 같은 경우 제한상영가 받긴 하지만 일부의 현상이고. 오히려 이런 검열은 영화보다 방송이 더 심하다. 내 영화는 공중파에서 튼 적이 없다. 공중파에서 내 영화가 상영되면 사회가 그만큼 좋아진 것 아니냐, 하는 좀 건방진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젠 표현수위 때문에 제한을 받는다 아니다는 좀 무의미해진 측면이 있다. 오히려 독립영화들이 훨씬 개인적이면서 멜랑콜리한 감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반면 상업영화들은 장르 안에서 표현 수위 등을 고민하고 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면도 그렇다. 요즘은 거의 국가기관에서 지원받아서 영화를 만든다. 이건 물론 비영리를 목적으로 영화를 공공재로 인식하면서 국가에서 출자하는 돈이긴 하지만, 예컨대 1억, 혹은 4억짜리 영화들을 그런 돈으로 만들었다고 했을 때, 과연 무엇이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인가의 문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영진위로부터 돈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극장에서 개봉하면 그 순간부터 '상품'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 아닌가. 엄격하게 기준을 들이대는 순간 모든 게 애매해진다. 그렇다면 독립영화의 정의도 변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건 시스템과 관련한 것이다. 스탭을 어떻게 구성할 것이고 배우 역시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해 감독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과연 얼마만큼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물론 이 역시 애매한 문제이긴 하지만, 단순히 돈의 문제로만 얘기하기도 힘든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신동일 감독의 영화를 보자. 그가 만든 <방문자>나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LJ 필름이 제작사긴 하지만 분명 독립영화의 마인드로 만든 영화가 아닌가. 그래서 이번에 인디포럼에서 신동일 감독의 영화를 상영하고, 신동일 감독 역시 자신을 독립영화 감독으로 포지셔닝하며 이번 인디포럼의 트레일러도 제작했다.

- 배급사가 메이저인 프라임인데도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2년 이상 개봉 못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

그렇다. 애매하니까. 사실 청년필름도 상업영화사가 아닌가. <후회하지 않아>도 케이블 판권을 먼저 판 돈으로 제작했고 나중에야 영진위 독립영화 지원책의 일환으로 마케팅비를 2천만원 받았다. 사실 <후회하지 않아> 때문에 독립영화 지원책이 만들어진 면이 있다. 그러니까 1억짜리 영화도 흥행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며 생색내기용으로 만든 제도인데, 이게 살 깎아먹는 역효과가 날 거란 예상이 점점 들어맞고 있다. 1억으로 영화를 찍으려면 스탭 인건비도 그렇게 한계가 너무 명확한데, '1억짜리도 성공한다'는 식의 논리가 횡행한다. KT&G에서도 1억원 지원책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독립영화들은 영진위의 지원금으로 영화를 찍는다. 그래서 독립영화 감독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영진위 영화사의 직원들'이라는 농담이 돌기도 한다. 그렇기에 인디영화란 제작 시스템이란 측면에서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전권을 부여받은 소수의 스타 흥행감독들의 영화도 독립영화로 불러야 하는가?

감독의 자율권 그 자체가 아니라, 감독의 자율권이 작동될 수 있는 전체 제작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저예산 영화도 스탭들은 계약을 다 한다. 계약을 먼저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많은 것이 갈리기 때문이다. 이건 연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말이 되려면 스탭 노동에 대해 프랑스의 예술노조처럼 다른 방식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예컨대 프랑스 예술노조에 소속된 스탭들은 5개월간 촬영을 했다고 하면 나머지 기간 동안은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실업수당을 받는다.

저예산영화에서의 계약 역시 상업영화에서의 계약을 재현한다. 그렇다면 독립영화는 무엇이 다른가? 독립영화의 전제는 아무래도 독립영화를 한다는 '공동체'의 측면일 것이다. 예컨대 어떤 영화들은 분명 저예산에 게릴라 방식으로 찍었음에도 왜 독립영화라 칭하지 않는가? 왜 누구는 독립영화 감독이라는 레테르를 붙이게 되는가? 이건 감독이 독립영화를 호출하는 방식, 특히 자신을 포지셔닝하면서 독립영화를 지향하느냐, 독립영화 감독의 공동체에 접속하느냐에 따라 배제의 작동 원리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배제의 논리보다는 긍정과 포용의 논리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다소 선언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독립영화란, 독립영화 공동체 안에서 지향하는 바를 얼마나 자신이 지향하는가이며, 장기적으로는 제작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다. 미국도 선댄스영화제가 있기 때문에 저예산 영화는 다 독립영화라 지칭하는 그런 시스템이 존재한다. 저예산 영화가 곧 독립영화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게 결정적으로 선댄스 때문이 아닌가. 유럽은 인디영화란 표현 잘 안 쓴다. 오히려 예술영화냐 아니냐로 구분하다. 전세계마다 다 다른 듯하고, 한국에서도 기자들은 물론 내부에서도 이론이 분분하다. 단편영화만 찍으면 구분이 오히려 쉽지만, 장편 3억짜리를 찍고 나면 스스로도 혼란을 느낀다. 그런 활동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한독협이 요즘은 국가의 돈을 지원받아 집행하는 관료 집단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좀 있기도 하고.

- 장편 독립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숫자가 적다.

장편영화를 만드는 인디감독 중 내가 제일 나이 많다. 내겐 롤 모델이 없다. 모두들 상업영화 씬으로 달려가거나 그나마도 결과가 안 좋아 사라져 버렸다. 홍기선 감독님의 경우 <선택> 이후 별다른 작품이 없고, <선택>도 애매한 경우다. 사실 독립영화 진영에서 장편 극영화는 이제 2, 3년 정도밖에 안 됐다. 이것도 디지털이 보급되면서 제작비가 줄어서 가능해진 것이다. 이제 맹아 수준이고,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영화의 숫자도 한정돼 있다. 하지만 인디영화의 시장 자체는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상영공간의 숫자가 좀더 확보가 됐으면 좋겠지만.

- 저예산 독립영화에서 스탭들의 인건비라는 측면은 영화노조와 부딪히는 면이 꽤 있을 것 같다.

사실 독립영화에서 스탭들을 그렇게 쓰는 게 또 다른 착취, 또 다른 도제 시스템인 측면이 분명 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 그 자체와 영화의 공공성 부분을 사유하자는 것이다. 영화 스탭들과 관련해 진보신당에서 굉장히 좋은 공약들을 내놓았는데, 이런 것들을 '귀찮게 괴롭히면서' 연대할 마음도 있다. 사실 청년필름에서 저예산영화를 제작하는 방식도 답이 하나밖에 없다. 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예산을 미리 공개하는 대신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 올해 영화노조에서는 제협 측에 제작비 10억 미만의 저예산 영화에 대해 흥행 개런티 지불을 교섭안 중 하나로 요구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건 충무로의 자충수라고밖에 할 수 없다. 노조는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하는 가장 첫 단계인 셈인데, 작년 제협과 교섭안 타결 때 저예산 영화의 부분을 그냥 제끼고 갔다. 그런데 요즘 충무로의 일반 평균 예산이 8억이라고 하더라. 충무로 일반 영화의 예산이 8억이 되면서 작년엔 생략했던 부분에 대해 그런 식의 요구를 하게 된 거겠지. 영화노조와도 잘 연대했으면 좋겠지만, 아직까지는 서로 입장이 겹치는 부분이 적다.

- 헬리캠 후원단을 모집하고 있던데, 그건 뭔가.

탈영병에 관한 영화인 만큼 헬리캠을 사용할 계획인데, 이게 1회 대여비가 상당히 비싸서 후원단을 모집하고 있다. 영화라는 게 한번 보면 끝나는 7,000원짜리 상품이라기보다는, 관객들이 놀이의 일환으로 함께 참여하는 무언가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편집자 주 - 이송희일 감독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임시로 만들어놓은 영화 소개 페이지(http://gondola21.com/run/escape2.htm(새 창으로 열기))에서 헬리캠 후원단의 일원이 될 수 있다.

2009/10/01 22:22 2009/10/01 22:22

2008년 전주영화제가 '디지털 삼인삼색'을 위해 고른 감독은 우리에게는 낯선 영화대륙, 아프리카 출신의 감독들이다. 혹자들은 아프리카에서도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지만, 아프리카 역시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거장들을 두루 배출해냈다. 2008년의 전주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은 바로 그 아프리카가 배출한 감독들 중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부르키나 파소), 마하마트 살레-하룬(차드), 나세르 하미르(이집트) 감독을 선정했다. 이중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아프리카가 배출한 거장 중 거장이지만 국내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이름이다. 감독은 다른 감독들보다 더 늦게 한국에 도착해 핸드프리팅과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나는 자료들을 찾다가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이 우리가 몰랐을 뿐 전세계적으로 이름이 높은 감독인 걸 알고 깜짝 놀랐고, 기자회견에서 빠진 만큼 따로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를 위해 준비를 하면서, 심지어 그의 영화는 국내에서 정식 개봉을 한 적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또 한 번 놀라기도 했다. (백두대간이 씨네큐브를 처음 개관하면서 선택한 개관작이 바로 우에드라오고 감독의 <야바>였다. 이 영화는 당시에 비디오로도 정식 출시된 바 있다.) 마침 내가 당시 전주영화제에서 번역한 영화 역시 우에드라오고 감독의 <키니와 아담스>였다.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던 셈이다. 인터뷰를 하고 나서 나는 그 감독이 풍기는 아우라에 한동안 뻑갔(...)고, 아프리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그가 이끌고 있는 아프리카 최대의 영화제, 페스파코를 꼭 방문하고 싶다. 그리고 아프리카 영화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싶다. 이 인터뷰는 원래 프레시안의 이 페이지(새 창으로 열기)에 실렸다.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감독인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우리에겐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베니스영화제와 베를린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는가 하면 미국의 9.11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2001년 9월 11일>에도 참여하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는 거장이다. 부르키나 파소 태생인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1989년작 <야바>로 칸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이듬해 <틸라이>로 같은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으며, 1993년에는 <삼바 트라오레(Samba Traore)>로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부르키나 파소에서 개최되는 아프리카 최대의 영화제로서 '제3세계의 칸영화제'라 불리는 페스파코(FESPACO : Festival of Pan-African Cinema in Ouagadougou)를 이끌고 있다.

올해 전주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 2008 - 귀향>에 <생일>로 참가한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동 섹션에서 상영될 자신의 장편영화로 97년작인 <키니와 아담스>를 선택했으며, 이 영화는 2일날 상영된 바 있다. 비행 일정 때문에 기자회견과 핸드프린팅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한 그를 프레시안이 따로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디지털 삼인삼색>에 참여한 만큼 우에드라오고 감독과의 대화는 '디지털'에 관한 것으로 시작됐고 그는 아주 열정적으로 질문에 답했다. 우에드라오고 감독은 폐쇄 직전의 극장 5곳의 운영권을 부르키나 파소 정부로부터 얻은 뒤 이 극장에서 상영할 영화들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그 자신은 물론 후배들과 주로 디지털로 작업을 했기 때문에 디지털 작업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또한 이런 경험 때문에 디지털에 대한 견해가 매우 뚜렷했다.

- 필름 작업과 비교했을 때 디지털 매체가 가지는 장단점은 무엇인가?

필름과 디지털은 종류가 아주 다른 매체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차에 비유하자면 메르세데스와 벤츠는 기능과 가격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지 않은가. 다만 디지털이 필름에 비해 여전히 공간의 깊이감을 표현해내지 못한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기술적으로 아직 해결이 안 된 것 같다. 그렇기에 디지털이 가진 고유 특성에 대해 주로 얘기해 보자면, 디지털은 매우 개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장치이다. 또한 필름 작업이 10배에서 20배의 제작비가 들고 조명과 배경 등 꾸며야 할 것이 많은 반면 디지털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필름과 디지털은 광학적인 면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디지털이란 매체가 가진 고유의 속성을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디지털이 필름에 비해 공간적 깊이감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디지털 작업을 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사실 카메라나 필름 혹은 디지털도 모두 유럽의 발명품이 아닌가? 아프리카처럼 햇빛이 강한 곳에서는 하얀 것은 모든 것을 반사하고 검은 것은 모든 것을 흡수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디지털로 영화를 찍으면 이렇게 강한 햇빛 하에서는 배경색이 거의 하얗게 뭉개져버리기 때문에 영화를 찍기 위해서는 아침에 해가 뜨기 전 혹은 햇빛이 강해지기 전 오전에만 찍을 수밖에 없으며,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해야만 한다. 아프리카에서 아주 좋은 디지털 영화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디지털이 우리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게 사실이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올 때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결국 일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이 되지 않았는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오는 것 역시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모든 기술적 혁신에는 언제나 제약과 반발,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디지털 매체가 중요한 것은 이미지의 질이 아니라 시간의 지속성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건 필름보다 훨씬 자유롭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진 민주적인 매체라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경제적 이유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의 이야기, 남의 눈이 아닌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는 기회를 디지털이 조금 더 쉽게 열어줬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후면 기술이 더욱 발전해서 지금의 제약도 줄어들 것이다.

결국 최종적인 건 같다. 어떤 매체를 사용하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사랑과 같은 인간의 감정이 아닌가. 물론 이것은 이미지를 통해 구현되지만. 디지털이든 필름이든 영화는 이미지다. 다만 도구가 달라지면 제약도 달라지며 작업 도중 얻게 되는 즐거움도 달라진다."

- 영화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국가들도 있는 아프리카에서 디지털이 영화의 발전과 보급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은 시장의 논리를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로 많은 작업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작을 해도 배급이 안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이지리아와 같은 큰 나라를 제외하면 아프리카에는 작은 규모의 국가들이 매우 많은데 이런 나라들은 인구수도 1,000만에서 1,500만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들 중 8, 90%에 해당하는 인구가 극장이 하나도 없는 외지나 시골에서 산다. 디지털로 쉽게 찍을 수 있고 없고를 떠나, 극장이 없어 배급이 안 되는 것이 더 문제다. 영화는 예술적 산물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산업적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아시아는 시장이 있기 때문에 계속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우리는 8,90%의 인구가 영화를 볼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다.

거기에, 세계적으로 봐도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그리 열려있는 사회가 아니다. 과연 한국에서 아프리카 영화가 얼마나 상영되는가? 이것이 오히려 더욱 본질적인 문제이다. 디지털로 아무리 영화를 찍어도 시장이 없고 극장이 없기 때문에 결국 TV에서 방영할 수밖에 없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 <야바>가 한국에서 개봉 및 비디오 출시를 거쳤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Idrissa Ouedraogo

별도의 핸드프린팅 장에서. (JIFF제공)

- 당신이 이끌고 있는 아프리카 최대 영화제인 페스파코에 대해 설명해 달라.

부르키나 파소의 수도인 와가두구에서 열리는 경쟁영화제로, 아프리카 사람들이 만든 영화들만 상영한다. 여기에는 디아스포라(해외에 흩어져있는 아프리카인들)들의 영화도 포함된다. 물론 관객들은 해외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영화제로 규모가 아주 크다. 전주영화제는 페스파코에 비하면 '아가'에 불과하다. 영화제 기간 전체가 축제다.

-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아프리카에서 페스파코의 역할 혹은 취지와 의미를 설명해 달라.

7일에서 10일 정도의 단기적인 축제라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극장이 없는 곳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오히려 텔레비전이 영화를 만나는 데에 더 큰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페스파코는 원래 처음에는 영화제 형태가 아니었고, 흩어져있는 사람들을 끌어모아 그들이 각자 겪었던 제작과 배급에 관한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해보자는 단순한 만남에서 시작했다. 아프리카에서도 시장이나 배급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영화를 만들기 힘들지만 감독의 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영화제라는 축제 형태가 된 것이다.

처음에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영화가 아프리카의 문제를 아프리카 사람의 눈으로 다룰 수 있는 우리의 무기로 삼을 수 있을 거라는 인식을 가졌다. 그러나 그런 이상은 곧바로 현실적인 논리 앞에서 깨져버렸다. 영화가 창조적인 예술인 건 사실이지만 자본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 오히려 그 어떤 다른 매체보다 더욱 자본의 구속을 크게 받는 매체라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아버린 것이다. 그렇게 곧바로 인식 전환이 왔다. 사실 아프리카는 작은 국가들이 많은데 그런 나라들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하며 아프리카의 영화들은 90%가 해외의 지원을 받으며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외부의 지원을 받으며 영화를 만들 수만은 없지 않은가? 내부적 기반이 만들어져야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직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치품이다.

-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작품은 <야바>와 <틸라이>인데 굳이 <키니와 아담스>를 전주영화제 상영작으로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야바>와 <틸라이>는 아프리카의 자연과 인간, 그리고 아프리카 내부의 고유의 문제를 성찰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인 반면 <키니와 아담스>는 짐바브웨라는 또 다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것은 실제 아프리카의 또 다른 모습이다. 끊임없이 부자가 되려하고 이것을 '차'라는 현대적인 문명의 이기를 통해 추구하는 것이다. 사실 서양인들은 아프리카에 대해 보는 눈이나 요구하는 것이 항상 똑같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으며, 아프리카인들 역시 외관상 문화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인간이라는 본질적 모습은 서양인이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 서양인이 요구하는 한 가지 모습이란 어떤 걸 가리키는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식민지 경험을 했고 그 때문에 다른 언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프랑스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는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고유의 문화가 있으면서 제국주의의 시대에 다른 문화를 타의에 의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두 개의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식민지 경험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두 문화가 대화를 하고 내가 다른 문화와 민족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 문화밖에 모른다. 자기의 시선만을 가진 채 다른 이로부터 배우려는 마음이 없는 매우 어리석은 시선이다.

영화 역시 문화적인 산물인데 다양한 교류를 통해 서로 배우려는 노력이 유럽인들에겐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문제다. 그러나 다행이고 긍정적인 것은 아프리카의 많은 젊은이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많이 유학을 하면서 이것이 서로 다른 시각과 사고를 교환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식민지 경험을 한 국가의 출신으로 제국인 프랑스에서 유학한 최고의 지식인이자 예술가인 만큼 당신은 프란츠 파농을 연상시킨다. 당신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프리카에 대해 당신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가?

식민지 시대는 이미 끝났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식민지였다는 사실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을 알아가며 서로 교류하는 것이다. 식민지 경험은 나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통해 다른 문화를 접하고 배울 수 있었으므로 오히려 내가 가진 힘이다. 독립은 1960년대에 됐는데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는가? 아니다, 지금은 옛날의 노예문제보다 더 해결하기 힘든 세계화라는 싸움의 대상이 있지 않은가. 이제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문제가 아니라 세계화라는 현존하는 괴물이 더욱 문제이며 이것은 훨씬 복잡하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석유값은 나날이 폭등하고 아프리카가 아무리 빈곤에 허덕이고 있어도 아시아는 쌀 생산을 무기로 수출을 안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문제이지, 식민지는 문제가 안 된다. 나는 내 몸 안에서 두 문화를 하나로 만들 수 있으며, 이를 배워 힘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사실 식민지 시대에도 아프리카의 많은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파리에서 공부했다. 레오폴드 생고르와 에메 세제르가 죽었을 때엔 프랑스에서 대통령이 헌사를 하기도 했다. (편집자 주 - 레오폴드 세다르 생고르와 에메 세제르는 모두 아프리카인으로서 프랑스에서 공부했으며 유명한 시인이자 동시에 정치가이다. 둘 다 흑인정체성 회복운동인 네그리튀드를 이끌었다. 레오폴드 세다르 생고르는 프랑스령이었던 세네갈이 독립하자 최초의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1936년에 이 유학생들은 프랑스에서 '흑인학생들'이라는 잡지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 서문은 "우리들은 자본주의 부르주아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들이 고국을 떠나 프랑스에 가서 느꼈던 지적인 갈증은 바로 자유롭고자 하는 갈증이었다. 이는 단순히 자기가 흑인이고 식민지 출신이니 쟁취해야 하는 그런 1차적인 자유가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자유를 뜻한다. 그러니 식민지 출신 지식인의 정체성 같은 건 내 관심사가 아니며, 그런 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

중요한 것은 타 존재가 있고 그와 교류하고 무언가를 배우며 경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것처럼 느끼고 울 수 있다는 건 배우고 경험하면서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경험과 배워서 아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강하게 아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나는 아프리카 사람이며 부르키나 파소 사람이다. 내가 한국에서 생활한다면 또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 <키니와 아담스>로 다시 돌아가서, 이 영화를 영어 영화로 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새로운 것에 언제나 관심이 많으며, 다른 언어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사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같은 아프리카에 있음에도 서부 아프리카와는 또 다른, 잘 알지 못하는 아프리카다. 남아공화국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영화 자본이나 시장을 가질 만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그런 걸 고려하면서 나도 잘 몰랐던, 서부 아프리카인들이 잘 몰랐던 또 다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화가 두 아프리카 사이의 통로와 교각의 의미가 되기를 기대한다.

- <키니와 아담스>에서 도시를 동경하던 두 남자가 결국 관계의 파국을 맞는데 이는 결국 자본주의와 물질 때문인데,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 아프리카를 잠식해가는 자본주의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무엇인가?

자본주의가 미쳐가고 있는 것 같다. 일상적으로 필요한 것들, 예컨대 의료나 교육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소수의 몇몇에 의해 자본의 투기화가 진행돼가고 있다. 이것이 전 지구를 미친 자본주의로 몰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을 '야만적 자본주의'라 부른다. 아프리카가 가난한 건 사실이지만 의료나 가난, 빈곤 등의 문제는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유한 나라에도 그 내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가? 결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래적으로 추구하려던 것들, 예컨대 사랑이나 연대 같은 것을 언젠가는 다시 찾으려고 들 거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게 될 순간이 오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때엔 굶어죽나 아파서 죽나 총 맞아 죽나 어차피 상관없는 때가 되기 때문에 결국 반란이나 혁명까지도 일어나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아프리카가 됐건 어디가 됐든 똑같은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이 미친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든 조절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하게 될 것이다.

- <키니와 아담스>에서 두 사람의 우정 관계에서는 아담스가 키니를 동경하고 질투하는 것뿐 아니라 동성애적인 집착도 보이는 듯하다. 감독의 의도인가?

동성애적인 사랑을 의도한 건 아니다. 우정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건 플라토닉한 정신적인 사랑이다. 아담스는 떠나려 하지만 결국 떠날 수 없게 되자 자살하고 만다. 우정이 너무 강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 당신은 어떤 감독들을 좋아하며 누구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는가?

너무 많아서 다 얘기할 수는 없고, 오손 웰즈, 빔 벤더스 등을 들 수 있겠다.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는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이다. 스필버그의 <칼라 퍼플>도 무척 좋아한다. 사실 나는 휴머니티나 사랑, 즐거움 등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하는 영화들을 두루 좋아한다. 때문에 어떤 특정한 영화를 꼽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09/10/01 08:03 2009/10/01 08:03

내 생애 첫 단독인터뷰의 대상은 신동일 감독이었지만, 실은 <과거는 낯선 나라다>가 개봉할 당시 김응수 감독이 나의 첫 인터뷰이가 될 뻔했다. 인터뷰 때문에 김응수 감독을 만나러 가던 길에 자그마한 소동을 겪었고, 그 때문에 약속을 취소했다가 나중에야 다시 만났다. 사람 만나는 것도, 인터뷰란 작업 자체도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던 당시, 언론시사로 본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여러 모로 충격적이었다. 시사가 끝난 뒤 몇 명 남지 않은 기자간담회에서 처음으로 질문을 했었고, 그걸로 성에 차지 않아 비로소 인터뷰라는 걸 해볼 욕심이 생겼다. 영화를 이미 봤음에도, 영화사로부터 스크리너를 받아 다시 한 번 꼼꼼이 보며 인터뷰 질문들을 정리했던 게 기억난다.

기사가 나간 뒤, '길고 재미없다'고 데스크에 또 혼이 났다. 사실 이것도 많이 줄이고 잘라낸 것인데. 하지만 그 이상 그의 말을 잘라내고 싶지 않았다. 감독이 자신의 의지를 매우 또렷하게 영화에 반영했다면, 그리고 그 의지를 인터뷰를 하러 갔다면, 되도록 그의 말을 충실히 싣는 게 좋지 않은가. 많이 배웠던 인터뷰였다.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싶고 지향하는 인터뷰란 게, 결국은 이런 식인 것 같다. 일간지 포맷에는 다소 맞지 않는, 인터넷 매체에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길고 지루한. 이 기사는 프레시안의 이 페이지(새 창으로 열기)에 실렸던 것이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죽음을 기리는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기존의 추모 다큐멘터리의 형식 대신 인터뷰만으로 일관하는, 형식의 파괴가 돋보이는 다큐멘터리다. 그들이 죽고 2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망각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치열한 노력을 카메라에 담으며 '망각에 대한 투쟁'을 펼친 김응수 감독을 프레시안이 만났다.

- 김세진 이재호 기념사업회에서 영화를 제작했는데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기존에 역사를 바라보며 추모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하다못해 영정이나 추모식 사진 같은 것도 나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를 내 의도대로 봐주는 사람들도 많다. 과거를 기억하고 망각에 대한 투쟁을 벌이는 게 이 영화의 주가 되는데 사실 그런 식의 구체적인 비주얼을 삽입해 버리면 힘이 빠지지 않는가. 투쟁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 같고, 겨우 저걸 기억하려고 힘들게 저럴까 싶을 거다. 기억이 어떤 식으로 남아있든, 단편적이든 사실과 조금 다르든 시점이 어긋나든,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 망각 속에서 기억 속으로 복원시켜야 한다는 걸 다룬 영화니까. 전형적인 추모 다큐멘터리처럼 몇월 몇일에 태어나 어디에서 살았고 학교는 어땠으며... 이런 식의 방식을 취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 영화의 장점이고 힘이다.

 - 사실 그런 식으로 구성하면 김세진, 이재호 씨가 영웅으로 신비화되긴 한다.

그것도 우려가 됐다. 영화에서 나는 '열사'라는 표현을 절대 쓰지 않았고, '분신' 대신 그냥 '죽음'이라고만 표현했다. 각자가 그들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판단하고 정리하는 거지 한 집단이 의미를 규정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 가치를 강요해선 안 된다. 그들은 물론 엄청난 일을 하긴 했지만 그 이전에 우리와 함께 살던 평범한 20대 청년이었다. 여자친구도 있고 데이트도 했고 학교도 다니고. 친구들과 얘기할 때 나는 그들을 세진이 형, 재호 형이라고 호칭한다. 그런 삶의 호흡 속에서 그들을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그게 우리는 왜 불가능할까, 의문이기도 했고.

추모비 뒤에 고은 시인의 추모시가 있다. 아주 시적인 표현들인데 난 그것도 보기가 힘들고 부담스럽다. 그거야말로 한순간의 느낌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상화시켜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그런데 예전에 한 친구한테 그런 얘기를 하자 그 친구가 그러면 문제가 생길 거라고 하더라. 안에서 서로 간 싸움도 생길 거고 밖에선 또 잘못된 방향으로 왜곡하기 쉽다고. 우리의 마음이 어떻고의 차원이 아니라, 이게 사회의 역관계 속에 있고 현재진행형인 만큼 지켜야 할 건 지켜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라. 그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야말로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과거와의 투쟁 아닌가. 대략적으로 역사가 정리가 되지 않고 여전히 혼란한 상태여서 그렇다.

- 20대들은 주로 낯설고 불편하다고 반응하는 듯하다.

낯설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고, 불편하다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반응 같다. 편하게 볼 영화라면 박물관에서 흔히 전시물 틀어놓은 거 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거다. 그저 수동적으로 별 고민 없이 그냥 보고 받아들이고 곧 잊어버리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서적 작용이 있었다면 그건 좋은 거지. 지난번에 이 영화를 봤다는 어떤 20대 여성은 그냥 멍했다고 반응을 보내왔더라. 20대인 자신에게 역사는 뭔지 과거는 뭔지, 선배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멍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 그런 반응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액션이 있다는 거니까.

- 영화의 총예산은 어떻게 되나?

김세진 이재호 기념사업회에서 5천 5백만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받은 지원금 1천 4백만원, 해서 총 7천만원 정도로 찍었다. 기획서에서 어떤 영화를 찍을 것인지 자세히 밝혔는데, 김세진 이재호가 죽었을 때만도 반미는 사형을 각오하고서 외치는 거였지만 이제는 국가의 단체에서 자금을 지원해주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느꼈다.

- 총 제작에 걸린 시간은?

1년 6개월이다. 제작 의뢰를 받고 고민한 기간만 4, 5개월 된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어떤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다. 기존의 80년대를 다룬 추모 다큐멘터리 형태로 가는 건 내가 원치 않았을 뿐 아니라 기록물이 전혀 없어서 가능하지도 않았다. 80년대 전반에 관한 기록은 있어도 그들의 죽음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거의 없다. 다큐멘터리를 처음 하다 보니 다른 다큐멘터리를 보면 공부를 했는데, 유태인 학살을 다룬 <쇼아>에서 큰 힌트를 얻었다. <쇼아>를 보면서 증언과 인터뷰만으로도 보는 사람들이 그 형상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쇼아>를 보면 가스실이나 수용소에 대한 공포가 직접 그 건물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드러난다. 관객에게 수동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그 이미지를 스스로 머릿속에 쌓아올리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건의 경우 3일 내내 그들과 같이 있으면서 그 과정 모두를 목격한 사람은 없다. 누구는 한 시간 동안 만났고 누구는 직후에 봤고... 이걸 조합해 보자 생각했다. 사람마다 그들을 목격하거나 함께한 시간과 공간은 다 다르지만 그걸 모으다 보면 맞춰지겠지 생각했다. 다행히 성공적이었던 건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 윤곽을 잡아내더란 점이다. 3일의 기간 동안 누구는 어디에 앉아있고 누구는 옥상에 올라가고, 일관적인 흐름이 있는 그림이 잡혔다. 그것만으로 성공했다 생각했다. 형상을 그려냈으니까. 그렇다면 굳이 사진이 없더라도 이것으로 기록이 되지 않겠는가.

찍는 과정에서는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못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솔직히 누가 그걸 다시 대면하고 싶겠는가. 섭외가 됐다 해도 막상 찍으려고 하니 시간을 맞추는 것도 어렵더라. 모두들 각자 생활인이다 보니 일요일밖에 시간이 안 되는데 주말마다 개인적인 사정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게 촬영을 드문드문 하느라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찍고 나서 후반작업도 공들여서 했다.

김응수 감독

"다큐멘터리는 단순한 '사실'이 아닌 '진실'을 담아야 하며, 그 진실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제공 _ KT&G 상상마당)

- 인터뷰이 중에 이정승 씨는 이전에 한겨레21에도 증언을 하신 적이 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이전에 공식적인 증언을 했던 사람은 이정승 선배뿐인 것 같다. 인문대 학생회장이라는 공식적 활동을 했던 사람이고 김세진 형과 친구처럼 지낸 사이니까. 도의적으로 친구의 기억을 위해 자신이 안 하면 안 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영화에 싣지 못한 에피소드들도 많다. 여자친구 얘기도 그렇고. 아버님도 그 여자친구를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가능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 그러나 영화가 긴 기간에 걸쳐 들쭉날쭉하면 내가 감당을 못 하니까, 결국 3일간 팩트 중심의 이야기로 좁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 증언을 하신 분 중 녹취를 하신 분은 왜 목소리만 제공하신 건가? 얼굴 공개를 거부한 건가?

그런 건 아니다. 그 사람은 원래는 인터뷰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자료 수집 와중에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만년필과 안경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듣고 있다가 자신이 만년필과 안경이 챙겼다는 얘기를 하는 거다. 알고 보니 그가 분신 때 옥상에 올라갔던 사람이었다. 인터뷰 대상으로 결정했던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얼굴을 보여주려고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가장 적당한 건 녹취구나 판단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녹취를 땄다. 녹취를 듣고 보니 상황이 얼추 아귀도 맞고. 다만 그 사람은 용우한테 줬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재식에게 받았다고 하고, 그 사이에 간격이 좀 차이가 난다. 아마도 그 사람이 용우에게 주고 용우가 재식에게 준 것 같다.

어쨌든 전날 의대(연건동 서울대 의대)가지 갔다가 학교(신림동 본교)에 돌아와서 하룻밤 자고 신림사거리에 가서, 옥상 밑에 있다가 옥상에 올라가서 다시 내려오고 안경과 만년필을 주고... 3일의 사건을 하나로 관통하는 인물이다. 옥상에 올라간 사람은 그 사람 하나니까, 그 사람의 녹취를 영화 전체의 중심으로 놓고 다른 인터뷰들을 맥락이 비슷한 위치에 배치했다. 예를 들면 여자애들이 울고 있는데 사회학과 아이였던 것 같다는 증언 뒤에 여자의 인터뷰를 넣었고. 꼭 그 사람은 아니지만 대략의 연관성을 가지도록 구성을 했다.

- 인터뷰에서 굳이 정면샷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인가?

카메라가 바라보는 관객이고 세상이라 한다면, 인터뷰이들이 이를 정면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 게 사실이다. 보통의 다큐멘터리들은 인터뷰이가 편하게 얘기할 수 있도록 눈을 보지 않은 채 그냥 옆에서 찍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일부러 카메라를 완전 정면으로 향하도록 했다. 인터뷰어인 나와 그들이 정면으로 대면하는 것이자, 그들과 관객, 그들과 세상이 서로 정면 대면하는 것이다. 그럴 때 관객에게 보이는 그 사람의 얼굴, 그 얼굴이 말해주는 것들, 이런 걸 찍기를 원했다. 단순히 말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인터뷰가 단순하면서도 힘이 느껴질 거라 생각했다.

- 얘기가 진행될수록 카메라가 인터뷰이에게 접근하여 얼굴 클로즈업으로 간다. 이것 역시 의도된 것인가?

그렇다. 설정한 것이다. 찍기 전에 대강 이런 얘기를 이런 흐름으로 갈 것이라고 의논을 했고, 카메라를 찍는 사람은 이를 숙지하고 있었다. 이건 사실 '감'이다. 이런 얘기 즈음에서 앞으로 가고, 다시 앞으로 가고. 물론 편집에서 달라질 수 있지만, 어느 정도의 감을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계속 밀착해 들어가는 거다.

- 그런데 이정승 씨 인터뷰 때만 유일하게 카메라가 픽스된 채 이동이 없다.

그건 의도라기보다는 인터뷰가 너무 짧았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정신없이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서인데 듣고 보니 이상하긴 하다. 이정승 씨가 얘기한 부분이 일종의 클라이막스인데, 오히려 그 부분이 객관적으로 찍힌 것 같다. 카메라맨이 놓친 것이거나 편집에서 잘린 걸 수도 있겠다.

- 이재호 아버님의 인터뷰가 끝난 후 갑자기 크레딧이 삽입되면서 이를 계기로 영화가 둘로 나뉘는 느낌이다.

아버님이 나오고 비오는 대문이 보이는 것이 관객에게 감정이입을 너무 강요하는 것 같아서 의도적으로 자막을 넣었다. 감정을 기대하지 말라, 당신이 감동한다거나 슬퍼한다고 해서 이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라는 게 내 의도니까. 이 영화가 그렇게 감동적이거나 몰입시켜서 눈물을 짜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지 않는가. 영화라는 걸 상기시켜 주면서 분위기를 깨줄 필요가 있었다. 또한 2부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도 있었다. 영화를 딱히 2부로 나눈 건 아니지만 그 뒤부터 영화가 새로운 방향으로 가지 않는가. 공간도 하늘이나 바다로 가버린달지. 그래서 필요한 것 같았다.

- 서울대 내에서의 인터뷰가 이어지다가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그 중간자막으로 구분이 되는 건가?

그렇다. 계속 학교 내부에서 찍은 후 아버님을 찍고 아버님 뒷모습이 나온 뒤 대문이 나오지 않는가. 그러면서 바깥으로 나가는 거다. 계속 안에 있다가 바깥을 향해 나가는 느낌인 거지. 그래서 변산으로 간 거고. 다큐멘터리에서 굳이 그런 식으로 외부 공간을 선택하는 건 사실 드문 일이다. 대개는 그냥 일반 삶 속에서 찍지. 이건 꽤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뭔가 구름 속에서 형상을 찾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안개 속의 풍경 같기도 하고. 바다도 쨍한 바다가 아니라 안개가 낀 것 같이 안개가 피어오르고 멀리 뒤로 섬도 보이고 등대도 있고... 게다가 어쩐지 물에 그렇게 집착이 가더라. 비도 그렇고. 물로 뜨거운 걸 꺼주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하늘이 주는 허허롭고 공허한 허공의 이미지, 그리고 뜨거운 걸 꺼야 할 것 같은 물의 느낌 같은 걸 살리고 싶었다. 그건 만드는 사람의 마음인 거고 영화에서 중요한 상징이나 의미인 건 아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상징을 찾더라.

- 폐쇄적인 상아탑의 공간에서 세상으로 나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것도 맞는 느낌일 수 있는데, 그건 보는 사람의 주관에 달린 문제인 것같다. 내가 나름 설정한 마음의 흐름이 있다고 해서 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보라고 강요할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는 당신처럼 볼 수 있고 누군가는 물의 이미지가 불의 이미지와 부딪히면서 강렬한 걸 느꼈다고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멍하니 보면서 구체성을 전혀 찾을 수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파도소리가 총소리처럼 들렸다고 하는 사람도 있더라.

- 나 역시 마지막 파도소리를 총성인 듯 들었다. 의도한 것인 줄 알았는데.

연상을 하게 하는 건 사운드든 공간이든 다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연상은 각자 자기 경험 속에서 자기 주관성과 만나는 것이다. 대체로 20대들은 당신처럼 느끼지 않는다. 안개 속의 풍경처럼 잘 모르겠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파도소리는 총소리보다는 물이 딱딱한 바위를 부서져라 치면서 깨려는 듯한 느낌을 의도한 거다. 사운드 믹싱을 하는 엔지니어에게도 무조건 세게 넣어달라고 했다.

- 마지막으로 감독이 인터뷰이가 되는데, 감독이 카메라 뒤에서 굳이 앞으로 나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영화가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망각에 대한 투쟁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을 카메라 앞에 불러내 투쟁을 시키고 있으면서 정작 나는 그들 앞에서 심문관으로 서 있다. 과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심문관 역할을 하는가? 그들은 나에게 왜 당해야 하는가? 그건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내 자신의 삶에 대한 자세의 문제이기도 한 거다. 나도 같이 당해야 한다. 내 인터뷰 장면 때문에 다른 인터뷰이들도 다 수긍을 하고 영화가 끝났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다들 나중에 자기 거는 빼달라고 했을 거다. 할 때야 큰 생각 없이 하는데 찍힌 거 보면 쑥스러울 테니까. 그런데 내 인터뷰 장면을 보고 말들이 없더라고. 그래서 영화가 정리가 된 거다.

- 영화라는 게 감독의 것인 것만큼 그 목소리를 감독의 시선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로도 보인다.

아니, 내가 통합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심문관의 자격이 있는가? 라는 소박한 생각으로 참여했을 뿐이다.

- 3일에 집중하겠다고 했는데 감독이 증언한 인터뷰에서만 짐을 들어주겠다고 나섰다가 나중에 군대에 끌려간 다른 사람 얘기가 끼어든다.

그것도 3일에 관련된 얘기다. 김세진, 이재호가 주도한 의대 점거농성 투쟁과 관련된 얘기니까. 오히려 그 전에 3월 18일 반전반핵 평화투위가 뜨던 날 이재호를 만난 얘기, 그리고 학생회비 걷어서 김세진 선배를 찾아간 얘기가 3일과 관련없는 얘기이다. 이건 일부러 넣었다. 두 사람에 관한 개인적인 기억이 너무 없기에 형상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난 두 사람을 원래 알았던 게 아니라 두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까 이후에야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구나, 기억이 난 거다. 자연대 학생회실에 갔다가 김세진을 만났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그때도 이상하게는 느꼈다. 이 사람이 학생회장이라고? 머리도 길고 미소년 타입에 예쁘게 생긴 데다 딱 부잣집 아들 티가 났다. 이재호 선배는 계속 몸을 부들부들 떨었던 게 기억난다. 그땐 반미 얘기는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얘기였으니까. 난 주체가 아니었으니 그런 절대절명의 기분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보면 그 날 시위도 좀 달랐다. 예상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전반핵 외치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에너지가 달랐고 목소리도 똘똘 뭉쳐 있었으며 불안과 함성 같은 게 다른 때와 차원이 달랐다. 그 느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구호 자체가, 참여 자체가 공포스러웠기에 집회도 오래 할 수 없었는데, 도서관 통로 지나갈 때 구호 때문에 통로가 막 울렸던 것도 기억나고.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사형을 각오하고 외친 반미 구호였으니 이 중에 누구는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했던 게 기억날 정도다.

- 오늘날에 외치는 반미 구호는 그 의미가 어떻게 다를까?

그때 문제제기가 됐기에 오늘날 우리가 미국이 옳지 않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평화협정 문제도 초보적이긴 하지만 얘기가 오갔고. 그때는 그런 식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휴전협정의 주체가 미국과 북한인데 주체가 빠지면 누가 얘길 하나? 논의 주체에 3자, 미국이 있다는 게 그 사건으로 분명해진 거지. 남한-북한, 북한-미국, 남한-미국 간 얘기가 따로 있다는 건 확실해졌다. 아직도 미국과의 관계 문제가 북한 문제가 항상 가운데에 있으니까 여러 가지로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데 이걸 영화에서 얘기할 순 없었고... 모든 문제가 같이 풀려야겠지. 통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 기타 등등. 북한 문제가 풀려야 우리 문제도 풀리는 것 아닌가.

- <과거는 낯선 나라다>의 가치에 대해 특히 영화미학적 측면에서 어떻게 자평하는가?

인터뷰라는 건 단순히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사람의 현재의 존재 자체를 찍는 것이다. 얼굴에 드러나는 현재의 상태,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감정까지 찍어야 인터뷰의 힘이 발휘된다. 이걸 보여줬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는데, 이건 이제까지의 인터뷰가 잘못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는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의 힘에 대해 하나의 지점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80년대에는 폭로나 고발이 다큐메터리가 가진 힘으로 여겨졌다. 탄압의 시대였으니까. 90년대는 주로 회고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제 이런 게 너무 많아졌고 사람들도 많이 지쳐버렸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한번 얘기하고 사라지는 경우도 얼마나 많았나? 그렇다면 2000년대엔 어떻게 역사를 복원하고 기억할 것인가? 현재와 과거를 결합시키고 현재 속으로 과거를 불러와야 한다. 과거가 저기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의 공기 안에 같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내 영화는 바로 이 지점을 제기했다고 본다.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역사를 다루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더 이상 회고하지 말고 신비화하지도 말자는 거다. 우리의 현재에 과거가 어떻게 남아있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듬어 가자고 문제제기를 한 게 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가장 큰 의의라고 다른 사람들이 그러더라. 물론 이것은 내 의도이기도 하다.

- 이재호 아버님의 장면에서, 찍을 때 대답을 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대답을 못 하셨던 장면을 넣은 건 다큐멘터리의 윤리성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가? 연출자가 지나치게 개입해서 조작한 것은 아닌가?

나는 진실의 문제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아버님이나 어머님은 이미 학습화된, 준비해놓은 대답을 하셨고 그건 진실의 대답이 아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갖고 계시고 아들이 죽었으니 이렇게 얘기해야 부모의 도리겠지 싶은 것들, 아들 친구가 왔는데 뭐라도 대접해줘야겠다는 마음, 동네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 같은 걸 고려해 생각해놓은 답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진실일까? 할 얘기가 없으면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찍었다. 조감독에게도 어떤 게 진실이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조감독 역시 대답을 못 하셨을 때가 진실이라고 하더라. 사실 예민한 문제가 아닌가? 아들 친구들에 대한 솔직한 마음보다는 그저 다들 행복하고 잘 살기 바란다는 예의상의 말씀을 하시기 마련이다. 말하고 행동하는 걸 그대로 찍는 건 사실을 찍는 거지만,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진실이 아닌 것들은 들어보면 생명력이 없기 마련이다. 이건 아니다. 사실과 진실을 혼동하면 안 된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이 아닌 진실을 찍는 거라 생각한다.

- 관객은 그 장면에서 강한 정서적 울림을 받게 된다. 장면을 두고 선택을 한다는 건 감정의 조작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어떤 장면을 넣을 것인가는 내 선택이고, 그런 식으로 보면 영화의 모든 장면이 다 선택의 영역이다. 한 시간 인터뷰해서 모든 걸 다 집어넣을 수 없으며, 그 중 일부분을 내가 선택하는 것 아닌가. 무얼 말하고 행동하는가, 그 사실의 영역을 찍은 후 그 사실 덩어리 속에서 어떤 걸 취할 것인가, 이 사람의 말 중 어느 것이 사실의 진수인가를 선택하는 건 감독인 내 몫이다. 세진 형의 부모님도 증언을 하셨었고, 병원에서의 상황 같은 걸 말씀하시는 걸 보면 그 증언 역시 사실이고 본인들도 우실 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들도 울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것을 고려하면 그 장면들은 아깝더라도 버릴 수밖에 없다. 그런 게 바로 진실이다. 어쩔 수 없는 거다, 선택을 해야 하니까.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찍는 거라 얘기하지만 사실을 얘기해서 과연 뭘 할 건데? 그 뒤에 있는 진실을 봐야 하지 않나? 그런 식으로 보면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사실에서 어긋난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각각의 증언에서 아귀가 서로 안 맞는 부분들도 있지 않는가? 누구는 8시라 하고 누구는 9시라 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인위적으로 맞추지 않고 그냥 그대로 넣었다. 그렇게 기억하는 것 자체가 진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실 차원에서의 그런 소소한 어긋남은 핵심이 아니다.

- 일반적으로 다큐멘터리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여기는 건가?

우리나라에서 이제껏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들의 함정이기도 하다. 그냥 그렇게 찍는 것. 그 많은 에피소드나 사실 중 내가 보는 진실은 뭔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냥 쭈욱 사실을 찍는답시고 찍는다. 자신의 진실의 관점대로 장면을 선택하고 그걸로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받을 각오를 해야 하는 거다. 사실만 나열한다면 받을 비판도 없겠지.

- 결국 카메라를 잡은 사람이 보는 진실이란 얘기인가?

그렇다. 각자가 보는 진실인 셈이다. 저것은 거짓이고 저것은 참이다라는 걸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같은 소재에 대해 찍는다면 다른 진실이 나올 것이다. 역사는 완전히 절대적으로 객관화될 수는 없다. 세상을, 사건을 바라볼 때 확실히 진실을 바라보는 다양한 단면들이 합쳐져야 그것이 전체가 된다. 다양하고 다른, 상반된 관점들이 여럿이 있어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는 거다.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광주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들면 광주 영화도 다를 거다. 다 뒤집을지도 모르지. 역사에 대해 책임을 지네마네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 관점을 제시하며 이렇게 했다, 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화려한 휴가>는 과연 누구의 관점으로 만든 영화인가? 누군가에겐 광주의 정신에 근접도 못한 채 권력의 입장에서 만든 영화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한국의 근현대사도 마찬가지고 민주화 운동도 지금 누구의 관점대로 서술된 것인가? 민청학련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죄 같은 건 과연 누구의 어떤 관점으로 정리돼 버렸을까? 다른 사람 눈엔 전혀 어이가 없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간 내가 보는 관점은 그렇다. 어떤 사람들에겐 90년대에 일반화돼 있던 광주 다큐멘터리 같은 게 객관적인 거라 여겨지겠지. 아무 비판도 있을 수 없는, 그냥 짜깁기된 화면들 말이다. 과거에 이랬고 이런 사건이 이랬고 우린 지금 민주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식의. 과연 그게 지금도 유효할까? 그런 건 객관적인 게 아니라 아예 시점이 없는 것이다.

- 다음 작품으로 어떤 영화를 구상중인가?

시각장애인과 카메라와의 관계를 다룰 예정이다. 극영화를 하면서는 그런 고민을 많이 하지 못했는데, <과거는 낯선 나라다>를 만들면서 찍는 카메라와 찍히는 대상에 대한 상호관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카메라가 내가 가진 눈이 되는 것 같고, 인터뷰이와 세상을 연결하는 창 같기도 하더라. 그런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등장하는 영화들은 의례 항상 지팡이를 들고 불쌍한 모습으로 훌쩍대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한탄하고, 그러면 사람들은 동정어린 시선을 보내며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이라며 추켜세우는 식의 영화들이다. 왜 이렇게 비장애인의 시선으로만 봐야 하나. 그들도 엄연히 자신들의 삶을 살고 있는데. 나름대로 즐겁게 살고 있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사랑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죽네사네 하면서 산다. 그리고 이미 시각을 잃어버렸는데 그냥 그 안에서 살아야지 자꾸 완전한 세계가 여기 있고 당신들은 불완전하다는 식으로 보는 게 무슨 도움이 되나. 우리야 그 사람들이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을 만들면 되는 것뿐인데, 그걸 못 하면서 동정만 하고 있다. 그들 속으로 들어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발언하는지 찍고 싶다.

내가 카메라로 찍을 때 이 사람들 역시 정면으로 응시하며 찍을 수 있을까? 못 찍을 거다. 그건 폭력이 된다.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찍는다 해도 이미 그건 우리의 고착화된 시선이다. 동정과 연민을 느끼며 찍게 된다. 그들의 눈 자체가 이상하고 불완전하다 생각하며 어색해하는 거다. 그렇기에 내가 이번에 만드려는 영화는 그들을 존중하며 어떻게 찍을 수 있을지, 이들은 어떻게 어떤 감각으로 세상을 볼지를 탐구하는 영화다.

- 영화는 시각에 많이 의존하는 매체인데 시각장애인의 이야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찍기가 힘들다. 처음엔 이 시각장애인이 보는 걸 카메라가 찍을 수 있다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못 찍을 거라는 게 지금의 내 결론이다. 문제해결 지점을 찾는 게 아니라 그가 보는 걸 내가 찍지 못한다는 것을 상호간에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그 역시 '나는 본다'고 표현하며 경계를 넘으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는 보지 못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겠지. 경계 내에서 그냥 인정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영화란 생각을 지금은 한다. 경계를 넘어서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인정하는 거다. 넘어선다는 건 힘든 욕망 아닌가. 하지만 경계를 정리한다는 건 그만의 성찰이고 성장이다. 그러니까 이건 다큐멘터리보단 극영화에 더 어울린다. 경계를 인정하고 그저 자신 안에서 살 뿐이라는 것, 카메라는 그 사람의 바깥에 있다는 것, 그걸 보여주는 영화가 될 것이다.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상호 그걸 인정하는 게 옳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 다큐멘터리를 다시 찍고 싶은 생각은 없나? 꼭 만들어보고 싶은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찍고싶다고 자주 생각하지만 역시 펀딩의 문제 아니겠는가. 예전엔 개인적인 문제를 다루는 게 편했는데 요새는 아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젊었을 땐 사회적 문제에 관심 많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적인 문제나 철학, 실존의 문제에 천착하게 되는데 나는 반대다. 내 영화를 봐도 알겠지만 오히려 확장되고 넓어진다.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고 싶다. 거기에 영화의 힘이 있다. 개인에 파묻혀 있어 거기에 대단한 게 있는 듯 치장하는 것, 사회를 보는 건 촌스러운 거라는 식의 생각이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 하고 싶은 다큐멘터리가 있다면 역시 광주다. 총체적 시선으로 광주항쟁을 정리하고 완벽하게 재현해야 한다고 누군가는 그러던데, 나는 생각이 다르다. 부족함이 많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시점으로 기록이 남는다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완벽하게 다루는 건 하느님만 하는 거지. 나는 나의 진실이 담긴 광주를 그리고 싶다. 누군가는 그의 진실대로 또 다른 광주 영화를 만들 수도 있고, 그런 게 쌓이면 사람들이 이것저것 보면서 총체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겠지. 물론 이상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지만. 누구 한 사람이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단 하면 될 텐데 왜들 안 할까? 나보다 돈있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하면 좋을 텐데.

- 섣불리 건드리기 힘든 상처라서 그런 것 아닐까?

그거야말로 오만 아닐까. 자신을 낮추면 된다. 자신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이 시대에 호흡하고 있기 때문에 쟈신이 가진 전문적인 지식과 영역 속에서 하면 되는 거다. 뭘 두려워하나? 각자는 그냥 한 인간일 뿐인데 뭘 다 정리를 하나? 투쟁도 자기가 호흡하는 인간으로서 하는 거지, 자기로 인해 세상이 변하고 뭐 대단한 걸 이루고 그런 걸 기대하면 안 된다.

- 기록이란 게 한번 남으면 계속 남는 건데, 그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대한 노력하면 되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리서치 하고 사람을 만나보고 어떤 시점이 좋을지 고민하고, 이게 정수다 생각되면 밀고 나가면 되고. 그럼 누구는 너무 투쟁적이다, 너무 시적이다 욕하려나.

-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예전엔 거장 감독들의 후기작들을 좋아했다. 미장센이 잘 돼 있고 형식적으로 잘 짜여져 있는 영화들, 예를 들면 파졸리니의 후기작, 피터 그리너웨이의 장중한 영국식 작품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란>과 같은 후기작들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요즘엔 초기작들과 다큐멘터리들이 좋아진다. 그 안에서 진실들이 느껴지는 영화들 말이다.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다. 멋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을 어떻게 접근하느냐, 진실을 어떻게 담을 것이냐가 더욱 중요해진다.

또한 요즘 내 고민은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것이다. '나는 본다'라는 것은 무엇인가. 대체 내게 카메라는 뭔가. 예전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 했던 장-뤽 고다르의 영화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요즘엔 마음에 와닿는다. 그의 영화들 보면 유럽의 실존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어느 순간 뒤로 가면서 굉장히 넓어진다. <아워 뮤직> 같은 영화를 보라. 사회, 인류, 이런 거에 대해 너무나 고집스럽고 맑은 느낌이 느껴진다. 저 사람은 저렇게 안 해도 사적으로 멋을 부릴 수 있고 더 멋지게 나갈 수 있는데 왜 저렇게 투박스럽게 자꾸 고민할까, 나이가 들었는데도 투쟁의 끈을 놓지 않는구나, 그런 부분들에서 감동을 느낀다. 영화 매체의 실험도 계속하면서 주제나 소재 면에서 자기가 무엇을 다뤄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어느 정도는 주제넘은 말이지만, 나도 한 측면으로는 화가가 그림 그리듯 이미지라는 게 뭘까 뭘 재현할까, 카메라는 뭘까, 이런 문제가 많이 고민되고, 주제 면에서는 좀 더 예전보다 넓어지고 있구나 여겨진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자신이 생겨서 그런 건 아니고,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인가보다. 예전엔 남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남이 요구하는 대로 가야 성공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나이 들면서 그런 데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듯하다. 이런 변화, 스스로 마음에 든다.

2009/09/28 12:41 2009/09/28 12:41

2008년 3월이니 벌써 일 년 반 전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신동일 감독을 만나 단독 인터뷰란 걸 했다. 그간 누군가의 인터뷰에 따라가거나 한 적은 있었어도, 내가 내 이름을 걸고 혼자 인터뷰를 해서 기사를 쓴 건 처음이다. 무척 많이 떨렸고 긴장했다. 인터뷰는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됐고, 그걸 풀어서 기사로 쓰는 데만도 몇 일이 걸렸다. 그나마 "너무 길고 지루하다"고 1/3 가량이 잘렸다. 제목도 내가 아닌 데스크에서 붙인 것. 당시 신동일 감독은 두 번째 영화인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만들어놓고 1년이 지나도록 개봉 날짜를 못 잡고 있었다. 우연히 모니터링 시사회에서 영화를 본 후 만나서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반 년도 더 지나서야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잠깐 극장에 걸리는 둥 마는 둥한 모습으로 개봉했다. 그리고 신동일 감독은 세 번째 영화 <반두비>를 내놓았다. 약간 다른 이유, 좀 슬픈 이유로 화제작이 됐지만 흥행에선 여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만든 영화 세 편이 모두 우여곡절을 겪었고 고난의 시간은 길었다. 그러나 나는 이 고난들이 감독에게 오히려 큰 자산이 될 거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그 사이 신동일 감독은 스스로 '독립영화 감독'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갖고 사회적 사안들에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그가 차기 한국영화가 가장 주목해야 할 감독 중 하나라고 믿는다.

이 기사가 실린 프레시안 페이지는 여기다.


 2005년 첫 데뷔작 <방문자>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 뒤 영화계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던 신동일 감독은 2006년 두 번째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를 내놓았다. 이 영화는 2006년에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극찬을 받았고 크고작은 해외 영화제에 연달아 초청됐다. 그러나 <방문자>는 관객들의 자발적인 DVD 출시 청원운동이 벌어졌음에도 아직까지 출시되지 못했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개봉날짜를 잡지 못한 채 1년이 넘도록 표류하고 있다. 감독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잃어버린 1년'이 지나고도 구체적인 개봉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 다만 지난 2월말 서울 시내 한 극장에서 한정된 관객들을 대상으로 모니터 시사회가 열렸을 뿐이다. 평단과 영화제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음에도 극장 개봉이 이토록 어렵고 DVD 출시조차 용이하지 않은 바로 이 현실이야말로 '한국영화 위기론'의 진정한 본질이 아닐까. <나의 친구, 그의 아내>의 모니터 시사회장에 참석했던 프레시안이 신동일 감독을 따로 만나 비교적 긴 대화를 나눈 이유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어떤 영화?

명문대를 졸업하고 잘나가는 펀드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예준은 군대 시절 알게 된 재문과 그의 미용사 아내 지숙의 뒤를 봐주고 있다. 이들 부부는 예준의 도움을 받아 미국 취업이민을 준비하지만 재문이 삼촌에게 맡겨둔 이민비용을 날리게 되면서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한편 지숙이 미용박람회 때문에 파리에 가 있는 동안 예준의 실수로 재문과 지숙의 갓난아이가 죽고 만다. 지숙에겐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모든 죄를 덮어쓴 재문은 아이의 죽음과 사체 유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옥살이를 하게 되고, 지숙은 예준의 후원 하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마침내 재문이 출소하고 지숙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이들의 관계는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향해 치닫게 된다. <헨젤과 그레텔>, <세븐 데이즈> 등에 출연해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박희순이 재문 역을,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뉴하트>에 출연한 장현성이 예준 역을 맡았고, <메디컬 기방 영화관>으로 주목받은 홍소희가 지숙 역을 맡았다. 2006년 제작되어 그 해 부산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고, 이후 홍콩영화제와 카를로비바리영화제 등 해외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됐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정식 개봉을 하지 못한 상태다.



- 영화 개봉이 왜 미뤄지고 있는가?
이 영화의 배급사인 프라임엔터테인먼트에서 작년에 투자 혹은 배급한 영화들 성적이 신통치가 않아서 내 작품을 비장의 무기로 너무 아끼는 것 같다.(웃음) 하지만 최근 <세븐 데이즈>와 <더 게임>의 성적이 괜찮았으니 상반기 개봉이 가능하지 않을까. 어쨌든 한국 영화계 사정이 그만큼 안좋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 이미 해외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안다.
2006년 부산영화제 이후 홍콩영화제를 비롯해 체코 카를로비바리영화제, 미국 시애틀과 시카고, 호주 멜버른 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프랑스에는 판권도 팔린 상태다. 하지만 프랑스보다 국내에서 먼저 개봉됐으면 좋겠다.

- 2006년에 개봉됐던 <방문자>의 경우엔 DVD 출시가 늦고 있다. 못 본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에 수출돼 아마도 국내보다 일본에서 먼저 출시가 될 것 같은데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선 판권을 갖고 있는 회사의 여러 사정들이 얽혀 있는 것 같다. 극장에서 영화를 본 관객보다 DVD로 볼 관객들이 더 많을 것 같기에 빨리 출시됐으면 하고 있지만 상황이 풀리지 않고 있다. 아마도 늦어도 5월 초에는 나오지 않을까 싶다.

- <방문자>처럼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저예산 비상업영화 계열의 작품인가.
꼭 그렇지 않다. 제작비를 굳이 밝힌다면 정확히 11억 2천만원이 들었다. 다른 상업영화의 1/3 수준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그만큼의 영화적 비주얼을 만들어 냈다고 자부한다. (내 영화로서는 드물게) CG까지 사용한 영화다. 어쨌든 <방문자>의 예산이 1억 3천이었는데,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서 10배로 오른 셈이다.

- 영화가 상당히 '386스럽다.' 주인공들이 386세대여서 그런가? 궁극적으로 386세대의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가?
영화속 주인공들은 사실 386이라기보다는 그 바로 다음 세대(X세대라 할지 N세대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에 해당하는 나이다. 하지만 굳이 386뿐 아니라 더 젊은 관객들, 그리고 결혼을 했거나 아이를 낳아본 부부 관객들 역시 이 영화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 영화속에 <철학에세이>같은 책을 굳이 보여준 것은 뭣때문인가?
이 작품을 구상한 게 97년말 IMF가 터진 직후 모티브를 얻은 것이고, 한국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했던 그 때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더욱더 공공연하게 신자유주의화된 세상이지 않는가. 주인공 예준이가 예전에 운동권이었다는 사실이 키워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랬던 인물이 질주하는 자본주의의 가치에 종속되는 상징성으로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이 영화의 인물들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묘사들은 전적으로 386들이 가지고 있던 정서와 특징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볼 관객들의 연령층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이 영화에 설정된 맥락을 그렇게 볼 관객들도 있겠지만, 그것을 떠나 친구관계나 가족관계, 부부관계 부분을 유념해서 볼 관객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고, 다층적인 해석이 존재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꼭 그런 틀로만 이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 당신은 영화들이 386 영화로 굳어지는 것을 경계하지만, 전작부터 이번 영화까지 모두 386 먹물 지식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립구도가 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감독이 계속 붙잡고 있는 주제인 셈인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길 나도 바란다. 내 자신도 386, 먹물이다 보니 내 나이 또래나 비슷한 세대의 디테일을 묘사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내가 천착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지금, 여기'에 관한 이야기다. <방문자>는 바로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지나치게 홀대받고 억눌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저항을 표현한 영화였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역시 예준보다는 재문과 지숙 커플, 즉 민초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고, 여기엔 나를 비롯한 지식인에 대한 자기비판의 성격이 담겨져 있다.

- 인물들마다에 계급성을 부각시켰다.
그렇다. 일단 예준은 그 가족을 위해 보상을 하는 방법이라고는 금전적인 것밖에 모르는 냉혈한이다. 예준이 건네준 통장에 과연 얼마가 들어있었는지는 감독인 나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지숙은 사정을 모른 채 예준이 준 돈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비즈니스 우먼이 됐다. 미용실 계단에서 지숙과 공사하러 온 한국인 노동자, 이주노동자가 나란히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지숙이 과거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는 일종의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지숙이 한국인 인부나 이주노동자와 일종의 동질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주노동자의 경우 역을 맡은 배우가 이전에 연기 경험이 없는 분이라 결국 한 컷을 뺐기 때문에 약간 비약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약간 묘하면서 느낌이 있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 전작과 이번 작품 모두에서 칼 맑스가 언급된다. 칼 맑스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내 단편영화인 <신성가족>도 맑스와 엥겔스의 논문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대학 들어가고 나서 대부분이 그렇듯 광주 학살 등에 대해 알게 되면서 맑스를 접하게 됐는데, 맑스는 내가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 데에 지적, 정서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워낙 매도도 많이 당하긴 했지만 아주 인간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아이가 둘이나 굶어죽는 등 비극적인 개인사를 갖고 있기에 존경심뿐 아니라 연민이 함께 있다. 얼마 전 영국에서 한 여론조사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로 맑스가 꼽히기도 했지만, 맑스가 던졌던 문제의식은 요즘에 와서 더 유효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모두들 한물 갔다고, 철지난 이야기라고 얘기하지만 오히려 그 정신, 다르게 보는 시선은 여전히 필요하고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넣은 건 아닌데 하다보니 맑스에 대한 언급이 계속 들어간다. 이런 얘기를 하면 나더러 빨갱이라 할 사람들도 있겠기에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인터뷰에서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 2018년에 <칼>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200주년이니 의미가 있지 않을까. 국제적인 프로젝트로 해서 한 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때까지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점이다. (웃음) 인물 감정이입이나 어떤 이익을 배제하고 일방적인 미화를 하기보다는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맑스의 인간적인 결함이나 희극성 같은 걸 다루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 각각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 특별히 중점을 두었던 점들은 무엇인가.
영어로 표현을 해보자면 예준이가 changed, 즉 변질된 인물이라면 재문이는 not-changing한 인물, 즉 일관되고 우직하며 안전 지향적인 인물이고, 지숙이는 changing, 스스로 변화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런 식으로 범주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현대사회의 정치와도 관련되지 않나. 재문은 현상유지파고 예준은 타락한 인물이라면 지숙은 이런 걸 깨려는 인물이다.

- 화면에 불러오는 인물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사건이 벌어지는 건 현재이면서 항상 아이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미래가 함께 있다.
아무래도 에필로그에서 지숙이 임신하고 있는 장면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낀 것 같다. 진정 인간다운 사회가 도래하는 건 우리 세대에는 불가능하다 해도 다음 세대에서는 이뤄야 한다는 염원을 갖고 있다. 나도 한때 80년대 후반 학번으로서 이상을 외치기도 했지만 그것이 불과 몇 년 새에 이루어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람시가 얘기했듯 "지성으로는 비관적이지만 의지로 낙관하는" 것이 중요하고, 바로 이것이 내 작품세계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한국 감독들 중에서 나만의 차별성이기도 하고.

- 굳이 아이가 죽는다는 설정을 넣은 이유는 뭔가?
그냥 그런 상상을 했다. 잔혹한 상상인 것도 사실이고 약간 변태적이라 할 수도 있고. 나도 우디 앨런처럼 일 주일에 한번씩 정신분석을 받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웃음) 97년말에서 98년에 그 작품을 처음 구상할 때 이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다 싶어 2, 3년 그냥 묵혔던 아이디어다. 언제나 현실이 가장 센 것이고 현실은 상상을 압도하는 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2002년에 다시 그 아이디어를 꺼내면서 영화에 사용했다.

- 노골적인 출산 장면이 나온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기술적으로 편집 등을 이용해서 컷을 나누거나 해서 속이지 않나. 그런 식으로 눈속임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숙이 출산하는 장면이 있어야 이후에 드라마 전개나 인물의 심리 등이 설득력있게 다가올 거라 여겼다. 다소 비호감스러운 장면이긴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촬영하기도 힘들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지숙이 애를 잃고 나서야 아픔 등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 테니까. 이 영화가 상당히 관찰자적 시선을 갖고있기 때문에 일반 관객에게 불친절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데, 초현실적인 장면들도 있기는 하지만 출산 장면에서 사실적이었으면 했다. 실제로 내 딸이 태어났을 때 내가 직접 아이의 탯줄을 잘랐다. 출산 장면이나 목욕 장면, 모두 내 실제 경험에서 나온 디테일들이다. 솔직히 아내가 출산하는 순간 자궁을 직접 보진 못했다, 무서웠으니까. 그런데 영화는 그렇게 찍어버렸다.

- 배우들의 연기에 어느 정도 만족을 하는가?
박희순의 경우 내가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의 거의 전부를 표현해 내더라.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내가 손쉽게 오케이를 할 수 있었고, 내가 다른 걸 주문하면 그걸 그대로 해보이는 매우 흡수력이 강한 배우였다. 홍소희는 연기 경험과 절대적인 인생 경험이 적은 신인이라 촬영하기 전부터 처음부터 많은 대화를 했는데 그럼에도 매우 헌신적으로 열심히 해주어 좋은 결과를 보여줬다. 개인적으로 <방문자>로 강지환을 발굴한 것처럼 <나의 친구, 그의 아내>로 홍소희를 발굴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장현성의 경우는 처음에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 연기 톤이 많이 달라 당황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하다보니 장현성의 연기가 예준을 훨씬 더 인간적인 결점이 있는, 더욱 인간적인 캐릭터로 만들더라. 결국 장현성이 만드는 예준에 내가 수긍하게 됐다.

- 무명 내지 조연이었던 강지환과 박희순, 장현성, 홍소희 모두 주연급으로 성장하고 유명해졌다. 배우 발굴에 비법이라도 있는 것인가?
비법이 있다기보다는,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나한테 그런 안목이 좀 있는 것 같다. 이창동 감독님도 송강호나 설경구, 문소리 같은 배우들을 발굴하지 않았는가. 나 역시 앞으로 적어도 주인공 중 한 명은 반드시 신인으로 가겠다는 원칙을 지키고 싶다. 스타배우에게만 의존하지 말고, 신인 중에 좋은 배우를 발굴하는 것 역시 감독인 나의 책임 내지 의무라 생각한다.

- 당신 영화는 규정하기 어렵다. 어떤 장르, 어떤 스타일의 영화인가?
<방문자>에 코미디적 요소가 있고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는 스릴러 혹은 누아르적 요소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내가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은 다 일상적인 드라마 형식이다. 인생 자체가 하루는 코미디 같기도 하고, 하루는 신파 드라마 같고 하루는 미스테리하지 않은가. 인생 자체가 장르를 벗어나는데 하나의 장르로 승부를 보는 건 좀 아니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것도 너무 경직된 사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한번쯤은 장르영화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 두 작품을 했으니 좀 더 다양하게 해보고 싶은 게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스케일이 크건 작건 내 작품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 든든한 제작자와 지속적인 파트너쉽을 맺는 것이다. 이안 감독이 그렇게 성장한 것도 데뷔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예산이 어떻게 되든 책임져주는 제임스 샤무스라는 프로듀서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 그 이안 감독이야말로 대중에게 친절한 장르영화의 틀을 사용한 영화를 만든다.
그래서 나도 장르에 대해 생각이 많은데... 다만 내가 장르영화를 만든다 해도 내 색깔은 충분히 묻어날 것 같다. "신동일은 어떤 장르를 만들든 고유의 색깔이 있고, 이슈 지향적인 소재를 다루더라도 캐릭터 중심적으로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나가는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다른 평론가가 해준 적이 있다. 나만의 전복적인 시선이나 특유의 꼬기 같은 걸 보장해 준다면 얼마든지 상업적인 장르영화를 만들어 볼 의향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 중 코엔형제는 장르를 잘 활용하면서도 장르를 뛰어넘고 장르의 법칙을 변형시킨다. 그런 식이라면 나 역시 장르영화를 해보고 싶다. 문제는 내게 제임스 샤무스 같은 존재가 없다는 것이지만.

- 요즘과 같은 시대에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참 본질적이라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글쎄? 영화는 나한테 애증의 대상이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학교 졸업하자마자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영화를 시작했는가 하면 영화 때문에 인생에 환멸을 느껴서 영화를 포기한 적도 있다. 애증의 대상이고 극복대상이자 위기의 대상이고, 내가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에 파고들고 싶은 존재다. 아직, 잘 모르겠다.

2009/09/24 22:38 2009/09/24 22:38

케이트 윈슬렛이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드디어!

<레이첼 결혼하다>에서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 앤 헤서웨이나, 언제나 훌륭했지만 <다우트>에서 사람 정신을 멍하게 만들 정도로 특별히 훌륭했던 메릴 스트립이 있었지만, 사실 케이트의 수상은 올해 골든글로브에서 그녀에게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동시에 안길 때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기는 했다. 골든글로브는 아카데미의 예고편 격으로 상을 주는 경우가 많고 아카데미 역시 골든글로브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올해 골든글로브에서 케이트 윈슬렛이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여우주연상을,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로 여우조연상을 동시에 수상했을 때 "아카데미도 올해는 드디어 케이트 윈슬렛에게 상을 주려는 것"이라는 예측을 알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해온 터였다.

'드디어'란 말이 어울릴 수밖에 없는 것이, 케이트는 그간 숱한 영화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상과는 도대체 인연이 없어왔기 때문이다. 특히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가 더욱 그랬다. 그나마 그녀의 고국인 영국에서 주는 BAFTA상이나 영국 엠파이어 레코드지가 주는 상이나 좀 받았을까.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는 거의 같은 작품으로 후보에 올랐으나 매번 상을 수상하지 못 했다. <센스, 센서빌리티>(1995)로 여우조연상에 처음 후보에 오른 이래 <타이타닉>(1997), <아이리스>(2001), <이터널 선샤인>(2004), <리틀 칠드런>(2006)으로 2, 3년에 한번씩 노미네이트됐지만, 이번 2009년 6번째로 후보에 올라서야 비로소 수상을 했다. 사실 골든글로브에서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로 그녀를 여우주연상이 아닌 여우조연상에 올린 것도, 어쩌면 그녀에게 그간 주지 못했던 상을 한번에 몰아주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한 사람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케이트가 <더 리더>에서 맡은 역은 사실상의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골든글로브가 그녀에게 두 개의 상을 함께 안기는 걸 보며, 그간 케이트가 번번이 미끄러진 것에 조금은 안타까워하던 팬들도 이번에는 기대를 걸었던 터였다.

Kate Winslet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한 장면.


대체로 아카데미는 정말로 줘야 할 작품으로 상을 주기보다 번번이 '진짜 이 작품이다' 싶은 작품엔 안 주다가 나중에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작품에 공로상 격으로 던져주는(...) 예가 많았다. 최근 마틴 스코시즈가 <디파티드>로 감독상을 받은 것이 좋은 예다. 이번 케이트 윈슬렛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될 뻔했다. 무려 다섯 번을 물을 먹이고(그 사이 역시 훌륭한 연기를 펼쳤으나 후보에는 못 오른 작품들도 꽤 된다.) 여섯 번째에 상을 준 건데, 다행이도 이번 <더 리더>는 작품에 대한 호평과 함께 케이트가 '이번에도 역시 너무도 훌륭한 연기를 펼쳤다'는 평들이 들려온다. 다행한 일이다. 후보에는 못 올랐지만 이미 지난 주에 개봉한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도 그녀는 (디카프리오 팬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옆에서 혼신의 열연을 펼친 리어나도 디카프리오를 상대적으로 민망하게 만들 정도로 황홀한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사실 지리멸렬하고 뻔하며 지루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던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그토록 빛나는 생기를 불어넣어준 것도 케이트의 깊이 있는 연기였다.

물론 상을 못 받는다고 진가를 인정 못 받는 것은 아니다. 최근 좋아하는 것을 넘어 '존경'까지 하게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감독으로서는 그렇게 숱한 걸작을 내놨음에도 아직 단 한 번도 아카데미를 수상한 적이 없다. 아카데미가 이제껏 상을 얼마나 안 주었건, 케이트의 팬들은 케이트의 그 똑소리나는 주관과 언제나 훌륭한 연기 때문에 그녀를 아껴왔다. 나는 그녀를 처음 봤던 <센스, 센서빌리티>에서부터 순전히 연기 때문에 반할 수밖에 없었고(영화에 그녀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나는 "저 이상하게 생긴 여자는 대체 뭐야?"라고 반응했었다. 그 영화가 끝나기 전에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만), 심지어 나중에야 본 그녀의 데뷔작, <천상의 피조물>에서도 그녀는 훌륭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케이트의 연기를 보고서야 비로소 오필리어의 고뇌와 고통을 몸과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녀가 하비 키틀과 주연을 맡은 <홀리 스모크>가 다소 상업성이 떨어지는데다 '전신 누드'씬, '걸으면서 오줌을 누는 정면씬'을 이유로 국내에 수입되지 못했을 때 분노했었으며, <쥬드>에서 전신누드를 보여준 덕분에 여배우들의 노출한 몸에 대한 공포를 극복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나이도 젊으면서, 그녀는 언제나 나의 영화생활에 풍요로운 즐거움을 더해주었던 고마운 배우였다. 그것도, 나와 동시대 동세대의 사람으로서.

Kate Winslet

<로맨틱 홀리데이>의 한 장면.


그렇기에 나는 케이트의 수상을 마음 깊이, 진심으로 축하하고, 그녀가 들을 수 있건 말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내 일처럼 기뻐하고 싶다. 전국의 수많은 케이트 팬들 여러분! 우리 케이트 양이 드디어 상을 탔어요우~~~~~~!!!!!!!

Kate Winslet

작년 베를린영화제에서 <더 리더> 기자회견 당시. 꺄악, 이마 주름 때문에 더욱 너무 지적이셈.


2009/02/23 18:05 2009/02/23 18:05

Jodie Foster

스타에게 보내는 환호나 관심과는 별개로, 헐리웃은 특히 여배우에게 '배우'로서, '아티스트'로서 독립성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기보다는 '소비재'로 대하는 경향이 더 짙다. 프랑스에서는 웬만한 여배우들이 연출에도 한번씩은 손을 대는 것과 달리, 헐리웃에선 여배우 출신 감독의 숫자가 극히 드물다. 헐리웃의 남자배우들이 곧잘 감독으로 변신하는 것과도 퍽 대조되는 일이다. 그런 헐리웃에서 조디 포스터는 여러 젊은 여배우들의 우상이자 선각자였다. 그녀는 넘치는 재능과 빛나는 지성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천재소년 테이트>로 연출데뷔해 감독으로서도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다음 작품인 <홈 포 홀리데이>는 다소 주춤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배우 겸 감독으로서 멋지게 겸업을 해나갈 것이란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조디 포스터의 발목을 오랫동안 붙잡으며 '감독 조디 포스터'의 이름을 결국 희미하게 만들어버린 프로젝트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플로라 플럼 Flora Plum>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만약 내 기억이 맞다면 조디 포스터가 자신이 설립한 제작사 에그 픽쳐스에서 <플로라 플럼> 기획에 착수한 게 무려 1998년경의 일이다. 조디 포스터를 역할 모델로 삼으며 존경하고 있던, 당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조디 포스터를 본받아 예일에 진학했던 클레어 데인즈가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의 여주인공으로 낙점돼 있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캐스트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플로라 플럼>은 기타 캐스팅과 펀딩에서 삐걱댔고, 오랫동안, 정말 아주 오랫동안 '프리 프러덕션' 상태로 남았다가 결국 목록에서 사라지다가를 반복했다. 가까스로 어찌어찌 촬영에 들어는 갔으나 러셀 크로가 촬영 중 어깨를 다친 뒤 수술을 받으며 중단됐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지 못 했다.

그간 조디 포스터는 출산기를 제외하고 거의 쉼없이 일을 해왔다. 최근 4, 5년간도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일 년에 한 편씩 꾸준히 개봉했을 정도다. 2002년경에도, 2005년경에도 <플로라 플럼>은 다시 회자됐다 사라졌고, 작년경부터 다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후 소식은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고, 현재 imdb에는 2010년을 목표로 이 영화가 여전히 프리 프러덕션 단계라고 나와있다(새 창으로 열기). 물론 imdb에도 허위정보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영화가 언급되는 게 비단 imdb만은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렇게 오래 전 제작과 중단이 오가며 10년간 이름만 떠돌았던 프로젝트가 그래도 여전히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은,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제작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만큼 조디 포스터 필생의 역작이 될 가능성도 크다. 물론, 그 사이 나이를 먹어 더 이상 '소녀' 역할을 할 수 없게 된 클레어 데인즈가 떠났고, 러셀 크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며, 이후 다시 섭외된 메릴 스트립과 유언 맥그리거도 다시 떠났지만 말이다.

사실 클레어 데인즈는 오랫동안 <플로라 플럼>이 곧 촬영을 시작할 것이라 여기고 한동안 수많은 프로젝트를 거절했다. 물론 이 시기는 그녀가 예일을 다니고 있던 시기와도 겹친다. 그녀로서는 일단 공부에 매진하면서 <플로라 플럼>의 제작을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니 크게 손해본 것도 없겠지만, 그러나 이 영화가 엎어진 이 시기를 경유하고 그녀의 필모그래피가 조금 얇아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녀는 무수히 많은 작품들에 출연했지만, 인기 청소년 탤런트 출신에 무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영화에 데뷔하여 "자기 또래에서의 메릴 스트립"이란 격찬까지 들었던 배우치고는 작품운이나 비중이 그리 좋거나 크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지금도 여전히, 말이다.

<플로라 플럼>이 과연 어떤 모습을 띄게 될지, 과연 제작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인터넷에서는 이 작품의 진척사항이 도대체 어떻게 되고있는지, 최근 소식을 알 수 있는 곳이 없다. 추측하기로는 아직 구체적으로 현실화되지는 못했으나 조디 포스터 자신이 미련을 놓지 못해 계속 떡밥을 던지고, 그때마다 언론에 언급되는 게 아닐까 싶다. (작년 3월경에도 조디 포스터는 EW와 인터뷰 도중 <플로라 플럼>에 대한 의욕을 말하며 떡밥을 던졌다(새 창으로 열기). EW만이 아니라 MTV하고도 비슷한 얘기를 했던 듯, MTV 블로그에 올라온 글(새 창으로 열기)은 조금 더 자세하다.) 아무리 유명 감독이나 배우가 붙었다가도 충무로에서만큼이나 헐리웃에서도 영화가 엎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최근 개봉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10년을 넘게 시나리오가 떠돌다가 마침내 영화화되는 경우도 그리 적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플로라 플럼>이 그 오랜 시간을 거쳐 마침내 극장에 걸리게 될 가능성도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 되도록이면 너무 늦지 않게, 감독 조디 포스터의 세 번째 연출작 <플로라 플럼>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이 작품뿐 아니라 조디 포스터의 다른 연출작 역시 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는 바다. 그녀는 미국의 여배우들뿐 아니라 한국의 수많은 평범한 30대 여성들에게도 역할모델이다.



ps. 이곳(새 창으로 열기)에 가면 스티브 로저스가 쓴 시나리오에 대해 다윈 메이플라워라는 이가 작성한 리뷰를 읽을 수 있다.

2009/02/20 01:43 2009/02/20 01:43

<프로스트 vs. 닉슨> 글을 쓰던 와중 우연히 샘 록웰의 필모를 보다가 척 팔라닉의 소설 <질식>이 작년에 영화화되었다는 사실을 발견. (알라딘 책 소개 페이지(새 창으로 열기) 참조, 관련 imdb 페이지(새 창으로 열기) 참조.) 척 팔라닉은 데이빗 핀처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파이트 클럽>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다. 감독은 클락 그렉, <아이언맨>의 콜슨 요원을 비롯해 다양한 TV물 및 영화에서 조, 단역으로 출연했던 배우로, <질식>이 연출 데뷔작이라고 한다. 작년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된 뒤 각종 영화제를 전전하다가 9월쯤 뉴욕과 LA에서 한정개봉된 모양인데, imdb 평점이 비록 5천 명 가량만 투표한 것이긴 하지만 꽤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영화의 주연을 샘 록웰이 맡았다는 것. 샘 록웰! 샘 록웰!

Choke

깔끔한 포스터.

배우들도 감독도 별로 유명하지 않으니 국내에 들어올 리는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어떤 미친 영화사가 이 영화를 수입해 준다면 반드시 장문의 리뷰를 써바치겠다. 물론 글쟁이의 양심상 칭찬만으로 도배하리라는 약속은 못 하겠고, 영화가 영 거지같다면 욕과 악담으로 점철되더라도 반드시 장문의 리뷰 자체는 쓰겠다는 얘기인데, 영화제를 그리 전전한 데다 작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무려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면 영화가 엉망일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을까. 영화가 남들 보기에 영 괴악한 정서를 담고 있다 해도, 그건 원작 자체가 그래서일 테고, 내가 척 팔라닉을 좋아하는 것에는 그 괴악한 정서에 대한 이해와 호감이 포함되는 것이니... 정 수입이 안 된다면 해외 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아마존에서 주문을 하더라도 DVD로 볼 궁리를 하겠지만, 기왕이면 국내에서 자막을 입힌/쏘는 필름으로 정식 극장에서 보고 싶은 게 영화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인지라. (아니면 영화제에서라도.) 근데 이런 스펙의 영화면 부천이나 전주영화제 같은 데에서도 충분히 틀 만한데, 올해 전주에 기대를 좀 걸어볼까. (참고로 네이버 영화페이지에서는 <초크>라는 제목으로 소개(새 창으로 열기)하고 있다.) 영화사든 영화제든, 제발 굽신굽신...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 목에 걸려 다 죽어가는 척을 하면 반드시 나타나곤 하는 익명의 불특정한 은인들에게 빌붙여 살아가는 사기꾼 섹스중독자의 이야기, 라고, 책 소개 페이지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읽은지 오래돼서인지 척 팔라닉 소설들을 한번에 몰아서 읽어서였는지, 도무지 내용이 기억이 안 나네.) <파이트 클럽> 덕에 국내에도 나름 인지도를 얻은 덕에 척 팔라닉의 소설(새 창으로 열기)은 [파이트 클럽]은 물론 [서바이버], [인비저블 몬스터], [질식], [자장가], [다이어리]까지 소설이 출간됐으나 판매가 영 부진해서인지 이후 작품들은 모조리 미출간 상태다. 책세상의 메피스토 시리즈에 감사한 건 다분히 척 팔라닉 소설을 계속 내준다는 것 때문이었는데... ㅠ.ㅠ (아니 근데 [파이트 클럽]은 판권이 언제 책세상에서 랜덤하우스로 갔담? 설마 랜덤하우스에서 척 팔라닉 소설 전권을 다시 내준다는 건 아닐 테고...? 번역자는 여전히 최필원 씨다...?)

2003년작인 [다이어리]가 국내에선 2005년에야 출간된 예가 있기도 하지만, <파이트 클럽>도 척 팔라닉도 이제 슬슬 이름이 잊혀져가는 분위기인지라 (20대 초중반 중 <파이트 클럽> 본 사람?? 이 영화는 일단 보면 열광하게 돼있는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도 열광을 안 한다면 나와 친구될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일 수도?), [Haunted]와 [Rant], [Snuff]가 국내에 출간될 가능성은 예전보다 확실히 적어진 듯하다. 미국에선 지금 올해 4월쯤 나올 예정이라는 [Pygmy]의 예약판매에 들어간 것 같던데... 하긴 후반으로 갈수록 척 팔라닉의 소설이 다분히 선정적인 소재주의로 가는 듯한 느낌이 있긴 했다. 그럼에도 [다이어리]는 매너리즘에서 한결 벗어난 작품으로 보였고. (아니면, 혹시 매너리즘의 끝장을 본 책일수도? 이건 [Haunted]를 봐야 답이 나올 듯.)

영화 스틸들을 본다.

2009/02/17 14:44 2009/02/17 14:44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 (김명민)

강마에는 2008년 드라마들에 나왔던 캐릭터 중 가장 엽기스러운 인물이다. 그의 독설은 듣는 사람이 기어이 울면서 뛰쳐나가게 만들고, 안하무인과 독선과 거만함은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도 그의 막가는 말은 무지막지한 설득력을 주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새 절대적인 충성과 애정을 자발적으로 바치게 만든다. 급기야는 드라마가 덜컹거리고 주변 캐릭터들이 다 망가지는 와중에도 드라마 전체를 구원해 버린다. 이건 모두 김명민 때문이다. 김명민 덕에 강마에는 사악하고 교활한 악당으로 등장한 뒤 혐오 대신 환호를 받았다. 결국은 속 모르고 어리석은 주변 중생들의 부당한 비난과 배신을 묵묵히 감수하고 홀로 십자가를 지며 중생을 구원하는 예수가 됐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의 마력에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그렇게 뛰어난 미남은 아니다''라고 애써 강변하며 그를 깎아 내리려 해봤자 소용없다. 그는 손 한 번 잡는 것으로도 처녀를 잉태하게 만들만한 남자다.

<달콤한 나의 도시> 오은수 (최강희)

베스트셀러였던 정이현의 동명소설이 드라마화 되면서 주인공으로 최강희가 낙점 됐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의 우려는 그녀가 너무 예쁘다는 거였다. 털털하고 엉뚱한 개구쟁이 소년과 더없이 귀엽고 낭만적인 소녀의 이미지를 함께 가진 그녀의 독특한 매력은 30대에 진입해도 철이 없다거나 주책으로 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에선 어른으로 대접과 기대를 받지만 자신은 스스로를 여전히 10대의 ‘애’처럼 여기는 30대 여자들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심리를 가장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는 특징이 된다. 과연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오은수가 된 최강희는 지금의 30대를 사는 여자들의 가족과 일, 사랑에 대한 고민을 대변해줬다. 이선균과 지현우를 오가며 30대 여자들의 연애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대신 충족시켜 줬고, 성격이 극단적으로 다른 친구들인 진재영과 문정희 사이를 적절히 조율하며 ‘여자들의 우정’에서 의리의 축을 받쳤다. 그러면서도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 참 사랑스러운 그녀다.

<그들이 사는 세상> 정지오 (현빈)

현빈은 여느 귀공자 타입의 미남들과 달리 이상스러운 현실감이 있다. 그렇기에 브라운관이 됐든 스크린이 됐든 언제나, 반쯤은 허구와 판타지의 세계에, 반쯤은 현실 세계에 어정쩡하게 발을 걸친 듯 불안해 보였다. 여자들의 욕망과 환상을 체현해 주는 비현실적인 기표로 소비되는 와중에도 다른 뉘앙스를 만들어내곤 했다. 단순히 ‘대상’으로만 남는 걸 완강히 거부하는 듯한 고집스러운 면모를 종종 내보였다. 게다가 타고난 목소리와 또렷한 발성 덕에, 입만 열면 ‘깨는’ 다른 젊은 배우들과 더욱 달랐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야 현빈은 마침내 현실에 착지해 땅에 굳게 발을 붙이고 섰다. ‘주준영(송혜교)의 성장담’이기도 한 이 드라마에서 현빈이 연기한 정진오정지오는 준영의 ‘롤 모델’로서 여전히 ‘대상’이자 기표로 존재하면서도, 이상적인 면모들 속에 지극히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를 함께 가진, 정말로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보인다. ‘배우 현민’의 앞으로의 모습이 더욱 기대가 되는 건 이 때문이다.

http://premiere.elle.co.kr


1. 작년 드라마 결산 최고의 캐릭터/배우에 대한 글 중 내가 쓴 것들. 어쩌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쏙쏙 골라 쓰게 됐다.

2. <그들이 사는 세상>의 현빈 캐릭터 이름이 '정진오'라 돼 있는 건 아무래도 편집상의 실수... 인 줄 알았는데 보낸 원고 확인해보니 어머나! 오타 낸 게 그대로 실렸어! 이런 민망할 데가!! '정진오'가 아니라 '정지오'가 맞다. ㅠ.ㅠ

3. <베토벤 바이러스>가 탄탄한 작품성을 자랑하는 드라마라는 데에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는 충분히 사랑스러웠고 <그들이 사는 세상>은 (아마 가장 최근 방영됐단 이유가 크긴 하겠지만) 작년 드라마 중 나의 베스트이기도 하다. 노희경 식 내레이션은 이제 너무 넘친다 싶어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생생하게 손에 잡힐 듯한, 정말 내 옆에 살고있는 사람들인 것만 같은 그 진한 사람냄새에 진심으로 감동하고 울고 웃었다. 그래, 모름지기 드라마란, 이래야 한다.

4. 김명민 글 마지막 문장에 대해 디씨 김명민 갤 사람들 일부가 열광적으로 반응해줬는데, 사실 강마에가 두루미의 손을 잡았던 그 씬에 대한 나름의 오마쥬이다. 물론 팬들이 그걸 모를 리는 없을 거고, 그 반응들 보니 너무 재밌고 즐겁더란.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가 공식 매체에서 칭찬이나 찬사를 듣는 걸 싫어할 팬이 어디 있으랴.

5. 수많은 배우님들, 올해도 수많은 작품들로 우리를 웃기고 울려주세요.

2009/01/15 17:50 2009/01/15 17:50

고고70

조승우 메인의 티져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의 포스터를 가지고 포스팅을 한 건 이 블로그 역사상 이번이 처음인데, 그 이유는...


님들하 너무 심하잖아염!!!!!!!


요즘 마케팅하는 언니들 무서워효. 여자 관객들이 어디에 낚일지 너무 잘 알아.......

이건 뭐 그냥 테리우스의 현현이 아닌가 ㅠ.ㅠ 안그래도 밤 꼴딱 샜는데 나 하루종일 일 못 하고 잠 못 잔다으아으아으

아윽 저 눈 좀 봐! 입꼬리 좀 봐! 아침부터 보도메일 확인한다고 메일함 열었다가 깜딱 놀라서 심장 멎을 뻔했어...

2008/07/14 10:02 2008/07/14 10:02

네오이마주의 네오plus에 6월 10일 실렸던 글인데, 네오이마주에서는 블로그로도 글을 서비스하는 고로 여기에는 그냥 링크만 매답니다.

나와 배창호 영화 : 배창호의 영화를 보며 얻은 사적인 깨달음들 (혹은 여기)


1.
내게는 '옛날 한국영화'에 대한 아주 안 좋은 편견이 있어서, 그러니까 7, 80년대 한국영화들이란 죄다 섹스, 섹스, 섹스만 부르짖는 촌스러운 영화들인 줄 알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무렵까지 살던 곳은 지금은 집창촌의 폐허로 변해버린 미아리 근처로, 판자집을 겨우 면한 여인숙들과 그 여인숙을 개조해 월세를 놓았던 다 쓰러져가는 집들로 가득한 미로 골목들 사이에 있었다. 꾀죄죄한 뒷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동네 동시상영관 포스터는 언제나 옷을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기묘하고 야릇한 포즈로 서 있는 여주인공의 사진에 덕지덕지 성적인 농담의 낙서글이나 낙서그림이 그려져 있기 일쑤였다. 학교를 가기 위해 언제나 지나쳐야 했던 골목 어귀의 그 포스터들을 보면서 나는 남자들이 여체를 대하는 시선을 배웠고, 동시에 여성이라는 내 성에 대한 혐오감을 키웠다.

... (하략)


이 글의 반 이상이 배창호와 별로 상관이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도배돼 있는 것은, 네오이마주 밑에 달린 고마운 댓글에도 드러나다시피 배창호 감독이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군림하던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여성' 영화팬들에게는, 일반적으로 얘기되는 보통 영화팬들과는 다른 경험과 다른 영화적 자장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기록해두기 위해서입니다. 얼마 전 영진공의 철구님께서도 동시상영관의 추억에 대해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만, 사실 한국의 많은 영화팬들이 이 동시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노라, 나의 영화적 시작은 사실 대단히 고상한 고전 걸작이나 우아한 영화들이 아니라 홍콩무협 / 홍콩누아르 혹은 에로영화였노라, 그리고 실은 바로 그것이 영화의 본질이라 생각한다는 식의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이미 중견이 된 영화평론가나 이론가, 감독 등뿐만이 아니라 좀더 젊은 일반 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일반'으로 얘기된다 한들, 어디까지나 '남성영화팬들 일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전 여기서 남성과 여성을 가르려는 의도는 없으며, 모든 남성영화광들의 시작이 그러했고, 모든 여성영화광들의 시작이 그렇지 않았다고 얘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대부> 시리즈를 호러 장르의 그 어떤 호러영화보다 무섭게 여기고, 에로영화들에 대해 불편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건 제가 지나치게 예민하고 꽉 막힌 사람이어서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단적으로, 80년대 후반에 예컨대 <스카페이스>와 <산딸기> 시리즈가 동시에 상영되고 있는 동시상영관에 입장을 한 여고생이 있다면, 이 사람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학생들보다 훨씬 더 큰 용기를 내야 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과연 이견이 있을까요?

영화적 추억을 기록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재개봉관 혹은 동시상영관의 추억이, 실은 여성을 배제한 남성들만의 문화였고, 이것이 지금 현재 여성평론가와 여성이론가의 입지가 좁은 이유와 어떤 식으로도 연결이 된다면, 그런 식의 '일반적인' 경험 외에 다른 경로의 경험은 적극적으로 다시 기억되고, 발굴되고, 기록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전 이렇게까지 배제당한 경험으로 과연 여자인 내가 영화글쟁이는커녕 제대로 된 영화팬으로 인정이나 받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드는 때가 있곤 하거든요.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것 때문에 꽤 자괴감도 컸고요. (거울 앞에서 you talkin' to me?를 따라하며 쿨하다고 여기는 남자애들 심리를 30대 초반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

뭐, 사회문화적, 그리고 시대적 환경이 그렇게 주어졌었고, 거기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어떤 현상을 가지고 제가 열등감을 갖거나,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어떤 일이 있었고 이것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식의 영화문화는 대체로 남자들의 문화였다" 정도의, 보편을 특수로 드러내는 일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또다른 특수의 경험들을 늘어놓고 발굴하는 것... 원래 영화비평의 역사가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당대엔 쓰레기 취급을 받은 것의 가치를 발굴하고 드러내는 것, 혹은 기존의 평가에 대한 재평가, 등등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성인 제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영역은 또 따로 있겠지요. 예컨대 멜러드라마나 로맨틱 코미디, 특히 스크루볼 코미디가 실은 계급과 젠더 차이에 관해 어떤 코멘트를 하고 있었나 등을 밝힌 선배 페미니스트 평론가들처럼요.


배창호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특별전 당시 배창호 감독.


하여간에... 저 '동시상영관 문화'가 아주 일반적이었던 80년대는 배창호 감독이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이름을 날리던 시기였고, 그 시절에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던 저는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견 평론가/이론가/감독들보다 밑의 세대입니다. 여성일 뿐 아니라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영화적 자장 역시 꽤 다릅니다. 단적으로 전 독일문화원이나 프랑스문화원 등의 문화원 세대가 아니라 PC통신 세대거든요. 2000년대 들어, 이제 나름 안정화된 시네마테크에서 배창호 감독의 영화를 보며 80년대를 기억 속에서 재구성해보자니, 제가 앞으로 가야 할 어떤 방향성 같은 게 좀 그려지더군요. 여러 모로 이번 아트시네마에서의 배창호 특별전은 제게 아주 특별한 경험과 방향을 제시해주는 듯합니다.

2008/07/03 00:13 2008/07/03 00:13
요즘 한국영화 언론시사회들은 언제나 무대인사와 기자간담회를 겸한다. 영화 시작 전 감독과 배우가 무대에 나와 인사를 하고 영화 끝난 뒤에는 포토타임을 가진 뒤 기자회견 비스무리하게 질문과 답이 오고간다. 별로 재미는 없지만 열심히 받아적기는 한다.

포토타임 때, 보통은 감독+배우, 배우들만, 그리고 배우 독사진을 찍게 되는데, 기자들이 앞을 가득 메우니 배우들은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서서는 왼쪽부터 오른쪽 구석까지 혹은 그 반대로, 차례로 골고루 시선을 주며 사진을 찍게 된다. 스타대접 받는 배우들은 물론이고 매니지먼트사에서 열심히 쇼맨십 훈련받는 신인들도 잘 하는 이게, 황정민은 영 익숙치 않은지 어째 플래시가 계속 터지자 상당히 어색해 하더라는. 게다가 독사진을 찍을 때 포즈와 시선 같은 거에 신경 쓰면서 너무 긴장했나보다. 팔이 마치 로봇팔처럼 뻣뻣하게 경직된 채 앞으로 뻗어나와 있더니 점점 더 굳고 조금씩 올라가더라는. 기자들이 지적을 해줘서야 화들짝 자기 팔을 보고 놀라선 내리고 쑥쓰러워하던 황정민 아저씨, 솔직히...


너무 귀여웠다! 꺄악!



로봇 팔 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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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와 시선처리에 골몰하느라 팔은 점점 더 로봇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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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지적에 비로소 깨닫고 쑥쓰러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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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부턴 아예 손을 모은 채 조신한 포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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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만하면 괜찮죠? (멋져요~ >.< )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강수로 출연할 때부터 확 눈에 들어왔던 이 남자는, 비록 그때만 해도 아직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아 대사 타이밍과 리듬이 어설프고 연극적인 과도한 연기를 선보이긴 했어도 굉장히 에너제틱한 데다 캐릭터 특유의 '순박함'을 너무 절절이 표현해줘서 그만 쾅(Crush!)! 반하고 말았던 배우다. 이후로 카메라 앞에서의 그런 '기술적' 부분은 너무 쉽게 익힌 후, 결국은 그리 오래지 않아 주연급 배우가 됐다. 우직한 성실함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개인적으로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단순무식+순진한 형사로 나왔을 때의 모습을 참 좋아한다.  워낙 에너제틱한 배우라 그가 맡는 캐릭터들은 대체로 굉장히 '영화적'이고 '허구적인' 측면이 많고 그는 그런 캐릭터를 굉장히 개연성있고 믿음직하게 그려내는 배우지만, 그리고 그의 재능을 도드라지게 하는 건 분명 그런 캐릭터들이 나오는 영화였지만, 좋아하는 배우들은 일단 무조건 멜러 한 편은 찍기를 바라는 취향에다, <우리 생애..>의 캐릭터는 황정민에게 '참 쉽고 편안하고 즐거운 옷'처럼 보였다.

사실 <검은 집>에서의 연기는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실망'. 그러나 그의 필모그라피엔, (언제 개봉할지 몰라도) 허진호 감독의 영화가 있다.

2007/06/16 10:12 2007/06/1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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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rigo Santoro


<300> 감상문 쓸 때 붙일 그림 찾다가 이 사진 보고 저 눈이 번쩍 떠질 만큼 잘생기고 흐뭇한 왼쪽 남자가 누굴까, 했었는데, 로드리고 산토로라는 배우군요. 왼쪽부터 차례대로 로드리고 산토로, 잭 스나이더 감독, 그리고 리오나이다스 왕 역의 제러드 버틀러.

로드리고 산토로, <러브 액츄얼리>에서 칼 역으로 나왔고(그왜, 로라 리니 - 오빠가 요양소에 있는 - 가 좋아하던 회사 동료), <300>에서 맡은 역할이...




크셰르크세스였다는군요.




아아아 황제님, 당신은 정녕 이런 분이셨군요. ㅠ.ㅠ (황제님의 미모에 경배를!) <러브 액츄얼리> 출연 때 아니 저이는 사무직치고는 위험할 정도로 색기가 나오는 사람인걸? 하면서 눈에 담아뒀었는데, 아아아 정말 마음에 드는걸요. 게다가 이 친구 75년생이래요. (역시 남자나 여자나 30대부터 진짜 멋이 나기 시작한다니깐요.) 아랫사진은 아마도 [피플]지인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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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7 17:40 2007/03/27 17:40

3월도 반이 지나간 상황이지만, 스스로 정리한다는 목적도 크므로 이제라도 써서 올린다. 3월은 신학기라고 다들 정신없는 시기라 비수기이지만 역시나 좋은 작은 영화들이 정신없이 개봉되는지라 영화 좀 본다 하는 사람들은 미친 듯이 바쁜 시기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일년 중 2~4월이 통째로 그런 시기이다. 개봉되는 영화를 다 따라잡으려면 하루에 한 편씩 봐도 부족하다. 거기에 시네마테크 등의 각종 작은 기획전까지 하면 더욱. 이번 달에는 빔 벤더스 특별전도 있다.


3월 첫째주

<좋지 아니한가>는 한국사람들이 아직은 직면할 용기가 없는 질문을 다룬 영화라 생각하는데 역시나 흥행성적이 좋지 않다. E양이 영화의 지독한 가부장적 시선을 지적했는데, 한국은 가족을 '아버지'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이 주제를 다룬 영화들은 앞으로도 계속 가부장적일 것이며 대안가족에 대한 진정 혁명적인 영화는 여자감독한테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E양의 얘기를 듣고서야 이 영화가 '지독하게 가부장적 시선'임을 느끼면서 나 페미니스트 맞아? 했더랬다. ㅋㅋ) 한니발 렉터 박사가 어쩌다 식인종이 됐는지 별로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 안소니 홉킨즈의 한니발 렉터만으로 충분히 좋으니까. (케이블에서 해준 <양들의 침묵>을 다시 보니 새삼 어찌나 명작인지. 게다가 이 영화,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보다 더 근사한 '새내기 직장 적응기'가 아니던가.) 가스파르 울리엘의 미모에 대한 칭송이 높지만 역시 선뜻 내키지가 않더라는. 휴 그랜트 - 드류 베리모어의 로맨틱 코미디라면 당연히 극장 달려가 봐줘야 하지만, 윌 스미스 부자가 주연을 맡은 <행복을 찾아서>는 딱 미국식 휴먼 드라마일 듯. 아오이 유우가 훌라춤을 추는 <훌라걸스>, 아르노 데스플레생 감독의  <킹즈 앤 퀸>이 개봉하고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재개봉을 했다.


3월 둘째주

<프레스티지>와는 다른 방향에서 19세기 마술을 소재로 하는 <일루셔니스트>는 마술사 아이젠하임의 절절한 사랑이 주 테마다. 스티븐 밀하우저의 원작소설을 매우 궁금하게 만드는 영화. <레퀴엠> 이후 정말 오랜만에 차기작을 찍은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천년을 흐르는 사랑>은 8년만의 프로젝트 완결 - 끔찍한 흥행실패로 계속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원작을 영화화한 <마미야 형제>가 스폰지에서 개봉했고, <나크>의 조 카나한 감독이 만든 <스모킹 에이스>는... 아아 말을 말자. 그렇게 총알이 난무하고 사람이 날아다니는데 나는 보다가 잠이 들었다는.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봄의 눈>, <나비효과>의 속편인 <나비효과 2>는 어떤 영화인지 궁금증조차 생기질 않는다.


3월 셋째주

개봉 전 그닥 평이 좋지 않았던 감우성, 김수로의 <쏜다>는 <바람의 전설>의 박정우 감독의 두번째 영화. 사실 이보다는 테르모필레 전투를 그린 <300>과 지각개봉하는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씨 인사이드>가 훨씬 궁금하다. <300>은 원작 만화의 프랭크 밀러 외에도 <새벽의 저주>로 빠른 좀비액션의 쾌감을 꽤 잘 표현한 잭 스나이더 감독에게도 기대가 있기 때문. 에드워드 노튼의 영화가 두 주 연속 개봉하는 건 노튼 팬들에겐 꽤 즐거운 일. 서머셋 모옴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페인티드 베일>에는 나오미 와츠다 나온다.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홀리 마운틴>, <엘 토포>가 무삭제에 HD 복원판으로 개봉하며, <빌리 엘리어트>의 마라톤 버전이라는 <리틀 러너>도 함께 개봉.


3월 넷째주

항간에 '폭탄'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개봉이 계속 늦춰졌던 <수>가 드디어 개봉한다. 작품성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관객들에게 폭넓게 어필하며 흥행에 성공할 만한 영화가 아니어서 폭탄이라는 게 아닐까 짐작한다. 예고편은 꽤 괜찮아 보였고, 최양일 감독에 대한 이상한 신뢰 - 영화 한 편 본 적 없음에도 - 가 있어서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 수상작 <타인의 삶>도 평이 꽤 괜찮던데, 아이디어가 꽤 끌리는 <넘버 23>이나 쥐스킨트 원작의 <향수>도 꽤 궁금한 영화들. 브래드 피트한테 어처구니없이 차인 직후에 찍은 제니퍼 애니스톤 주연의 <브레이크업 - 이별후애>는 빈스 본과 영화 찍으면서 실제로 사귀었다는 소문이 있더라만 지금은 아마 깨지지 않았나? 섹스로 연결된 좁은 인간관계망을 다뤘다는 <내 여자의 남자친구>, 국산 애니메이션 <빼꼼의 머그잔 여행>도 이 주에 개봉한다.


3월 다섯째주

차승원, 유해진 주연의 <이장과 군수>는 투톱 코미디로 영화를 포장하고 있는데 새삼 '농촌 코미디'라는 점에서 관심이 간다. 예전 <선생 김봉두>에서도 그랬지만 장규성 감독이 중심은 코미디이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의 상황을 '슬쩍' 까는 솜씨가 좀 얄미우리만치 미끈했던지라. 윤제균 감독이 장규성 감독을 벤치마킹하는 듯한데 음. 박용우, 남궁민 주연의 <뷰티풀 선데이>는 예고편을 봤는데도 도대체 무슨 영화인지 감이 안 오더라. 포스터 보고 퀴어물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든 영화내용 안 보여주려고 용 쓰는 게 이해가 갈 것같기도 하고... 개봉일 못 잡고 여러 달 방황하던 폴 버호벤 감독의 <블랙북>도 이 날 개봉하고(아니 어쩌다 폴 버호벤이 이런 신세가 됐어?), 인간 복제를 피아니스트 모녀(자매?)간 스릴러로 풀어냈다는 <블루프린트>도 개봉하지만, 특히 주목하고 싶은 영화는 김명준의 <우리 학교>와 거스 반 산트의 <말라노체>. 거스 반 산트와 이쯤해서 화해(?!)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 든다. <올 어바웃 안나>는 어떤 영화인지 잘 모르겠다. 간만의 덴마크 영화라는데...

2007/03/20 05:00 2007/03/20 05:00

여전히 밀린영화 왕창왕창 개봉하고, 그 와중에 영화들이 또 밀리는 상황이 반복된다. 두번째주 영화 개봉하는 시점이 돼서야 이 글을 올리는 것도 영 뒷북이지만 어차피 나야 뒷북인생. 그간 좀 바빴다. 이젠 나이가 나이니 일한다고 밤새는 게 여엉 힘들더라는. 그래도 어째 백수기간에 알바가 꼬박꼬박 들어오고 있다. 이렇게 맘 편한 백수시절은 처음인 듯. 역시 난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이고,  워커홀릭이고, 바쁠 때 행복하다.


2월 첫째주 (2.2)

액션도 되고 로맨스도 된다며 좋아했던 멜 깁슨의 정체가 그런 거인 줄은 그가 감독을 하고서야 알았다. 아, 매력없어. <아포칼립토>는 위대한 마야문명의 멸망을 다루는 영화라는데, 미국에선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많은 논쟁을 낳았지만 한국에선 잠잠하다. 멜 깁슨이 미국에서 인기있는 이유는, 한국에서 딴나라당이 지지표를 많이 얻는 이유와 대강 비슷한 것같다. 박진표의 <그놈 목소리>는 계절도 우울한데 영화도 부담스러워서 안 될 줄 알았다. 웬걸! 이제 박진표 감독은 흥행감독이다. 좋겠다. 우디 앨런 영감님의 <스쿠프>는 기대하고 기다리던 영화인데 정작 우라지게 바빠서 여태 못 보고 있다. 스칼렛 요한슨을 너무 좋아하는데, 우디 앨런이 이번엔 그녀의 '푼수 털털 톰보이' 매력까지 끄집어내줘서 즐겁다. 미국에선 되지만 한국에선 안 되는 코미디언, 애덤 샌들러의 비밀은 뭘까. 솔직히 애덤 샌들러의 티켓파워를 전세계에 확인시켜준 <웨딩싱어>에서도 난 별로였다. 그저 드류 배리모어가 좋더라고... 아이템은 꽤 기발하다. 이런 아이템으로 한국영화 기획을 해야 한다. 인디전문관들에서는 <클럽 진주군>과 <노리코의 식탁>을 개봉했다. <클럽 진주군>, 해서 난 무슨 꾀죄죄하고 지저분한 이미지를 상상했는데 그게 아닌 듯싶다. 스틸 하나 보고 궁금증이 팍 이는 영화. <노리코의 식탁>은 별 관심이 안 간다. 최근 몇 년간 부산영화제 중심으로 자칭 영화광들이 와~ 하고 몰려가는 영화, 특히 일본영화는, 나한테는 있던 관심도 뚝뚝 떨어지는 영화다. 나 독선적인 꼰대 돼가는 거, 맞다.


2월 둘째주 (2.9)

신인감독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의 시스템이 너무 정착돼 버린 한국 영화계에서, 7년만에 두번째 작품을 찍은 감독이라면 작품 완성도와 상관없이 일단 봐줘야 한다. <행복한 장의사>의 기억을 생각해보면 장문일 감독의 두번째 영화 <바람피기 좋은 날>도 좀 밋밋할 거 같긴 한데, 예고편을 꽤 경쾌하게 잘 뽑아놓은 거 같아 기대중이다.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은 아이템이 꽤 재밌는데, 쓱 보니 평은 영 별로인가베. 애초에 쌈마이 영화를 찍기로 했으면 쭈욱 쌈마이 유지하는 게 좋다. 그리고 뽕빨을 뽑아야지, 끝까지 가야지. 키넌 웨이보리처럼 말이다. 이런 류 영화들은 바보 소리 듣기 싫어서 꼭 중간에 어정쩡하게 '나도 평범하게 교육받고 알 거 아는 사람이거든'이란 말을 내뱉으려 안달한다. 그거 좀 짜증이다. 쌈마이 영화, 만들면 안 되나? 그리고, 좋아하면 안 돼? 어차피 아트영화들 보러가지도 않을 사람들이 자기가 재밌게 본 영화 남이 욕하면 눈뒤집어져서 지랄하는 거 보면 좀 그렇다. 마치 자기가 좋아한 영화는 멍청한 영화가 아니라는 듯이... 멍청한 영화 상당수를 좋아하는 나는 그럼 뭔지. 줄리아 로버츠의 <샬롯의 거미줄>도 아니고 다코타 패닝의 <샬롯의 거미줄>인 건 생각해 보면 좀 재밌다. 극중 샬롯은 줄리아 로버츠인데. 근데 다코타 패닝이 워낙 난 애라서. <우주전쟁>에서 빽빽거리고 소리지르는 거 보면 걔도 어쩔 수 없는 '애'지만 어떤 영화 어떤 스틸의 어떤 장면에선 얘 영혼 나이가 삼천이백구십살 정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렇기에 다들 얘한테서 눈을 못 떼는 것이겠지. <황혼의 사무라이>는 영화는 괜찮을 거 같은디 씨네큐브 광화문에서만 개봉하나? <파리의 연인들>은 영화사 진진 수입/배급인 거 보면 하이퍼텍나다겠고, <나, 너 그리고 우리>는 <노트북>의 라자고스넬 감독에 데니스퀘이드, 르네 루소인데도 무슨 땜빵영화처럼 개봉한다. 요즘 직배업자들은 정말 나날이 '아, 옛날의 영광이여'를 절절이 외치고 싶을 것이다.


2월 셋째주 (2.16)

이 주는 으악이다.  설 연휴가 시작되는 주말이어서인지 박스오피스의 절대강자는 정해져있다곤 해도 나머지 파이를 나눠먹기 위해 아주 괜찮은 외화들이 각축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변이 없는 한 윤제군 감독과 하지원이 다시 뭉치고 임창정도 다시 합류한 <1번가의 기적>과 차태현의 복면의 트로트 가수로 출연하는 <복면달호>가 흥행 1위를 놓고 치열한 접전을 벌이겠지만(<1번가의 기적> 쪽이 훨씬 우세하다는 판단이 들지만 '가족단위' 영화관람이 이루어지는 설 특수를 <복면달호>가 겨냥하지 않을 리 없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의 깃발>, <더 퀸>, <록키 발보아> 등이  버티고 있어 가슴을 설렌다. 케인지언도 좌파 경제학자로 몰리는 대한민국에서는 골수 공화당 지지자이자 보수주의자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좌파 내지 진보세력이 되지 않을까. 원칙과 일관성을 지키는, 존경할 만한 보수주의자인 그가 만드는 2차대전 전쟁영화는 '미국 만세'가 아니라 '전쟁은 어린애들 죽이는 것이다'를 웅변한다고 하고, 같은 사건, 같은 장소에서의 시간들을 미군과 일본군, 동시에 두 입장에서 두 개의 영화로 동시에 찍었고 먼저 미군의 입장인 <아버지의 깃발>이 이 때에 개봉한다. 일본군의 시각으로 그릴 영화는 <아오시마의 편지>는 시차를 두고 개봉할 예정. 무엇보다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너무나 훌륭한 감독님"이기에 존경스럽다. 한물 간 근육맨 실베스타 스탤론이 록키로 다시 돌아오는 <록키 발보아>는 8, 90년대 영화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엑소시스트>에서 엄청난 카리스마와 미모를 자랑했던 헬렌 미렌은 여전히 건재하다. <조지왕의 광기>에서 처음 그녀를 보고 반했다가 <엑소시스트>를 보고 넘어간 적이 있는데, 그녀가 엘리자베스 1세로 출연한 <더 퀸>은 영국에 시니컬한 애정을 품고 있는 나에겐 필견 영화. 게다가 스티븐 프리어즈다. 지금의 관객들은 이름도 모르겠지만 이 아저씨가 또 한 영화 하시는 분이시다.

이밖에도 내가 너무 좋아하는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을 맡은 <리틀 칠드런>이 별 홍보를 안 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 날 개봉하고, 스폰지 라인에서는 허 샤오시엔 감독의 <쓰리 타임즈>가 개봉한다.<비밀의 숲 테라바시아>는 개인적으로 호기심을 갖고 있는 영화인데 거의 홍보가 안 돼 있는 듯. 챙겨볼 영화들이 정말 많다.작년 베니스인지 베를린인지에서 화제를 모았다는 <천국의 나날들>(테렌스 맬릭의 그 <천국의 나날들>과 제목만 같다)과, 루퍼트 에버릿, 샤론 스톤 주연의 <실종>도 이때 개봉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정확히 어느 극장에서 얼마나 상영할지는 알 수 없다.


2월 넷째주 (2.23)

쇼박스가 배급하는 <마강호텔>이 이 날 개봉한다. 최근 본격적인 매체광고에 들어갔는데, '한물간 조폭영화'의 흐름을 반영하듯 '퇴출된 조폭 멤버가 호텔에서 새 인생 시작한다'는 얘기란다. 김석훈은 제발 영화에 그만 나오던가 이미지 및 연기력을 전폭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켰으면 좋겠다. 톰 크루즈, 조지 클루니 등의 뒤를 좇아 배우 및 제작자로서 예술적 성취에 욕심을 내며 행보를 조심스럽게 조정하고 있는 브래드 피트가 <21그램>, <아모레스 페로스>의 각본가와 만난 <바벨>도 이 날 개봉하는데, 아무래도 브래드 피트의 이름값 덕분인지 스폰지하우스를 넘어 중급 규모로 개봉된다. 올해들어 부쩍 배급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히려 애쓰고 있는 MK 픽쳐스가 배급하는데, <스쿠프>에서 실패를 경험한 스폰지+MK 픽쳐스 팀웍이 브래드 피트의 이름값 덕을 볼 것인지 지켜볼 만하다. <바벨>에서 성공을 해야 MK 픽쳐스가 좀더 안심하고 배급력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CJ는 비욘세, 제이미 폭스 등을 앞세운 <드림걸즈>를 배급하는데, TV Spot에서 감독 빌 콘돈의 이름을 <시카고>의 감독으로 오해하도록 소개하더라. (빌 콘돈은 <시카고>의 각색자다.) <킨제이>, <갓 앤 몬스터> 등을 연출했던 빌 콘돈은 이 영화로 미국에서는 완전히 떴는데, 한국에서도 먹힐지는 두고 볼 일이다. 불안감이 있어선지 CJ가 몸을 사리는 듯한 인상이다. 롯데는 이 날 <텍사스 전기톱살인사건 0>를 배급하는데, 과연 텍사스 시리즈의 새 에피소드가 관객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것인가? 이밖에도 오랜만에 신작을 내놓는 민병훈 감독의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단관개봉 혹은 몇몇 소극장(아트하우스?)에서 교차상영으로 개봉할 가능성이 커보이고, 유니버설 픽쳐스 배급의 <태양의 노래>와 프리비젼 배급의 <눈에게 바라는 것>은 일본영화.

2007/02/09 16:33 2007/02/09 16:33

1월 첫째주 (1.4)

황석영 원작소설을 임상수 감독이 영화로 옮긴 <오래된 정원>과, 오랜만에 고소영이 원톱으로 나서는 <언니가 간다>가 1월 첫째주에 격돌할 예정이다. <오래된 정원>은 롯데시네마가, <언니가 간다>는 시네마서비스가 배급을 맡고 있는데, 관록의 시네마서비스냐 최근 공격적으로 배급력을 확대하고 있는 롯데시네마냐의 대결이 신년초 격돌이라니 살짝 흥이 빠지긴 한다. 뭣보다도 연말 보도자료을 통한 기싸움으로 안그래도 서로 더욱 예민해져 있는 CJ  vs. 쇼박스의 대결이 더 빡셀테니까. 솔직히 고소영만의 '원톱'은 불안해 보이는 게 사실이고, '과거로 날아가 첫사랑의 실수를 고친다'는 설정이 그닥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데, 그렇다고 <오래된 정원>의 무거움을 관객들이 기꺼이 감내할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소니의 야심찬 애니메이션 <부그와 엘리엇>이 방학의 어린이 관객을 겨냥하여 이 날 함께 개봉될 예정인데, 과연 오랜만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온 외화인 <박물관은 살아있다>를 제칠 수 있을 것인지? 급박하게 개봉날짜가 잡혀 홍보가 부족한 <나루토 - 대흥분! 초승달 섬의 애니멀 소동>이 아무리 원작의 인기를 등에 업는다고 해도 <부그와 엘리엇>과 <박물관은 살아있다>를 능가하긴 힘들어 보인다. 스폰지하우스에서는 <창문을 마주보며>가 개봉될 예정이며, 전주영화제의 기금으로 매년 만들어지고 있는 <디지털 삼인삼색> 시리즈는 올해 <여인들>이라는 부제 하에 에릭 쿠, 펜엑 라타나루앙, 다레잔 오미르바예프가 참여하여 필름포럼 등에서 개봉할 예정.


1월 둘째주 (1.11)

고만고만한 영화들이 한꺼번에 개봉한다. 디카프리오 주연의 <블러드 다이아몬드>(워너)나 덴젤 워싱턴 주연의 <데자뷰>(소니)를 '고만고만한 영화'라 지칭하는 건 몇 년 전만 해도 가당치 않을 일이었겠지만, 현재의 한국영화 시장에서라면 가능하다, 게다가 미국 박스오피스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워너측에서는 <디파티드>에서의 디카프리오를 믿는 듯하지만, <디파티드>에서 디카프리오가 훌륭했던 건 그게 (마틴 스코시즈의) <디파티드>였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즈윅의 흥행력이 지금도 통하리란 보장은 없다, 게다가 정치스릴러? 꽥이다.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배종옥과 (발치수술 후 처음 영화에 출연하는) 강혜정 주연의 <허브>가 쇼박스 라인을 타고 개봉한다. 현재 집중적으로 매체광고 노출 중인데, 확 끄는 힘이 부족해 보인다. <데스노트>의 후편이 전편과 약 두 달 간격을 두고 개봉하는데, 전편의 관객들이 그대로 극장으로 가줄지? 폭스의 <에라곤>과  CJ 라인의 <묵공>도 이 날 함께 개봉하는데, 눈이 높아질대로 높아져있는 관객들에게 <에라곤>은 오히려 원성만 듣지 않을까 싶다. <묵공>이 영화는 의외의 복병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는 보이는데 <중천> 뒷수습에 정신없는 CJ인지라 <묵공>까지 함께 추락할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허니와 클로버>는 스폰지 전용관에서 개봉할 예정.

1월 셋째주 (1.18)

<마파도 2>밖에 없다. 전편의 흥행성적도 있고, 함께 개봉하는 다른 영화들이 약하다.  UIP에서 파라마운트가 떨어져 나가면서(CJ가 독자배급) 어쩔 수 없이 독자적 배급 라인을 꾸릴 수밖에 없었던 유니버설(UPI)이 배급하는 <신나는 동물농장>이 과연 과거 디즈니나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처럼 어린이 관객들에게 통할지는? 보통 이 까라 영화들은 패스트푸드점들과 공동 프로모션을 펼치는데, 소니의 <부그와 엘리엇>은 버거킹과 손을 잡았지만 <신나는 동물농장>은 누구와? <렌트>는 소니가 스튜디오2.0에 배급을 넘긴 걸로 봐선 큰 기대를 안 하는 것 같고, 제아무리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이 연출했다 해도 원래 뮤지컬 팬들이 이걸 보러 갈지도 의문이다. <내 남자 길들이기> 역시 소형관 위주로 개봉할 가능성이 크고, 김청기 감독의 디지털 복원판 <로보트 태권 V>는 현재 홍보가 거의 안 돼 있다.


1월 넷째주 (1.25)

장예모 감독이 공리, 주윤발, 주걸륜과 함께 한 <황후화>가 이 날 개봉한다. 장예모는 <영웅>부터 스펙터클 시대극에 완전히 맛들인 듯, 감독으로서보다 오히려 <진용>에서의 '코믹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나로서는 장예모-공리가 오랜만에 팀을 이룬 것에 내심 호기심이 일면서도, 왠지 CJ가 <묵공>을 <황후화> 배급의 예고편 격으로 사용하는 것같아(<황후화>는 시네마서비스와 CJ가 함께 배급한다고 한다) 기분이 껄끄럽다. 현영, 이동욱이 주연을 맡은 <최강로맨스>는 개봉 직전 '우리 겁나게 웃겨요'를 얼마나 강조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몰릴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전혀 호감가지 않고, 이성강의 애니메이션 <천년여우 여우비>는 손예진을 아무리 내세워도 애니메이션 시장이 불안정한 한국에서 큰 성공을 기대하긴 힘들 듯하다. 미국에서 엄청나게 히트친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는 별 반응이 없을 듯하고(오히려 미국 내 인종지도 풍자하면서 카자흐스탄 사람 바보 만드는 아이러니는 뭐냐는 지적을 면하기 힘들 듯), 이현우, 김보경이 주연을 맡은 <여름이 가기 전에>의 배급이 이모션 픽쳐스인 걸 보면 거의 소형관에서 땜빵영화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커보여 안습.

이날 개봉하는 영화 중 개인적으로 굉장히 보고싶은 영화는 <미스 포터>이다. 르네 젤웨거와 유언 맥그리거가 주연을 맡았고 크리스 누난이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피터 래빗'을 탄생시킨 베아트릭스 포터의 실제 삶을 영화화했는데, 지적이고 문화적인 것에 대한 소구가 크고 특히 영국문학에 호감을 느끼는 2, 30대 여성관객들, 한마디로 브리짓 존스를 사랑하는 여성들에게 크게 어필할 듯하다. 이 시장을 크게 본 듯 배급도 롯데시네마가 맡고 있고 일찌감치부터 적극적으로 케이블 TV를 통해 매체노출을 하고 있고, 반응도 좋은 듯하다. 이외에도 굉장히 궁금증이 가는 스토리 라인의 <소녀X소녀>는 채널 CGV가 제작했는데, 아마도 CGV 인디관을 통해 개봉할 듯싶다.

2007/01/05 15:20 2007/01/05 15:20

말많고 소문 많던 <인디아나 존스 4>의 제작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뉴스 하나. Yahoo! Movies!의 News란은 지난 12월 30일1월 3일자 뉴스를 통해 조지 루카스의 공식 홈페이지 등을 인용해 2007년 6월에 <인디애나 존스 4>가 드디어 촬영을 시작한다는 뉴스를 전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마침내 만족할 만한 각본을 완성시켰다고 하는데, 총대를 짊어진 각본가는 데이빗 쾨엡. 이 사람이라면 확실히 믿을 만한 각본일 것이다. 새 인디애나 존스 영화는 '캐릭터'에 치중하며 보다 많은 미스테리를 갖게 될 거라고 한다. 해리슨 포드의 출연은 확정이고, 숀 코너리와 나탈리 포트먼 등의 이름이 '루머'로 돌고 있다. 개봉은 2008년 5월 예정.

한때 해리슨 포드를 너무 좋아해서, <블레이드 러너>를 찾아본 것도 해리슨 포드의 출연작을 챙겨보면서였다. 유럽식의, 타고난 종류의 우아함과 품위는 아니지만, 이 사람은 이 사람 나름의 어떤 반듯한 우아함을 가지고 있어서, 나는 그가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넘긴 채 수트를 입고 의자에 앉아있거나 하는 사진을 꽤 좋아했다. 곧게 앉아있는 사진도, 약간 삐딱하게 앉은 사진도. 게다가 그의 목소리와 발음은 얼마나 근사한가. 게다가 <사브리나> 같은 영화를 보면, 이 사람이 로맨틱 코미디와 멜러에도 꽤 재능이 있음을 보여준다... 관객들이 별로 원하질 않아서 그렇지. 해리슨 포드 하면 역시나, (미국식) 자유로움이 흘러넘치는 인디애나 존스의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니까. 카우보이 모자, 헐렁한 티와 바지, 밧줄. 턱의 흉터가 스타워즈 때도 있었던가, 인디애나 존스 하면서 생긴 거던가? 그러고 보면 인디애나 존스는 <스타워즈>의 한솔로 캐릭터를 조금 더 능란하게 발전시킨 듯한 인물이다. 해리슨 포드가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스타가 된 이유일 것이다.

인디애나 존스는 지금의 극장 티켓 파워그룹인 20대들에겐 그저 낡은 유물일지 모르지만, 30대 이상의 사람들에겐 <스타워즈>와 또다른 의미로 동심을 지배했던 로맨틱 어드벤처의 세계 중 하나였다. 해리슨 오라비께서 나이가 많이 드셨는데 과연... 하면서도 말이 나올 때부터 내심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데, 뉴스를 보다가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버린 이유는 아래 사진 때문에.


해리슨 오라버니... 정말 많이 늙으셨군요 ㅠ.ㅠ


과연 네번째 <인디애나 존스>는 과거의 그 드높은 명성에 다시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2007/01/04 14:44 2007/01/04 14:44

이번에 켄 로치 특별전에서 본 영화들에 대해 감상문을 써보고자 시도하지만, 쉽지가 않다. 몇번을, 시도했다 지우다를 반복하다, 그냥 닥치고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다시 읽고 있다. 통일노동자당(일명 P.O.U.M, 품)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스페인 내전이 서술되는 것은,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이나 [카탈로니아 찬가]나 비슷하다. 심지어 오웰과 데이빗 카(이안 하트, <랜드 앤 프리덤>의 주인공)가 P.O.U.M의 의용군에 소속된 계기 - 우연히 열차 안에서 그쪽 사람과 만나 합류했기 때문에! - 도 비슷하기 때문에, <랜드 앤 프리덤>이 [카탈로니아 찬가]를 느슨하게 각색한 것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아마 데이빗 카가 속해있던 정당도 독립노동자당이었을 것이다. (조지 오웰이 독립노동자당원이었다.)

두 작품이 비슷한 것은 같은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영국인"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의용군에 입대하게 되는 과정, 전선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다들 비슷비슷했을 테니까. 언어적 차이, 문화적 차이를 겪는 것과 함께, 스페인 내전이 정치적인 방향에서 진행된 양상에 대해 반응하는 것도 비슷했을 테니까. 다만 조지 오웰은 데이빗 카처럼 공산당에 입당하고 국제여단으로 적을 옮겼다가 다시 의용군으로 돌아온 적은 없다. 오웰은 휴가 나왔다가, 데이빗 카는 부상 치료차 후방에 왔다가 '엉겁결에' 바르셀로나 시가전에 휘말리는데, 이때 둘은 서로 반대편이다. 오웰은 통일노동자당 계열 의용군으로서 당시 노동조합(정확히, CNT 계열)이 관리하고 있었던 전화국을 사수하는 입장이었지만 데이빗 카는 마침 공산당에 입당하여 제복을 입고 전화국을 접수하기 위해 공격하던 입장이었다. <랜드 앤 프리덤>에서 데이빗 카가 CNT의 플랭카드가 달린 전화국 저쪽에서 영국인을 발견하고 그에게서 "대체 그쪽에서 뭘하고 있는 거요?"란 소리를 들을 때, 그 영국인이 조지 오웰일지도 모른다고 멋대로 상상하는 건 관객-독자가 취할 수 있는 즐거운 특권이리라.

Ken Loach

<랜드 앤 프리덤>은 5, 6년 전, 처음으로 본 켄 로치 영화이기 때문에 각별할 수밖에 없다. 그 바로 뒤에 본 <레이닝 스톤>과 함께 이 영화는 내게 '켄 로치 영화'에 대한 일종의 '각인'으로 너무 강하게 남아있어서, 나는 켄 로치의 영화들을 내멋대로 <랜드 앤 프리덤> 계열과 <레이닝 스톤> 계열로 나누곤 한다. 사회/역사적인, 거시적 질서 안에 개인이 휘말려 들어가는 걸 다루면 <랜드 앤 프리덤> 계열, 개인 혹은 그의 가족이 겪어나가는 사건들을 찬찬히 미시적으로 다루면 <레이닝 스톤> 계열. 구분 기준이 너무 자의적이라 당연히도 두 계열에 속하지 않는 영화가 더 많긴 하지만 하지만 이게 그래도 내게는 꽤 쓸모가 있다. 예를 들어 전자 계열이라 할 수 있는 켄 로치의 최근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랜드 앤 프리덤>과 플롯 구조가 아주 유사하다. <하층민들>, <내 이름은 조>는 전형적인 <레이닝 스톤> 계열. <달콤한 입맞춤>은 <레이닝 스톤> 계열로 넣을 수 있겠지만 살짝 변종으로 느껴진다. 역시 근작이라 그간 스타일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일까.

롤랑 조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켄 로치 영화들에 대해 내가 느끼는 점을 딱 집어 표현한 게 롤랑 조페다. "켄 로치 영화에는 '사람'이 있다. 그들을 꼭 껴안아주고 싶다." 나는 켄 로치 영화들에 나오는 사람들이, 픽션의 인물들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도저히, '만들어진 인물'이라 느껴지지 않는 그 생동하는 인간들, 생생한 인간들. 심지어 그 인물들이 '배우들'이라는 너무 당연한 사실마저도 잊어버리곤 한다. (그리고선 어! 빌리 엘리엇네 아빠 아냐? 이러고 있다;;) 켄 로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시나리오가 개연성이 없다는 둥 이념에 함몰되어 있다는 둥 하는 소릴 들으면, 난 그들이야 말로 '이념을 갖기 싫다는 이념'에 함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탈정치를 외치는 이들이야말로 실은 가장 정치적이다.) 그 이념의 편견 때문에 켄 로치의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켄 로치 영화에서 혁명의 선전과 이데올로기적 공세만 본다면, 당신은 켄 로치 영화의 3/4을 그냥 망막 위로 흘려보내버린 것이다. 극히 일상적인, '영화의 사건'이 될 성 싶지 않은 사건들을 묘사하면서도 그저 에피소드와 에피소드의 연결이 아닌 '플롯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짐 앨런, 폴 래버티의 시나리오와, 낭비 없이 간결하고 건조하게 바로 들어갔다 빠지는 배리 애크로이드의 카메라, 켄 로치와 함께 하는 게리 루이스, 로버트 칼라일 등 켄 로치 전문 배우 혹은 이전엔 연기란 걸 해본적이 없는 비전문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이 모두를 조율하며 구현해내는 연출 등, "켄 로치와 그 친구들"이 만들어내는 성과는 사실,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도큐멘터리 아닌 '극영화'로서의 기본기에 충실한 영화를 보여주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힘이 빠지고 있다는 소릴 듣고 있긴 하지만(그는 이미 70세의 '할아버지'감독이고, 아무래도 그의 최전성기는 90년대 초중반이었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한편으로는, 한결 여유로워진 그의 후기 영화를 오히려 이전 영화보다 더 좋아하는 관객들도 분명 존재하리라.

켄 로치는 지금 또 신작을 찍고 있다. 변함없이 폴 래버티의 시나리오를, 이번에는 <9.11> 때 잠깐 같이 한 - 물론 <랜드 앤 프리덤>과 <히든 아젠다>에서 한참 밑엣 스탭으로 참여한 적이 있긴 하지만 - 나이젤 윌로비 촬영감독과 함께 한다. 프로듀서 짝꿍 레베카 오브라이언도 여전히다. 참 노인네가 정정도 하지. ㅎㅎ 그저 부디, 건강하시라. 그래서 그 식지 않는 열정으로 계속, 영화를 보여주시라.




ps. 이 글을 완성하고 나면, 영화들의 감상문을, 쓸 수 있을까.

2006/11/21 09:08 2006/11/21 09:08
<제이와 사일런트 밥의 역습>(국내 비디오 제목은 그냥 "제이 앤 사일런트 밥")이 이 콤비의 마지막 출연작이 될 거라고 했던 케빈 스미스가 사일런트 밥으로 돌아온다. 더욱 흥분되는 것은, 이 영화가 <점원들 2>라는 것이고, 미국에서는 7월 21일 개봉 예정이라는 것.


They Strike Back!

케빈 스미스의 영화가 국내에서 흥행한 적은 없다. 그의 영화는 거의 극장 개봉도 못 거쳐보고 비디오로 직행하여 일부 소수 팬만 만들어냈을 뿐이고, 그나마 <굿 윌 헌팅>으로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뜬 직후 이들의 이름과 종교 소동으로 <도그마>가 극장 라인을 탔고, 이후 <저지 걸>이 직배사를 통해 극장에 잠깐 걸렸을 뿐이다.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못하다가 DVD 박스세트 발매시 겨우 빛을 본 <점원들>을  제쳐두면, 비디오로 들어왔다고는 하나 본 사람은 별로 없는 - 그리고 평도 그닥 좋지 않았던 - <섀년 도허티의 몰랫츠> 외에 그나마 케빈 스미스의 이름을 알린 것은 <체이싱 아미>이다. 기억으로는 코아아트홀에서 단관 개봉했는데... (맞나?)


그러고 보니 <점원들>을 보지 못하고 <몰랫츠>도 안 본 주제에 <체이싱 아미>는 범작이라 생각하고 <도그마>는 케빈 스미스가 너무 메이저틱하다고 판단했던 내가 도대체 뭣 때문에 케빈 스미스의 팬이 됐는지 - 그리고 그의 영화들에 대한 이런저런 판단의 근거들은 무엇인지 - 스스로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이 모든 건 <점원들>을 보고 나야만 제대로 결론이 나는 문제인 건지도. 이제껏 내가 환상을 키웠거나, <점원들>에 있을 어떤 정수의 흔적만 보며 갈증만 느꼈거나. 사실, 나는 제이와 사일런트 밥을 보겠다는 이유 하나로 <스크림 3>를 봤던 사람이다. (그걸 보기 위해 <스크림 2>를 봐야 했다.) 그리고 내 종교상의 이유 때문에 <도그마>를 아주아주 좋아한다.


소수의 케빈 스미스 팬들이 분명 존재하는 건 사실일 터이다. 케빈 스미스 감독 콜렉션이 나왔을 때 환호하던 인간들이 분명 존재했으니까. 침만 발라놓고 사지 못한 사이에 품절도 됐고. 그런 케빈 스미스가 <점원들 2>를 만들었다면, 그간 뻘짓을 벗어던지고 초심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렷다. 물론 아무리 초심 복귀라 해도 그간 그가 만들어놓은 인맥과 돈줄이 있을테니 아주 열악하지는 않을 터이고.


IMDB의 관객평점은 92명이 투표한 가운데 평점 8.9점. 그의 복귀를 기다리던 팬들이 서둘러 던져준 무더기 점수일텐데, 이 점수가 의미하는 건 누구보다도 골수팬들이 쌍수들고 반길 영화라는 점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목 빼고 기다릴 만하다. 국내에 들어오느냐가 문제겠군. 그간 말아먹은 흥행성적 때문에 과연 그의 영화를 수입해올 사람이 있을지. 내 꿈은, 이런 영화 수입해서 소규모로 풀어서 먹고사는 건데 말야.




ps. 안타까운 점 하나. 간만에 자료를 찾아보니 케빈 스미스 머리가 짧더라. 짧은머리 사일런트 밥이 가능한 건가?


ps2. 확실히 내가 영화쪽에 관심을 끊고 살았었나봐. 올 깐느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했다고 한다.


ps3. 절판된 줄 알았던 박스세트를 모처에서 우연히 (그것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발견해 질러버렸다. 상품준비완료라 한다. 우하하하!

2006/06/06 12:12 2006/06/06 12:12
오랫동안 버려뒀던 놀이터인 IMDB.com을 간만에 휘젓고 돌아다니다 보니 <Ocean's Thirteen>이 당당하게 '프리 프러덕션' 중으로 리스트 업 되어 있다. 정말이야? 진짜? 리얼리? 아이고...


<오션스 일레븐>과 <오션스 투웰브>를 매우 좋아한다. 먼저 <오션스 일레븐>은 영화적 야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친한 애들끼리 남의 돈 갖고 한번 잘 놀아보자는 의도로 시도되었고, 그 의도에 철저히 부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어차피 그 친한 애들이 나름의 이너 서클 안에 있는 스타들이기 때문에, 영화가 아주 폭탄이지만 않다면 대강 관객들도 좋아하고, 그럼 돈 대주는 애들도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애초의 영화 의도는 너무나 잘 맞아떨어진데다 원래 그런 '노는 영화'에는 소더버그가 또 나름 한 재주 하기 때문에, 결과가 무척 좋았다.


평론가들은 이후 후속작 <오션스 투웰브>에 별 좋은 소리를 못했지만, 보는 관객 입장의 나는 충분히 즐거웠다. <투웰브>는, <오션스>에서는 조금 조심스러웠을 '놀아보세'의 시도가 너무나 노골적으로 전면으로 나선 영화다. 영화적 완성도고 나발이고 보는 입장에선 사실 그 '놀아보세'가 보고 싶었던 거고, 그게 만족되는 한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다. 게다가 <투웰브>에는 우리의 캐 마님이 합류하시지 않았는가. 그 우아하고 품위있는, 마치 처음 태어날 때부터 엘리자베스 아덴 화장품 모델의 적임자로 찍히신 듯한 아름다우신 자태와는 좀 의외로 캐 마님이 좀 놀 줄 아셔서, 그 무리에 참 적절하게 끼어들어 적절하게 잘 놀아주셨다.


이게 세번째가 되면, 이번엔 그만큼 안 나오면 어떡하나, 전편들을 좋아했던 사람의 입장에선 걱정되기 시작한다. 시리즈물에서 2부가  어떻게 요행껏 잘 되더라도 3부에선 여지없이 망가지곤 하던 징크스는 <반지의 제왕 3부작>으로 불어닥친 각종 3부작 혹은 시리즈물의 성공으로 많이 완화되긴 했다지만, 그래도 세번째쯤 되면 매너리즘 보여, 지루하기도 해, 게다가 이 시리즈는 2편이 1편을 능가할 정도는 또 아니었어, 불안하기 마련이다. 제대로 사고 함 쳐주셨으면 하는 마음 반, 망가지느니 아예 그 꼴 보기 싫다는 마음 반이랄까.


어차피 조지 크루니와 소더버그의 섹션 에잇에서 제작하는지라 그 둘과 버니 맥, 돈 치들만 확정되었을 뿐 브래드 피트나 맷 데이먼, 줄리아 로버츠, 캐서리 제타 존스나 기타 다른 일당 멤버들의 출연도 '확정'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1, 2편의 단맛이 분명 존재했던 바 성사 가능성이 아주 어둡지만도 않다. 게다가 이 시리즈의  attach 명단엔 엘렌 버킨은 물론 알 파치노도 껴 있다.


소더버그의 스케줄이 줄줄이 사탕으로 바쁜 것도 변수의 요인일 듯. 그가 감독으로서 프리-프로덕션에 관여하고 있는 영화만도 현재 두 편(<Guerilla> - 베니시오 델 토로가 체 게바라로 나오는 - 와 <Life Interrupted> - 다큐멘터리)이고, 프로듀서로서는 더욱 바쁘며, 심지어 올해 11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신작 <The Good German>도 있다. (감독과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다면 개봉 준비도 무지하게 신경 많이 쓰고 바쁠텐데. 이 영화는 독립된 포스트로 다루기로 한다.) 지금 계획으론 2007년 개봉(아마도 여름이겠지)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만, 과연 이 프로젝트, 성사될 수 있을까?
2006/05/29 09:09 2006/05/29 09:09
훌륭한 감독은 연기력이 미처 검증되지 않은 핀업보이에게서도 훌륭한 연기를 끌어낼 뿐 아니라, 이후 그가 '배우'로서 자기 발로 설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 어떤 감독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연기력은 뼛골까지 빼먹지만 이후 배우를 망가뜨리는 데에 반해, 이런 감독들은 말하자면 새로운 배우를 '발굴'하고 '만들어'낸다. 내게 그런 감독들 중 하나가 마틴 스콜세지다. 로버트 드니로는 말할 것도 없고, 멍청한 섹시녀로 평가절하 당하던 샤론 스톤을 배우로 이끌어준 것은 명백히, <카지노>에서 그녀를 연출했던 마틴 스코시즈였다. 핀업보이에서 배우로 절실하게 길을 찾던 톰 크루즈의 경력에서 이정표에 있는 영화가 마틴 스코시즈의 <컬러 오브 머니>란 사실도 새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갱즈 오브 뉴욕>에서 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기용했던 마티 할아범은, 그가 꽤 마음에 들었나보다. <애비에이터>에서도 덜컥 하워드 휴즈의 역을 그에게 맡기더니, 올해 10월 6일을 개봉일로 잡고 있는 신작 <The Departed>에서도 맷 데이먼과 함께 디카프리오를 주연으로 쓰고 있다. 로버트 드니로와 하비 키틀, 조 페시이 너무 나이 들어버린 후 그의 페르소나를 표현해 줄 적절한 배우를 찾지 못하던 그가 비로소 디카프리오에서 빛을 본 건가?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빛나던 가능성 이후 지금까지 계속 "다듬어지지 않은 가능성과 천재성"만을 보여주고 있는 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마티 할아범이 그토록 편애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디카프리오의 매력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다고 말해지는 <로미오 + 줄리엣>에서, 나는 로미오가 아닌 자의식 강한 디카프리오만을 보았을 뿐이다. 분명 <갱즈 오브 뉴욕>에서 그의 모습은 이전보다는 나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바로 그 캐릭터를 보여주진 않았다. 그건 <애비에이터>에서도 마찬가지다. 디카프리오는 캐릭터가 아니라 캐릭터를 품은 배우를 보여준다. 그 연기법은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같은 대가들도 마찬가지로 즐기는 연기법이긴 하지만, 드니로가 보여주는 캐릭터에 대한 그 헌신성과 그 깊이가, 그 탁월한 해석력이 디카프리오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나는 지금의 드니로가 아니라 1970, 80년대의 드니로를 말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디카프리오는, 영화 감상을 방해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곤 했다, 적어도 내게는.


예를 들어 <성난 황소>에서 드니로가 보여주는 연기는, 단순히 복싱선수에 걸맞는 근육을 만들었다가 무지막지하게 살을 찌운 외모상의 변화 따위는 별 것 아니라 여겨질 정도로 탁월하다. 1973년의<비열한 거리>에서부터 1980년의 <성난 황소>에 이르기까지, 드니로는 자신의 30대를 보내는 동안 스코시즈의 영화 다섯 편에 출연했고, 그 모든 영화에서 그 캐릭터를 품은 드니로 그 자체였다. 그러나 드니로가 그려내는 캐릭터들은 언제나 드니로 그 자신이면서도 동시에 그 캐릭터로 이입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했다. 우리는 드니로가 아닌 자니보이나 트래비스, 제이크를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역시나 30대인 디카프리오가 보여주는 것은 피상적인 캐릭터에 보기 민망하게 과열된 거짓 열정뿐이다. 그의 강한 코팅연기 면에는 캐릭터가 스며들어갈 구멍이 없다. 심지어 <타이타닉> 같은 영화에서조차, 케이트 윈슬렛이 아름답게 그려낸 로즈를 번번이 어색하게 만들며 아울러 영화 전체를 위태롭게 만든 것이 바로 디카프리오였다. 그는 자신의 스타성을 영화적 필요에 따라 연화시키는 법을 모른다.


새삼 마티 할아범에 버닝하고 있는 지금, 세번째로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을 그의 영화를 볼 생각을 하니 좀 기가 막히다. 새로이 발표된 신작 프로젝트 <Silence>에도 그가 출연하게 된다면, 조심스럽게 - 마티 할아범께는 죄송하게도 - '무시'를 고려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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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8 04:00 2006/05/28 04:00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 <블랙 다알리아>를 오랫동안 건드리는 척만 하다가 결국 브라이언 드 팔마에게 넘겨줘 버린 데이빗 핀처.  평작 <패닉룸>(2002) 이후 간만에 메가폰을 잡고 맹렬히 촬영중인 영화가 바로 <조디악 Zodiac>입니다. 로버트 그레이스미스가 쓴 동명의 원작을 영화화하는 이 프로젝트는 1960년대와 70년대, 샌프란시스코 만 일대를 공포에 떨게 하며 미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쇄살인범 조디악의 실화를 토대로 하며, 사건에 점차 강박을 느끼게 되는 형사와 뉴스 기자들의 삶을 따라간다고 합니다. 제이크 질렌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마크 러팔로 등이 주연을 맡고 있고, 워너와 파라마운트가 공동제작하는 영화입니다. 미국에서 올해 11월 개봉 예정인 이 영화는 이미 티저 포스터와 약간의 홍보 스틸컷이 이미 공개되어 있습니다.


티저포스터가 이렇게 생겼습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거 참, 흥미롭군요. 워낙에 유명한 미결 연쇄살인 사건이네요. 직접적으로 조디악을 다루는 게 목적인 사이트들만 꽤 여러 개입니다. 의문의 연쇄살인에 대해 자신이 범인이라 밝힌, 'Zodiac'이라 서명된 편지를 샌프란시스코의 신문들에 보내기 시작했고, 그는 최소한 17건의 사건에 대해 자신의 짓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가 보냈던 편지들의 스캔본을 모아놓은 곳도 있습니다. 처음엔 Dear Editor 등으로 시작하는 편지들이, 조금 지나자 "THIS IS THE ZODIAC SPEAKING"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통일된 형식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원 안에 열십자가 그려진 버튼(저 티저 포스터에 보이는 표식)을 달고 다닐 것을 요구하며, 일부 문구는 암호로 적어놓고 있습니다. 해독된 이 암호들 중에는 "모든 스포츠들 중에서도 인간 사냥이 가장 흥미롭다"와 같은 구절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군요.


워낙 유명한 사건인 만큼, 이미 영화화된 전례들이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것이 <The Zodiac>이라는 제목으로 작년에 제작된 영화인데, 이 영화는 올해 3월에 미국에서 한정 개봉되었습니다. <웨딩 플래너> 등에 출연했고 <콜드 케이스>와 <그레이스 아나토미> 등에 출연 중인 저스틴 체임버스와 로빈 튜니(이 아가씨, 그래도 계속 영화일을 하고는 있군요.), 그리고 로리 컬킨이 주연을 맡았었네요. 이 영화는 데이빗 핀처의 버전과 달리 희생자의 가족에게 조디악 킬러가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한다고 합니다.


데이빗 핀처의 필모그래피에 <세븐>이 있는 만큼, 이 프로젝트는 관심을 안 끌래야 안 끌 수가 없군요. 게다가 저처럼 '데이빗 핀처, 행님!' 이러고 무릎꿇고 있는 인간한테는... ^^;; 미국과 거의 동시개봉을 하는 게 요즘 트렌드인 이상, 한국에서도 올해 안에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앞으로 계속 업데이트 하도록 하죠.





ps. 조디악 킬러에 대해 꽤 자세하고 길게 정리된 리포트(영어입니다)를 여기(새 창으로 열기)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사이트 자체가 각종 범죄들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놓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곳입니다. 조디악 킬러는 "Most Notorious" 항목에 있습니다.


ps. 첫 살인 후 경찰과 언론에 보낸 편지에서, 조디악은 또다른 살인을 예고하면서 (예비) 피해자를 줄곧 "She"라고 언급합니다. 즉 그의 범죄 예상 프로젝트에서 피해자는 처음부터 일단 여성으로 상정되어 있단 얘기죠. 연쇄살인은 피해자를 랜덤으로 고르는 바, 물론 여성 연쇄살인범들의 숫자도 꽤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만, 절대적인 다수의 연쇄살인 사건들이 (프로파일링 기법의 분석과 통계에 의하면) 성적 가학 성향의 백인 남성이 여성들을 피해 대상으로 한다는 사실이 그냥 단적으로 새삼 확인되네요.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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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2 03:26 2006/05/22 03:26